국내 1, 2위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삼성그룹)과 이노션(현대차그룹)이 칸 국제광고제를 앞두고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칸 광고제(정식 명칭은 '칸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는 '광고인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광고업계의 최대 이벤트다.

17일부터 일주일간 열리는 칸 광고제에 제일기획이 "5년 연속 칸 광고제 심사위원을 배출했다"며 자랑하자 이노션은 "칸 광고제의 오프닝과 클로징 갈라(gala·축하 행사)를 국내 업체 최초로 후원한다"고 맞받았다. 연간 4조원 내외의 광고취급액을 기록하며 급성장해온 두 회사가 글로벌 광고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한 '국제전'을 시작한 것이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둘째딸인 제일기획 이서현(39) 부사장과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맏딸인 이노션 정성이(50) 고문이 경영에 참여 중이다.

업계 1위인 제일기획은 '우성택 글로벌 미디어팀장이 칸 광고제 심사위원으로 선출돼 5년 연속 심사위원을 배출했다'는 내용을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칸에서 인기 아이돌 가수인 2NE1과 함께 '디지털 한류 마케팅'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는 점도 내세웠다.

이노션은 그러나 "세계 최고 광고제의 문을 열고 닫는 오프닝·클로징 갈라 행사에서 후원을 맡은 이노션의 로고와 홍보물이 전 세계에 알려진다"고 강조했다. 이노션은 또 미국 법인의 현대차 벨로스터 캠페인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열고 마이크로소프트 애드버타이징과 공동으로 '비치클럽 콘서트'도 연다고 밝혔다. 특히 토니킴 이노션 미주지역본부장이 미국 대표 심사위원으로 뽑힌 것을 들며 "한국 회사에서 미국 대표로 심사위원을 배출한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두 회사는 글로벌 광고시장에서의 활약을 자사 홍보 포인트로 자주 강조해 왔다. 최근 이노션이 '글로벌 광고회사'로 성장하고 있음을 강조하자 제일기획은 미국의 광고 전문지 '애드에이지(AdAge)' 발표자료를 내세워 맞불작전을 펴고 있다. 2010년 이후 글로벌 20대 광고회사 순위에서 제일기획이 세계 국내 광고회사 중 유일하게 3년 연속 선정(16~19위)됐다는 것.

양사의 긴장관계는 제일기획을 이노션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고 있다는 분석. 이노션이 최근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현대·기아차의 해외 광고를 수주하면서 제일기획이 1위 수성(守城)을 안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노션은 2008년까지만 해도 광고취급액이 제일기획의 3분의 1도 안 됐지만 현대차 광고물량에 힘입어 2009년 이후에는 제일기획의 턱밑까지 추격한 상태다.

오너 딸들뿐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간에도 자존심 싸움이 치열하다. 제일기획 김낙회(61) 사장과 이노션 안건희(55) 사장은 광고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들이다. 김낙회 사장은 삼성그룹 비서실(구조조정본부 포함)에서 3년여 일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제일기획에서 잔뼈가 굵었다. 2007년부터 6년째 대표이사를 맡으며 제일기획의 글로벌시장 도약을 이끌고 있다. 안건희 사장은 현대차 마케팅전략실장·수출1실장·서유럽법인장 등을 거쳐 2009년부터 이노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안 사장은 자동차사업에서 익힌 기획력과 마케팅기법을 광고업계에 접목해 이노션의 고속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광고취급액

광고대행사가 광고주(클라이언트)가 의뢰한 광고를 제작하는 데 들어간 비용과 신문·방송 매체 등에 집행한 광고비, 수수료 등을 합한 금액. 업계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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