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조종사에서 골퍼로, 그리고 일흔의 초보 작가로
인생에는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장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이고, 누군가에게는 첫사랑의 추억이 깃든 곳일 것이다. 나에게 그곳은 바로 수원(水原)이다.
수원은 단순히 젊은 시절을 보낸 도시가 아니다. 나의 꿈이 시작되었고, 사랑이 가정을 이루었으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인연들이 뿌리내린 곳이다.
젊은 날, 나는 이곳에서 전투기 조종사로서 하늘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푸른 창공을 가르며 배운 것은 비행 기술만이 아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법, 순간의 판단에 책임지는 자세, 그리고 철저한 준비가 자신감을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하늘에서 배운 마음의 기술이 훗날 골프와 명상, 그리고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질 줄은.

수원은 내게 골프의 인연을 열어준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작은 공 하나를 잘 맞히는 즐거움으로 시작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골프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스승이 되었다.
잘 맞은 샷에서는 겸손을, 실수한 샷에서는 내려놓음을, 흔들리는 마음에서는 현재에 머무르는 지혜를 배웠다. 무엇보다 골프는 기술의 경기를 넘어 마음의 경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수원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의 역사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들이 세상에 태어났다. 젊은 부부가 부모가 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을 채우던 그 시절이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하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은 거창한 성공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한 라운드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일흔이 되었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렸고, 중년에는 책임과 역할에 충실하려 애썼다. 이제는 조금 느리게 걸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올해는 특별한 선물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생각과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명상으로 피는 골프멘탈』
전투기 조종사가 그린 위에서 배운 마음의 기술
하늘에서 익힌 집중력, 골프에서 배운 감정 조절, 명상을 통해 깨달은 마음챙김의 지혜를 하나로 담았다.

그리고 오늘, 다시 찾은 수원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골프를 즐기며 오랜 인연을 이어온 분들로부터 책 출간을 축하받았다. 따뜻한 격려와 찬사는 초보 작가에게 과분할 만큼 고마운 선물이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지나온 시간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다시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고 배움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더 공부해야 할 것이 많고, 나누어야 할 이야기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의 출간 축하는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앞으로 더 성실하게 배우고 실천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살아가려 한다. 전투기 조종사, 교육자, 명상지도사라는 이름에 이어 ‘작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조심스럽게 더해본다.
가을꽃은 봄꽃처럼 서둘러 피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계절을 묵묵히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고요히 꽃을 피운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일흔이라는 나이가 무엇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비로소 깊은 향기를 내기 시작하는 계절일 수도 있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조금 덜 서두르고, 조금 더 깊이 바라보고 싶다. 더 많이 이루는 것보다 더 의미 있게 나누고, 더 멀리 가는 것보다 지금 걷는 길을 충실하게 느끼고 싶다.

수원의 하늘 아래에서 시작된 젊은 날의 꿈이 긴 세월을 돌아 오늘 한 권의 책으로 피어났다. 하늘을 날던 청년은 어느덧 일흔의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꿈을 향한 마음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인생의 제3막을 시작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좋다. 매 순간 마음을 챙기며 나만의 걸음으로 걸어가면 된다.
인생의 전반전은 하늘에서 용기를 배웠고, 후반전은 그린 위에서 마음을 배웠다. 이제 제3막에서는 그 지혜를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한다.
“인생 제3막, 천천히 걸어보자. 아직 피워야 할 꽃이 남아 있으니.”
2026년 10월, 가을의 수원에서
『명상으로 피는 골프멘탈』 저자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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