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비결, 열다섯 가지
“좋은 글이란 쉽고, 짧고, 간단하고, 재미있는 글입니다. 멋 내려고 묘한 형용사 찾아넣지 마십시오. 글 맛은 저절로 우러나는 것입니다.”
유홍준 교수가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0주년 기념 강연 – ‘문화유산을 보는 눈과 나의 글쓰기’ 강연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여러 기사와 포스팅이 있었는데 주말에 나오는 <중앙선데이>에 정재숙 문화전문기자가 잘 정리해 주었다. 열 번째 비결처럼 직접 적어보았다.
1. 주제를 장악하라. 제목만으로 그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때 좋은 글이 된다.
2. 내용은 충실하고 정보는 정확해야 한다. 글의 생명은 담긴 내용에 있다.
3.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이 문장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4. 글 길이에 따라 호흡이 달라야 한다. 문장이 짧으면 튀고, 길면 못 쓴다.
5. 잠정적 독자를 상정하고 써라. 내 글을 읽을 독자는 누구일까, 머리에 떠올리고 써야 한다.
6. 본격적인 글쓰기와 매수를 맞춰라. 미리 말로 리허설을 해 보고, 쓰기 시작하면 한 호흡으로 앉은 자리서 끝내라.
7. 문법에 따르되 구어체도 놓치지 마라. 당대의 입말을 구사해 글맛을 살리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다.
8. 행간을 읽게 하는 묘미를 잊지 마라. 문장 속에 은유와 상징이 함축될 때 독자들이 사색하며 읽게 된다.
9. 독자의 생리를 쫓아야 하니, 가르치려 들지 말고 호소하라. 독자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10. 글쓰기 훈련에 독서 이상의 방법이 없다. 좋은 글, 배우고 싶은 글을 만나면 옮겨 써 보라.
11. 피해야 할 금기사항. 멋 부리고 치장한 글, 상투적인 말투, 접속사.
12. 완성된 원고는 독자 입장에서 읽으면서 윤문하라. 리듬을 타면서 마지막 손질을 한다.
13. 자기 글을 남에게 읽혀라. 객관적 검증과 비판 뒤 다시 읽고 새로 쓰는 것이 낫다.
14. 대중성과 전문성을 조화시켜라. 전문성이 떨어지면 내용이 가벼워지고 글의 격이 낮아진다.
15. 연령의 리듬과 문장이란 게 있다. 필자의 나이는 문장에 묻어 나오니 말고 신선한 젊은이의 글, 치밀하고 분석적인 중년의 글을 즐기자.
by navy
출처 : <중앙선데이> FOCUS 면 ‘유홍준의 대중적 글쓰기 15가지 도움말, 정재숙 기자, 링크
사진출처: 올댓스피커 홈페이지, 링크
나는 공대 출신의 이학박사이지만, 다분히 문과적인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했다. 결국 현재 내가 하는 여러 역할 중에 글을 쓰는 것을 빼놓을 수는 없게 되었다. 그것이 블로그든, 페북이든, 칼럼이든, 책이든 모두 글이라는 수단을 매개로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어느덧 내 이름을 단 책도 두 권이 [1, 2] 세상에 나왔고, 올해 두 권을 더 추가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지금도 내가 쓴 글을 읽고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한다. 글 속에 담기는 생각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그 생각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형식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담아내는 방식이 잘못되었거나, 효과적이지 않다면 그 좋은 생각 자체가 전달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의 형식적 측면 중에서 나는 무엇보다 ‘가독성’을 중시한다. 문학적이고, 현학적인 글이 아닌 다음에야, 독자에게 쉽게 읽히고 내 생각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글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와 같이 전문적인 주제를 일반인 독자에게 전달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내게 ‘가독성이 높은’ 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쉽게 읽히는’ 글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독자가 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두 번, 세 번 읽지 않아도 되고, 문장에 모호함이 없으며 (즉, 두 가지 이상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없으며), 어떤 표현을 놓고 독자가 의미를 추측하거나 독해할 필요가 없고, 전체적으로 글을 읽는 호흡이 자연스러운 글이다. 사실 이를 위한 글쓴이의 추가적인 노력이 들어갔다는 것을 독자가 파악하거나 눈치를 채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글을 읽으면 ‘이상하게 이 사람의 글은 한 번에 쉽게 읽히네’, ‘이 사람의 글은 읽기에 참 편안하네' 하게 된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이 글쟁이로서 나의 목표이다.
이렇게 가독성이 높은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니, 나도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방법들이 있다. 요 며칠 생각하다 보니 그런 노하우를 몇 가지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글로 남겨볼까 한다. 아마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공감이 더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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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괄식으로 써야 한다. 문단의 주장, 핵심 문장은 무조건 문단의 첫 문장으로 나와야 한다. 그다음 문장은 첫 문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두괄식으로 써야 한다'는 이 문단도 두괄식으로 써졌기 때문에 의미 파악이 쉽다. 반면, 미괄식 문단은 가독성이 극히 떨어진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식으로 글을 쓰면 오독되기 십상이다. 가능하면 독자가 독해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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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단은 반드시 한 가지 생각만을 담아야 한다. 만약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과감히 문단을 바꿔야 한다. 그 문단의 길이가 길든 짧든 상관없다. 또한, 그 문단에서 하고 싶은 ‘한 가지’ 생각은 1번 원칙에 따라서 문단의 첫 문장으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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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왜냐하면 접속사는 문장과 문장의 관계를 독자 스스로 추측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 왜냐하면, 또한,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런데, 그러나, 특히 …” 와 같은 접속사가 나오면 독자는 그다음 문장을 읽기도 전에, 해당 문장의 역할과 전후 논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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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문단을 시작하면서, ‘첫째~, 둘째~, 셋째~’와 같은 표현은 고루하지만, 문단 간의 역할과 관계를 확실히 보여주므로 가독성은 크게 높일 수 있다. 이 글도 각각의 노하우에 대해서 숫자를 달아놓았고, 독자들은 글의 전개 방식을 무의식 중에 캐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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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그것, 이것, 저것” 등의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대명사는 문장의 모호함을 증폭시키는 주범이다. 다소 동어가 반복되더라도 명사를 직접적으로 써주면 문장의 명확성을 높일 수 있다. 대명사가 남용되면, 독자는 해당 대명사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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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문장은 짧게 써야 한다.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 복잡한 문장보다는 간단한 문장이 항상 낫다. 긴 문장, 복문, 중문은 더 짧은 여러 개의 문장으로 쪼갤 수 없을지 항상 살펴야 한다. 일부러 현학적이고, 문학적인 목적으로 문장을 길게 쓰는 경우가 아닌 이상, 긴 문장보다는 짧은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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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어와 피수식어는 가까울수록 의미 파악이 쉽고 문장이 명확해진다. 가능하면 바로 옆에 두는 것이 좋다. 6번 원칙에서 사용되었던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아래의 세 문장은 모두 '항상'이 '낫다'를 수식하지만, 가독성은 첫 번째 문장이 가장 좋다. 특히 세 번째 문장의 경우, 처음에 '항상'이 나온 이후로 독자는 이것이 무엇을 수식하는지를 문장이 읽는 내내 고민해야 한다.'
(1)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이 '항상' 낫다.
(2) 긴 문장보다는 '항상' 짧은 문장이 낫다.
(3) '항상' 긴 문장보다는 짧은 문장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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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렇게 하였는데, 저것을 이랬다” 는 식의 “~데”의 사용을 피한다. 이는 문장도 길어지고, 어색하며, 전후 논리의 파악도 어려운, 좋지 않은 문장의 전형이다.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옮기면서 무심코 쓰기는 쉽지만, 독자가 읽기에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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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주어와 술어가 가까울수록 의미는 명확해지며, 멀리 있을수록 가독성이 떨어진다. ‘주어를 생략해도 당연히 알겠지’ 하면서, 주어를 쓰지 않거나 주술 관계가 복잡하면 독자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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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축적인 표현은 시를 쓸 때만 사용한다. 내가 글에서 전달하고 싶은 것은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써야 한다. 명시적으로 주장을 하고, 사실을 직접 서술해도 독자는 잘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빈번하다. 문학적인 글이 아닌 이상 내가 행간에 숨겨둔 함축적인 의미를 독자가 알아서 찾기를 절대 기대해서는 안되며, 그냥 대놓고 떠먹여 줘야 한다. 사실 대놓고 떠먹여 주는 경우에도, 독자가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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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너무, 극히, 엄청난” 과 같은 부사는 정말로 필요한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말자. 이를 빼도 대부분 의미에 큰 변화는 없다. 정말 엄청난 것을 매우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드는 극히 드문 경우에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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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장을 하면, 그다음 문장으로는 곧바로 근거, 이유, 예시 등이 나와야 한다. 주장만 있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 이유, 예시가 없으면 글에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논리 전개가 매우 어색하게 된다. 누구나 아무런 주장을 쉽게 내뱉을 수 있다. 어려운 것은 그러한 주장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 이유와 논리를 보기 위해서 독자는 글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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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적인 표현보다는 정량적인 표현이 좋다. 특히, 과학적인 글이나 분석적인 글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아주 많은’, ‘대다수의’, ‘상당수의’라는 표현보다는 ’ 85%의’, ‘과반의’와 같은 명확한 수치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다만, 명확한 근거가 없다면 정량적인 표현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특히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글에는 더 그렇다. 예를 들어, '관객의 박수소리가 지난 공연보다 열 배는 더 컸다'라는 표현은 '열 배'라는 정량적인 수치에 대한 근거가 있지 않는 이상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이 경우 '훨씬 더 컸다'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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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최근’, ‘요즘’, ‘작년’과 같은 표현보다는 ‘2018년 1월’과 같이 시기를 특정하는 것이 좋다. 특히 나의 글이 특정 시기에만 읽히고 말 것이 아니라면, ‘작년’, ‘지난달’과 같이 상대적인 시점을 쓰는 것은 좋지 않다. 다만, 최신 동향을 설명하는 경우에는 ‘최근’이라는 말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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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본론-결론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며, 이 구조는 눈에 뻔히 보이도록 드러내는 것이 좋다. 즉, 본론에서 결론으로 넘어갈 때, 결론의 첫 문장에서 대놓고 ‘이제 결론으로 들어갑니다’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글에서는 ~ 를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A, B, C에 대해서 논의했다’와 같은 표현으로 독자를 가이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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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시간을 두고 퇴고한다. 글을 쓴 직후에는 보이지 않던 문장의 군더더기나 오류, 잘못된 표현도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너무도 눈에 잘 들어온다. 사실 마감에 쫓겨서 쓰는 경우가 많아서 현실적으로 이를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군더더기가 항상 눈에 보인다. 지금 이 글도 며칠 동안 여러 번 읽으면서 여러 수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이외에도 생각나는 것이 더 있었던 것 같지만.. 충분히 쓴 것 같으니, 이만 이 정도로 줄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