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팔아라: 광고로 세상을 바꾼 천재 데이비드 오길비
2013/01/10 18:40 from Book
며칠 전 도서관에 들렀다가 펼쳐져 있던 조선일보 북 세션을 살펴 보았다. 북 세션에는 새로운 신간으로 광고계의 거물인 데이비드 오길비의 전기 <무조건 팔아라>가 출판됐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예전부터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광고일을 하기 전에 요리사, 스파이, 심지어는 농부의 삶도 살았다는 그의 특이한 이력과 그가 남긴 전설적인 광고에 대한 설명, 80년 대 이후 광고계에 불어닥친 M&A 열풍 등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들어 바로 구입했다.
데이비드 오길비에 대한 전기
데이비드 오길비 밑에서 수십 년을 일했고, 그 자신도 오길비&매더에서 회장을 지냈던 케네스 로먼은 데이비드 오길비가 남긴 수 많은 메모들과 그가 남긴 저서, 그의 지인들에 대한 상세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의 전기를 작성했다. 그의 출생부터 전설적인 광고를 만들고 최고의 대행사를 이룩해 나간 과정과 WPP에 매각하고는 후회만 남은 고집스런 늙은이로 남았던 말년까지를 상세히 적고 있다.
나의 경우는, 이 책을 통해 오길비가 어떻게 3명이서 세운 광고 회사에서 클라이언트를 유치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전설적인 광고들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회사를 이끌었는지 등에 대한 그의 업적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하지만 이 책은 오길비의 전기에 더 충실한 나머지 그의 출생과 핏줄, 그의 언행과 인간성 등 오길비의 업적 못지 않게 인간성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그의 광고 철학이 궁금한 것이라면 (나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오길비가 남긴 저서인 <광고 불변의 법칙>을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특이한 이력
앞서 말한데로 오길비의 이력은 특이하다. 그는 영국 태생이며 스코틀랜드 태생이다. 그는 이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고 각종 모임에서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고 나가 자신을 어필하기도 했다. 제법 큰 키에 다부져 보이는 몸매, 잘생긴 얼굴과 달리 그는 천식을 앓았고 운동을 잘 하지 못했다. 학창시절에도 그다지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고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학창시절을 가난하게 보내야 했다. 오길비는 죽을 때까지 돈에 집착했는데 이는 아마도 어린시절의 가난에 대한 기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집은 가난했지만 그의 집안의 도움으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명문 페테스(Fettes)를 다닐 수 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는 이 학교를 모델로 만들어 졌고, 토니 블레어 총리도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오길비는 페테스에서 읽기와 쓰기에 대한 기본을 익힌다. 그는 영어 문법 뿐만 아니라 명문가 출신이라면 당연히 배워야 하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법과 읽기, 쓰기를 철저하게 교육 받는다. 제품의 특징을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기억에 남도록 카피를 작성했던 그의 능력은 아마 여기서 기초를 다진 듯 하다.
이후 옥스포드까지 장학생으로 진학한 오길비는 성적 미달로 옥스포드를 중퇴하고 만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프랑스의 일류 호텔 주방장 보조로 취직한다. 출근 첫날 벽에 기대어 감자를 깍던 그는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하므로 똑바로 서서 일하라'는 주방장의 말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오길비는 그 때 주방장의 말이 일에 대한 그의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대통령 식탁에 올라갈 에피타이저까지 만들었던 오길비는 돌연 영국으로 돌아와 아가(AGA) 쿠킹 머신 세일즈맨으로 취직한다. 거기서는 그는 성실한 태도로 주부들에게 쿠킹 머신을 설명하고, 주방장 경력을 활용해 쿠킹머신 요리 교실도 열고 주부들에게 쿠킹 머신 활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세일즈맨으로 크게 성공한 그는 다른 세일즈맨에게 세일즈 매뉴얼을 작성해서 배포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형이 운영하는 광고회사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후 미국에 건너가 매더앤크라우드의 자회사를 미국에 세우기 전까지 그는 영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을 돕고, 리서치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땅을 구입해 3년 간 농부로 지내기도 했다. (물론 농사일을 직접 한 건 아니다.) 특히 그는 리서치 기업 갤럽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직관과 감이 아니라 철저한 데이터와 시장 조사를 통한 과학적 분석을 중요시하기 되었다. 그래서 그는 쿠폰을 우편으로 발송하여 광고하고 회신률을 통해 광고의 효과를 측정하는 다이렉트 메일 광고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광고의 본질
이 책의 원제는 'The King of Madison Avenue: David Ogilvy and the Making of Modern Advertising'이다. 하지만 우리나라판의 제목은 '무조건 팔아라(We sell or else)'이다. 이것은 오길비의 광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칙을 강조한 말이다. 즉, 광고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발하고 재치있고 재미있는 크리에이비브를 발휘하더라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 광고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광고가 판매들 향상시키지 못하면 그 광고는 실패한 광고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오길비는 내용이 기법보다 중요하며, 사람들이 헤드라인만 읽고 바디카피를 읽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헤드라인에 제품 브랜드가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일생동안 크리에이티브에만 중시하는 광고와 광고대행사들을 비난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예를 들며 원칙과 형식을 중시한다고 해서 결코 광고가 지루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오길비는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한 거의 최초의 광고인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에 대행사를 차리고 처음으로 히트시킨 광고인 헤서웨이 셔츠의 광고도 바로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한 광고였다. 그는 모든 광고는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장기적인 과정 중의 하나로 여겼다.
안대를 착용한 신사가 옷을 재단하고 있는 장면을 담은 이 광고는 뉴욕타임즈에 실리며 엄청난 히트를 치게 된다. 해서웨이 드레스 셔츠를 광고하면서 셔츠 자체보다는 그 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 남자의 스토리를 통해 다른 셔츠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다. 이는 사실 이야기하는 기법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원칙에 위배되는 광고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위배하지 않았다. 해서웨이 셔츠는 이 광고로 인해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한 것이다. 이 광고는 이후 몇 년 동안 다양한 시리즈로 변주 된다. 영국의 탄산수 슈웹스를 미국에 소개하면서 오길비는 또 한 번 같은 방법을 시도하고 이 역시 성공을 거둔다.
오길비가 히트 시킨 롤스로이스의 광고는 그의 원칙과 잘 맞는다.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 안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움은 전자시계 소리입니다."라는 긴 헤드카피와 함께 이 자동차의 장점 13가지를 나열한 기나긴 바디카피를 담고 있는 이 광고 역시 큰 성공을 거둔다. 언제나 광고주의 상품을 애용하고, 직원들에게도 이를 강요했던 오길비는 결국 비싼 롤스로이스를 중고로 구입하고 만다. 회사의 회계담당이 반대하고 나서자 그가 휴가간 틈을 이용해서 말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광고 중 하나는 도브 광고이다. 도브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오길비의 광고는 사실 그가 인정하듯이 이미지와 헤드카피는 진부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DOVE creams your skin while you bathe'에서 보듯이 오길비는 도브의 성분 중 1/4이 보습성분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특성을 광고함으로써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크리에이티브보다 내용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다.
카피라이터로써 크리에이티브 인으로써 오길비의 전성기는 사실 50년대에서 60년대 이르는 약 10여년 간의 기간이다. 오길비는 그 사이는 자신이 누구보다 천재적이었지만 그 때 자신의 모든 것을 탕진해 버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광고와 판매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세웠지만 반드시 그 원칙만을 고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코 뛰어난 크리에이티브를 보이는 광고를 혐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다.
기업 문화의 형성
오길비는 광고에 제품의 핵심을 담기 위해 정말로 철저하게 일했다. 프랑스 주방장의 가르침대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는 철저하게 다른 대행사들이 어떻게 광고했는지를 샅샅이 조사했고, 제품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철저하게 파악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카피를 쓰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 늦게 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했던 그는 집에 갈때도 서류 가방 3개에 일거리를 잔뜩 들고 가기 일쑤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자기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는 종종 열심히 일하지 않고, 똑똑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해고하곤 했다. 하지만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는 오길비는 자신이 휴가를 간 사이 그 직원들을 해고시키도록 했다. 오길비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일한다는 것 만으로도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종종 직원들이 만든 광고물을 신란하게 비판하던 오길비지만 직원들이 대한 그의 태도는 정중한 편이었다. 그는 직원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일에 대한 기준은 아주 높게 설정해서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오길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일종의 기업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오길비는 결코 최대의 광고대행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최고의 광고대행사를 만들고 싶어했다. 똑똑하고 재치가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수평적으로 토론하고 최고의 기준에 따라 자부심을 가지고 있하는 회사. 그것이 그가 바라는 회사였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 최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그룹의 탄생
하지만 그의 바램은 마지막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80년대 미국 대형 광고대행사 사시에 합병 바람이 불었다. 여러 개의 광고 대행사들이 옴니콤(내 첫 직장인 인터브랜드도 옴니콤 소속이다.), 인터퍼블릭, WPP로 재편 되어 갔다. 오길비는 자신의 전재산이 대행사 주식에 묶여 있어 주식공개를 원했다. 이사회의 반대에도 주식공개를 단행했던 오길비는 수년 뒤 WPP의 CEO 소렐이 오길비앤매더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하자 긴장한다. 이사회와 수차례 회의를 갖고 소렐과도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국 주가의 2배를 주겠다는 소렐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거절한다하더라도 결국 소렐은 어떤 식으로든 오길비의 주식을 매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을 돈에 집착했지만 돈을 제대로 다룰 줄은 몰랐던 오길비는 이때도 큰 손해를 본다. 주식공개 후 자신의 주식을 꾸준히 매각했던 오길비는 소렐이 오길비앤매더의 주식을 2배 가치로 매수하겠다는 결정이 나기 2주 전에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모든 주식을 팔아버린 것이다. 광고를 만드는 법에는 누구보다 밝았지만 숫자에는 누구보다 어두었던 그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WPP의 CEO 소렐은 이와 반대다. 그가 왜 오길비의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는지 이 책에는 나와있지 않다. 이후 WPP의 행보를 보아도 세계 최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그룹을 만들겠다는 WPP의 야심은 회사의 크기 이외에는 뚜렷한 방향을 보이지 못했다. 오길비를 인수하느라 너무 큰 돈을 대출한 소렐은 이후 몇 년간 주가 하락으로 고생하지만 위기를 벗어나 다시 기업 사냥에 전념한다.
WPP는 소렐의 바램대로 세계 최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그룹이 되었지만 오길비앤매더의 분위기는 전과 달라졌다. 많은 임원들이 나갔고 사원들을 존중하던 분위기도 사라졌다. 한 때 최고의 광고를 위해 신과 경쟁해야 한다던 분우기도 점차 사라져 가고, 광고 크리에이티브보다 숫자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왔다. 오길비는 결국 WPP 합병에 단초가 된 기업 주식 공개를 죽을 때까지 후회했지만, 돈을 위해 WPP 회장직을 수락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몇몇 대외관계를 위한 얼굴뿐인 명예직이었다. 그마저도 몇 년 후 (타의에 의해) 해임하고 만다.
모순된 원칙, 모순된 캐릭터
크리에이티브(표현)보다 내용을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때때로 브랜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광고에 활용한 카피라이터. TV를 통한 미디어 혁명 시대에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활자와 인쇄에 공을 들인 광고 전문가. 세계 곳곳에 지사를 두었으면서도 비행 공포증으로 언제나 배와 기차를 선호했던 광고 대행사 CEO. 평생 돈을 많이 벌고자 했지만 돈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속물.
그의 모순되고 다양한 면모들을 보면서, 비록 이 책 한 권으로 오길비를 접했을 뿐이지만 오히려 그가 한 없이 순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거침없이 남을 비난하고, 젊은이들에게 한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노인네로 말년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는 그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자신의 일에 대해 진지한 자세와 태도로 임했다. 원칙을 내세웠지만 때때로 원칙에 벗어나더라도 좋은 결과물들을 순순하게 인정할 줄도 알았다.
다시 한 번 상기하자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데이비드 오길비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이다. 그의 광고 철학과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일면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중심은 아니다. 오길비라는 인물과 오길비앤매더의 기업 역사, 50년대~80년대까지 미국 광고대행사들 사이의 경쟁과 관계 등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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