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경영의 神, 왕융칭,
□15세 소년의 꿈
○ 1931년 밀가루 부대를 잘라 만든 바지에 허름한 옷차림, 15세 나이로
취업에 나선 소년
故왕융칭 (王永慶) | ▸대만 포모사 그릅 창업주(1917〜2008, 8남매중 장남) ▸계열사 30개, 임직원 10만여명, 매출 750억불(2010) ▸아버지의 병환으로 봄과 여름에는 찻잎을 따서 팔고 겨울 에는 목탄을 만들어 생계 유지 |
□그는 어떻게 약 9조원(2천억 대만달러)의 자산가가 되었을까?
▸1931년(15세) 쌀가게 취업, 1932년(16세) 쌀가게 개업, 그러나 왕융칭의
가게를 찾지 않는 사람들 ⇢ 이윤 적은 쌀가게 특성상 가격경쟁 불가능
▸당시 쌀가게들이 돌을 골라내지 않고 파는 쌀에 착안, 돌없는 쌀판매로 성공
▸쌀가게 최초 “배달제 서비스” 실시
▸매일 새벽2시 기상, 명상1시간, 조깅1시간, 30년 가까이 사용한 손수건,
딸 결혼식 혼수품으로 면도기 1개, 왕회장 사무실에 1,000달러 짜리
카펫 깔다가 직원해고 당할 뻔
▸최고의 재벌이었지만 가지고 있던 양복은 다섯벌뿐
▸1963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위해 명지공업전문大 설립
▸1976년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비영리재단 장경기념병원설립(現장경大)
▸1980년 생활환경개선연구센터 설립
▸1985년 포모사 경영방식을 전수하는 연수지원센터 설립
□죽는 순간까지도 소신을 지킨 명언들
○ 누구나 富를 바라지만 태어난 날부터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떠날 때 가지고 떠날 사람도 없다. ○ 돈은 하늘이 우리에게 좋은 용도로 사용하라고 잠시 맡긴 것 일 뿐, 누구도 진정 이를 소유할 수 없다. 너희들도 이런 생각으로 충실한 인생을 경영하라. ○ 인생 최대의 가치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아름다운 비젼을 제시하는 것이다. |
⇨ 나는 이러한 목표 덕분에 긴 세월을 결코 나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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