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도향
나를 즐긴다
지금 공연 중인 뮤지컬 햄릿의 폴로니우스는 음흉하고도 잔꾀가 많은 캐릭터입니다. 원래는 그런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했으나 원작자와 얘기를 하면서 내 성격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윗사람에게는 살랑거리며 아부를 떨면서도 자식들에게는 유머러스 한 아빠 같다고 할까, 나하고 비슷하다 보니 폴로니우스를 통해 지금 나를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삼십 년 전에 출연했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유다역과도 현대적인 캐릭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십 년 만에 서는 무대이지만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그 때와는 공연 풍토도 많이 바뀌었으니 해볼만하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즐겁게 공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꽁꽁묶인 이십대
내 20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들어가고 대학생활을 마치자마자 군대 가고 군대 갔다 오자마자 노래를 시작하고 곧바로 결혼을 했습니다. 20대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아무것도 내 맘대로 한 것이 없었고 결혼만 마음대로 한 것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면에서 꽁꽁 묶인 20대였다고 생각합니다.
한 편, 경기고 출신이 서라벌대에 간다는 것은 대사건이었습니다. 돌아이 취급은 물론 동창들이 부끄러워할 정도의 사건이었을 텐데도 나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딴따라라는 것에 대해 동창들도 집안에서도 난리였고, 장인어른조차도 딴따라랑 결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아내의 용단으로 결혼할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던 모양인데 나로서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나와 사람들 사이에는 그런 시각 차이랄까, 수용의 차이가 여전한 듯합니다.
우미관, 소년을 키운 8할
대학에서는 연출을 공부했습니다. 연기, 촬영, 연출 등으로 대학생활을 정신 없이 보냈습니다. 바로 옆집이 우미관이라는 삼류극장이라 중학교 때부터 천편 이상의 영화를 공짜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영화적 감각을 키웠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영화감독으로서의 길을 그리던 터라, 서울대학교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예술대로 바꾸어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원하는 대로 가다가 제대 후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노래를 시작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길이었어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뭐든지 똑같이 잘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대 때의 한 가지 쓰라림이라면, 연애하던 여학생이 내가 군대에 가자마자 고무신을 바꾸어 신은 사건이었습니다. 그 한 가지 외에는 아주 즐겁게 지냈습니다. 참 자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20대엔 공부를 안 했습니다. 공부를 안 해야 잘 된다, 나를 가르칠 사람이 없다며 바보 같고도 도도한 생각을 초등학교 때부터 했습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미분적분을 알았기 때문에 배울 것도 없었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선생님을 우습게 생각하며 까불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자본 창업 가수
노래를 택한 것은 노래를 좋아해서기보다 돈을 좋아해서였습니다. 투자가치를 생각할 때 돈 없이 투자해서 가장 효과적인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것이 노래였습니다. 연습을 하니 별 어려움 없이 노래를 잘 할 수 있었고 군대에 다녀온 뒤 대 여섯 군데 클럽에서 오디션을 보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게 되었고, 지금보다도 그 때가 더 풍족하게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가수를 하다가 CM송을 쓰면서 굉장히 바빠지게 되는데, 십 년 동안 숱한 곡들을 썼습니다. 매 번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문을 십 년 동안 당한 셈입니다. 그렇게 나를 연소시키며 노래를 쓰던 어느 순간 이것을 쓰고 있는 내 존재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순간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쓸 뿐인데, 이것을 내가 쓰고 있는 건가, 그 생각은 누가 한 건가 하는 생각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그런 어느 날, 창 밖에서 낙엽이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저것은 어디로 가나하고 뛰쳐나가 보니 충무로 바닥,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그 자리에 꼭 떨어졌습니다. 그 때 가슴이 텅 비던 느낌, 그것을 표현한 것이 그 노래입니다. 그 때부터 내 안에 있는 영적인 존재는 뭔가 하는 의문 속에서 나를 찾아보니 내가 없었습니다. 육체도 허공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 인간들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인간들의 가치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보며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웨이크업.컴
다시 노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경음악 평론가 이백천씨가 공연자가 공연을 못하게 되었으니 대신 공연을 해달라며 도를 닦고 있던 내게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연을 도와주기로 하여 공연장에 갔을 때, 어떤 할머니가 멀리서 ‘김도향이다’하고 소리쳤습니다. 십 년 동안 말을 못하던 치매환자였습니다. 노래는 천박한 것이라 여겨 하지 않으려던 마음을 먹었던 나는, 잠자던 뇌조차 깨울 수 있는 노래라면, 그 노래로 사람들을 치료해주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닐곱 살 아이도 어른 말을 듣지 않지만 유일하게 노래는 듣습니다. 듣는다는 행위는 몸에다가 마음까지 오는 겁니다. 노래를 통해서 마음으로 가까이 가자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또 인터넷명상사이트를 구축하는 꿈을 구현하는 중입니다. 20년 전의 구상을 이제 실현하려고 하는데, 내가 원하는 영상,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 하려니 생각보다 어렵지만, 어떻게 대중성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고 싶은 대로
20세이면 이미 늙기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경험이 부족한 노인이랄까, 너무 뜨거워서 판단을 할 수는 없는 나이입니다.
한 가지만 부탁하면, 다 집어치우고 배낭을 메고 가고 싶은 대로 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자연이라는 생각입니다. 문명이 인위적이고 독선적이고 강압적이라면 자연은 지혜, 사랑, 덕 등 큰 것을 가르칩니다. 내가 다시 20대가 된다면 배낭 메고 전세계를 돌아다닐 것 같습니다. 지구가 얼마나 좁고 더군다나 대한민국은 얼마나 더 좁은 곳인지, 지구조차도 손톱만한 곳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인지한다면 자신 삶을 지혜롭게 끌고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연을 배우세요
마음을 그릇에 담아두면 되는 것을 우리는 딱딱한 것들 - 지식들로 채웁니다. 그런 것들은 칩 하나에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지혜롭게 그것을 꺼내어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지혜라는 것도 지식일 뿐입니다. 자연에서 감성이 젖어 합일된 상태에서라야 지혜를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자연을 접하는 유일한 방법이 명상입니다. 몸이 뜨거운 젊은이들이야 명상보다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자연을 읽는 편이 더 적절한 처방일 것입니다.
내 경우도 자연으로부터, 자연과 함께 저절로 체득되는 자연의, 깊은 맛을 알고부터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이전에는 즐거웠을지언정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20대부터 이런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평생 성공적인 행복감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식물도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속에서는 곱게 자라지 못합니다. 생명이라면 다 마찬가지로, 행복감, 사랑 속에서라야 잘 자랍니다.
많이 걸으세요.
3년 동안 매일 8킬로미터를 걷고 있습니다. 젊을 때 걸어야 합니다. 사십이 지나도 잘 모르지만 오십이 되면 많이 걸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육체와 정신 모두에서 크게 드러납니다. 걷는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걸어보십시오. 걷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스무 살 때 마음껏 걸어야 합니다.
니 멋대로 살아라
큰 욕심일 수 있는데, 나는 원이 많은 사람입니다. 외롭게 사는 사람을 보면 내가 더 억울함을 느낍니다. 그것을 다 채워주고 싶은 원대로 하자니 항상 모자랍니다. 나는 에너지를 얻기보다 나의 에너지를 나누어 주는 것을 즐깁니다.
완벽에 가깝다고 자신할 만큼 건강하기도 하지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반짝거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영혼과 육체를 묶고 있는 ‘혼’ 줄을 딴딴하게 조이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즐겁지 않으면 영원히 즐겁지 않습니다.
그리고 20대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한 마디, 니 멋 대 로 살 아 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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