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菊花) 옆에서/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재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경향신문](1947.11.9)

 
봄날 소쩍새의 울음이 인연이 되어 가을에 국화가 핀다.
여름날 천둥의 울음이 인연이 되어 가을에 국화가 핀다.
슬픔과 고뇌와 방황의 젊음을 거쳐 인간은 가을날의
국화처럼 원숙한 삶의 경지에 이른다.
가을날 무서리 내리는 시련과 불면의 고통스런 밤을
국화는 핀다. 그것이 생명의 과정이며 성숙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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