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부장·과장 없는 세상이 온다

입력 : 2014.07.19 03:04 | 수정 : 2014.07.19 04:07

Cover Story '일의 미래' 저자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미래는 '80년 勞動시대' 이제 평생 직업은 없다
IT 발달로 조직원들 직접 소통 가능···지시 전달하는 중간관리직 사라져
전략·노하우 필요한 직군과 청소 등 단순직만 남아 양극화
제너럴리스트보다 匠人형이 유리···새 기술 습득해 계속 변신은 해야

그래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오윤희 기자
6년 전, 10대인 두 아들과 아침 식사를 하던 어머니는 밥상머리에서 아들들의 장래 희망을 들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7세 첫째 아들은 "기자가 되고 싶어"라고 했다. 두 살 어린 둘째 아들은 "의대에 들어갈 거야"라고 선언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듣던 어머니는 문득 '앞으로 내 아이가 기자를 해도 좋을까' '20년 뒤에도 의사가 괜찮은 직업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근로 환경은 20~30년 전과 현저히 달라졌고, 다시 20~30년 뒤에 닥칠 미래는 하루가 달리 새롭게 등장하는 신기술에 힘입어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근로 환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런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린다 그래튼(Gratton·사진)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3년에 걸친 연구의 첫걸음이 됐다. 그녀는 30개국 200명의 CEO들의 협조를 얻어 각 기업의 사례 조사를 하고, '앞으로 일과 업무 환경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묶어 2011년 '일의 미래(원제 The Shif)'라는 책을 출판했다. 기업 문화, 조직 관리, 조직 혁신 분야 전문가인 그녀는 '세계 경제경영 사상가 50인(Thinkers 50)' 2013년 랭킹에 14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연구실에 들어가니 그녀는 빛 바랜 청바지에 맨발로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신발은 연구실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팽개쳐져 있었다. 전날 일본 출장에서 막 돌아왔다는 그녀는 핑크색 투피스 정장을 곱게 차려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찍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면서, "공식 석상에선 이런 모습이지만, 평상시엔 늘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수수하고 가식 없는, 평범한 아주머니 인상이었지만, 질문을 던지자 금세 눈빛이 진지해지며 학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①기술의 급속한 발전-"중간관리자가 사라질 것"

―최근 '기계와의 전쟁'을 쓴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기계로 인해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실제로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은 사용자가 10억 명에 이르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는 과거 제조업체에 비해 크게 떨어집니다. 교수님 역시 기술의 발달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거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마도 직업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일어나겠지요.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군은 여전히 계속 존재할 겁니다. 사람들은 직관과 지혜와 전략, 노하우 같은 가치를 여전히 필요로 하니까요. 반대로 글로벌화로 저비용의 신흥 경제 노동력이 몰려 오면 비교적 단순한 직업들도 살아남을 거예요. 예를 들자면 바닥을 청소하거나, 병자를 돌보거나 하는 일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있는 직업들의 경우, 해외에 아웃소싱을 맡기거나 기계가 그 일을 대체하게 될 겁니다. 빅데이터라든지, IT를 이용한 분석 방법이 대단히 발전하게 되면 이제까지 인간이 해 왔던 일들을 기계가 대체하게 될 테니까요. 그 결과, 직업군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중간이 텅 비어 버리게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미래에 사라질 직업군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조만간 사라지게 될 직업 중 하나가 중간 관리직입니다. 그들은 주로 조직의 위계 서열 시스템 하에서 지시 사항과 정보를 아래로 전달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하지만 오늘날엔 모든 조직원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더 이상 중간 관리 직급이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회계직군도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컴퓨터가 일을 대신 해 주고 있잖아요?"

―전화 교환원 역시 수퍼컴퓨터의 등장으로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들 합니다.

"맞아요. 물론 아직은 '기계가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는 수준에 진입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겁니다. 기계화는 점점 더 빨리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한국이 아마도 그 선두 주자에 있다고 할 수 있겠죠. 한국의 인터넷 기술과 로봇 기계화는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뜰 직업의 특성은 어떤 것인가요?

"'가치를 창조하고' '희소하며' '모방이 어려운' 일이 앞으로 수십년 동안 부상할 겁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많은 것을 조금씩 잡다하게 아는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18세기의 장인(匠人)형 인간이 생존 경쟁에서 유리해질 것이라고 그래튼 교수는 내다봤다. "그러나 18세기의 장인과 다른 점은, 현대의 장인들은 하나의 기술을 숙달한 다음에 '아, 이것으로 끝이야. 이 기술만 평생 계속 연마해서 살아갈 거야'라고 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다른 가치 있는 것으로 변형하고 변신해야 합니다."

그래튼 교수는 미래의 노동 환경은 일이 3분 단위로 파편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 당신의 하루 업무 일과를 생각해 보면 상상이 갈 것이다. 보고서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당신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린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데 컴퓨터 화면에 급히 처리해야 할 이메일이 왔다는 메시지가 뜬다. 전화를 받으며 간단하게 이메일을 보낸 뒤 인터넷으로 채팅 회의를 하면서 다시 보고서 작성을 계속한다.

24시간 '접속' 상태에 있어야 하므로 '주의 지속 시간(attention span)'은 훨씬 짧아지고, 작게 쪼개진다. 진득하게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거니와 동료와 농담을 나누거나 여가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다.

이 때문에 미래에 창의적이고 즐겁게 일하고 싶다면 일과 놀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그래튼 교수는 조언했다. 일이 열정이자 취미일 때 일에서 가장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이 일의 미래에 가져 올 또 하나의 어두운 단면은 외로움에 익숙한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의사는 병원에 출근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로봇 수술을 하고, 컴퓨터 전문가는 프리랜서로 일한다. 2025년이 되면 이처럼 일상 업무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는 대부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그래튼 교수는 내다봤다. 편안한 동료 의식에서 얻는 기쁨도, 인간관계 속에 담긴 모든 업무 훈육의 기회도 사라진다.

"그래서 전 젊은 사람들에겐 재택(在宅) 근무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단시간은 혼자 일을 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심한 단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단절감을 더 많이 느끼지요. 자신들을 끌어주고, 멘토링을 해 주거나 코치를 해 줄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더 고립되는 겁니다."

경력곡선
②고령화: 80년 노동 시대

1980년대와 1990년대 직장 생활의 모습은 대개 이랬다. 20대에 회사에 들어가서 30대 초반에 중간 관리자에 오르기까지 치열하게 일한다. 성과가 좋으면 월급과 직급이 올라가고, 50대가 되면 소득이 절정에 달한 다음 60세에 접어들어 은퇴한다.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50대에 최고점에 도달하는 위로 볼록한 포물선과 비슷하다. 그러나 100세 시대엔 양상이 확 바뀐다.

"이제까진 80년을 살고 60세까지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100년을 살고 80년간 일을 해야 합니다. 과거 세대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노동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처럼 한 직장에서 계속 일하기보다는 일을 하다가 중간에 휴식하고 재충전한 뒤 다시 다른 일을 하는 패턴이 더 늘어날 겁니다. 80년 노동 시대엔 계속 학습해서 자기 발전을 하고, 재교육을 받고, 자기 자신에게 재투자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이를테면 20대에 입사해 서른 살까지 소속 분야에서 치열하게 일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갈고 닦는다. 서른 살 무렵에는 1년간 쉬면서 여행을 다니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등 견문을 넓히고 재충전한다. 그 뒤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휴식기에 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특화 영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40대가 되면 1~2년간 학습에 매진해 직장 생활에서 쌓은 지식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제2의 전문 분야, 즉 인생 제2막을 준비한다. 50대 초가 되면 다시 사회 체험을 하기 위해 1년간 여행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면서 숨을 고르고, 50대 후반 혹은 60대에 지금까지 두 분야에서 쌓은 전문 능력을 바탕으로 소(小)기업가로 변신한다. 덕분에 70대와 80대까지도 계속해서 사회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일을 하면서 다시 제2의 직업을 준비하고, 제2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다시 제3의 직업을 계획하는 노동 패턴을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여러 개의 종(鐘)이 늘어선 '편종형 곡선'(carillon curve)'과 비슷하다.

그래튼 교수의 주장은 2012년 일본 국가전략회의가 발표한 국가 장기 비전 제시안(案)의 '40세 정년제'와도 일맥상통한다. '75세까지 계속 일하기 위해 근로자들이 40세에 정년퇴직을 하게 한 뒤 제2의 인생을 준비할 기회를 부여하자'는 이 전략은 일본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래튼 교수는 "확실한 시행 계획이 뒷받침된다면 그것도 좋은 계획 가운데 하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장인이 그렇게 휴식기를 가지는 것이 현실적으론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선택 문제겠지만 80년간 일을 해야 하는데 줄곧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달릴 수 있을까요? 80년 노동의 시대에선 근로도 '밀물과 썰물'을 잘 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도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심장외과 전문의인데 의료 법인을 세우기 위해서 이곳에서 재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도 있어요. 이 학생은 어떤 의미에선 이미 한 분야의 기술을 오랫동안 습득한 장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갈고 닦은 자신의 기술을 다른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새롭게 사용하기 위한 변신의 준비 과정으로 지금 경영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식의 전환 과정이 앞으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③세계화: 당신의 취업 경쟁자는 전 세계인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28세 미국인 브리애너는 매일 점심때부터 오후 6시까지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고기를 굽고, 감자튀김과 콜라를 포장하는 단순한 일을 한다. 매일 밤마다 구인 광고를 뒤지지만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하고 차별화된 경쟁력이 없는 그녀에게 적합한 직종은 찾기 힘들다. 가끔씩 그녀도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를 발견하고 지원하지만 제3세계에서 온 열정 넘치는 경쟁자들에게 밀려 일자리를 얻는 데 실패한다. 그래튼 교수는 앞으로는 이런 무한 경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앞으로는 높은 기술 수준과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도 노동력의 풀(pool)이 한 나라 단위에서 전 세계로 넓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20년 전 제가 이 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함께 채용된 사람들은 대개 영국인 아니면 유럽인이었어요. 지금은 인도인, 미국인, 중국인, 한국인 등 세계 각국 사람이 채용되지요.

만약 중국이나 인도처럼 커다란 시장일 경우엔 보다 많은 노동 인구를 수용할 수 있겠지만, 한국이나 영국처럼 인구가 적은 나라에선 전 세계의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올 경우 구직 전쟁이 훨씬 더 치열해 지겠지요. 전 지금 같았으면 런던비즈니스스쿨에 채용되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채용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지요. 하지만 제가 채용됐을 땐 그저 영국 안에서 통용되는 로컬 스탠더드가 적용될 뿐이었어요."

그래튼 교수가 말하는 노동의 미래상(像)은 한 명의 근로자로서 듣기에 꽤 우울한 측면이 많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 역시 존재한다. 2025년엔 인도 시골 마을에 태어난 아이들도 태양열로 작동하는 컴퓨터로 자유롭게 클라우드에 접속해 그 안에 담긴 귀중한 자료들을 열어보면서 공부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원격 강의를 듣고 해외 MBA를 취득할 수도 있다. 즉, 지리적·공간적 제약은 줄어드는 반면 변화에 미리 준비한 자와 준비하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지며 준비를 하지 못한 자는 언제든 노동시장에서 소외 계층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래튼 교수의 주장이다.

노동 소외 계층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덕목으로 그래튼 교수는 네트워킹을 꼽았다. "오늘날 가치라는 것은 당신 혼자 지닌 기술만으로는 창출되지 않아요. 당신과 당신의 동료, 즉 팀의 공동 작업에 의해 이뤄지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탁월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 나가니까요."

④일과 삶의 균형: 영원한 숙제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은 앞으로도 계속 숙제가 될 것이라고 그래튼 교수는 내다봤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낮은 단계의 욕구, 즉 돈과 지위·소비에 지배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같은 천편일률적인 삶의 공식이 깨지고 좀 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선택되고 인정받을 것이라고 그래튼 교수는 말한다.

책 '일의 미래'에 따르면 세이브칠드런이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한 관리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보수가 대기업에서 비슷한 일을 할 때에 비해 적다는 것을 안다. 성과에 대해 넉넉한 보수를 제공해줄 수 없는 조직에서 일한다면 그 대신에 받는 보상은 무엇인가? 내게 의미 있는 경험은 리더십과 책임, 의사 결정이며, 이런 경험이 직장에서 얻는 행복감을 높여준다. 만약 이런 기회를 좀 더 일찍 접했다면 기꺼이 '물질'을 포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튼 교수는 앞으로 이 관리자처럼 돈과 소비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주된 동인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현 세대인 Y세대는 부모 세대가 일 때문에 삶을 희생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고 ▲기술의 발전으로 일하는 방식과 장소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과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이나 자동차처럼 전통적으로 중시되던 물건들의 소유를 포기하고 공유 경제를 추구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고 그래튼 교수는 내다봤다.

그녀는 "우리는 더 이상 기업이라는 기계에 속한 톱니가 아니며 스스로의 힘으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능력이 생겼다"며 "따라서 일반적인 틀에 자신을 가두는 대신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중시하고,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며, 자신이라는 사람을 정의하는 자기 정의(self-definition)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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