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콘서트] 고은 시인의 강연 '내 안의 광야, 노래의 씨를 뿌려라'
여름은 소설, 가을은 詩 - 심장으로 쓰는 뉴스가 詩… 그래서 누구나 다 시인
내 문학의 주제는 애도 - 6·25 때 많은 죽음 목격
살아남은 자라는 죄의식… 작품 활동의 원동력으로
책을 많이 읽어라 - 책은 매혹적인 여인… 천만배 은총으로 갚아줄 것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인문학 대중 강연 프로그램 '인문학 아고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지난 16일 저녁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첫 회로 고은(81) 시인이 '내 안의 광야, 노래의 씨를 뿌려라'란 제목으로 자신의 삶과 시 세계에 대해 얘기했다. 강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여름은 소설이다. 그러나 가을은 절대 소설이 아니다. 가을은 시(詩)다. 아니 시일 수밖에 없다. 가을에는 미치는 거다. 봄은 처녀를 미치게 하지만, 가을은 남자를 미치게 한다. 가을에는 녹음이 단풍이 되어가고, 세상 만물이 그렇듯 누렇게 변해간다. 가을은 슬프다. 본질을 만나기에 슬프다. 누구나 심장을 가지고 있다. 여기 심장 없는 사람이 있는가? 그 심장으로 쓰는 뉴스가 바로 시다. 그래서 누구나 시인이다.
- ▲ 지난 16일 저녁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인문학 아고라 강연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고은 시인이 고려대 국문과 이형대 교수와 대담을 갖고 있다. 이날 강연에는 1500명이 몰려 계단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청중이 들어찼다. / 윤동진 기자
시는 '심장으로 쓰는 뉴스'2년 전 국제 PEN 대회가 경주에서 열렸다. 당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 르 클레지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침 경주 일대가 인근 포항·안강과 함께 6·25전쟁 격전지 중 하나였다. 수많은 남북의 청춘이 죽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 기운이 느껴져 그들에게 "내 문학의 주제는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哀悼)"라고 말해줬다. 나는 1933년생이다. 태어났을 때 언어가 없었다. 일본어가 국어였다. 그런데 광복과 함께 한글 자음과 모음이 해방된 존재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해방이 다시 타자에 의해 둘로 갈라지고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서구 이데올로기 대리전을 이 땅에서 우리 세대가 치렀다. 그 전쟁으로 300만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아무 이유 없이 빨갱이니 반동이니 하면서 어제 이웃집 형이었던 사람이 오늘 옆집 아저씨를 보복 학살하는 것을 여러 번 지켜봤다.
거기서 살아남은 자라는 죄의식, 부채 의식이 평생 작품 활동을 하는 원동력이다. 기독교와 상관없이 원죄(原罪) 의식이 있다. 전 생애를 통해 죽어간 자들을 애도하고 추모해야 하는 게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시를 통해 이들을 환생(還生)시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애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말했다. 부재자(不在者)에 대해 실재자(實在者)로서 가지는 강력한 사명과 봉헌하려는 노력이 내 문학의 이미지이자 논리이다.
내 문학의 주제는 죽은 자들에 대한 애도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떠올려 보자.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이건 미치고 환장하는 언어다. 논리로 따지는 건 모독이다. 그런 대 시인이 32세 때 아편을 먹고 음독자살했다. 일본이나 서구 문학을 추종하던 이식(移植) 문학 시대에 한국 현대시의 새 지평을 개척한 그 김소월이 30대에 세상을 떠났다.
시인 이상은 또 어떤가. 천재 시인이라 불리던 그도 27세 때 유명을 달리했다. 윤동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것도 28세이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는 평생에 걸쳐 수십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레미제라블만 해도 1200쪽이 넘고 시도 많이 썼다. 괴테는 편지로 쓴 것만 전집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소월은 시집 한 권이 전부다. 그래서 나는 소월이 쓰다 만 것, 누가 살다 만 삶까지 다 살고 다 쓴다는 각오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은 시인 저작물은 지금까지 150권이 넘는다.) 그들이 마시지 못한 술까지 다 마시는 것도 들어 있다.(웃음)
나는 트렌드를 싫어한다치유, 힐링…난 이런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게 트렌드라는데, 나는 트렌드를 증오한다. 쟤가 입는 옷을 내가 입어야 하나. 누가 마신다고 나도 그걸 마셔야 하나.
삶은 살아가는 동안 자기가 사는 것이다. 어떤 자에 의해, 그의 규범이나 교훈·진리에 의해 노예처럼 살아선 안 된다. 나는 내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고 할머니의 손자가 아니다. 나는 나다. 고독한 우주에서 유일한 별빛이다. 나로서 살라. 내가 태초이자 시작이고 빅뱅이다. 내가 인생을 시작하고 살다가 패배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누가 가르친 대로 살지 마라. 내 실존의 지대한 존엄성에 대해 이 세계의 어떤 먼지도 모독할 수 없다.
술과 인생술은 최고의 종교다. 인간이 덜됐으니 술을 마시는 것이다. 경지에 오른 도인(道人)의 초상은 대개 술 취한 상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 넥타르(神酒)를 마셨고, 인도에서는 종교의식 때 소마(soma)주를 들었다. 우리도 결혼 첫날을 치르기 전 합환주(合歡酒)를 마시지 않나. 앞으로 평생을 같이 살아갈 텐데 그냥 이불 덮고 자는 건 싱겁지 않나.(웃음) 정상회담 할 때 콜라 마시는 것 봤나.
노태우 정부 시절 소련에서 작가동맹 회장이 와서 통음(痛飮)한 기억이 있다. 그가 소주는 싱겁다기에 보드카를 먹자고 했다. 소련에는 질 수 없다는 청소년적 오기로 끝까지 버텼다. 그런데 새벽 3시가 되니 승패가 의미 없어졌다. 그때 그가 갑자기 "물은 술이 아니어서 많이 마실 수 없건만"이라고 하더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지금까지 술은 얼마나 많이 마셨다는 건가. 그래서 "그래도 너는 물이고, 나는 술이다"라고 답해줬다.(웃음)
이 나이 되도록 술을 마실 수 있는 비결을 말해줄까? 술을 사랑해야 한다. 술을 아내처럼 사랑하면 술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술과 내가 애인인데, 술이 애인인 내게 해로운 짓을 하겠는가. 술이 내 몸에 들어갈 때 '내가 술을 이렇게 사랑하는데…'라는 생각을 담으면 술 때문에 몸을 상할 일은 없다. 나와 술이 연인 관계인데, 술이 내가 빨리 죽길 바라겠는가.(웃음) 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거칠게 지어진 밥이라도 정성스레 씹으면 맛이 우러난다. 나는 적어도 40번 이상을 씹는다. 맛있게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술을 마셔라. 사물에도 존엄성이 있다. 내가 뭔가를 사랑하면 그 뭔가도 날 사랑하게 된다.
(정색을 하며) 그리고 책을 좋아해라. 책을 많이 읽어라. 책은 천만 배 은총으로 갚아준다. 10개를 바치면 1200개를 돌려준다. 책은 매혹적이고 요염한 여인이다.
"너희에게 피 냄새가 난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갈등이 많다. 빈부 격차와 지역감정, 이념 충돌, 세대 갈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떤 데서는 몇 달씩 살기도 했는데, 세계 어디에도 이처럼 갈등이 첨예하고 부하가 심한 곳은 없다.
전에는 동창생이라면 우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경쟁으로 인해 그런 게 다 사라졌다. 남을 떨어뜨려야 내가 산다. 서울대에서 강연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에게서 피 냄새가 난다"고. 한 학생이 서울대에 오기 위해 다른 학생 30명을 죽여야 한다. 그 학생은 또 다른 학생을 죽여야 하고. 경쟁 사회에선 누구나 다 비겁하고 치사한 존재다. 비루하고 천박하다. 세월호 사태는 그런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다. 우리 사회 모순을 축약한 사건이다. 권력자들은 우연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필연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월호 선장은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인 셈이다.
존재는 관계의 아들우리는 단독자가 아니다. 관계적 존재로서 성찰이 필요하다. 산적한 문제를 우정의 연대로 풀어가야 한다. 존재는 관계가 만들어준 아들이다. 나 혼자 세상에 존재하면 고씨일 필요도 없다. 김씨도, 이씨도 의미가 없다. 혼자 있다면 내가 박정희면 어떻고 김일성이면 어떤가.
한자 이름 '명(名)'자는 원래 돼지고기를 제기에 올리는 상형문자에서 유래했다. 조상에게 제물을 올리며 내 이름을 승인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이걸 다르게 풀어봤다. 시인 예이츠는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사랑은 언어가 필요 없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지 않나. 말하지 않아도 좋다. 심장이 통하는데 '주둥이'까지 가야 하나.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눈빛만으로 대화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좋다. 그런데 해가 진다. 그러면 눈으로만 대화할 수 없다. 입이 눈을 대신한다. "철수야" "영희야"라면서 서로 부른다. 그래서 저녁 '석(夕)'에 입 '구(口)', 이름 명(名)이 되는 것이다. 불이 꺼지면 노래가 시작된다. 불이 켜지면 노래가 그친다.
두고 온 시
고 은
그럴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갓난아기로 돌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
(중략)
가난할 때는 눈물마저 모자랐다
어느 밤은
사위어가는 화톳불에 추운 등 쪼이다가
허허롭게 돌아서서 가슴 쪼였다
또 어느 밤은
그저 어둠 속 온몸 다 얼어들며 덜덜덜 떨었다
(중략)
두고 온 것 무엇이 있으리요만
무엇인가
두고 온 듯
머물던 자리를 어서어서 털고 일어선다
물안개 걷히는 서해안 태안반도 끄트머리쯤인가
그것이 어느 시절 울부짖었던 넋인가 시인가
자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