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 개나 걸이나 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아내가 6개월 만에 골프를 접었다. 그물망이 설치된 골프 연습장에 1년 치를 선불로 지불하고 예약하였으나 3개월 레슨 받고 3개월 연습하다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필드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연습장에서 연습하는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거나 국가적 위기의식이 고조될 때마다 공직자들의 골프는 어김없이 도마에 오른다. 이번에도 미국 발 경제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불황과 경기침체로 주눅들은 사회분위기를 개선하고자 공직자들의 골프 자제령이 시달된 것이다. 사실상 ‘자제령’은 ‘금지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청렴한 사회를 만들고 서민들에게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주지 않도록 자제하자는 것이 주요 취지인 것 같다.
예전에야 골프는 돈 좀 있다는 부유층의 전유물로써 비싼 옷을 입고 비싼 골프채로 온갖 폼을 잡는 스포츠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술 안마시면 그 술값으로 일주일에 한 번 골프를 칠 수 있다고 하니 이젠 골프도 대중스포츠일 따름이다. 필드에 나가는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그물망 골프 연습장의 1년 치 연습료가 볼링, 스키 등 다른 스포츠의 비용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아직도 골프는 가진 자들의 귀족적 취미라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고, 특히 환경단체에서는 환경파괴의 대표적 사례라는 사회적 비난 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주 오래 전에도 지금과 같이 골프 금지령이 있었다고 한다. 13~4세기 네덜란드에서 얼음 위에서 즐기던 것이 스코틀랜드에 건너가 골프가 되었고 너무 재미있어 온 국민이 생업을 등한시하며 즐기자 1941년 제임스 4세가 골프 금지령을 내린 바 있었지만 왕 스스로 너무나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허용하였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요즘 골프라는 운동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왜, 어째서 이토록 열광하고 미쳐 있는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우리처럼 골프에 미친 민족은 없다고 한다. 골프라는 것이 우리들이 어릴 적에 하던 자치기나 다름없기 때문에 어릴 적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인가. 사실 작대기를 휘둘러서 계란만한 공을 멀리 있는 구멍에 넣기 위해 한여름의 땡볕, 한겨울의 칼바람 가리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이 무슨 운동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북한에서도 골프를 친다고 한다. 골프를 북한말로는 ‘시팔(18) 구멍(홀)에 흰 공알 넣기’라고 하며 일부 당 고위급 간부들이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골프가 자본주의 국가의 대표적인 부유층의 전유물임을 북한에서도 알고 있을 것인데 그것을 즐긴다고 하니 아이러니(irony)한 일이다.
문화심리학자 겸 여가생활학자인 김정운 교수는 골프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기 때문에 많이 즐긴다고 한다.(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中에서) 즉 골프는 운동이 아니고 이야기라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외국어학원의 광고지 홍보문구에나 나오는 것인데 골프에 있다고.
이 골프의 스토리텔링에 관한 이야기를 김정운 교수에게 계속 들어보면 이렇다. 한국 남자들이 술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네 시간 이상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골프밖에 없으며, 여자에 관한 이야기도 이렇게 길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매번 비슷한 골프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내 이야기가 있고, 살면서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이토록 많이, 흥미진진하게 한 적이 있었던가 묻고 있다.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상실한 중년들에게 골프만큼 공통의 화제를 만들어주는 일은 없다고 한다.
또한 주말 골퍼의 스토리텔링과 낚시꾼의 스토리텔링은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고 한다. 낚시꾼들이 잡은 고기를 들여다보면 다 손바닥만 한 크기다. 놓친 고기인들 그 크기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않을 듯한데, 낚시꾼들은 모두 그 고기가 팔뚝만 하다며 양손을 벌려 그려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낚싯줄이 터져나갈 때의 그 아쉬움을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낚시꾼들이 즐기는 것은 고기가 물었을 때의 그 손맛만이 아니다. 놓친 고기에 관한 아쉬움을 남에게 과장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낚시꾼들의 즐거움이라고 김정운 교수는 이야기한다.
주말 골퍼들의 이야기도 비슷하다고 한다. 드라이버 비거리에 관한 ‘뻥’은 주말 골퍼들 사이에서는 공인된 허풍이다. 좀 친다 하면 다 300야드 나간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새로 나온 GPS 측정기를 가지고 쫓아다니며 재보니, 길어야 260야드가 대부분이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쳐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장비 탓만 하며, 그러다 보니 장비가 자주 바뀐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한국 남자들만큼 골프에 미친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 전날 손바닥이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하고 새벽 네 시면 벌떡벌떡 일어난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그토록 골프를 좋아하는 것일까? 앞서 설명한 스토리텔링의 힘도 있지만 또 한 가지, 골프장에 가면 ‘감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아무도 나보고 감탄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골프장에서는 감탄을 받는다. 그것도 네 시간 다섯 시간 동안 계속된다. 그래서 골프에 그토록 미치는 것이라 한다. 허나 그 다양한 삶과 문화의 영역을 제쳐두고 오직 산비탈 한구석에 모여서 자기들끼리만 감탄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외된 삶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음악회도 열심히 가야하고, 미술관도 아내와 팔짱 끼고 가야하고, 축구장과 야구장에 아이들 손잡고 가야 하는 것이라 한다.
여담이지만 만약 드라이버 거리가 멀리 나가지 않으면, 골프공에다가 마누라 이름을 새겨보라고 권한다. 그럼 평균 40야드 이상 더 날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공을 잃어버려도 아쉽지 않다. 헤져드에 공이 빠져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그래서 김정운 교수의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스토리텔링을 한 번 느껴보기 위하여 골프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그물망 골프연습장에서는 혼자 연습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은 둘째 치고 고독만 느낄 것 같다. 스토리텔링을 느끼기 위해서는 필드에 나가야 하는데, 수도권지역 골프장의 비회원 주말 그린피가 1인당 20만원이라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치는데 20만원 이라니 너무 비싸다. 나는 아직 부유층이 아니다.
따라서 골프 대신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더치 페이(Dutch pay)하는 술자리나 마련하여 스토리텔링을 즐겨야겠다.
여보게들! 오늘 저녁 시간 있냐? 술이나 한 잔 하면서 군대에서 축구하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밤 새워 우리 이야기꽃이나 피워보세!
2009년 6월 말 까칠한 무늬는 에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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