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캐니만 교수의 2010년 TED 강연입니다.

심리학자인 캐니만 교수는 최초로 경제학자가 아니면서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입니다. 그는 인간의 행동과 의사결정이 결코 고전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이성적 인간처럼 산술적인 이해관계와 기계적 합리성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캐니만 교수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라는 뚜렷이 구분되는 두 존재가 있다고 합니다. 경험하는 자아는 지금 현재 내가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그러한 자아인데, 이 자아는 지금 벌어지는 기쁜 일이나 쾌락을 즐기고 고통이나 괴로움을 피하려는 자아입니다.한 편, 기억하는 자아는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 자아인데, 그러한 “회상”은 이야기하기 (story-telling)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자아의 판단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환자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연구 결과를 살펴봅시다. 그가 강연에서 보여주는 그래프에서 가로축은 검사가 지속된 시간이고 세로축은 검사받는 동안 환자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입니다. A환자 그룹은  8분간 고통스러운 검사를 받았고 그 고통의 순간은 상대적으로 급작스럽게 끝났습니다.  반면에 B환자 그룹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24분간이나 검사를 받았고 A환자 그룹만큼 고통스러운 순간도 겪었습니다. 두 환자그룹에 있어서 “경험하는 자아”는 B환자그룹의 경우가 훨씬 더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A환자그룹이 검사를 다 마치고 편안히 쉬는 동안 B환자 그룹은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아”의 평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검사가 끝나고 1시간이 지난 후에 얼마나 검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며 또 다시 이러한 검사를 받을 의향이 있는가를 물었을 때, 놀랍게도 B환자 그룹이 검사를 훨씬 덜 고통스럽고 받을 만한 것으로 기억했으며, 재검사에 대한 의향의 비율도 훨씬 더 높았습니다. 이는 A 그룹의 경우 검사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끝났기 때문에 계속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B 그룹의 경우에는 고통이 점차 감소하다가 줄어들면서 끝났기 때문에 훨씬 덜 고통스럽게 “기억”하기 때문이었지요. 이처럼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는 인간이 어떠한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는 별개의 존재라는 것이 캐니만 교수의 주장입니다.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별개의 존재라는 캐니만 교수의 발견은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서,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이냐하는 철학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대한 전환을 요구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것이 옳고 그르냐 하는 도덕성의 문제와도 곧바로 연결됩니다. 즉 위의 예에서 의사는 환자의 덜 고통스런 “기억”과 행복을 위해 내시경을 1분 더 그냥 놔두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검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내시경을 꺼내는 것이 옳은가? 어떤 쪽이 더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선택인지는 정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또 이러한 “기억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의 분리의 문제는 한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한 공동체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정치적으로 어떠한 선택이 합리적이고 정당성을 지니는가 하는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 문제는 존 롤스나 마이클 샌들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정의실현에 관한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마이클 샌들은 자기이해 “self-interest”의 중요성은 충분히 지적했지만, 자아가 두개의 별개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점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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