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세력의 태동과 변천과정 ] 한국좌파운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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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세력의 태동과 변천과정 : 한국좌파운동의 역사 

첫째, 제1기는 태동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세력 즉 공산주의세력이 태동된 것은 1920년대 무렵이다. 세계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인 1917년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은 연해주, 시베리아의 해외 한인들과 일본 유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고 이를 국내에 유포하면서 부터 좌파세력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코민테른의 지원아래 국제공산주의혁명 전사의 일원으로 조선의 해방과 조선에서의 공산주의 승리를 위해 투쟁해온 시기였다.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사는 크게 3단계로 아래와 같아 구분할 수 있다. ① 공산주의 사상 정립기(1920-1924): 상해파 고려공산당, 이루쿠츠크파 고려공산당 결성 ② 조선공산당 결성 및 활동기(1925-1928) ③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기(1929-1945)

 둘째, 제2기는 인민정권 수립투쟁기이다. 해방직후 공산주의운동은 조선공산당의 재건과 공히 인민정권 수립투쟁으로 상징된다. 이시기 공산주의세력들은 대다수 국민들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여망을 져버리고 소련의 지령에 따라 찬탁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하고 인민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각종 테러, 방화, 총파업, 유격전, 무장폭동 등을 자행하는 등, 어느 시기보다 좌파세력의 준동이 드센 시기였다. 

해방이 되자 좌파세력들은 조선공산당의 재건작업에 즉각 착수했는데, 박헌영의 주도로 1945년 9월 11일 공식적으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다. 해방직후 남한에는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외에도 연안파의 지도를 받는 백남훈의 「조선신민당 남한지부」,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 및 군소그룹으로 좌파세력들이 분파되어 있었다. 이들 세력은 박헌영 주도로 기존 3당세력을 흡수하여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노동당」(약칭 : 남로당)을 결성하게 된다. 이 시기 좌파세력들은 1946년 7월 국립서울대학교 종합화안 반대투쟁(일명 국대안 사건), 9월 총파업, 10월 대구폭동사건, 1948년 2․7 폭동, 5․10 총선반대투쟁, 여순주둔군 반란사건, 제주 4․3 폭동 등 무장폭력투쟁을 일으키고, 지리산 등에서 무장유격투쟁을 전개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등의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하였다.

셋째, 제3기(침체기)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전면 불법남침으로 야기된 6.25 남침전쟁(1950-53년)은 우리사회에서 좌파세력을 일소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좌파세력들은 거의 괴멸되었고 일부 잔존세력들은 잠복한 상태였다. 6.25 남침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사회엔 굳건한 반공체제가 들어서고 국민들도 확고한 반공이념으로 무장되어, 좌파세력들은 거의 발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휴전직후 부터 대남공작부서(노동당 연락부, 내무서 사회안전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등)를 재편하고 간첩을 남파시켜 지하당구축과 동조세력 포섭을 위한 집요한 공작을 진행시켰고, 그 결과 우리사회에는 소위 ‘혁명의 씨앗’이 서서히 발아하기 시작한다.

네째, 제3기는 1960년대 지하활동기이다. 이 시기는 6.25남침전쟁의 결과 지하에 잠복해 있던 좌파세력과 1950년대 말 재발아 한 학원가의 의식화세력 등이 합류하여 지하활동으로 좌파운동의 맥을 이어 온 시기였다. 또한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의 결과 지하당이 구축되어 활동한 시기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64년 인혁당(인민혁명당)사건, 1967년 동백림간첩단사건, 1968년 통혁당(통일혁명당)사건, 1969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이 있다.

 다섯째, 제4기는 반독재민주화운동위장기이다. 1970년대는 1972년 10월 출범한 유신정권에 대항하여 좌파세력들이 사회주의 건설목표를 은닉한 채 ‘반독재민주화투쟁’의 기치를 내걸면서 세력 확산을 기한 시기였다. 또한 이시기 좌파운동은 정치문제와 학내문제 외에 노동현장과 농촌, 빈민운동 등에 까지 직접 투쟁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 계기는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사건(1970년)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후 좌파운동은 민주화운동(정치문제)뿐만 아니라 민중운동(우리사회 구석구석의 소외세력의 견인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한편 좌파세력들은 공개적으로는 일반 학생, 지식인 및 국민대중의 순수한 민주화열망을 수단삼아 정권타도를 실현하기 위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전개하면서 지하에서는 좌경의식화공작에 주력하고 북한과의 연계 속에 전국적 규모의 전위조직 결성을 시도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민주화투쟁의 행동세력이었던 학생운동세력의 성향은 지하의식화 그룹에 참여한 핵심세력만 좌익의식화된 상태였고, 유신반대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일반 학생들은 좌경혁명론에 동조한 상태는 아니었다. 핵심세력들은 여전히 일반학생들에겐 그들의 사회주의지향성을 은닉한 채, ‘민주화투쟁’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여섯째, 제6기는 사회주의지향 표출기이다. 1980년대는 한국좌파운동사에서 양적․질적으로 일대 전환을 가져온 시기이다. 그 이유는 1979년 10․26 사건이후 1980년 초 소위 서울의 봄과 5․17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1980년대 중반이후 좌파운동은 과거와는 달리 급속히 전국 규모화하여 그 세력이 양적으로 확대되었고, 질적으로는 사회주의운동성향이 단순한 민주화투쟁에서 공개적으로 친북․계급투쟁성을 표방하며 사회주의지향 투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남한판 사회주의혁명론 정립을 위한 치열한 사상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는 1980년초 ‘무학(무림-학림)논쟁’에서부터 시작하여 1982년 ‘야비-전망논쟁’, ‘깃발과 반깃발논쟁’(MC-MT논쟁), 1985년의 ‘C-N-P논쟁’, 1986년의 ‘자민투와 민민투논쟁(NL-CA논쟁)’ 1989년 ‘NL-ND-PD 논쟁’ 등으로 대표된다. 1980년대 중반 운동권은 자민투계와 민민투계로 양분되어 공개적인 좌경노선을 표방하며 치열한 사상투쟁을 전개했고, 이들 세력이 분파되어 현재 자민투계는 NL주사파계열로, 민민투계열은 NDR파, PDR파, 트로츠키파, NL비주사파 등 맑스레닌계열로 계승되었다.

 특히 주사파계열은 「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거쳐 1987년 8월 한국 대부분의 대학과 전문대학이 포함된 최대의 학생운동단체인 「전대협」(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을 결성하게 된다. 「전대협」은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수용하여 한국사회변혁 운동론을 ‘자주, 민주, 통일’ 운동노선으로 정립하고 친북편향의 각종 투쟁을 전개해오며 1980년 후반기 사회주의운동을 명실상부하게 주도해 왔다.

 반면 민민투계는 각종 정세관의 차이로 CA(제헌의회)그룹, CPC(헌법제정민중회의), CPA(헌법제정민중의회)로 분파되었고, 특히 CA그룹은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을 거치면서 다수파와 소수파로 분열되어 다수파 A그룹은 NL비주사파를, 다수파중 B그룹은 제독PD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CPA, CPC그룹은 오늘날 PD(주로 제파 PD)파로 계승되고 있는 등 매우 복잡한 분파과정을 연출한바 있다.

 일곱째, 제7기는 직업혁명가 활동기이다. 1990년대의 운동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소수정예의 전문 직업혁명가가 등장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핵심세력(전위세력)이 완전히 직업혁명화한 시기였다. 또한 활동무대가 1970, 80년대의 학원계와 노동계에서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확산되어, 우리내부에 이른바 ‘좌파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고 평가되는 시기이다. 또한 친북세력인 NL주사파 이외에도 북한과 연계되지 않은 자생적인 사회주의세력(맑스레닌계 : NDR, PDR, 트로츠키파 등)들이 대거 등장하여 영향력을 발휘한 시기이다. 이시기 운동권은 ① 이론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무장되었으며 ② 조직규모가 확대되었으며, ③ 간첩을 능가하는 철저한 조직보위책을 운용하고 있고 ④ 투쟁양상도 합법, 반합법, 비합법투쟁을 적절히 배합구사하고 있고 ⑤ 투쟁영역도 북한 및 국제 맑시즘조직과 직접 연계하는 등 비약적 변화를 가져왔다. 

여덟째, 2000년대의 특징은 좌파세력이 제도권 및 정부사이드 등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안착하여 좌파영향력을 국가전반에 확산시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좌파세력들은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출범에 편승하여, 그들의 친북․사회주의지향 활동을 민주화운동이니, 민주개혁운동, 평화애호운동 등으로 미화하며 제도정치권 및 정부사이드에 대거 진출하여 이른바 좌파의 영향력을 정부정책 및 우리사회 전반에 확산시켜 온 시기이다. 

실제 좌파정부 소속의 민주운동보상심의위, 의문사진상규명위, 각 부처 산하 과거사위 등을 통해, 남파간첩과 빨치산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고, 독일거주 거물급 간첩 송두율이 해외의 양심적인 민주화운동가로 미화되고, 사회주의혁명 등 반국가이적활동을 하다가 실정법을 위반하고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인사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여 명예회복과 더불어 거액의 보상금까지 수령하며 호위호식하고 있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북한과 연대한 좌파세력들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 공안기관(국정원, 경찰 보안수사대 , 기무사 등)의 무력화 공세를 펼치며 안보관련시스템의 약화 및 우리사회의 중추세력인 자유민주진영(보수우파세력)의 무력화를 시도한바 있다.


좌파세력의 계파별 현황 


현재 친북․좌파운동권으로 대표되는 국내 좌파세력은 매우 복잡하게 分派되어 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크게 ① 북한노선을 추종하고 있는 NL주사파와 ② 맑스레닌노선를 추종하는 PDR파 ③ 트로츠키노선을 추종하는 트로츠키파 ④ NL-PD의 혼합체인 21C파 및 ⑤ 기타 小 分派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NL주사파란 기본적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을 지칭하는데 이들은 북한의 대남혁명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에 입각하여 남한혁명을 성취하려는 세력이다. 주로 NLPDR파, NL(민족해방)파, NL1, NL우파, 주사파, 친북운동세력 또는 민족적 유물론자, 종북세력 등으로 불리워 진다. 대표적 조직으로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집행부,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한대련」(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연대」,「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한국청년단체연합」 및 친북통일전선체격인 「한국진보연대」등이 활동 중이다.

둘째, PDR파란 민중민주주의혁명파(PDR : People‘s Democracy Revolution)라는 의미로, 소위 PDR론에 의해 한국을 사회주의화하려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파는 크게 ① 제독PD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혁명)파와 ② 제파PD (반제반파쇼 민중민주주의혁명)파로 나누어 진다.

 현재 제독PD파는 NL주사파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수의 세력이 학원계와 노동계, 문화예술계, 학계 등에 포진해 있다. 현재 활동중인 대표적인 PD파 조직을 들면, 대중조직으로 「노동자의 힘」, 「한노정연」(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학생운동체로는 「학생행동연대」(SAS), 「인학련」(인권의 정치학생연합), 「대학생사람연대」 등이 있다.

 셋째, 트로츠키파란 러시아의 공산혁명가인 트로츠키(L. Trotsky)의 혁명노선(영구혁명론)에 입각하여 한국혁명을 획책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파의 기본이념은 트로츠키즘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세력은 동구사회주의권 몰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트로츠키즘을 이의 대안으로 조심스럽게 채택하였다. 동구권에 이어 소련공산당의 붕괴가 기정사실로 나타나자 이들 세력은 기존 사회주의권을 스탈린주의에 매몰된 가짜사회주의라고 규정하고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입각한 국제사회주의혁명만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며 현재의 트로츠키파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활동중인 트로츠키계열의 조직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 「사학련」(사회주의학생연합), 「사노련」(사회주의노동자연합), 「다함께」 등이 있다.

 넷째, 21C(세기)파는 1993년 말경 NL과 PD의 대립구도에 염증을 느낀 세력들이 ‘인간적 민주적 사회주의 실현’의 기치를 들고 독자노선을 선언하며 형성한 학생운동그룹인데, 이들 세력 역시 맑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의 대표적인 조직은 「21C 진보학생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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