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운동선수가 아냐. 배우야! 네가 TV를 보고 있다고 상상해 봐. 배우들이 무표정한 연기를 하면 재미있을까? 네가 주연 배우라면 관객들은 뭘 원할까? 그들과 호흡을 해야 하는 거야. 그게 바로 프로야."

그의 말처럼 운동선수는 배우와 같다.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이다. 감독을 비롯해 주연과 조연, 스태프들이 있고, 작품의 그 과정에서 스타가 탄생하기도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미리 짜인 각본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게임을 어떻게 풀어가야겠다는 전략은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 운동선수들은 배우와 같다. 전인지 역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상상한다"고 했다. US여자오픈 타이틀 방어에 나서는 그가 이번에는 어떤 시나리오로 감동을 선사할 지 기대된다. 사진편집=박태성 기자

골프라는 무대에서도 그동안 TV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기를 끌었던 아널드 파머를 비롯해 잭 클라우스, 그렉 노먼, 게리 플레이어 등 많은 스타 배우들이 있었다. 롱런을 하는 배우들 외에도 불꽃처럼 타올랐다 금세 사그라진, 반짝 스타들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타를 꿈 꾸는 배우 지망생들은 수두룩하다.

골프 역사상 최고의 스타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다. 그는 위기의 순간 클러치 퍼트를 성공한 뒤 트레이드마크인 어퍼컷 세리머니를 날려 갤러리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그 모습 앞에 상대는 공포감마저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나이키, 질레트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후원을 했고, 연간 1억 달러를 버는 최초의 골퍼가 됐다.

개성 넘치는 배우들도 있었다. 뚱뚱한 몸매의 존 댈리는 코스에서는 장타를 펑펑 날리고, 코스 밖에서는 알콜 중독과 도박, 이혼 등 갖은 기행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감수성도 풍부하다.

기타를 치며 서정적인 시를 쓰는가 하면 '마이 라이프' 등 음반도 발매했다. 2006년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디 오픈 때는 대회 개막을 앞두고 비틀스의 채취가 묻어 있는 케이번 클럽을 찾아 작은 공연도 했다. 당시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g on Heaven's Door)와 자신이 직접 작곡한 '로스트 소울'(Lost Soul)을 연주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배우인 셈이다.

미겔 앙헬 히메네스는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처럼 정열적이다. 꽁지머리와 짙은 선글라스, 그리고 쿠바산 시가를 입에 문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홀인원을 한 뒤에는 기쁨의 표시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흉내 내기도 했다. 때론 상대와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이번 주 전 세계 여자 골프계에서 가장 큰 무대가 열린다. US여자오픈이다. 지난해 전인지가 '월드 스타'로 발돋움한 대회다. 미국 뉴욕주의 랭카스터 골프장에서 올해는 캘리포니아주 샌마틴의 코르드바예 골프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전인지는 최근 LPGA 투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지난해 우승 당시 (박원) 코치의 조언대로 내가 영화 속 주연 배우라는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즐겁게 하려고 했다"며 "실제로 나는 그렇게 했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팬들과의 호흡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전인지는 여전히 주연 배우다. 관객들은 그가 이번에도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비상할지 여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각본이 없기에 골프의 신(神)을 제외하곤 아직 아무도 결말을 모른다. 또 다른 배우들도 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명배우는 명대사를 남기는 법. 전인지는 지난해 US여자오픈 우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밤이면 랭카스터 골프장 주변으로는 수많은 반딧불들이 밝게 빛났어요. 전 그 불빛들을 정말 좋아했고요. 저의 우승도 제 가슴 속에서 영원히 빛날 거예요. 랭카스터 반딧불의 작은 불빛 중 하나처럼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