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나 마음 혁명을 옮김이 아눌라 스님>
레븐슨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그것들에 답했던 자신의 반응을 관찰하면서 그것의 관계성 속에서 진리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들의 완전한 연관성을 이해하면서 그것들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 이것은 불교식으로 말하면 '연기'속에서 '무아'를 터득했다는 말이 된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미국 사람 레븐슨이 어떻게? 바로 그것이다. 불교가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발견하여 알려준 것이 불교다. 그러므로 진리는 누구에게나 발견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현상 속에서 연기를 통해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을 독각불 또는 연각, 벽지불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교화, 즉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연기법과 무상한 자연의 실상을 보고 연기의 참뜻을 홀로 깨달아 해탈을 증득한 자를 말한다. 반면,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여 깨달은 자를 '아라한'이라고 한다.
그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서 자신을 쳐다보도록 스스로에게 강요당한다. 죽음에 대한 압박감이 그를 몰아붙였고 그는 3개월 동안에 모든 것을 끝냈다. 물론 평생의 질문이었던 '나는 무엇인가?'와 '행복은 무엇인가?'가 완전하게 해결되면서 그의 몸은 완전히 건강해졌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질문이자 숙제가 아닌가? 고맙게도 그가 3개월 동안에 다 풀어놓았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도 완치된다. 몸과 마음의 완전한 해결.
레스터 레븐슨은 자신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의 생각들과 느낌들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세상에 살면서 축적된 그의 인지와 경험을 바꾸어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의 과거를 모두 해결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출세간의 경지에 이러렀고 거기에는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도 발생했다.
나는 참선과 명상을 오랫동안 해오던 사람으로서 그가 도달한 과정과 결과에 엄청나게 매료되었다. 우리의 과정을 포함하면서도 거기 또 새로운 측면이 있었다. 아주 빠르게 했고, 완전하게 끝냈고, 추상적이지 않으며, 매우 실용적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인생 경험들을 회고해 들어가면서 자신의 생각과 그 결과가 연관되에 있엇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인생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결국은 자신의 왜곡된 생각들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이때 그는 엄청난 해탈을 경험한다. 놓여남. 그는 놓여나면서 그것이 곧 사랑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평화, 궁극적인 행복에 도달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 수확이다. 그에게도 여러분에게도,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가 더 있다. 그가 평화의 축복으로 흘러넘칠 때, 그는 이러한 발견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다는 의지를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때 그는 사람들이 이런 평화의 상태를, 어떤 종류의 결핍 혹은 풍요나 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런 것들로 알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발견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점이 이제까지 우리에게 없었던 점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 깨달음의 평온과 행복이 정말 물질적인 결핍상태인가 하는 것을 직접 실험했다. 그는 6개월 동안 무일푼에서 한국 돈으로 무려 10억이 넘는 돈을 만들어냈다. 이것을 확인한 후에 그는 그 돈을 다 놓아버리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각만을 일으키며 10일간을 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것도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모든 상황과 사람들이 그의 여정에 필요한 것들을 다 공급해주었다. 1909년에 태어나 1994에 세상을 떠난 레븐슨은 (시크릿)이 나오기 훨씬 전의 사람이지만 그는 이미 그때 '시크릿'의 법칙을 완전히 터득했고 완전히 사용했음을 증명해 보여주었다. 이것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수록된 부록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제야 사람들은 안심하기 시작한다. 아,깨달음이 결핍이 아니라 풍요로구나. 그의 가르침은 '풍요의 법칙'으로 서구 세계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다. 불교에서는 정신으로 물질계에 영향을 미치는-소위 말하는 신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일들을 엄격히 금했다. 아마도 우리 불교인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것들이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붓다가 허락한 경우가 하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나의 방편으로서 신통을 보이는 것을 허용했다. 물론 레스터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그는 그런 실험을 한 후에 그 모든 것을 즉시 놓아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물질이 정신을 잡아먹어버린 시대가 되었다. 정신을 돌려주기 위해서도 이 물질을 간과할수 없게 되어버린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나는 레스터 레븐슨의 깨달음과 그 가르침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모델이자 모범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함께 지냈다는 한 제자는 그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42년간 그의 '시크릿'을 사용하여 건강과 성공과 부를 누렸고, 그는 아주 행복한 부자로 살다가 84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신과 물질, 둘 다를 모두 극복했고 초월했고 그리고 완전히 사용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것들을 완전히 공개했으며 누구에게나 그런 것들을 누리고 사용할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그가 '깨달음의 성자'로 알려지기보다는 돈을 만들어내느느 백만장자, 즉 '시크릿의 선구자'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이 나로서는 정말, 많이, 많이 유감스럽다.
선택은 독자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물질을 선택하면 정신과 물질 둘 다 잃을 것이고, 정신을 선택하면 정신과 물질 둘 다 누리게 될 것이다.
주목하라. 지금 엄청난 기회가 인류에게 열리고 있다. 한쪽에서 부서지고 있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열리고 있다. 덕분에 이전에는 깨달아야만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었던 모든 비전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여기에는 우주의 계획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어쩌면 인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말고사 또는 마지막 추수와 같은 것이다. 곧 대중들이 우르르 깨닫는 '대중-깨달음'의 시대가 열린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
레스터의 마지막 질문, 진정으로 '나에게 무엇이 행복인가?'를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고 스스로의 걸음을 내딛기 바란다. 그는 이것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생각 놓아버리가'다. '생각 놓아버리기'는 그대를 깨달음으로 인도할 것이고, 완전한 놓아버림과 무집학을 얻게 되면 여러분도 시크릿의 창조자가 되어 '풍요의 법칙'의 사용자가 될 것이다.
"문제를 보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보라.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이 원하는 것만 본다면
당신은 그 모든 것을 가질 것이다."
원하는 것? 궁극의 목표는 무엇일까?
'흔들림 없는 행복'이다. 그 어떤 형태의 슬픔에도 물들지 않는 지속적인 행복의 상태이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목표인가? '흔들림 없는 행복'이 바로 우리의 근본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흔들림 없는 행복인가? 완전하고 총체적인 자유다. 그것이 무엇이든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한계에 봉착하기 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다.
본 도서를 읽으면서 보편적 지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서술적 표현이나 언어 사용이 가슴에 살짝 안착되며 미소를 짓게한다. 온전한 몸으로 돌아오면서 두 가지를 발견하였다는 경험도 보편적 지성이지만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이다. "나의 행복이 나의 사랑과 비례 한다" 는 것과 "나의 생각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의 원인이다"라는 진리가 평범한 사람에게 감동이다.
7가지 주제를 한 주간에 생각과 쓰기와 훈련으로 자신의 내면을 검색하는 좋은 기회가 누구나 주어질 것이다.
' ♪ 읽(보)氣(讀,體驗)'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에 투자하라(유영만,김예림) (0) | 2022.01.26 |
---|---|
리얼리티 트랜서핑 1,2,3(바딤 젤란드) (0) | 2022.01.09 |
은퇴 생활 백서 (0) | 2021.12.31 |
행복 시크릿 (0) | 2021.07.23 |
위대한 시크릿 (0) | 2021.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