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이미지와 성능, 특·장점, 가격만을 홍보하는 광고는 더 이상 소비자에게 감흥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마케팅은 지극히 상투적이고 진부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상품에 이야기를 담아 특별함과 가치를 더하고 소비자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도록 하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최근 기업들도 나날이 눈이 높아만 가는 소비자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자사 제품의 브랜드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성공하려면 상품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이야기에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진정성이 담겨야 합니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미국 필립모리스사의 유명 담배 브랜드 말보로입니다. 말보로(Marlboro)는 브랜드 명의 각 글자에 의미를 부여해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사랑을 기억한다(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는 문구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광고는 처음 진행됐을 때부터 소비자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고, 지금도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입니다. 말보로의 사례처럼 잘 지어낸 스토리 하나로 주목받은 마케팅 사례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은 13세기에 지어진 집으로 수많은 연인들의 발길로 연일 문정성시를 이루는 곳입니다. 그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던 것처럼 발코니에 서서 애정 표현을 하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합니다. ‘줄리엣의 방’에는 줄리엣이 쓰던 침대, 드레스, 장신구 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그것을 보고 ‘줄리엣이 이곳에서 정말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실존인물이 아닙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베로나에 전해지던 한 연인들의 슬픈 전설에서 착상을 얻어 지어낸 연극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모두 허구속의 인물이니 줄리엣이 이곳에서 살았을 리가 없죠. 하지만 베로나 시의 공무원들은 13세기에 지어진 고색창연한 건물을 골라 발코니를 달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줄리엣의 방을 꾸며 이를 관광 상품으로 홍보했습니다. 그러자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꼭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수많은 연인들이 ‘줄리엣의 방’으로 몰려들었고, 그 덕분에 베로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고베식당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제품의 차별화를 꾀한 매일유업 마케팅의 산물입니다. 이 회사는 새로 개발한 냉동 레토르트 카레의 론칭을 위해 이런 이름을 고안해냈습니다. 이 제품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자신들이 지어낸 가상의 식당이 마치 실제로 점포를 여는 것처럼 설정해 브랜드 이름 알리기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기자들을 영화관에 초청해 광고 예고편을 상영하고, 신사동 가로수길에 팝업 스토어를 여는 등의 게릴라 퍼포먼스를 벌여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한껏 높였습니다. 그 결과 고베식당은 제품 론칭과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스토리를 가진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지니게 됐습니다. 



MCC 고베식당과의 기술제휴를 맺은 매일유업(사진: 고베식당 홈페이지)



고베식당은 일본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인 효고현 고베시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고베시는 예로부터 유럽과의 무역이 발달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시내 중심가에 외국인들이 모여 살았던 가이진칸(外人館) 구역이 지금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먹거리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기도 합니다. 고베는 풍요로운 자연환경으로 좋은 재료와 우수한 요리사들이 많아 실제로 요리를 만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곳에는 일본 대표의 정통 카레 장인기업인 MCC 고베식당이 있기도 합니다. 일본 카레의 본고장 고베에서 80년 동안 카레를 만든 장인의 손맛이 녹아있다는 스토리를 담아 레토르트 카레 신제품을 홍보해 짧은 시일 안에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프랑스 생수업체 에비앙은 최초로 생수를 상품화 한 회사로 유명합니다. 물을 사먹는다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 에비앙은 '신비의 약수'라는 고급 이미지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지니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스토리 덕분입니다. 1789년 신장 결석을 앓고 있었던 프랑스의 한 귀족이 알프스의 작은 마을 에비앙에 휴양을 가서 그 마을의 물을 먹고 병을 고친 일이 있었습니다. 



에비앙 제품들 (사진: EVIAN 홈페이지)



나중에 학자들이 그 물의 성분을 조사해보니 미네랄과 같은 인체에 유익한 성분이 다량 함유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에비앙은 귀한 신비의 약수로 여겨지게 되었고, 그 소문이 퍼지면서 유럽에서 가장 좋고 비싼 생수로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정확한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베트남 밀림에서 무수한 총탄이 빗발치던 1960년대 한 싸움터에서 안드레드 중사는 베트콩의 총알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한 참 후 그는 가슴의 통증과 함께 깨어납니다. 분명히 가슴에 총알을 맞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살아있었던 것이지요. 안드레 중사는 총알에 맞은 자신의 가슴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러자 손끝에 딱딱한 물건의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윗주머니에서 그 물건을 꺼내보니 바로 총알자국이 선명한 라이터가 나타났습니다. 중사의 목숨을 구한 것은 바로 지포 라이터였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라이터 덕분에 목숨을 건진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이처럼 강한 스토리를 지닌 지포라이터는 이후 남성의 상징,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며 지금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전 병사들은 자신이 소유한 지포에 자기만의 글자와 그림 등을 새겨넣었다.



끝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해드리겠습니다.
미국 할리우드 출신의 모나코 왕국 왕비 그레이스 켈리는 임신해서 볼록하게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에르메스 가방으로 감췄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그녀를 따라다니던 파파라치의 사진에 찍혀 잡지에 실렸고, 에르메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가방에 '켈리 백'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켈리 백이 에르메스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제는 사람이든 제품이든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고 기발하게 전달하느냐가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감성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시대에 스토리는 더욱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스토리가 힘이고 경쟁력인 시대, 기업들은 오늘도 소비자들이 공감할 ‘그럴듯한 이야기’를 찾아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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