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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의 진화] 슬로비· 다운시프트족 증가 슬로푸드·워킹·패션 등 전방위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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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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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로 지정된 담양군 삼지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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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된 전남 완도 청산도가 코스모스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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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가게에서 열린 나눔장터를 찾은 시민들이 중고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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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 리폼 워크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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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다국적 컨설팅회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일하던 A(38·남)씨. 매일 새벽에 퇴근해야 하는 바쁜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그는 몇 년 전 이직을 결심했다. 수입은 절반 이상으로 줄었지만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는 현 직장에 매우 만족한다.
인사 컨설팅회사 네모파트너스의 한 관계자는 "연봉을 적게 받더라도 여가와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직장을 선호하는 추세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한 박자 느리게 살려는 움직임은 국내에서 몇 년 전부터 시작돼 생활 전반으로 계속 퍼져가고 있다. 느리게 먹는 슬로푸드, 느리게 걷는 슬로 워킹, 느리게 입는 슬로패션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그것이다.
A씨의 경우처럼 슬로비 족이나 다운시프트 족 같은 새로운 세대도 증가추세다. 슬로비(Slobbie)는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을 뜻하는 말로 여피(Yuppie)족 이후 1990년대 등장한 세대다.
여피족이 성공지향적이고,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전문직 종사자인데 반해 슬로비족은 삶의 여유와 안정적인 가정생활, 마음의 평화를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비슷한 개념의 다운 시프트(Down-Shift)족은 슬로푸드와 슬로라이프를 실천하는 무리로, 고소득이나 빠른 승진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면서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슬로라이프의 확산을 야기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세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 슬로라이프는 웰빙 트렌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과와 물질중심적 삶에서 여유 있고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둘째,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대량생산되는 패스트 시대에 일종의 문화적 반발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셋째는 명품화 욕구다. 친환경적인 제품과 삶을 통해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교수는 슬로라이프 트렌드가 향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삶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아 가는 슬로라이프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학교급식·직거래 활성화 등 로컬푸드 확산
슬로라이프 중에서 가장 먼저 시작돼 가장 널리 확산된 분야가 음식이다. 느리게 먹자는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맥도널드의 로마 진출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시작해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느리게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들더라도 정성이 깃든 음식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또, 소멸위기에 처한 전통음식이나 식자재를 지키고, 질 좋은 재료를 공급하는 소규모 생산자를 보호하며, 맛의 표준화와 획일화를 거부한다. 음식의 진정한 맛을 음미하고, 건강과 환경까지 생각하며 먹는 것이 슬로푸드다.
국내에서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것은 10여 년 전. 그 동안 실생활에서 슬로푸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까?
슬로푸드 전도사로 알려진 경남대 사회학과 김종덕 교수(슬로푸드 문화원 부이사장)는 "소비와 생산, 인식에 있어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슬로푸드 문화는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로컬푸드의 확산이 그나마 활발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고 50km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물리적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야만 소비자가 먹는 식재료의 신선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자의 소득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학교급식에 지역농산물 사용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 것도 로컬푸드 확산 움직임을 보여주는 예다.
또,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대도시가 아닌 지역 내에서 소비하자는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전북 완주군 주민들은 지역에서 생산한 각종 먹을 거리를 동네장터를 통한 직거래 유통방식으로 소비하며 로컬푸드 운동에 앞장 서고 있다.
완주군은 로컬푸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올해 초 로컬푸드사업단을 설치한 데 이어 '완주 로컬푸드 지원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센터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류와 복분자, 표고버섯 등 친환경 농산물과 간장, 된장, 청국장, 메주 등 재래식 방법으로 만들어진 가공 식품 등을 관내 기업과 학교, 사회복지시설 급식소에 공급하게 된다.
다른 지자체들도 완주군을 방문해 정보를 교환하며 로컬푸드 활성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해 4월 충남 서천군 마서면에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딸기, 고구마, 한과, 메주콩 등의 먹거리만 판매하는 동네장터가 들어섰다. 경기도 평택시도 지난해 10월부터 직거래 장터를 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는 슬로푸드 전담팀을 만들어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한 슬로푸드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천천히 걷고, 지역향토음식 맛보고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가 열린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는 유유자적하게 걷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청산도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제주, 하동, 산청, 함양, 구례, 지리산 둘레길 등 걷기코스로 이름난 곳을 찾아가 트레킹을 즐긴다.
슬로라이프가 여행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걷기여행 열풍이다. 여행작가 김산환 씨는 "예전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빨리빨리 많은 곳을 돌아 보는 여행이 주를 이뤘으나 2000년대 들어 천천히 즐기는 여행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은 슬로여행의 전환기를 맞아 자기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이 여행의 화두로 떠올랐다. 여행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데 천천히 거니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 때문에 트레킹 전문 여행사가 많아졌고, 전국적으로 경치 좋고 걷기 좋은 길은 걷기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등산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대신 평평한 길을 걷는 트레킹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육체적인 피로가 덜해야 자기의 내면과 마주하지 좋다. 이와 함께 단체여행은 줄고, 나홀로 여행족이 증가하는 현상도 낳고 있다. 지난해 제주 올레를 찾은 여행객 중에는 혼자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이를 두고 여행사에서는 '자기사유적 여행'으로 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앞으로도 패키지 여행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슬로라이프의 영향으로 지역의 전통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전남도청 김복희 사무관은 "전라남도는 기후가 좋아 예로부터 김치, 된장, 젓갈 등 발효식품이 발달한 지역인데, 최근 몇 년 새 이 같은 전통음식을 맛보기 위해 찾아 드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전통문화가 보존된 환경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끼기 위해 슬로시티를 찾는 여행객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은 완도 청산도, 하동 악양면, 담양 창평, 신안 증도, 장흥 우산 등 모두 5곳이다.
청산도 등 슬로시티 4개가 위치한 전남도는 "4곳에서 여행상품을 운영한 결과 지난해 각 지역당 5억 원의 수익이 창출됐다"고 밝혔다. 특히, 신안 증도는 지난해 37만 8645명이 찾아 전년대비 약 10%가 증가했고, 완도 청산도는 31만 6000명으로 20% 가량 증가했다.
재활용·교환 등 서서히 기지개 펴는 슬로패션
재활용 디자인 그룹 ㈜리블랭크는 장롱 속에 방치된 헌 티셔츠나 핸드백 등을 리폼(reform) 작업을 통해 멋진 물건으로 재탄생시킨다. 상품의 가격은 의류의 경우 5만~20만원 대, 가방 2만~15만원 대, 가죽소품 4000원~5만원 대 등이다. 새 물건보다 꼭 싸다고는 할 수 없다. 새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왜 싸지도 않은 재활용 디자인 제품이 버젓이 팔려 나갈까?
리블랭크 채수경 대표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이어지는 패스트패션이 증가함에 따라 그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리폼을 비롯해 교환, 대량 생산된 옷이 아닌 집에서 손수 만든 DIY패션, 친환경적 소재, 제3세계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은 공정거래 제품 소비가 모두 슬로패션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 슬로패션 소비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5년경.
슬로라이프에서 가장 후발주자에 속하며, 가야 할 길이 멀다. 헌 옷 등을 교환해 입을 수 있는 아름다운가게 매장 수가 계속 증가하고, 국내 최초의 재활용 디자인 회사로 꼽히는 리블랭크의 회사 규모가 성장하는 등 작은 성과를 거두기는 했다.
최근 들어 명품에서도 슬로패션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등 슬로패션이 우리보다 발달한 나라의 경우, 유명 백화점 매장에서 헌 옷을 재가공한 빈티지 패션 매장이 들어서는 등 명품에 슬로패션 바람이 강하게 부는 편이다.
재활용 패션에 높은 품격과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드러난 것이다. 루이비통은 디자인에 '쓰레기' 개념을 접목시켜 아이콘 모노그램이 잘리고 겹쳐지고 난도질된 핸드백을 출시해 화제를 낳았다. 폴 스미스 역시 2년 전, 재활용한 듯한 빈티지 풍의 의상을 선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재활용 디자인이 명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단계에까지 와 있지는 않다. 다만, 친환경 소재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LG패션 닥스골프는 2010 봄여름 컬렉션에서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 수피아 면 등을 사용한 에코라인을 선보였다.
닥스골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명품 소비자들은 세련된 디자인에 못지 않게 점점 친환경 소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그런 추세를 반영하듯 이번에 출시한 에코라인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인사 컨설팅회사 네모파트너스의 한 관계자는 "연봉을 적게 받더라도 여가와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직장을 선호하는 추세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한 박자 느리게 살려는 움직임은 국내에서 몇 년 전부터 시작돼 생활 전반으로 계속 퍼져가고 있다. 느리게 먹는 슬로푸드, 느리게 걷는 슬로 워킹, 느리게 입는 슬로패션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그것이다.
A씨의 경우처럼 슬로비 족이나 다운시프트 족 같은 새로운 세대도 증가추세다. 슬로비(Slobbie)는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을 뜻하는 말로 여피(Yuppie)족 이후 1990년대 등장한 세대다.
여피족이 성공지향적이고,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전문직 종사자인데 반해 슬로비족은 삶의 여유와 안정적인 가정생활, 마음의 평화를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비슷한 개념의 다운 시프트(Down-Shift)족은 슬로푸드와 슬로라이프를 실천하는 무리로, 고소득이나 빠른 승진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면서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슬로라이프의 확산을 야기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세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 슬로라이프는 웰빙 트렌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과와 물질중심적 삶에서 여유 있고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둘째,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대량생산되는 패스트 시대에 일종의 문화적 반발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셋째는 명품화 욕구다. 친환경적인 제품과 삶을 통해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교수는 슬로라이프 트렌드가 향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삶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아 가는 슬로라이프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학교급식·직거래 활성화 등 로컬푸드 확산
슬로라이프 중에서 가장 먼저 시작돼 가장 널리 확산된 분야가 음식이다. 느리게 먹자는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맥도널드의 로마 진출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시작해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느리게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들더라도 정성이 깃든 음식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또, 소멸위기에 처한 전통음식이나 식자재를 지키고, 질 좋은 재료를 공급하는 소규모 생산자를 보호하며, 맛의 표준화와 획일화를 거부한다. 음식의 진정한 맛을 음미하고, 건강과 환경까지 생각하며 먹는 것이 슬로푸드다.
국내에서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것은 10여 년 전. 그 동안 실생활에서 슬로푸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까?
슬로푸드 전도사로 알려진 경남대 사회학과 김종덕 교수(슬로푸드 문화원 부이사장)는 "소비와 생산, 인식에 있어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슬로푸드 문화는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로컬푸드의 확산이 그나마 활발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고 50km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물리적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야만 소비자가 먹는 식재료의 신선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자의 소득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학교급식에 지역농산물 사용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는 것도 로컬푸드 확산 움직임을 보여주는 예다.
또,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대도시가 아닌 지역 내에서 소비하자는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전북 완주군 주민들은 지역에서 생산한 각종 먹을 거리를 동네장터를 통한 직거래 유통방식으로 소비하며 로컬푸드 운동에 앞장 서고 있다.
완주군은 로컬푸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올해 초 로컬푸드사업단을 설치한 데 이어 '완주 로컬푸드 지원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센터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류와 복분자, 표고버섯 등 친환경 농산물과 간장, 된장, 청국장, 메주 등 재래식 방법으로 만들어진 가공 식품 등을 관내 기업과 학교, 사회복지시설 급식소에 공급하게 된다.
다른 지자체들도 완주군을 방문해 정보를 교환하며 로컬푸드 활성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해 4월 충남 서천군 마서면에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딸기, 고구마, 한과, 메주콩 등의 먹거리만 판매하는 동네장터가 들어섰다. 경기도 평택시도 지난해 10월부터 직거래 장터를 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는 슬로푸드 전담팀을 만들어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한 슬로푸드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천천히 걷고, 지역향토음식 맛보고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가 열린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는 유유자적하게 걷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청산도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제주, 하동, 산청, 함양, 구례, 지리산 둘레길 등 걷기코스로 이름난 곳을 찾아가 트레킹을 즐긴다.
슬로라이프가 여행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걷기여행 열풍이다. 여행작가 김산환 씨는 "예전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빨리빨리 많은 곳을 돌아 보는 여행이 주를 이뤘으나 2000년대 들어 천천히 즐기는 여행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은 슬로여행의 전환기를 맞아 자기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이 여행의 화두로 떠올랐다. 여행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데 천천히 거니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 때문에 트레킹 전문 여행사가 많아졌고, 전국적으로 경치 좋고 걷기 좋은 길은 걷기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등산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대신 평평한 길을 걷는 트레킹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육체적인 피로가 덜해야 자기의 내면과 마주하지 좋다. 이와 함께 단체여행은 줄고, 나홀로 여행족이 증가하는 현상도 낳고 있다. 지난해 제주 올레를 찾은 여행객 중에는 혼자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이를 두고 여행사에서는 '자기사유적 여행'으로 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앞으로도 패키지 여행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슬로라이프의 영향으로 지역의 전통음식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전남도청 김복희 사무관은 "전라남도는 기후가 좋아 예로부터 김치, 된장, 젓갈 등 발효식품이 발달한 지역인데, 최근 몇 년 새 이 같은 전통음식을 맛보기 위해 찾아 드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전통문화가 보존된 환경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끼기 위해 슬로시티를 찾는 여행객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은 완도 청산도, 하동 악양면, 담양 창평, 신안 증도, 장흥 우산 등 모두 5곳이다.
청산도 등 슬로시티 4개가 위치한 전남도는 "4곳에서 여행상품을 운영한 결과 지난해 각 지역당 5억 원의 수익이 창출됐다"고 밝혔다. 특히, 신안 증도는 지난해 37만 8645명이 찾아 전년대비 약 10%가 증가했고, 완도 청산도는 31만 6000명으로 20% 가량 증가했다.
재활용·교환 등 서서히 기지개 펴는 슬로패션
재활용 디자인 그룹 ㈜리블랭크는 장롱 속에 방치된 헌 티셔츠나 핸드백 등을 리폼(reform) 작업을 통해 멋진 물건으로 재탄생시킨다. 상품의 가격은 의류의 경우 5만~20만원 대, 가방 2만~15만원 대, 가죽소품 4000원~5만원 대 등이다. 새 물건보다 꼭 싸다고는 할 수 없다. 새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왜 싸지도 않은 재활용 디자인 제품이 버젓이 팔려 나갈까?
리블랭크 채수경 대표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이어지는 패스트패션이 증가함에 따라 그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리폼을 비롯해 교환, 대량 생산된 옷이 아닌 집에서 손수 만든 DIY패션, 친환경적 소재, 제3세계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은 공정거래 제품 소비가 모두 슬로패션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 슬로패션 소비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5년경.
슬로라이프에서 가장 후발주자에 속하며, 가야 할 길이 멀다. 헌 옷 등을 교환해 입을 수 있는 아름다운가게 매장 수가 계속 증가하고, 국내 최초의 재활용 디자인 회사로 꼽히는 리블랭크의 회사 규모가 성장하는 등 작은 성과를 거두기는 했다.
최근 들어 명품에서도 슬로패션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등 슬로패션이 우리보다 발달한 나라의 경우, 유명 백화점 매장에서 헌 옷을 재가공한 빈티지 패션 매장이 들어서는 등 명품에 슬로패션 바람이 강하게 부는 편이다.
재활용 패션에 높은 품격과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드러난 것이다. 루이비통은 디자인에 '쓰레기' 개념을 접목시켜 아이콘 모노그램이 잘리고 겹쳐지고 난도질된 핸드백을 출시해 화제를 낳았다. 폴 스미스 역시 2년 전, 재활용한 듯한 빈티지 풍의 의상을 선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재활용 디자인이 명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단계에까지 와 있지는 않다. 다만, 친환경 소재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LG패션 닥스골프는 2010 봄여름 컬렉션에서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 수피아 면 등을 사용한 에코라인을 선보였다.
닥스골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명품 소비자들은 세련된 디자인에 못지 않게 점점 친환경 소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그런 추세를 반영하듯 이번에 출시한 에코라인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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