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나는 왜 힘들까?’ 용하다는 점집에서도, 심리학책에서도 답이 안 보이는 인생의 문제들. 어렸을 적의 상처와 트라우마라고 쉽게 말하곤 하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단절 내지는 굴곡을 ‘글쓰기’로 풀어보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으니 바로 사주명리학과 결합한 글쓰기, ‘누드 글쓰기’다. 세상에 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사주팔자’(四柱八字)를 기본으로 하여 스스로와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치유로서의 글쓰기를 체험한 4인의 가장 구체적이고 솔직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몸과 삶이 만난 글쓰기, 삶을 바꾸는 글쓰기. 팔자 탓은 이제 그만, 의역학(醫易學)으로 인생역전을 꿈꾼다.
글쓰기의 존재론: 운명의 ‘지도-그리기’_ 고미숙
사주명리학 개요 : 운명의 열쇠를 찾아서_ 안도균
과다 4인방의 누드 글쓰기
절대 반지의 노래 : 비겁과다형 인간이 나가신다_ 손영달
어깨에 힘빼면 동무가 생긴다 : 관성과다형 인간, 그 남자의 사회생활_ 김동철
공동체, 인생역전 프로그램 : 식상과다형 인간의 신체단련과 공부_ 수경
불의 달인, 호모 아그니스 : 재성과다, 어느 대장장이의 일화_ 류시성
사주명리학 개요 : 운명의 열쇠를 찾아서_ 안도균
과다 4인방의 누드 글쓰기
절대 반지의 노래 : 비겁과다형 인간이 나가신다_ 손영달
어깨에 힘빼면 동무가 생긴다 : 관성과다형 인간, 그 남자의 사회생활_ 김동철
공동체, 인생역전 프로그램 : 식상과다형 인간의 신체단련과 공부_ 수경
불의 달인, 호모 아그니스 : 재성과다, 어느 대장장이의 일화_ 류시성
P.8 :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람들은 자기 몸에 대해 지독하게 무관심하다. 사회를 분석하고 역사를 탐구하고 혁명을 기획하면서 정작 자기 몸을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몸’ 하면 그저 얼굴과 몸매, 그리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각종 생리적 수치, 그걸로 땡!이다. 당연히 그 모든 것은 스스로 연구한 결과가 아니다. 철저히 외부에서 ‘만들어진’, 아니 ‘조작된’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오직 밖으로부터 오는 시선, 외부의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을 본다. 거울이 화려할수록, 시선이 압도적일수록 내 몸은 잊혀져 간다. 동시에 내 몸속의 우주, 내 몸에서 벌어지는 심연의 전투는 침묵·봉쇄된다.
P.32 : 계절과 시간에 따라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달라지듯이, 태어날 때 몸에 새겨진 시간성은 무의식 차원에서 평생의 컨디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겨울밤에 태어난 사람과 여름 한낮에 태어난 사람의 성향 차이는 두 시간의 온도와 분위기, 즉 겨울밤의 아늑하고 고요함과 여름 대낮의 양적인 열기의 차이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이 시간적 차이들이 바로 삶의 차이가 된다. 따라서 사주명리를 통하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기운을 쓰면서 사는지 그 각각의 차이들을 알 수 있다.
P.190 : 우리는 흔히 ‘습’(習)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습’은 한자로 ‘날개 우(羽)’자와 ‘흰 백(白)’자가 합쳐진 글자다. 여기엔 새가 날기 위해 날갯짓을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금 내가 가진 습은 과거 수천, 수백 번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게다. 반대로 지금의 이 누드 글쓰기는 그 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습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부디 그것이 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길 기원한다.
- 저자 : 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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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류시성
최근작 : |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 … 총 3종 (모두보기) |
소개 : | 지리산 자락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 집이 목장을 한 덕분에 나도 소들과 함께 ‘방목’되었다. 그 영향으로 20대 내내 집밖을 떠돌았다. 알바하고 술 마시고 여행했다. 뭘 얻었냐고? 병과 무지! 그럼 지금은? 내 병은 손수 고치려고 <감이당>에서 사람들과 한의학을 공부하고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양고전을 읽는다. 같이 지은 책으로 『갑자서당:사주명리 한자교실』이 있다. |
- 저자 : 손영달
최근작 : |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 … 총 3종 (모두보기) |
소개 : | “올해부터 공부운이 들어와요. 이십 년쯤 쭉 공부를 하시겠네요.” 사주 보러 가서 들은 이 말을 나는 믿어 버렸고, 그 길로 연구실에 눌러 앉았다. 학벌도 지력도 재산도 없던 내게, “나는 학자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을 가지게 만든 사주의 힘이란! 그 놀라운 매력에 끌려 아예 사주를 공부하게 되고, 15년은 족히 되는 남은 공부복을 여실히 누려보는 게 내 인생의 목표다. 같이 지은 책으로 『갑자서당:사주명리 한자교실』이 있다. |
- 저자 : 김동철
최근작 : |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 총 2종 (모두보기) |
소개 : | 2009년 백수가 된 인연으로 ‘수유+너머’ 연구실 백수케포이에 합류했다. 그때부터 한의학과 사주명리학을 근간으로 우주의 리듬을 일상의 윤리로 전환하는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감이당>에서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으며, 누구나 자기윤리를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
- 저자 : 수경
최근작 : | <비참함으로부터 탄생한 위대한 벽화 레 미제라블>,<인물 톡톡>,<고전 톡톡 : 고전, 톡하면 통한다> … 총 5종 (모두보기) |
소개 : |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남산강학원 Q&A〉 연구원이다. 대학에서는 강의실보다 학보사실에 더 오래 있었고, 덕분에 전공 공부는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하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만 2년 동안 재직했고, 지금도 연구실 안에서 가능한 십대 인문학을 기획, 시도 중이다. 도스또옙스끼와 마르께스, 위고 등 아주 많은 작가들과 매번 사랑에 빠지고, 그 덕분에 글 쓰고 강의하며 먹고 산다. 같이 쓴 책으로 <고전 톡톡>, <인물 톡톡>,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가 있다. |
- 저자 : 안도균
최근작 : |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 총 2종 (모두보기) |
소개 : | <감이당> 연구원. 연구실에서는 ‘도담’이라고 불린다. ‘인문의역학’을 공부하면서 강의도 하고 글도 쓴다. 이 배움을 통해 나의 부산했던 여러 공부들이 이제야 순환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감이당>을 시작하면서 훌륭한 스승과 도반을 만났고, 글쓰기라는 출구도 찾았다. 이제 길 위에 막 나섰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걸어가는 일만 남았다. 같이 지은 책으로 『고전 톡톡』이 있다. |
“글쓰기가 너를 살리리니, 이제 번뇌의 ‘사주’ 커밍아웃이 시작된다!”
―사주명리와 글쓰기의 조합, 신개념 치유법의 탄생 ‘누드 글쓰기’!
“아이고, 내 팔자야!!”
외마디 외침으로 시작되는 팔자타령. 내 인생은 도대체 왜 남들 다하는 것, 남들 다 가진 것, 남들에게 당연한 것과 별도로 굴러가는지, 이 꼬인 인생에 과연 해답은 없는 건지. 어느 어느 산에서 수련을 하고 왔다는 도사님을 찾아도, 서가에 가득한 심리학책을 열독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프다. 아프고 또 괴롭다. 아픔과 괴로움, 둘은 아주 종종 겹쳐진다. 암은 감기만큼 흔한 돌림병이 되었고, 자폐증과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은 숫제 스펙이 될 지경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괴로우니 몸이 더욱 아프다. …… 사랑이 깨지고 가족이 무너지고 친구와 이웃이 사라져도, 그래서 고독과 불안에 떨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정신분석가 혹은 심리치료사에게 맡겨 버린다. 그럴수록 삶과 존재의 간극은 커져만 간다.”(고미숙, 「글쓰기의 존재론』,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9쪽)
미신 내지는 거리에 즐비한 사주카페로 소비되는 ‘사주팔자’를 가지고 무려 ‘자기구원’을 모토로 사주 글쓰기를 시도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이하 『누드 글쓰기』)가 나오게 된 이유다. 『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에 이어 두번째로 선보이는 출판사 ‘북드라망’의 신개념 사주명리 글쓰기책, 『누드 글쓰기』는 사주명리학과 인문의역학을 기반으로 자기구원으로서의 앎과 공부를 위해 함께 공부하는 연구집단인 <감이당>에서 진행된 일종의 ‘자기이해&비전탐구 프로젝트’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필두로 한의학과 명리학을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 사이에서 ‘누드 글쓰기’라고 하는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이 ‘치유로서의 글쓰기’는 자기 삶의 풀리지 않는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내는 실천적 수단이 되었다.
‘이야기’가 되는 순간, 상처는 사라진다―자기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산다는 것은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가 살아온 날을 해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만다. 자기가 어디에 어떻게 왜 서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우스개로, 노래가사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말을 자주 흥얼거린다. 그런데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이 숫제 스펙이 된” 그 언젠가부터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며 인도로 떠나 보기도 하고, 상처받은 기억을 꽁꽁 안고서 매일같이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큰소리가 끊이질 않던 집안, 빚이 턱까지 차오르는 참혹한 집안경제…… 그 모든 게 소위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 수년, 혹은 수십 년 전의 상처를 떠올려도 그 시공간의 자장...
―사주명리와 글쓰기의 조합, 신개념 치유법의 탄생 ‘누드 글쓰기’!
“아이고, 내 팔자야!!”
외마디 외침으로 시작되는 팔자타령. 내 인생은 도대체 왜 남들 다하는 것, 남들 다 가진 것, 남들에게 당연한 것과 별도로 굴러가는지, 이 꼬인 인생에 과연 해답은 없는 건지. 어느 어느 산에서 수련을 하고 왔다는 도사님을 찾아도, 서가에 가득한 심리학책을 열독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프다. 아프고 또 괴롭다. 아픔과 괴로움, 둘은 아주 종종 겹쳐진다. 암은 감기만큼 흔한 돌림병이 되었고, 자폐증과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은 숫제 스펙이 될 지경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괴로우니 몸이 더욱 아프다. …… 사랑이 깨지고 가족이 무너지고 친구와 이웃이 사라져도, 그래서 고독과 불안에 떨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정신분석가 혹은 심리치료사에게 맡겨 버린다. 그럴수록 삶과 존재의 간극은 커져만 간다.”(고미숙, 「글쓰기의 존재론』,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9쪽)
미신 내지는 거리에 즐비한 사주카페로 소비되는 ‘사주팔자’를 가지고 무려 ‘자기구원’을 모토로 사주 글쓰기를 시도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이하 『누드 글쓰기』)가 나오게 된 이유다. 『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에 이어 두번째로 선보이는 출판사 ‘북드라망’의 신개념 사주명리 글쓰기책, 『누드 글쓰기』는 사주명리학과 인문의역학을 기반으로 자기구원으로서의 앎과 공부를 위해 함께 공부하는 연구집단인 <감이당>에서 진행된 일종의 ‘자기이해&비전탐구 프로젝트’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필두로 한의학과 명리학을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 사이에서 ‘누드 글쓰기’라고 하는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이 ‘치유로서의 글쓰기’는 자기 삶의 풀리지 않는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내는 실천적 수단이 되었다.
‘이야기’가 되는 순간, 상처는 사라진다―자기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산다는 것은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가 살아온 날을 해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만다. 자기가 어디에 어떻게 왜 서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우스개로, 노래가사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말을 자주 흥얼거린다. 그런데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이 숫제 스펙이 된” 그 언젠가부터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며 인도로 떠나 보기도 하고, 상처받은 기억을 꽁꽁 안고서 매일같이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큰소리가 끊이질 않던 집안, 빚이 턱까지 차오르는 참혹한 집안경제…… 그 모든 게 소위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 수년, 혹은 수십 년 전의 상처를 떠올려도 그 시공간의 자장...
“글쓰기가 너를 살리리니, 이제 번뇌의 ‘사주’ 커밍아웃이 시작된다!”
―사주명리와 글쓰기의 조합, 신개념 치유법의 탄생 ‘누드 글쓰기’!
“아이고, 내 팔자야!!”
외마디 외침으로 시작되는 팔자타령. 내 인생은 도대체 왜 남들 다하는 것, 남들 다 가진 것, 남들에게 당연한 것과 별도로 굴러가는지, 이 꼬인 인생에 과연 해답은 없는 건지. 어느 어느 산에서 수련을 하고 왔다는 도사님을 찾아도, 서가에 가득한 심리학책을 열독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프다. 아프고 또 괴롭다. 아픔과 괴로움, 둘은 아주 종종 겹쳐진다. 암은 감기만큼 흔한 돌림병이 되었고, 자폐증과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은 숫제 스펙이 될 지경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괴로우니 몸이 더욱 아프다. …… 사랑이 깨지고 가족이 무너지고 친구와 이웃이 사라져도, 그래서 고독과 불안에 떨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정신분석가 혹은 심리치료사에게 맡겨 버린다. 그럴수록 삶과 존재의 간극은 커져만 간다.”(고미숙, 「글쓰기의 존재론』,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9쪽)
미신 내지는 거리에 즐비한 사주카페로 소비되는 ‘사주팔자’를 가지고 무려 ‘자기구원’을 모토로 사주 글쓰기를 시도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이하 『누드 글쓰기』)가 나오게 된 이유다. 『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에 이어 두번째로 선보이는 출판사 ‘북드라망’의 신개념 사주명리 글쓰기책, 『누드 글쓰기』는 사주명리학과 인문의역학을 기반으로 자기구원으로서의 앎과 공부를 위해 함께 공부하는 연구집단인 <감이당>에서 진행된 일종의 ‘자기이해&비전탐구 프로젝트’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필두로 한의학과 명리학을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 사이에서 ‘누드 글쓰기’라고 하는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이 ‘치유로서의 글쓰기’는 자기 삶의 풀리지 않는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내는 실천적 수단이 되었다.
‘이야기’가 되는 순간, 상처는 사라진다―자기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산다는 것은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가 살아온 날을 해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만다. 자기가 어디에 어떻게 왜 서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우스개로, 노래가사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말을 자주 흥얼거린다. 그런데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이 숫제 스펙이 된” 그 언젠가부터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며 인도로 떠나 보기도 하고, 상처받은 기억을 꽁꽁 안고서 매일같이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큰소리가 끊이질 않던 집안, 빚이 턱까지 차오르는 참혹한 집안경제…… 그 모든 게 소위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 수년, 혹은 수십 년 전의 상처를 떠올려도 그 시공간의 자장이 그대로 따라와 지금의 자신을 뒤흔든다. 누구에게 말하자니 나의 자의식이 허락하질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 그대로 담아 두고만 있기에는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든다.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햇볕에 널어 말리는 과정이라고 역설했다. 보물도 아닌데 애지중지 싸매고 품고 있다가 다 썩어 냄새피우지 않게, 비밀도 상처도 적당한 때 바깥에 꺼내 말리라고. 자기 이야기를 글로 만들고 나면 그때 그 글은 더 이상 자기만의 과거가 되지 않는다.”(수경,「공동체, 인생역전 프로그램』,156쪽)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은 생채기 가득한 자신의 과거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앎’은 그 거리에서 발생한다. 나를 떠나 나를 보는 것―그럼으로 볼 수 있게 되고, 알 수 있게 되고, 배울 수 있게 된다. 상처를 품고 있지 말고 내놓으라는 것은 “그게 뭐 상처씩이나 되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라”는 말과는 다르다. 상처에서 배움이 일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 그리고 그 배움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로 이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아무려나 우리는 살아 있기 위해서, 그리고 기왕이면 ‘잘’ 살아 있기 위해 존재하므로,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번뇌를 세상에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곧 실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사주분석 글쓰기는 그들을 어떻게 바꿨나?―누드 글쓰기 사용법
▶누드 글쓰기 4인방의 꽤 이상하고 재밌는 인생 사주풀이 이야기
‘누드’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 과다 4인방에게 이 글은 특별하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호적이 말소되고, 나병환자들에 의해 길러지고 일하러 가는 곳마다 망하기 일쑤에 결국 할머니와 화전을 일구던 ‘비겁과다’의 주인공 손영달은 자기도 모르게 외면하려고만 했던 삶의 응달을 직시할 수 있었다며 다른 이들에게도 기꺼이 ‘누드 글쓰기’를 권한다. 돈(재성)이 많기는 많은데 자기 돈이 아닌 돈들의 덮침을 주로 당하는 ‘재성과다’의 주인공 류시성은 사주는 사람을 이해하는 척도를 하나 더 갖게 되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살면서 지금껏 한 번도 이해해 보려 하지 않았던 부모님을, 이제야 비로소 사주분석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 ‘식상과다’인 수경은 본래 말 많고 일을 잘 벌이는 것을 특징으로 한 식상과다임에도 그중 하필이면 오행 중 토[土:매개,중화,덮어둠,고집]의 기운이 많아 오히려 말수가 적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친구들은, 네가 아무래도 AB형이라 신비주의구나 뭐든지 비밀이구나 했었는데, 이제 보니 토(土)가 이리 많아서 그런 거”였다며 뒤늦은 깨달음을 밝혔다. ‘관성과다’는 또 어떤가. 인정욕망이 과도한 이 경우, 사회적 관계에서 늘 삐걱거리기 일쑤. 유치원부터 중퇴를 한 김동철은 사람들과의 일상적 대화인 수다가 제일 어렵다며 그 이유를 “명예에 티끌만 한 손상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긴장이 체질화되어 있는” 관성과다의 특징 탓이라 분석한다.
과다란? 개개인의 사주팔자에서 오행(五行) 또는 육친(六親)이 한자리에 지나치게 편중된 상태를 말한다. 『누드 글쓰기』의 필자들의 경우, 각각 자신이나 경쟁자에 해당하는 비겁, 재물에 해당하는 재성, 말과 음식에 해당하는 식상, 자기를 극하는 기운에 해당하는 관성이 특별히 많은 ‘과다’형 인물들이다. 자세한 설명은 본 책 32쪽부터 57쪽, 「사주명리학 개요:운명의 열쇠를 찾아서』를 참고.
▶만인에게 누드 글쓰기를 권함
『동의보감』과 함께 의역학 공부를 시작한 고미숙은, 의역학을 만난 후에는 모든 공부가 (훨씬 더!) 재밌어졌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공부가 너무 많아졌다고 말한다. 사주명리학(의역학)이란 결국 외부의 의견과 관계 맺는 방식에 새로운 요소(시각)를 도입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우리의 지식의 장(場)까지도 해체하고 재배치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주라고 하면 “언제 결혼할 수 있을까요?”, “저 취직은 언제쯤…” 등의 인식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말이 나오면 한없이 맹신하고, 또 한편에서는 ‘미신’일 뿐이라며 오컬트로 취급한다. 사주명리학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다. 두 손을 모아 “도사님!”을 부르짖으며 소위 ‘부적빨’ 좀 받아 보자는 마음 하나, 그런 과학적이지도 않은 걸로 무엇이 되겠느냐며 대놓고 무시하는 마음 하나. 사주를 대하는 사람들의 그런 상반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의 바람은 같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 나아지고 싶다!’
“흔히 자기 사주에 좋은 운이 얼마나 있는지 혹은 좋은 운은 언제 들어오는지 관심이 많다.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적으로 돈이 언제 들어오는지, 애인은 언제 생기고 건강은 어떤지를 묻는 것은 자기 운명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결과로 이어지는 촘촘한 원인망을 살피고 주어진 결과를 몸으로 수용하는 일이다.”(안도균, 「사주명리학 개요:운명의 열쇠를 찾아서』, 37쪽)
우리 스스로가 운명을 살피는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칭찬 없이 인정 없이도 자신의 운명을,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사주명리학과 치유로서의 누드 글쓰기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운을 열어드립니다―개운은 셀프, 사주팔자도 셀프
사주팔자를 따질 때 크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가 10년 주기로 변하는 대운(大運)과 세운(歲運)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지만 놀랍게도 우리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운(運)’이 있다. 관건은, 그 운을 어떻게 여느냐(開運), 그 운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 하는 자신의 의지와 행위에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것, 어떻게 삶의 방향을 가지고 갈 것이냐 하는 것! 우리가 세상에 나면서 첫 숨을 쉬는 순간 이미 운명의 바코드는 우리의 이마에 고스란히 박혔다(사주팔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므로 어떻게 살 것인지 우리는 결정하고, 살아가면 된다. 무작위 집단에게 자기가 과연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며 안달하며 자의식과 씨름하며 내내 팔자 탓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팔자를 긍정한 연후에 그 여덟 개의 카드(八字)를 가지고 어떻게 내 ‘명’을 돌릴지[運命] 탐구하고 궁리하며 살아갈 것인가.
자기 몸(과 마음)은 모름지기 셀프로 구하는 게 정답이라며 『누드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사주명리학을 권하는 이 사람들, 이들과의 만남은 분명 당신의 삶을 바꿀 것이다. 당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존재의미이고 누드 글쓰기의 미션이다. 우리 자신을 보자, 그리고 쓰자!
―사주명리와 글쓰기의 조합, 신개념 치유법의 탄생 ‘누드 글쓰기’!
“아이고, 내 팔자야!!”
외마디 외침으로 시작되는 팔자타령. 내 인생은 도대체 왜 남들 다하는 것, 남들 다 가진 것, 남들에게 당연한 것과 별도로 굴러가는지, 이 꼬인 인생에 과연 해답은 없는 건지. 어느 어느 산에서 수련을 하고 왔다는 도사님을 찾아도, 서가에 가득한 심리학책을 열독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프다. 아프고 또 괴롭다. 아픔과 괴로움, 둘은 아주 종종 겹쳐진다. 암은 감기만큼 흔한 돌림병이 되었고, 자폐증과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은 숫제 스펙이 될 지경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괴로우니 몸이 더욱 아프다. …… 사랑이 깨지고 가족이 무너지고 친구와 이웃이 사라져도, 그래서 고독과 불안에 떨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정신분석가 혹은 심리치료사에게 맡겨 버린다. 그럴수록 삶과 존재의 간극은 커져만 간다.”(고미숙, 「글쓰기의 존재론』,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9쪽)
미신 내지는 거리에 즐비한 사주카페로 소비되는 ‘사주팔자’를 가지고 무려 ‘자기구원’을 모토로 사주 글쓰기를 시도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이하 『누드 글쓰기』)가 나오게 된 이유다. 『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에 이어 두번째로 선보이는 출판사 ‘북드라망’의 신개념 사주명리 글쓰기책, 『누드 글쓰기』는 사주명리학과 인문의역학을 기반으로 자기구원으로서의 앎과 공부를 위해 함께 공부하는 연구집단인 <감이당>에서 진행된 일종의 ‘자기이해&비전탐구 프로젝트’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필두로 한의학과 명리학을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 사이에서 ‘누드 글쓰기’라고 하는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이 ‘치유로서의 글쓰기’는 자기 삶의 풀리지 않는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내는 실천적 수단이 되었다.
‘이야기’가 되는 순간, 상처는 사라진다―자기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산다는 것은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가 살아온 날을 해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만다. 자기가 어디에 어떻게 왜 서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우스개로, 노래가사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말을 자주 흥얼거린다. 그런데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이 숫제 스펙이 된” 그 언젠가부터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며 인도로 떠나 보기도 하고, 상처받은 기억을 꽁꽁 안고서 매일같이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큰소리가 끊이질 않던 집안, 빚이 턱까지 차오르는 참혹한 집안경제…… 그 모든 게 소위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 수년, 혹은 수십 년 전의 상처를 떠올려도 그 시공간의 자장이 그대로 따라와 지금의 자신을 뒤흔든다. 누구에게 말하자니 나의 자의식이 허락하질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 그대로 담아 두고만 있기에는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든다.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햇볕에 널어 말리는 과정이라고 역설했다. 보물도 아닌데 애지중지 싸매고 품고 있다가 다 썩어 냄새피우지 않게, 비밀도 상처도 적당한 때 바깥에 꺼내 말리라고. 자기 이야기를 글로 만들고 나면 그때 그 글은 더 이상 자기만의 과거가 되지 않는다.”(수경,「공동체, 인생역전 프로그램』,156쪽)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은 생채기 가득한 자신의 과거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앎’은 그 거리에서 발생한다. 나를 떠나 나를 보는 것―그럼으로 볼 수 있게 되고, 알 수 있게 되고, 배울 수 있게 된다. 상처를 품고 있지 말고 내놓으라는 것은 “그게 뭐 상처씩이나 되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라”는 말과는 다르다. 상처에서 배움이 일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 그리고 그 배움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로 이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아무려나 우리는 살아 있기 위해서, 그리고 기왕이면 ‘잘’ 살아 있기 위해 존재하므로,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번뇌를 세상에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곧 실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사주분석 글쓰기는 그들을 어떻게 바꿨나?―누드 글쓰기 사용법
▶누드 글쓰기 4인방의 꽤 이상하고 재밌는 인생 사주풀이 이야기
‘누드’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 과다 4인방에게 이 글은 특별하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호적이 말소되고, 나병환자들에 의해 길러지고 일하러 가는 곳마다 망하기 일쑤에 결국 할머니와 화전을 일구던 ‘비겁과다’의 주인공 손영달은 자기도 모르게 외면하려고만 했던 삶의 응달을 직시할 수 있었다며 다른 이들에게도 기꺼이 ‘누드 글쓰기’를 권한다. 돈(재성)이 많기는 많은데 자기 돈이 아닌 돈들의 덮침을 주로 당하는 ‘재성과다’의 주인공 류시성은 사주는 사람을 이해하는 척도를 하나 더 갖게 되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살면서 지금껏 한 번도 이해해 보려 하지 않았던 부모님을, 이제야 비로소 사주분석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 ‘식상과다’인 수경은 본래 말 많고 일을 잘 벌이는 것을 특징으로 한 식상과다임에도 그중 하필이면 오행 중 토[土:매개,중화,덮어둠,고집]의 기운이 많아 오히려 말수가 적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 친구들은, 네가 아무래도 AB형이라 신비주의구나 뭐든지 비밀이구나 했었는데, 이제 보니 토(土)가 이리 많아서 그런 거”였다며 뒤늦은 깨달음을 밝혔다. ‘관성과다’는 또 어떤가. 인정욕망이 과도한 이 경우, 사회적 관계에서 늘 삐걱거리기 일쑤. 유치원부터 중퇴를 한 김동철은 사람들과의 일상적 대화인 수다가 제일 어렵다며 그 이유를 “명예에 티끌만 한 손상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긴장이 체질화되어 있는” 관성과다의 특징 탓이라 분석한다.
과다란? 개개인의 사주팔자에서 오행(五行) 또는 육친(六親)이 한자리에 지나치게 편중된 상태를 말한다. 『누드 글쓰기』의 필자들의 경우, 각각 자신이나 경쟁자에 해당하는 비겁, 재물에 해당하는 재성, 말과 음식에 해당하는 식상, 자기를 극하는 기운에 해당하는 관성이 특별히 많은 ‘과다’형 인물들이다. 자세한 설명은 본 책 32쪽부터 57쪽, 「사주명리학 개요:운명의 열쇠를 찾아서』를 참고.
▶만인에게 누드 글쓰기를 권함
『동의보감』과 함께 의역학 공부를 시작한 고미숙은, 의역학을 만난 후에는 모든 공부가 (훨씬 더!) 재밌어졌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공부가 너무 많아졌다고 말한다. 사주명리학(의역학)이란 결국 외부의 의견과 관계 맺는 방식에 새로운 요소(시각)를 도입하는 것뿐 아니라 기존 우리의 지식의 장(場)까지도 해체하고 재배치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주라고 하면 “언제 결혼할 수 있을까요?”, “저 취직은 언제쯤…” 등의 인식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좋은 말이 나오면 한없이 맹신하고, 또 한편에서는 ‘미신’일 뿐이라며 오컬트로 취급한다. 사주명리학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다. 두 손을 모아 “도사님!”을 부르짖으며 소위 ‘부적빨’ 좀 받아 보자는 마음 하나, 그런 과학적이지도 않은 걸로 무엇이 되겠느냐며 대놓고 무시하는 마음 하나. 사주를 대하는 사람들의 그런 상반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의 바람은 같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 나아지고 싶다!’
“흔히 자기 사주에 좋은 운이 얼마나 있는지 혹은 좋은 운은 언제 들어오는지 관심이 많다.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적으로 돈이 언제 들어오는지, 애인은 언제 생기고 건강은 어떤지를 묻는 것은 자기 운명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결과로 이어지는 촘촘한 원인망을 살피고 주어진 결과를 몸으로 수용하는 일이다.”(안도균, 「사주명리학 개요:운명의 열쇠를 찾아서』, 37쪽)
우리 스스로가 운명을 살피는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칭찬 없이 인정 없이도 자신의 운명을,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사주명리학과 치유로서의 누드 글쓰기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운을 열어드립니다―개운은 셀프, 사주팔자도 셀프
사주팔자를 따질 때 크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가 10년 주기로 변하는 대운(大運)과 세운(歲運)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지만 놀랍게도 우리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운(運)’이 있다. 관건은, 그 운을 어떻게 여느냐(開運), 그 운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 하는 자신의 의지와 행위에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것, 어떻게 삶의 방향을 가지고 갈 것이냐 하는 것! 우리가 세상에 나면서 첫 숨을 쉬는 순간 이미 운명의 바코드는 우리의 이마에 고스란히 박혔다(사주팔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므로 어떻게 살 것인지 우리는 결정하고, 살아가면 된다. 무작위 집단에게 자기가 과연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며 안달하며 자의식과 씨름하며 내내 팔자 탓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팔자를 긍정한 연후에 그 여덟 개의 카드(八字)를 가지고 어떻게 내 ‘명’을 돌릴지[運命] 탐구하고 궁리하며 살아갈 것인가.
자기 몸(과 마음)은 모름지기 셀프로 구하는 게 정답이라며 『누드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사주명리학을 권하는 이 사람들, 이들과의 만남은 분명 당신의 삶을 바꿀 것이다. 당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존재의미이고 누드 글쓰기의 미션이다. 우리 자신을 보자, 그리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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