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씨(52)에게는 좀 억울한 게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창조는 편집이다!”고 주장하며 잡스의 탁월한 능력이 바로 기존의 것을 탁월하게 조합하는 능력이라 말해 왔다. 그런데 맬컴 글래드웰이 “편집이야말로 스티브 잡스식 창조성의 핵심”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하고 난 뒤에야 그의 ‘구라’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명지대 교수 자리를 내던지고 일본으로 홀연히 건너가 교토사가예술대에서 일본화를 배우고 있는 그가 2년8개월 만에 신작을 냈다. 바로 이 억울함을 책으로 풀어낸 ‘에디톨로지’(21세기북스)다. 담당교수에게 “물감값을 벌려면 한국에서 책을 팔고 와야 한다”고 말하고 학기 중에 잠시 방한한 그를 지난달 29일 매일경제신문에서 만났다. 에디톨로지, 편집학(編輯學)이라니. 왜 이런 사전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낸 걸까.
그는 6년 전 와세다대학에 갔을 때 일본이 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세계 2위 대국이 됐나 곰곰이 궁리했다. 그의 생각을 깨운 건 두 학자다. 가리타니 고진은 일본 문화를 “모든 문화가 저수지의 물처럼 밀려와 고인다”는 ‘저수지 문화’로 설명했다. 마쓰오카 세이코는 일본을 “세계의 모든 좋은 것을 모아놓는 ‘편집국가’”라고 정의했다. 그는 무릎을 쳤다. ‘아! 해 아래 새로운 건 없으니, 창조는 곧 편집이구나.’
그는 “지금까지 내가 쓴 책 중에 가장 진지하게 몰입한 책”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3년간 혼자 있으면서 교토 외곽 시골학교에서 아들보다 어린 학생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해가 지면 걸어서 돌아와 밥을 해먹고, 빨래하는 쓸쓸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그 시간 덕분에 자신의 삶의 ‘맥락’을 바꾸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
“새로운 정서적 경험을 하세요. 남들과 다른 걸 하려면 삶의 ‘맥락’을 바꿔야 합니다. 쳇바퀴 같은 환경에서는 다른 생각이 가능할 수 없죠. 우중충한 아저씨들이 똑같은 아파트에 살고 똑같은 양복을 입고서 ‘창조경제’가 가능하겠어요? 어림도 없죠. 창조경제는 경제학이 아니라 미학입니다. 나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줘야죠.”
그는 창조적인 사람들을 쭉 훑어보면 외로운 정신병자, 근대에 억눌린 사람, 심지어 변태성욕자들이라고 했다. 남과 다른 정서적 경험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편집(창조)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 “그동안 ‘재미있는 삶을 살자’고 주장해 왔어요. 재미는 창조의 본질이죠. 창조의 방법은 편집입니다. 저는 이제 ‘선택과 집중’을 하지 말고 ‘선택과 편집’을 하라고 말합니다.
”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그는 비빔밥과 덮밥에 비유한다. “일본의 덮밥은 떠 먹지만 우리는 죽어도 비벼 먹죠. 한국 사회가 이룩한 성공의 동력이 바로 이 끊임없이 잡아당겨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내는 편집 능력에 있다고 봅니다. 거기서 온 창조의 동력이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