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골프 대중화 ‘뻬비 골프’

 
 

[골프다이제스트=인혜정 기자]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골프가 고관, 귀족, 부호 등 지배 계층과 상류사회에 퍼져 있었다면, 1930년대 초반부터 일반인들 사이에서 뻬비 골프가 새로운 놀이 문화로 인기를 모았다. 최초로 여성 골퍼가 등장하는가 하면 한복 입고 하이힐 신은 여성 골퍼의 모습도 보이며 골프 대중화의 시작을 알렸다. 한국 골프사를 연구하는 조상우 호서대 골프학과 교수가 뻬비 골프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뻬비 골프의 정식 명칭은 베이비 골프(Baby Golf)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발음 때문에 뻬비 골프로 불렸던 것. 다양한 모양의 9홀이나 18홀에서 퍼터만 사용해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골프의 본고장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조선에서는 매일신보 1931년 4월 8일과 11일자를 통해 베이비 골프가 처음 소개됐다. 이 기사에는 18홀에 이용료는 30전이란 정보와 골프장 전경, 플레이하는 모습만 살펴볼 수 있을 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1년 뒤 발행된 동아일보 기사(1932년 7월 15일)에 따르면 경성에 일본인이 만든 베이비 골프장 두 군데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조선 최초의 베이비 골프장은 경성에서 일본인에 의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1932년 6월 4일, 경성 용산에도 베이비 골프장이 개장했다. 공공 기관이었던 용산철도국 구내에 만들어졌고 일반인 15전, 직원 10전으로 경성 사설 베이비 골프장보다 저렴하게 이용했다.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오늘날 골프의 야간 경기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인천의 월미도와 화적 지역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2개소의 베이비 골프장, 상인천역(현재 인천역) 앞에 최초로 조선인이 경영하는 베이비 골프장도 생겼다. 연이어 1932년 7월 9일 경성 인사동 태화여자관(현재 태화복지재단 건물) 건너편에 150평 규모로 서기복 씨가, 전주수비대터 광장의 300여 평에 조성하 씨가 베이비 골프장을 만들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대회까지 열렸다. 경성 인사동에서 1932년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최초의 대회가 개최됐다. 이후 10월 9일 용산철도국에서, 1933년 7월 13일 조선중앙일보의 후원을 받아 상인천역 앞에서 대회가 열렸다.
퍼터 하나로 경기해 배우기 쉽고 저렴한 이용료에 경기장도 시내에 위치해 여가 시설이 부족했던 당시 새로운 놀이 문화로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또 남녀가 같이 즐길 수 있어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많았다. 대중오락의 역할과 더불어 제한돼 있던 여성의 스포츠 참여에도 크게 기여했다.
베이비 골프는 안타깝게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에 이르는 2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식민 사회의 통제, 광복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회 기반 시설의 파괴가 그 원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53년 7월, ‘베비·골프’라는 조병화 시인의 시 한 편이 소개되면서 한국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베이비 골프가 다시 등장했다. 이 시가 신문이 발행되던 당시에 쓰인 것인지 그 이전에 쓰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시 구절에는 여성들의 경기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경기 규칙과 방법은 물론 심리적인 장면까지도 글로 묘사하고 있어 시인도 베이비 골프를 즐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베비•골프
귀부인들이 파라솔을 접고
벤취에 얼킨 그늘에 모인다.
손에 손마다 하얀 역사 위에 물거품 치는 탄산
때마침 바다에 뜬 구름은 먼 먼 여객선
짧은 스테키를 나는 집고 푸른 육지
인간들의 틈으로 공을 굴린다.
오오… 운명과 요행
생과 사를 연결하는 한 직선이 있다.
구름은 뭉게뭉게 바다는 수녹색
짧은 스테키를 짚고 인생의 동굴을 향하여 공을 굴린다.
운명과 요행에 걸려
온 종일 나는 나에 기대고.
_송도 골프장에서, 조병화

베이비 골프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잘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오락, 놀이와 같은 게임에서 스포츠로, 다시 문학의 주제로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 전반에 넓게 퍼져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전쟁 이후, 동아일보 1956년 8월 28일 자 ‘오락만능 베비•골프 : 우맨•골프의 정평’이라는 기사에서 베이비 골프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꼬불꼬불한 고개를 넘어 아슬아슬한 코스에 볼을 굴리며 세상을 잊고, 코스를 통과하면 인생에 성공한 듯 쾌감을 느끼며,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이는 재미가 있다.
▶ 1인당 100환씩 내고 골프채와 골프공, 그리고 점수 용지를 받아 15내지 20개의 전
코스를 차례로….
▶ 젊은 남녀의 교제 과정에서 한두 번 이상은 베이비 골프를 하는 것이 관례가 돼 남성이나
여성의 성격과 재능을 관찰하기에 편리하다.

[골프다이제스트 인혜정 기자 ihj@golfdig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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