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5.0'

  •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 입력 : 2012.10.15 23:31

    기업 이익 1.0 사회적 책임 2.0… 3.0은 복지 추구 4.0은 탐욕 규제…
    전환기 등장 5.0 '공유 가치 창출' 기업·사회 가치의 동시 구현 전략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기업 경영자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추가해야 할 이슈가 새롭게 등장했다. 그것은 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를 경영자가 이해하고 기업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성장은 물론이고 존립 자체가 위험한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1970년 미국 시카고대 교수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기업이익 중심의 '자본주의 1.0'은 1990년 기업에 다양한 모습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버지니아대 교수 에드워드 프리먼의 '자본주의 2.0'으로부터 도전받았다. 프리먼에 의하면 기업은 사회적 권한을 가진 만큼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1998년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 앤서니 기든스가 주창한 '제3의 길(The Third Way)'이 등장했다. 그 내용은 진보 진영에서 추구하는 복지사회를 보수 진영에서 추구하는 시장자본주의로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3.0'으로 명명된 이 주장은 '천사의 모습을 가진 자본주의'로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뉴라이트 운동을 비롯해서 보수 성향의 NGO들이 이 취지에 찬동했고, 이명박 정부도 이 노선을 채택했다.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속에서 금융권 지배 세력에 불만을 품은 군중이 벌인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은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이들은 '자본주의 3.0'이 천사의 모습을 한 악인(惡人)들의 포장술에 불과하였다고 주장하며, 시장 논리에 근거하여 고삐가 풀어졌던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대기업의 탐욕을 억제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아나톨 칼레츠기가 '자본주의 4.0'이란 책에서 갈파한 것처럼, 사회는 대기업이 마지못해 동냥같이 제공하는 책임으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요원의 불길처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던 이 운동은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개발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지만, 이제 지구촌은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자유라는 명분으로 평등을 가로막지 못한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갖게 되었다.

    이런 세계적인 전환기에 나타난 새로운 움직임이 '공유 가치 창출'이다. 이 운동은 기업이 천사의 모습만 보이지 말고 '천사의 마음을 가진 자본주의'로 사회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업 기회 중에는 기업 가치와 사회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있다는 전제하에 두 가치를 동시에 증진하는 것이 이 주장이 추구하는 핵심이다. 이미 피터 드러커는 '인간 중심 자본주의'라는 이상사회를 제시하면서 "오늘날 사회적이고 세계적인 모든 이슈는 숨겨진 사업 기회이다"라는 표현으로 공유가치 창출 시대가 도래하리라고 예견했었다. 이렇듯 공유 가치 창출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5.0'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까지 나타난 다섯 가지 자본주의 유형을 오른쪽에 시장지배, 왼쪽에 정부지배를 나타내는 수평선 위에 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시장의 능력을 믿는 '자본주의 1.0'은 오른쪽 끝에, 정부의 능력을 믿는 '자본주의 2.0'은 왼쪽 끝에 놓인다. 그다음으로 '자본주의 3.0'은 중간과 오른쪽 끝 사이에, '자본주의 4.0'은 중간과 왼쪽 끝 사이에 놓여 완화된 모습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공유가치 창조를 주장하는 '자본주의 5.0'은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경영자는 이 위치에서 시장과 정부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면서, 기업과 사회 간의 조화로운 협력관계를 이끌어가게 된다. 이제 미래를 지향하는 경영자라면 기업 가치와 사회 가치를 동시에 구현하는 공유 가치 창출을 핵심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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