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데이의 추억,그러나 그 옛날  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 날은 11월 11일뿐 빼빼로 데이는 아니었다.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충남 아산에서 다녔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육상운동하다가 전국체전에서 탈락한후  그만두고, 서울로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자취도 하고 하숙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1차 불합격되었고 2차 발표하는 날(72년)의 해프닝이다.수험번호가 1111번이었는데, 게시판에 붙은 합격자 발표 게시문이 한자가 세로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키가 크지 않은 나로서는 일자가 두개만 보이고 밑에 두 일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식간에 앞의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 확인하고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그래서 명문 숭문고등학교 24회로 졸업하게 된 것이다.

 

또 한 사건은 골프라운드에서  드라마이다.89년 11월 11일이다.골프싱글끼리 한팀이 되어 스크레치 플레이를 하는데, 팽팽하게 진행되다가 5번째 파5홀에서 내가 2nd 샷에 오비를 두방 날리고 애봐(9타)를 했다.배판이었기에 지갑은 순식간에 홀쭉해졌다.그늘집에서 국수 한그룻 먹고 티그라운드에 올라와 샷하기전에 내가 동료들에게 물었다"홀인원을 한다면  어떻게 계산합니까?"하니까 수영이라는 형님이 "지갑 다 주기로 한다"라고 단호하게 말을 하였다.전홀에서 쌍오비낸 나는 말구가 되어 6번 아이언(Ping 2)을 빼 들었다.핀의 위치는 2시 방향의 후방에 위치였고 포대 그린이었으며,거리는 160m였다. 샷을 하고 공을 보는 순간 공이 일직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공이 원 바운드될 때 수영 형이" 애이~~들어 가삐러라" 하였고 ,2nd 바운드되고 세번째 바운드 순간 공이 없어지는 것 이었다. 잠시후 웨이브 준 앞 플레어들은 함성을 지르며 "홀인원"이라고 싸인을 보냈다.,뒤팀도 마찬가지로 야단 법석이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팀은 조용히 있고 처음 맛본 나는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일단 우리팀은 그린에 접근하여 확인 해보니 진짜 나의 탑플라이트 볼이 홀겁에 끼어 있었다. 캐디의 머리에 쓴 보자기를 핀앞에 펼치고 절을 하고 볼을 끄집어 냈다 .그후에는 이밴트가 진행될 뿐이다. 세 동료의 지갑은 보니 대략 금액은 약 몇백만원 될듯 싶었다.나는 이돈을 다 받아야 하는지 돌려주어야 하는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고스란이 정중하게 돌려 주었다.그러나 광식이 형은 바로 5만원씩을 캐디에게 팁을 주는 것이었다.나또한 캐디피는 그날 배로 지불하였다. 그리고 골프장 사장에게 양해를 하고 우리와 캐디 아가씨들과 저녁과 나이트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헤어질때는 서울에서 온 신사 광식형은 택시비라며 다시 그들에게 십만씩  주었다.그때 나는 30대 중반이었다.그후  10년뒤인 99년에 두번재 홀린원을 하였고 , 2000년에 세번째 ,2002년에는 네번째 하였고 한달뒤에 기념라운드를 하다가 다시 5번째 홀인원을 하였다.그래서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같은 멤버였으며 다섯번째 기념패는  우드패에 멋진 詩 한수를 쓰여저 있는 의미가 깊은 패였기에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6번째 홀인원은 강원도 도계의 블랙밸리 cc에서 2008년 8월10일 목원대학교 골프CEO과정생들과 여행중에 하였다.인원이 많은지라  바기지를 옴팍 쓰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만든 것이었다.두번째 홀인원부터의 추억의 스토리는 다음 기회에 기술할 것이며, 골프의 나의 버킷리스트는 홀인원 10회와  Age shot을 해 보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나의 스토리와 추억은 골프와 함께 만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포츠산업경경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골프심리기술의 코칭,골프마케팅, 경영학 강의등이 모두가 추억과 함께 형성되었다고 생각된다.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콘텐츠개발과 골프교육 프로그램 기획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아름답기도 하다..

 

    2014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 아침  한국골프전문인협회 교육개발원장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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