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일체유심조란?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 낸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흔히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 같은 사건을 놓고도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하다' 또는 '불행하다'라고 판단한다.

    - 인간의 고통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이란 '불만족'이다.

      어떤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하여 기대를 갖는다면 이러한 욕심과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만족을 느끼게 된다.

   * 인간관계에서 상대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가 이루어 지지 않을 때 분노가 일어나고

      이 분노가 고통을 일으킨다.

 

0.종교나 심리학에서 인간은 두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 초기불교는 본심(本心)과 망심(忘心),대승불교는 심층 마음과 표층 마음

   - 기독교에서는 잠심(潛心)과 분심(分心),   

   - 요가에서는 사트빅(맑고 고운 마음)과 타미식(무거운 마음)

  * 두 마음의 불일치와 갈등 혹은 투쟁에서 인간의 고통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

   - 전자는 본성에 가까운 마음으로 순수의식, 초월 의식, 본래 면목에 가까운 마음이고

     후자는 생리적 욕구에 가까운 마음으로 감각적 쾌락, 안락함, 안정 등이다.

 * 인간은 성장하면서 지성과 의식이 발달하여 본성에 가까운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감각적 쾌락이 발달하여 생리적 욕구와 만족을 쫓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

 

0.인간은 마음과 몸의 두 구조로 되어 있다.

  - 인간의 의식에는 마음이 지향하는 의식이 있고, 몸이 지향하는 의식이 있다.

    두 마음과 몸의 의식의 갈등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

     * 그래서 몸과 마음의 일치를 위한 가르침이 곧 수행이다.

  - 기독교 성경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한이로다"(마태복음 26장 41절) 마음과 몸의 불일치에서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 불교는 몸과 마음의 구조로 된 인간을 무아로 이해한다. 몸과 나를 나의 실체가 가 아니다. 몸도 마음도 나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일시적으로 조건의 결합으로 실재가 존재한다고 이해이다.

    * 달마와 혜가의 대화에서 보듯이 마음이 무아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0.마음과 몸의 갈등 요소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있게 마련이다.

  " 나에게 오직 세 적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손쉬운 적은 어렵지 않게 밀어붙일 수 있는 대영제국입니다.

    두 번째 적은 인도 국민으로 이는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하지만 내게 가장 만만치 않은 적은 간디라는 남자입니다"

    (간디의 자서전 중에서 마음과 몸의 갈등으로 괴로움 표현)

 

0. 마음과 몸이 일치되지 못하는 이유는?

  - 첫째 : 자신을 대상화시켜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자신을 대상화시켜서 볼 수 있는 존재이다.

    * 즉 '나는 누구냐?' '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물어야 한다.

  - 둘째 :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은 대부분 외부 세계에 시선을 두고

            시선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감각 그리고 생각에 끌려 산다. 따라서 일어나는

            느낌, 감각, 생각 등을알아차려야 자동반응하지 않고 선택적 반응을 할 수 있다.

  - 셋째 : 바른 견해, 즉 정견이 없기 때문이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바른 견해가 없다면 바른 언어, 바른 행동,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통찰력과 직관력을 갖지 못할 자신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 관념의 세계에서

           그 사물을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통찰력과 직관력을 계발해야 한다.

 

* 위와 같은 마음과 몸의 일치를 위한 수련이 바로 마음 챙김 명상이다.

  마음 챙김 명상을 통해 직관력과 통찰력을 계발하게 될 때 몸과 마음을 일치를 이룰 수 있다.

  마음과 몸의 일치로 번뇌 망상으로부터 벗어나면 평정심, 자기 절제, 행복감 등이 증진된다.

  - New MBSR 중에서,이재영  -


불교는 어떤 종교보다 개인의 정신적인 수행과 마음의 다스림을 강조한다. 佛家의 가르침에는 공통적으로 마음속의 욕망과 헛된 욕심이 인간을 미망과 고해(苦海)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불교사상이 집약적으로 표현된 교리가 바로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구절이 아닌가 한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 는 말로 좋고 나쁨, 행복과 불행 등 모든 분별(分別)과 경계(鏡戒) 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물 그 자체의 속성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해석은 원효대사의 일화(逸話)와 관련 있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가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이 들어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 날이 밝아 깨어 보니 간밤에 달게 마신 그 물은 해골에 괸 썩은 물이었다. 이를 본 원효는 구역질을 했지만 그 후 대오각성(大悟覺醒) 해 유학길을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원효의 깨달음이란 바로 깨끗함과 더러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교회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부들의 표정은 세 부류 정도로 나눌 수 있다고 한 성직자는 밝히고 있다. 우거지상을 한 인부는 “몸은 고달프고 일당은 적어 죽지 못해 일하고 있다” 고 말하고, 무표정한 얼굴의 인부는 “비록 푼돈이지만 집안의 식구들을 건사할 수 있으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태도 였으며, 마지막으로 환한 표정의 인부는 “일당을 받으며 내 손으로 하느님을 모시는 성전을 쌓고 있으니 만족스럽고 보람되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똑같은 조건에서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불행한 인부가 될 수도, 행복한 인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긍정적인 마음이 갖는 능동적이고 마술적인 힘에 대해서는 과학적 검증도 있었다. 치료를 받는 환자의 기대와 믿음에 의해 위약(僞藥)도 실질적인 치료 효과를 거둔다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와, 반대로 적절한 처방이나 약도 환자의 불신(不信) 때문에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생각이 바뀌면 행동이바뀌고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에 의해 성품이 결정되고, 성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말했다.

토리노 의대 베네데티 박사팀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진통제를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육상 선수에게 경기 당일 진짜 진통제 대신 가짜 진통제를 복용시켰으나 진짜 진통제를 복용한 선수와 성적이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 2007년 '신경과학'학회지에 발표하였다.(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장현갑)

 

골프선수들에게도 마음을 강조하고 실제로 긍정적 자신감을 없으면 샷과 퍼팅에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자신의 샷 분석에 의해 골프 위계목록을   설정되었다면 우선순위에 의해 순차적으로 의식적인 훈련을 임하게 된다.즉 훈련 과목에 대한 이론적 기슬 습득을 하고 실전 훈련을 반복하여 조작적 조건 반사화 한다.이때 샷,퍼팅을 하면서 심상이란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병행하여 실시한다.반복적 연습을 기간이 도달되면 평가를 한다. 실전과 같은 상황에서 성공율을 점검하는 것이다.성공율이 도달되면 인지 재구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샷과 퍼팅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자신에게 각인시키는 정신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이 확신과 믿음이 바로 '자신감'이고 일명 '체계적 둔감화 훈련'이라 한다.

 

佛家에서 마음의 세 가지 독 (三毒, 탐진치)이라고 일컫는 탐욕(貪), 노여움(瞋/화냄), 어리석음(우치/愚癡)을 조금 비워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믿음을 채우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도 골프도 이 체계적 둔감화 훈련기법으로 자신감을 형성하는 생활 루틴을 갖는다면 성장과 행복은 스스로 찾아 스며들 것이다.멘탈 스포츠 골프의 순기능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그래서 골프는 인생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생활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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