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오래전에 우연하게도 경남 어느 지방에서 하루에 두 곳의 장례식을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일정상 장례식장에 못가고 모두 장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두 곳 모두 망자에 대한 ‘죽음에 따른 절차’라는 사실은 같습니다. 그러나 ‘생의 이별’이라는 명사(名詞)는 같았으나 이에 따르는 동사(動詞)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한 쪽은 묘지에 흙 한 삽을 뜰 때마다 온 가족이 울고불고 오열을 하며 슬픔의 절규를 했고 또 다른 곳의 가족과 친지들은 조용히 기도를 하면서 담담하게 모든 절차를 마무리 했습니다. 같은 상황을 놓고 너무나 다르게 전개되는 사실 앞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어떤 사건(?)이였습니다.
죽음의 명사적 의미는 <죽는 일>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 이라 합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죽음은 출생과 달리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누구든 언젠가는 죽는다고 생각하면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고 행복하게 살고 잘 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순간순간을 완전히 타버린 불꽃처럼 후회 없이 산다면 죽을 때 아무것도 미련이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이라는 명사는 하나이지만 행동이나 삶의 태도, 죽음에 대한 수용 자세 등 동사에 따라 우리는 비참한 최후가 되기도 하고 편안한 죽음이나 웰 다잉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자 최상진 교수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자신에게 한(限)이 가장 많이 맺힌 사람은 ‘자기 어머니’가 1위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명사로서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무엇을 해달라든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동사라고 합니다. 요즘 경제 수장으로 카리스마가 없다고 정치권으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았던 현오석 부총리도 어머니 같은 돌봄이 있는 여성인력을 많이 활용해야 우리경제가 계속 성장이 가능하고 말합니다. 필자도 마찬가지 이지만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무한정 해달라고 떼를 쓰며 언제나 남는 음식만 드시는 어머니는 당연히 그러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와서 불효를 깨우치고 죄송한 마음이 드는 ‘어머니’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입니다.
사랑도 실체가 없는 허구의 명사가 아니라 어떤 실체를 변화시키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동사입니다. 실력 또한 계속 갈고 닦아야 하므로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나의 본질은 동사죠. 명사보다 동사에 맞춰져 있어요. 명사로 바꾼다면 성장하고 살아 있는 것은 죽게 됩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동사도 사라집니다. 동사야 말로 이 우주를 살아있게 만드니까요. 나는 동사예요. 나는 살아있고 역동적이고 활동적이고 또 움직이죠.>(윌리엄 폴영 오두막 中에서)
은퇴 후 아무리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다하더라도 마음속의 꿈으로만 갖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룰 수 있는 방법과 이론이 아니라 행동(Action)과 실천(Practice)이 요구됩니다. 인생 후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건 시간 돈 등 명사가 아니라 행동력으로 보여주는 동사입니다. 눈높이 낮춰 재취업하기, 귀농하기, 노동현장에서 일하기, 호스피스 활동하기, 숲 해설가 되기, 글쓰기, 그림그리기, 사막여행하기, 아프리카 오지에서 봉사하기 등 많은 동사가 은퇴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은퇴는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입니다!
ⓒ강충구 201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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