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널 행복하게 해줄것” 딸 자신감 키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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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부모처럼 기자 역시 자녀를 잘 키운 비결이 궁금했다. ‘골프 여제’ 박인비(27)의 어머니 김성자 씨(52)를 만난 이유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는 “가족 없이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가족의 중심에는 바로 엄마가 있다. 김 씨는 지난주 딸이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하는 장면을 영국 현지에서 지켜봤다. 김 씨는 “딸이 외계인 같았다. 믿어지지 않아 옆에 있던 남편(박건규 씨)과 사위(남기협 씨)에게 좀 꼬집어 보라고 했다”며 웃었다.

김 씨는 30대 후반이던 2001년 10대 초반인 박인비와 두 살 아래 막내딸(박인아 씨)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남편이 5남매 중 장남인데 위로 누님 세 분이 계셨다. 맏며느리가 애들과 떠난다고 하니 반대가 심했다. 집안일 피하려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렸다. 인비 아빠가 책임지겠다며 밀어줘 가능했다. 만약 실패했다면 쫓겨나지 않았을까.” 박인비의 유학에 대해 김 씨는 “한국에선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 힘들다. 골프선수로 성공하지 못한다면 대안이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두려웠지만 애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고 설명했다.

엄마와 두 딸은 한국인이 거의 없는 미 플로리다 주의 마운트도라라는 시골에 정착했다. 박인비는 “엄마는 영어공부에 방해된다며 한국어 TV 프로그램을 전혀 못 보게 했다”고 회상했다. 미 주니어 무대에서 박인비는 수십 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김 씨는 “인비는 진짜 골프를 잘 쳤다. 손목이 안 좋아 훈련을 많이 하지 못할 형편인데도 대회만 나가면 집중력이 폭발했다. 스펀지처럼 뭘 가르치면 그대로 흡수하는 스타일이다. 골프에서는 다중인격자”라고 칭찬했다. 잔소리가 필요 없었던 딸에게 김 씨가 늘 강조한 말은 따로 있었다. “넌 자랑스러운 내 딸이다. 골프가 널 행복하게 해줄 테니 훌륭한 탤런트를 계속 키워라.” 자신감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는 게 김 씨의 지론이다. 그러면서 “엄마 없으면 네가 엄마다. 하나뿐인 동생을 잘 보살펴라”고 당부했다.

고비도 있었다. 박인비는 2008년 US여자오픈을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뒤 4년 가까이 LPGA투어에서 무관에 그치며 극도의 슬럼프에 빠졌다. 김 씨는 “인비가 왜 골프를 가르쳐 날 힘들게 했냐고 원망하더라. 비참하게 사느니 골프 관두겠다고 하더라. 내 가슴도 무너졌다”고 말했다. 포기의 갈림길에서 박인비가 프로골퍼 출신의 남자친구 남기협 씨와 투어생활을 동행하면서 재기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연. 박인비가 ‘사랑’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도 혼자만의 힘이었다면 불가능했다. 김 씨는 “부모가 애들을 앞에서 끌고 가야 할 때가 있고 뒤로 한발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 우린 그 타이밍이 잘 맞았다. 상황에 맞게 중심을 제대로 잡았던 것 같다”고 했다. 골프에 재능을 보이자 유학을 이끌어줬고 성인이 된 뒤에는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옆에서 지원해줬다는 의미였다. 부모 자식 간에도 적절한 ‘밀당의 법칙’은 중요했다. 그는 “어린 애들을 유학 보내려면 엄마나 아빠가 꼭 따라가야 한다. 자식만 보내면 부모와 아이들 모두 흔들리고 원칙에서 벗어나기 쉽다”고 조언했다.

아버지 박 씨는 가업인 용기 포장재 제조업체인 유래코를 경영하고 있다. 김 씨도 박인비가 독립한 뒤 포장용기를 만드는 KIB를 세워 경영자로 변신했다. 두 회사의 연간 매출액을 합치면 500억 원에 이른다. 김 씨는 “인비 덕에 영업이 잘된다”고 자랑했다. 박인비는 LPGA투어 통산 상금만도 120억 원이 넘으며 스폰서 계약과 인센티브 등을 합하면 수백억 원을 벌었다.

대학 산악반에서 남편을 만나 함께 암벽을 넘나들다 결혼한 김 씨는 임신 8개월 때까지 골프를 쳤다. 박인비가 지닌 타고난 손 감각은 모태 골프의 영향인지 모른다. 김 씨는 “명절이나 집안에 생일이 있으면 친척이 수십 명씩 모였다. 인비도 일찍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소중함을 배웠다. 코치 캐디 매니저 등을 식구처럼 여기는 것도 장점이다. 인비가 큰 짐(그랜드슬램) 하나를 덜었으니 앞으로 더욱 즐겁고 여유 있게 골프를 칠 것 같다”고 말했다.

잠깐 차나 마시자며 만난 자리가 점심까지 같이하며 어느새 3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골프 역사를 다시 쓴 딸과 엄마. 그 스토리는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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