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여인 사진

어젯밤 잠을 자면서 꾼 꿈의 내용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꿈을 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더라도 꿈의 내용까지 전부 생생하게 말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는데 눈 앞에 영상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꿈은 기억이 나고 어떤 꿈은 기억나지 않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꿈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아직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아 더욱 신비롭기만 하다.

꿈은 언제 꾸는걸까?


보통 잠이 든 뒤 90분이 지나면 첫 번째 꿈을 꾸며 이 꿈은 평균 10분 정도 지속된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매일 밤 잠을 자면서 5개 정도의 꿈을 꾼다고 하며, 잠든 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꾸는 꿈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최대 40분까지 이어지는 꿈을 꿀 수 있다.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자폐증을 앓는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꿈을 꾸는 양상이 다르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경우 보통 잠든 지 40분 후에 첫 번째 꿈을 꾸고, 꿈의 지속시간은 20분 정도다. 이후에도 평균보다 더 긴 꿈을 자주 꾸는데, 이 때 말하는 꿈은 렘수면 동안 꾸는 꿈으로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잠을 아무리 오래 자도 피곤함이 지속된다. 우울증에 처방되는 약물이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해 꿈을 꾸는 시간이 줄어들게 하고, 그로 인해 우울증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꿈을 꾸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루가 끝난 뒤 그 날의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 일기를 쓰는 것처럼 뇌는 하루 동안 겪었던 일에 대한 경험을 정리하면서 꿈을 꾸게 한다. < 출처 (cc) Seungbeom Kim at Flickr>

꿈을 꾸는 동안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에 대해선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꿈을 꾸는 동안 기억이 정리된다는 생각이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로이트도 경험한 것이 기억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바로 꿈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하루의 잔상(“day-residue”)이 곧 꿈이 된다고 했다.

수면 시차 효과를 보여주는 그래프. 총 7일간 피험자의 꿈을 측정하였고 현실에서 어떤 경험을 한 뒤 시간이 지남에 따라(가로축, 1일부터 7일째까지를 의미) 꿈에서 그 경험을 다시 보는 정도(세로축, 0부터 9점까지로 표시)를 측정하였다. 꿈에서 경험을 다시 보는 정도가 4일째쯤 최저치를 기록했다가 다시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Replication of the Day-residue and Dream-lag Effect, Geneviève Alain et al. (2003)

그 동안 관찰되어온 바에 의하면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한 당일 꿈에서 그 경험을 생생하게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4~5일이 지나면 꿈에서 그 경험을 다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어진다. 하지만, 다시 7일째부터는 꿈에서 그 경험이 점점 더 많이 보이게 된다. 이처럼 꿈에서 어떤 경험이 등장하는 빈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었다가 다시 늘어나는 현상을 “수면 시차 효과(dream lag effect)”라고 하는데, 경험한 것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 동안에는 그 경험에 뇌가 접근할 수 없게 되고, 장기 기억으로 확실하게 저장된 뒤에는 다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왜 악몽은 더 잘 기억날까?


어떤 꿈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어떤 꿈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사실, 꿈을 꾸지 않고 잠을 잤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정말 꿈을 꾸지 않은 것인지 꾼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고야의 판화 “이성이 잠든 동안 괴물이 태어난다”. 잠든 화가가 악몽에 시달리는 것을 표현한 그림이다.

잠의 단계 중 꿈을 꾸는 시간은 렘수면 단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다만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경우가 렘수면 단계에서 꾼 꿈뿐이라서 그렇게 알려진 것이며 사실은 잠을 자는 내내 계속해서 꿈을 꾼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는 꿈을 꾸는 것을 어떤 상태라고 정의하느냐에 달려있다. 즉, 의식은 없지만 뇌에서 각성상태 동안 받아들였던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을 꿈이라고 하느냐, 아니면 잠든 상태에서 영상이나 소리 같은 자극을 느끼는 과정을 꿈이라고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 둘 중 무엇이 맞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다만 측정이 렘수면 상태에서 꾼 꿈에 대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분석과 연구는 렘수면 상태에서 꾸는 꿈에 대해서만 이뤄진다.

그럼 같은 렘수면 상태에서 꾼 꿈인데 기억나는 정도가 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이 들면 뇌에서 감각을 느끼거나 몸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 ‘신피질’과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 사이의 연결이 약해진다. 꿈을 꾸면 두 영역이 각자 활성화되지만 둘 사이의 의사 소통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꿈을 꾼 것이 기억으로 거의 저장되지 않는다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두 영역 사이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라서 매우 강한 자극, 감정과 관련된 기억이 활성화되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이 남게 된다. 악몽의 경우 자극이 강렬하고 내용이 기괴한 경우가 많다. 즉, 평범한 내용의 꿈을 꿀 때보다 악몽을 꿀 때 신피질에서 해마로 보내지는 신호가 강하기 때문에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꿈의 해석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잠이 들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나간다고 믿었다. 이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꿈이라고 생각했다. 또, 바빌로니아인들은 좋은 꿈이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악몽은 악마가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최초로 꿈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 <출처 (cc) Viejo sabio at Wikimedia>

이 같은 미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처음 꿈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사람이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꿈이 억눌린 욕망이 표출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그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꿈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데, 대부분 폭력성과 성적 욕망의 표출로써 설명하고 있다. 당시에는 그의 이론이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졌지만 이후 꿈과 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많은 연구가 수행되면서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꿈의 기능


꿈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꿈을 설명하는 가설들 중 ‘연속성 가설’에 의하면 꿈을 꾸면 일상에서 겪었던 일이 연속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일상과 비슷하지만, 꿈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80%가 부정적이라는 게 특징이다. 왠지 꿈을 많이 꾸면 정서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 같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꿈을 통해서 부정적인 사건을 반복적으로 접할수록 그 사건이 정서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약해진다. 즉, 꿈을 계속 꿀수록 고통이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유혈이 낭자한 그림을 보여준 뒤 피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꿈을 꾸면서 잠을 자도록 내버려두고 한 그룹은 렘수면이 시작될 때마다 잠을 깨워 꿈을 꾸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랬더니 꿈을 꿀 수 있었던 그룹의 사람들이 정서적인 불안감의 정도가 훨씬 낮았다. 또, 이혼한 여성을 대상으로 잠을 자는 동안 꿨던 꿈을 계속해서 보고하게 한 뒤 전남편이 등장하는 꿈을 꾼 빈도와 스트레스 정도를 비교해보았더니 전남편에 대한 꿈을 많이 꾼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정도가 낮게 나타났다는 사실도 보고되어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꿈을 꾸면서 뇌세포에 가상현실을 입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처럼 꿈을 통해 특정 상황에 여러 번 노출됨으로써 뇌가 그 상황에 익숙해지고, 그 상황을 대비하게 된다는 가설이 ‘위협 시연 가설’이다.

이같이 꿈이 고통을 완화시키고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더 잘 버틸 수 있게 한다는 이론은 ‘위협 시연 가설’이라고 불린다. 꿈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그 상황에 미리 적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일부러 꿈에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계속 마주할 수 있도록 하여 증상을 완화시키는 ‘꿈 치료법’도 있다.

위대한 꿈


꿈에서는 현실에서 보는 것과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장면이나 이야기가 이어지는 꿈은 ‘개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비논리적이고 조각조각 나뉜 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꿈은 소설가나 음악가, 과학자까지 많은 사람들의 위대한 업적을 완성시킨 원천이 되기도 했다. 가장 잘 알려진 예시가 화학자 케큘레의 꿈이다. 케큘레는 꿈에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모습을 보고 벤젠의 고리모양 분자 구조를 밝혀냈다. 또 다른 화학자인 멘델레예프도 꿈에서 본 악보에서 영감을 받아 주기율표를 작성했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쓴 <예스터데이>도 꿈에서 들은 음악이며,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나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도 꿈에서 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다.

케큘레가 꿈에서 보았다는 꼬리를 문 뱀의 모습을 그린 그림. 가운데는 벤젠의 분자 구조이다. < 출처 (cc) Haltopub>

이처럼 영감을 주는 것에 더해 꿈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기능을 가졌다고 믿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일종의 환각 작용이었던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이 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믿기도 했다. 역시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지만,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당하기 2주 전 살해당하는 꿈을 꿨던 것이나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 전 날 자신의 군대가 패배하는 꿈을 꿨다는 이야기를 꿈이 예언의 기능을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임신한 여성의 가족이 꾸는 꿈인 ‘태몽’도 어찌 보면 예지몽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꿈을 설계한다, 자각몽(lucid dream)


영화 <인셉션>에 보면 꿈의 내용을 설계하는 ‘꿈 건축가’가 등장한다. 실제로 꿈의 내용을 의지대로 조종하는 것이 가능할까? 꿈은 무의식의 상태에서 뇌가 무작위적으로 활동한 결과물이라고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의식적으로 꿈을 꿀 수도 있다. 이런 꿈을 ‘자각몽’이라고 부르는데,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꿀 수 있다. 자각몽을 꾸는 사람은 꿈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순서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각성상태처럼 몸을 움직이거나 외부의 자극에 대해 반응을 보일 순 없지만 꿈 속에서 원하는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할 수 있다. 자각몽을 꾸었다고 해서 잠을 푹 자지 못했다거나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지도 않는다.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 <출처 (cc) 잠본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꿈?!


꿈에서 느끼는 감각 자극도 사람마다 다르다. 꿈을 컬러로 꾸냐 흑백으로 꾸느냐도 다르고, 꿈에서 소리가 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도 차이가 있다. 던디대학교의 에바 마르칭의 연구에 의하면 흑백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사람들의 경우 25%가 흑백으로 된 꿈을 꿨지만, 컬러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사람들의 경우 7%만이 흑백으로 된 꿈을 꿨다. 또, 7세 이전에 시각을 잃은 사람은 꿈에서 시각적인 요소가 없다고 알려져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경우 꿈을 꿀 때 소리나 촉감, 맛을 생생하게 느낀다고 한다.

꿈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자신이 사용하는 모국어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린 아이의 경우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모국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로 꿈을 꾸기도 한다.

레너드 코닝이 사용한 ‘꿈 기계’ Night School: Wake up to the power of sleep, Richare Wiseman, Pan Macmillan

또 꿈을 꾸는 동안 잠자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에서 감각적인 자극이 가해지면 그 영향이 꿈에까지 미치기도 한다. 쉽게 꿈에 영향을 미치는 자극은 바로 냄새다. 레너드 코닝은 머리에 가죽 헬멧같이 생긴 장치를 씌우고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는 순간을 감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계는 ‘꿈 기계’라고 불렸는데, 꿈을 꾸는 것이 감지되면 잠을 자는 사람에게 자극을 가해 그 영향을 연구하는 데 쓰였다. 또 독일 중앙정신보건연구소의 미하엘 슈레들도 2009년 잠 자는 사람에게 장미향과 썩은 달걀 냄새를 각각 맡게 해 외부 환경의 자극이 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 결과 장미향을 맡은 사람은 즐거운 꿈을, 썩은 달걀 냄새를 맡은 사람은 기분 나쁜 꿈을 꿨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았다.

반면 시각 자극은 꿈을 꾸는 사람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는 시카고 대학의 데이비드 풀케스(David Foulkes)에 의해 밝혀졌는데, 그는 사람들의 눈꺼풀을 테이프로 고정시켜 눈을 뜬 채로 잠이 들게 했다. 그리고 꿈을 꿀 때 눈 앞에 여러 가지 물체나 글귀를 보여줬다. 하지만 잠에서 깬 사람들이 꿈에서 본 것은 그들이 꿈을 꾸는 동안 눈 앞에 보여졌던 것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꿈을 꾸는 동안 눈 앞에 무엇이 보여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신은 꿈을 꾸고 있습니까?


기억하지 못해도 당신은 매일 꿈을 꾼다. 꿈을 꾼 것이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만큼 푹 잠을 잤다고 생각해도 좋다. 기왕 꿈을 꾼다면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꿈을 꾸는 데 있어서도 ‘반동 효과’라는 것이 작용한다는 걸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반동 효과는 하지 말라는 지시를 들으면 그 일에 저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마치 청개구리 심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잠을 자기 전에 좋지 않은 기억에 대해 이 일에 대한 꿈을 꾸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일부러 생각을 하면 오히려 그 쪽으로 집중력이 기울어 그 꿈을 꾸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잠자기 전에는 될 수 있는 한 마음을 가볍게 하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체적으로 한 번 흘려 보내보도록 하자.

박솔 이미지
박솔 |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석사재학생. 기초과학연구원 인지및사회성연구단 연수생.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졸업 후 동물의 마음을 조종하는 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학사 중학 독서평설 <꿈꾸는 과학의 세상 뒤집기> 연재, <세상을 만드는 분자> 번역, 네이버 포스트 ‘뽐내는 과학’, 트위터: @solleap
발행2015.10.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