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四念處) 명상
몸에 달린 육문(六門)과 외부의 육경(六境), 이 둘을 조건으로 眼識(안식), 耳識(이식), 鼻息(비식), 舌識(설식), 身識(신식),그리고 意識(의식)이라는 육식이 일어난다. 우리는 밖을 향해서 육문을 열어놓고 밖에 있는 육경을 안으로 들여와 마음이 경험한다. 그러면 이어서 생각으로 말로 몸으로 행동을 한다. 여기서 육문은 안·이·비·설·신·의라는 감각기관이고, 육경은 色(색,안식)·聲(성,이식)·香(향,비식)·味(미,설식)·觸(촉,신식)·法(법,의식)이라는 감각대상이다. 붓다는 육문과 육경을 일체(一切)라고 설하신다.
이 사념처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몸에 대한 관찰, 느낌에 대한 관찰, 마음 대한 관찰, 법에 대한 관찰이라고 하는 네 가지 단계로 이루어지는데요. 그중에서도 몸이라고 하는 것 혹은 육체적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쉽게 포착할 수 있는 알아차림의 대상이 됩니다. 육체적 현상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주의를 모으고 알아차리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 진리인 사성제의 진리를 깨우쳐나가는 행위 바로 이것이 몸에 대한 관찰(身隨觀, kāyānupassin) 즉 신념처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사념처의 첫 번째 세부항목인 신념처라고 하는 것은 그것자체가 독자적인 명상법으로 독립된 형태로 실천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은 까야가따사띠(Kāyagatāsati) 라고 하는 ‘신지념경(身至念經, Kāyagatāsati-Sutta)’이라고 하는 경전에서 몸에 대한 관찰만으로 궁극의 깨달음이 얻어지는 그러한 과정이 묘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몸에 대한 관찰 다시 말해서 신념처의 대상이 되는 육체적 현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마시고 내쉬는 숨이라든가 팔을 구부리고 펴는 따위에 신체적 동작, 혹은 옷을 입거나 음식물을 맛보거나 대소변을 보는 따위의 일상적인 행위, 또한 육체적 현상의 범위에 포함이 되고 이 모든 것들이 신념처의 세부 내용으로 이야기 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몸에 관련된 일체의 현상들에 대해서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라는 그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에 대한 관찰 다시 말해서 신념처에서는 육체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들이 위빠사나(觀, vipassanā)라고 하는 통찰 수행의 매개가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념처의 두 번째 단계로서 일컬어지는게 수념처, 즉 느낌에 대한 관찰(受隨觀, vedanānupassin)이 되겠습니다. 느낌에 대한 관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좋거나 나쁜 느낌을 내면적으로 갖고 있을 때, 바로 그러한 느낌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하라는 가르침이며, 그것을 우리가 행해야하는 실천법으로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여러 가지 느낌에 노출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편안한 느낌, 불쾌한 느낌, 편하지도 불편하지 않은 여러 가지 느낌 등 여러 느낌들에 노출되면서, 좋은 느낌에 노출되었을 때는 내면의 어떤 탐욕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쾌한 느낌들에 노출되었을 때는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는 여러 과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수념처에서는 편한거나 불편한 여러 가지 느낌들에 대해서 탐욕이라든가 분노 따위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관찰해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좋거나 싫은 느낌들이 지속적인 관찰 대상으로 우리에게 드러날 때, 그런 느낌들은 잠시 발생했다가 사라져가는 무상한 현상에 불과하다고 하는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줄 수 있다고 경전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념처 수행 다시 말해서 느낌에 대한 관찰은 갖가지 느낌들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다만 관찰자로서 남아 있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느낌에 대해서 관찰자로서 남아 그것을 관찰하는 바로 거기에 전념하면, 그것은 수념처 즉 느낌에 대한 관찰을 올곧게 실천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사념처의 세 번째 세부항목은 마음에 대한 관찰(心隨觀, cittānupassin)이 되겠습니다. 즉 심념처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심념처는 스스로의 마음을 지긋이 주시하면서 알아차리는 그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마음에 대한 관찰은 마음 자체를 내용으로 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여러 가지 일상 속에서 굉장히 산만한 상태로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아 내 마음이 산만해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고 혹은 내가 여러 가지 욕심 혹은 분노에 빠져 있을 때 ‘아하 내가 지금 욕심에 빠져 있구나.’ 그때그때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을 심념처라고 우리가 이야기를 합니다. 사념처의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대념처경’에서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마음 상태를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산란한 마음 등등에 여러 가지로 구분을 하면서 전체 열여섯 가지 유형의 마음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심념처 수행, 다시 말해서 마음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에서는 이들 모두를 통찰의 대상으로 합니다. 이들 열여섯 가지 마음에는 부정적인 마음, 예컨대 탐욕이라든가, 성냄이라든가, 무기력한 마음 같은 부정적인 마음도 포함이 되지만, 긍정적인 마음들, 예컨대 고요해진 마음, 해탈한 마음 등과 같은 긍정적인 상태도 망라가 됩니다. 이러한 부정적, 긍정적 마음들은 사념처 명상이 현재 포착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마음들을 모두 망라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사념처의 심념처를 닦을때는 우리에게 포착되는 모든 마음 상태를 강제적으로 억누르거나 혹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만 바라봐야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설령 고요한 마음이라든가 해탈한 마음이 느껴지더라도 지속적으로 그러한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지금 내 마음이 이렇다'하고 다만 알아차릴 것을 권장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몸이라든가 느낌이라든가 마음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관념들에 휩쓸리지 않고, 다만 관찰자로 남아있을 수 있는 그러한 힘을 키우게 됩니다.
사념처 마지막 항목으로 제시되는 내용이 법념처입니다. 법념처는 법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法隨觀, dhammānupassin)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몸이라든가 혹은 느낌이라든가 혹은 마음이라고 하는 앞서 세 단계에서 통찰했던 내용을 법으로서 재인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법념처의 의의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컨대 몸을 관찰하면서 이와 같이 이러저러한 육체적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바로 이러저러한 현상이 이렇게 해서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 사라지는 것이 곧 ‘무상의 진리구나.’라고 알아차리면 곧 몸이거나 느낌이거나 마음을 매개로 해서 법념처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념처의 마지막 항목인 법념처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수행의 진척과 더불어서 알게 되는 모든 내용들을 통찰의 결과로서 다시 한번 포섭해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명상의 진행과 더불어 체험하게 되는 깨달음의 계기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분명한 앎으로 정착시켜 낸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상과 같이 몸, 느낌, 마음 그리고 법을 통찰 내용으로 하는 사념처는 결국에 있어서 초기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사성제를 실현해내기 위한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그 의의를 정해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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