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도 어느듯 이순(耳順)을 앞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근래에는 체력 부족을 확연히 느낀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건만, 이제는 달리기는커녕 낮은 산을 오르는 것도 버겁다.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영 아니다. 그래서인지 자신감도 덩달아 떨어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피터 드러커처럼 90세가 넘도록 현역으로 일하다가 죽을 거야!"라고 호기롭게 말했는데, 요즘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은근 자신이 없다.
이런 내 식어가는 가슴팍에 이글거리는 장작불을 던지는 책을 만났다. 85세의 나이이도 왕성하게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 김욱 선생의 신간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가 그것이다. 선생은 이 책에서 "나는 노인이 아니라 적추(赤秋)다!"라고 선언한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 '적추'라는 말에 꽂혔다. 선생은 책에서 적추라는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적추(赤秋)'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붉은 가을'이다. 뭐가 그리도 붉다는 걸까. 단풍일까, 아니면 석양이 잠시 머물고 떠나는 텅 빈 들판일까. 이것은 노인의 청춘을 비유하는 말이다. 물질과 출세 같은 세상 속박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는 뜻이다.
청춘(靑春)이 푸른 봄날이었다면 적추(赤秋)는 붉은 가을이다. 춘하추동 사계절에서 봄과 가을은 대칭이다. 만개할 여름을 준비할 봄이 청춘이었다면 다시금 땅으로 돌아갈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가 가을, 곧 적추다. 겨울이 남아 있으니 아직 끝은 아니고, 게다가 결실도 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단풍은 덤이다."
선생은 30년간 기자로 일해오면서 우리 시대의 평범한 가장들이 그러하듯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바쁜 삶을 살아왔다. 일과 인간관계, 가족 부양과 아파트 평수 늘리는 재미로 어릴적 자신의 꿈이 작가였음을 잊고 살았다. 그저 꿈이 있다면 은퇴 후에 한갓진 전원주택에서 글이나 끼적이며 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일흔을 앞두고 잘못 선 보증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그 울분으로 협심증까지 걸려 남의 집 묘막살이 신세로 전전하다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간절함으로 일본어 번역에 도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선생은 이후 10년 동안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여든다섯 오늘도 번역가이자 작가로서 노재의 시대를 열고 있다.
이번에 선생이 쓴 책 《가슴이 뛰는 한 나이는 없다》는 자신은 결코 노인이 아니라 적추라고 부르짖으며, 인생 후배들에게 '노년에 맞이한 격렬했던 성장통의 의미'와 '진정한 내 삶을 찾아가는 용기와 희열'을 들려주는 책이다.
선생은 우리 몸 중에서 노화를 겪지 않는 유일한 장기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뇌'라며 뇌가 멀쩡하게 남아 있는 까닭은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노년에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빌딩을 짓는 건설가가 되기는 어렵지만 고전을 읽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 세상에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등의 지적으로 충만한 노년의 지성미 넘치는 최후의 마무리는 누구든지 가능하단다.
정신적인 생활에서 기쁨을 찾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이듦의 주종목이라고 강조하는 선생은 110세까지 살고 싶단다. 아직도 25년이 더 남은 삶의 계획에 번역은 95세까지 하고, 은퇴 후에는 중국어를 배울 작정인데, 그때부터 시작한다면 110세쯤 되어서는 루신의 명작 《광인일기》를 번역할 수 있을 것이란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광인일기》의 주인공처럼 '세상의 틀을 멋지게 부숴버린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아, 이 얼마나 멋진 꿈인가!
모쪼록 선생의 이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나 또한 앞으로 선생 같은 멋진 적추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본다.
[출처] 나는 노인이 아니라 적추(赤秋)다!|작성자 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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