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당(叡堂) 마음챙김센터/한국골프레저연구원/DS평생교육원

걸음마가 겨우 익숙해지던 4세. 꼬마는 아버지의 골프스윙을 신나게 따라했다. 아버지가 하는 운동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저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그런데 꼬마의 스윙이 예사롭지 않았다. 주위에서 딸에게 골프를 시켜보라고 권유했지만 아버지는 손사레를 쳤다. 딸의 체구가 또래 아이에 비해 작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은 골프채를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또래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골프채를 휘두르며 이 세상 누구보다 더 멋진 스윙을 하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아버지는 딸의 애교에 웃음을 지었다. 누구보다 귀여운 딸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정상에 오르게 될 지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향(21 볼빅)은 11월9일 일본 시마시 미에현 카시코지마 컨트리클럽(파72/6,506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31번째 대회이자 아시안 스윙 최종전 '미즈노 클래식'(총상금 120만달러, 한화 약 13억원)서 최종 합계 11언더파 205타로 연장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생애 첫 LPGA 투어 우승 트로피다. 이미향 소속사 볼빅에 따르면 골프 애호가 아버지를 따라 4세 때 골프채를 잡기 시작한 지 17년 만의 경사다. 이미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골프 대회에 참가해 2009년부터 3년 연속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내며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었다. 체구는 작았지만 스윙의 정석이라 불릴 만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스윙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이미향은 대한민국 최초의 골프 특성화 고등학교인 전남 함평골프고 출신이다. 한국과 미국 무대를 휩쓴 뒤 현재는 일본에서 활약 중인 신지애와는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이미향은 함평골프고 출신으로는 신지애에 이어 두 번째로 LPGA 정회원이 됐는데 고교 재학 중에 LPGA 정회원이 된 것은 이미향이 최초였다.

2011년 LPGA 퀄리파잉 토너먼트에서 29위로 단 번에 테스트를 통과한 이미향은 LPGA 멤버십, 시메트라 투어(LPGA 2부투어) 참가 자격, 정규 투어 조건부 시드를 획득했다. 2012년에는 시메트라 클래식에서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해 시메트라 투어를 총결산하는 시메트라 투어 시상식에서는 신인상을 비롯해 'Volvik Bright&Bold(최저 평균타수 3차 수상자)', 'Volvik Radies for the card'를 수상하는 등 3관왕의 영예도 안았다.

하지만 LPGA 투어 벽은 높았다. 2013년 LPGA 투어에 처음 발을 디딘 이미향은 17개 대회에 출전해 무려 7차례나 컷 탈락했다. 톱 10은 한 번도 없었고,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공동 19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돌아온 2년차 시즌. LPGA의 벽은 여전히 높았지만 이미향은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난 2월에는 유럽여자프로골프(LET) 투어 ISPS 한다 뉴질랜드 오픈에서 리디아 고(17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이 때의 자신감과 경험이 결국 LPGA 투어 '미즈노 클래식' 우승으로 이어지며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게 됐다.

이미향은 실력뿐만 아니라 따뜻한 마음도 갖고 있다. 모교인 함평골프고에 장학금을 기부하며 주위의 귀감을 샀다. 함평골프고 관계자는 "(이)미향이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도 기부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며 "후배와 모교 발전,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운동의 목적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현지 LPGA에서는 한국 선수들은 돈만 벌어간다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향이는 지난해 많지 않은 상금에도 불구하고 1,000 달러(한화 약 110만원)를 현지 어려운 사람들에게 써달라며 기부해 미국 선수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내로라하는 골프 선수들보다 10배 이상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인 교민들도 이미향의 따듯한 마음씨에 감동받고 있다. 이미향과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지인은 "미국에서 대회가 없을 때 지역 한인 주민들과도 라운딩을 즐기며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한다"며 "친절하게 스윙을 고쳐주기도 하는 등 착한 마음씨에 이미향 선수의 팬이 되었다"라며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미향은 미즈노 클래식 우승 후 "항상 저를 믿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가족과 볼빅의 문경안 회장님을 포함한 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가족과도 같은 볼빅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표현했다. 이미향에게 볼빅은 특별한 존재다. 볼빅은 이미향이 주니어 시절부터 함께해온 단짝이다. 주니어 시절 볼빅으로부터 골프공과 용품을 후원받으며 아무 걱정 없이 골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미향이 국가대표를 거쳐 LPGA 투어 정상에 오르기까지 볼빅의 도움이 컸다.

이미향은 "LPGA 투어를 뛰면서 한국 골프용품 회사인 볼빅의 위상을 직접 느낄 수 있었고 미즈노 클래식 우승으로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준 볼빅에 보답한 것 같아 기쁘다"며 "국산 골프공에 대한 편견 대신 이제 글로벌 브랜드 볼빅이 된 것 같아 소속 선수로서 매우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니어 시절부터 이미향을 지켜봐온 볼빅 문경안 회장은 "(이)미향이는 스윙이 부드럽고 리듬이 좋다. 어린 시절부터 봐와서 쉽게 후원을 결정할 수 있었다"며 "항상 밝은 미향이가 웃으면서 골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다. 앞으로도 볼빅과 이미향은 서로가 신뢰하는 파트너이자 가족이다"면서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이미향은 골프선수로서 두 가지 큰 꿈을 갖고 있다. 하나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미즈노 클래식 우승으로 이미향의 꿈은 본격적인 날갯짓을 시작했다. 명예의 전당 입성과 이미향의 이름을 딴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사진=이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