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9월27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안철수 후보가 자신의 책에서 써놓은 안보에 대한 오도된 가치관과 군에 대한 모독, 그리고 계속되는 거짓말 시리즈에 대해 지적한 발언해 대해, 언론인 출신인 윤창중 칼럼니스트가 자신의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뉴데일리’에 쓴 칼럼의 일부 발췌해서 올립니다.

[윤창중 칼럼] 안철수 감독-주연 ‘거짓말 드라마’
‘남자 신정아’ 안철수의 ‘사기 쇼’! 이제 시작!
심재철의 안철수 분석… 새누리당 안에서 유일하게 부지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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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신정아’다. ‘남자 신정아’! 안철수가 지난해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채용 때 자신의 ‘주요 연구업적’이라고 제출한 논문이 공동저자 중 한명의 석사논문을 재탕했다는 오늘 조선일보 보도, 그야말로 경악이다.

어떻게 대학원장, 그것도 서울대 교수 하겠다는 사람이 평생 발표한 논문이 석·박사 논문 빼면 3편에 불과하고, 이중 하나도 공동저자로 이름만 올린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공동저자들은 연구비 지원 받고서도 연구하지 않고 ‘영문’으로 번역해 그대로 재탕한 것이고.

이게 대한민국 최고지성이라는 서울대의 현주소! 1993년 6월 서울의대 학술지인 ‘The Seoul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했다는데, 안철수가 1991년 2월부터 1994년 4월 해군 군의관으로 근무했던 시기와도 겹친다. 서울대를 속였다는 증거! 기가 찰 일이다.

이렇게 양파 껍질처럼 ’진실‘이 벗겨질 걸 대비한 한 듯 안철수는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자신에 대한 검증 압박을 온통 ‘네거티브’라고 몰아세우며 자신의 거짓말·부도덕·위선에 대해선 ‘폭로하는 쪽’에서 증거를 제시하라고 공세! 그래, 이건 증거가 아니다?

논문 재탕 증거가 나오자 “지도교수였던 C씨만 연구비를 받았고 안 후보는 지원금과 관련이 없다”고 또렷또렷하게 기억하더니 어느 연구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선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뻔뻔한 발뺌.

주요 연구업적이라고 제출한 논문인데 어떤 연구에 참여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진실은 결국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내고야 마는 것!

어제 새누리당 최고위원 심재철, “안 후보의 성공 신화는 거짓말로 미화된 것이 너무 많다. 이런 거짓말이 교과서에까지 실린 것은 후세대에게 허위를 가르치는 매우 중대한 문제로, 전방위적 거짓말 사례를 시리즈로 실어야 할 정도”라고 했다.

심재철에 따르면, 안철수가 3년 전인 2009년에 출간한 ‘행복바이러스 안철수’의 116쪽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가족들에게 군대 간다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부인은 지난해 8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차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 그럼, 부인은 가족이 아니다?

금성출판사가 발간한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만화로 “내무반에 들어가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연락 안 한 걸 깨달았어요. 중대장에게 사정하여 겨우 전화를 걸었습니다”라고 능청. 심재철은 이 거짓말이 “교과서 3종 이상에 실려 있다”고 했다.

안철수가 1995년에 쓴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의 110~111쪽엔 “군대생활 39개월은 나에게 커다란 공백기였다. 내가 배속된 곳은 의학연구를 할 수 없었으며 컴퓨터 일을 할 여건도 되지 못했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고문이었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책에서도 안철수는 진해에서 군 생활하는 일 년 동안 주말마다 외박해 비행기 타고 서울에 와서 미주(美洲) 보너스 항공권까지 받았다고 언급.

그걸 받으려면 부산에서 김포까지 150회 이상 왕복 비행기 타야 가능하다는 게 심재철의 분석. 심재철, 새누리당 안에서 유일하게 부지런하다.

안철수는 3년 2개월 군 복무 중 2년은 서울에 있는 연구소에 배치돼 매일 집에서 출퇴근했다는데, 이런 ‘귀족’ 군 생활을 하고서도 뭐, 나에겐 커다란 공백? 노무현이 대통령 자리에서 “군대가면 썩는다”고 했던 발언을 생각하게 한다.

주말이면 외박 나와 비행기 타고 서울로 올라와 ‘부인’ 만나고, 서울에 있는 연구소에서 나머지 2년 군생활했는데도 그런 호화판 군생활이 ‘고문’이고 ‘공백’이라고 하는 인물이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 되겠다고?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정치 칼럼니스트/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윤창중 칼럼세상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cjyoon1305
[출처] <윤창중 칼럼세상> 안철수 감독·안철수 주연 ‘거짓말 드라마’|작성자 cjyoon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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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槿惠가 문재인과 안철수에게 던져야 할 결정적 질문
    "당신들은 왜 김일성주의자가 작사, 작곡한 黨歌를 부르나? 민주당의 이념은 주체사상인가?"

    趙甲濟 

     

    이념戰場(전장)에서 이념은 가장 큰 전략이다. 이념무장만 확고하면 진실과 헌법을 근거로 삼아 反대한민국적 역사관을 가진 從北좌파를 얼마든지 코너로 몰 수 있다. 朴槿惠 후보와 새누리당은 문재인과 안철수 진영을 향하여 왜 이런 이념적 질문을 던지지 못하나?

    *문재인에게

    "당신들은 왜 대한민국 建國을 부정하나?"
    "대한민국 建國 60주년 때 왜 국가의 공식 기념식에 참석을 거부하였나."
    "건국 대통령과 건설 대통령 묘소 참배는 거부하면서 왜 학살자의 자식에겐 추파를 던지나?"
    "박근혜 후보더라 아버지에 대하여 사과하라면서 왜 김정은에겐 그런 요구를 하지 않나?"
    "당신들은 왜 김일성주의자가 작사, 작곡한 黨歌(당가)를 부르나? 민주당의 이념은 주체사상인가?"
    "당신들은 아직도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가?"
    "당신들은 왜 간첩을 잡는 보안법을 폐지하겠다면서 동포를 돕는 북한인권법을 한사코 반대하는가?"
    "광우병 亂動(난동)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강령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을 부정하겠다는 맹세가 아닌가?"
    "주한美軍철수를 공약한 정당과 맺은 정책연합을 왜 파기하지 않는가? 핵무장한 敵 앞에 조국을 벌거벗겨놓겠다는 건가?"
    "韓美 FTA는 언제 폐기할 것인가?"
    "왜 사사건건 敵軍을 편들고 국군을 괴롭히나?"
    "김정은 3代 세습은 비판하지 않으면서 왜 저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그러세요?"

    *안철수에게

    "박원순을 찍은 사람들이 상식파이고 안 찍은 사람을 비상식파라고 모는 이유는?"
    "李明博 정부의 對北강경책이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는데, 북한이 도발한 금강산 관광객 사살-임진강 水攻(수공)-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으로 57명의 한국인이 죽었는데도 우리 정부는 참았다. 더 얻어맞아야 한다는 뜻인가?"
    "광우병 亂動 진압도 비판하였는데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야간 폭동을 방치하여 수도를 無法천지로 내어줄 것인가."
    "원자력 발전을 반대한다는데 대책이 뭔가?"
    "한국을 勝者獨食-弱肉强食의 사회로 규정하였는데, 혹시 북한과 남한을 착각한 것 아닌가"
    "가난한 아이들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하여 부자 아이들에게도 세금 급식을 무차별적으로 해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못생긴 아이들을 위하여 잘 생긴 아이들을 못 생기도록 성형수술을 해야 하나?"
    "정치개혁을 하겠다면서 민주제도의 근본인 政黨정치를 부정하는 무소속 출마를 하나?"
    "국회가 정치 後進(후진)의 이유라면서 왜 지난 총선 때는 놀았나?"
    "입만 열면 正義를 주장하시는 분이 서울대학교 교수 자리를 이렇게 정치에 이용해도 좋은가? 교수 시절 지도한 학생은 몇명이고 논문은 몇 개를 썼나?"

    *두 사람 모두에게

    "형법에 死刑制(사형제)가 살아 있으니 흉악범 死刑 집행은 재개하여야 하지 않겠나?"
    "대기업 개혁만큼 철밥통인 공공부문 개혁과 귀족노조 개혁도 필요하지 않나?"

    朴 후보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정면승부로 나오면 과연 보수와 중도 표가 달아날까, 모여들까?

    잊어서는 안될 경술국치 102년

    독립군의 목숨으로 회수한 대한민국




    일장기가 걸린 경복궁 근정전 을사조약의 어두운 그림자

    조선시대 왕들이 나랏일을 보던 경복궁 근정전에 일본 국기인 일장기가 걸려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0년 8월 대한 제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후 근정전은 일본군이 장악했다.


    앞서 일본은 1875년 ‘운요호’라는 일본 군함으로 강화도를 침략하여 1876년 강화도에서 불평등한 내용이 담긴 조약을 맺은 이후 미국, 영국 등 서양 여러 나라와 조약에서도 평등과는 거리가 멀어 한반도는 너도나도 넘보는 연못속의 물고기 형국이 되고 말았다.


    1894년에 안으로는 나라를 바르게 세우고 백성을 위해, 밖으로는 서양과 일본을 몰아내고자 하는 동학농민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일본은 이를 핑계로 경복궁을 강제로 점령하고 1894년 청일전쟁을 벌였다.


    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자 모든 백성은 분노하였고, 고종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막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군대를 동원하여 일국의 국모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896년 고종은 일본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갔다가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알리기 위하여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1897년 황제로 즉위하지만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노리던 일본은 1904년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하였다.


    일본은 조선 침략 계획대로 군대를 조선에 마음대로 파견할 수 있는 협약을 강제로 맺고(1904년 한일 의정서), 미국과 비밀협정(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영국과는 동맹(1905년 제2차 영일동맹)을 맺은 결과 한국에서 일본의 힘은 커져만 갔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특사인 이토 히로부미는 경운궁을 총칼로 무장한 일본 군인들이 몇 겹으로 둘러싸게 한 후 우리나라를 일본의 보호국으로 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제2차 한일협약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을사늑약에 의해 대한 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기고, 일본 왕이 임명한 통감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조약을 맺은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군부대신 이근택 이 다섯 명을 을사5적이라고 부르며 매국노로 낙인찍혔다.

    당시 대한 제국은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대표단을 파견하였지만 일본은 고종 황제를 내몰고 그의 아들 순종을 황제에 올린 후 대한 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1907년 일본인을 정부의 관리로 앉히는 조약을 강제로 맺었다.


    대한 제국의 외교권, 사법권을 차례로 빼앗고, 군대마저 해산시킨 일본은 1910년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만들고자 한국에 총독부를 세우고 데라우치를 총독으로 보냈다


    데라우치는 한국의 총리대신 이완용을 불러 ‘대한 제국 병합에관한 조약’이라는 문서를 통해‘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주며 준다.’순종 황제의 옥새를 찍어 오라고 했고 순종 황제가 이를 끝내 거부하자 총리대신 이완용이 황제를 대신한다는 위임장을 강제로 받아 ‘한일 병합’ 조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1910년 8월 22일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순간이자 2천만 동포들에게 처참한 식민지의시작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 건국 27대 519년 만에, 대한제국이 성립된 지 18년 만에 합병의 형식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1910년 8월 29일일본의 데라우치가 ‘한일 병합’ 조약을 발표한 날 한국은 사라져 버렸고 102년이 흐른 지금까지 일제의 잔재는 곳곳에서 그힘을 과시하고 있다.

    아래는 을사조약의 전문이다.

    일본국 황제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는 양국간에 특수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의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고자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이 선책이라고 확신하고 이에 양국간에 병합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하여 일본국 황제 폐하는 통감 테라우치 마사타케 자작을, 한국 황제폐하는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을 각각의 전권위원으로 임명한다.

    그러므로 위 전권위원은 합동 협의하고 아래의 제조를 협정한다.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에 기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


    제3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한국 황제폐하,황태자 전하 및 그 후비와 후예가 각기의 지위에 적응하여 상당한 존칭과 위엄 및 명예를 향유하게 하며 또 이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제4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 이외의 한국 황족 및 그 후에도 각기 상응하는 명예 및 대우를 향유하며 또 이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의 공급을 약속한다


    제5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훈공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히 표창에 적당하다고 인정된 자에게 영작을 수여하고 또 은급을 부여한다.


    제6조 일본국 정부는 전기 병합의 결과로 완전히 한국의 시정을 담당하고 동지에서 시행하는 법규를 준수하는 한인의 신체 및 재산을 충분히 보호해 주며 또 그들의 전체의 복리 증진을 도모한다.


    제7조 일본국 정부는 성의로써 충실하게 신제도를 하는한국인으로써 상당한 자격을 가진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한 한국에서의 일본제국 관리로 등용한다.


    제8조 본조약은 일본국 황제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서 공포일로부터 시행한다.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선 사람들

    최익현은 유학자를 중심으로 농민들이 뭉쳐 의병을 일으켰다. 또 태백산 호랑이로 유명한 신돌석은 평민 출신으로 의병을 이끌었다.


    1907년 8월 1일 통감부의 지시로 약 2만여 명의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당하자 박승환 참령은 이에 항의하고자 권총으로 자결하였고, 우리 군대는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전국의 의병들은 13도 창의군이라는 이름 아래 서울로 진격하였지만 이를 눈치 챈 일본군에 패하고 말았다. 1908년 11월 신돌석 의병장마저 믿었던 옛 부하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총으로 쏘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람을 기르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사람의 힘을 모으기 위해 애국 단체를 만들었다. 또 일본에 진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온 국민이 품삯을 모으고, 반지와 비녀를 모았으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일본의 식민지시절 그 참상은 불과 100년전 현실

    가난한 시대에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나는 장사(?)

    일본은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관리와 위안부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부 모집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최근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 데 이어 24일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시모토 시장은 이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간사이 네트워크’라는 단체가 오사카 시청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 철회와 사죄를 요구하는 공개 질문서를 제출하자 “군이 위안소를 공적으로 관리했다는 것과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고노 담화는 애매한 표현으로 일·한 관계를 악화시킨 최대의 원흉”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우익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군이 강제로 매춘시켰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며 “(고노 담화가)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강제성을)인정해 일·한 관계를 망쳤다.”고 비판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太?) 일본 도쿄도 지사가 24일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인이 강제로 종군위안부로 끌고 갔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며 "가난한 시대에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나는 장사였고 (위안부는)이를 피하지 않고 그 장사를 선택한 것"이라는 망언을 또다시 되풀이했다.


    일본 지지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시하라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지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당시)의 담화에 대해 "영문도 모른 채 (한국의 주장을)인정한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지적했다.

    조상이 저지른 죄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해야할 후손들이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태연히 보여주고있다.


    곳곳에 살육의 현장이 ...


    고성- 학살 후 장바닥에 효수,학살한 시체를 공개리에 가마솥에 끓여 골육을 보라고 강요

    원주-나무에 묶어 할복각피(割腹刻皮), 그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웃도록 강요

    평산-남녀 수 십명을 잡아 겨울에 얼음을 깨고 밀어 넣어 얼어 죽게 했다

    어떤 곳-주민들을 반신만 땅에 묻고, 풀 베듯 칼로 목을 쳤다


    연길현 와룡동 창동학교 교사 정기선 심문, 얼굴 가죽을 다 벗겨내고,눈알을 도려냄 2~3세 되는 유아를 창 끝에 꿰어 들고 다니기도 함


    한국통사(韓國痛史1920.10~1921.5(8개월간) 봉오동, 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37,000명 학살) 및 가옥,학교,교회 방화용정 장암동 주민을 교회에 집결시키고, 40대 이상 남자 33명 포박, 교회에 가두고 방화


    음악까지 일본 가락을?


    한국의 대표 근대 음악가인 홍난파 선생이 1938년 작곡한 '희망의 아침''봉선화', '고향의 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도 작곡했지만 이처럼 반민족적 내용의 친일음악도 많이 썼습니다.


    홍난파와 조두남, 현제명 등 친일작곡가들의 음악과 일본색이 짙은 가요 우리 노래로 알고 있는 '퐁당퐁당'이나 '학교종이 땡땡땡' 같은 동요도 일본식 5음계와 2박자 장단 등 일본음악의 특징이 강한 음악일본풍의 동요나 가요다.


    애국자의 말말말...


    윤봉길 의사 유서 중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쟁취하는 것이다역사(歷史)라는 것은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동포에게 보내는 글


    -백범 일지 중에서-



    처음에 내 성명을 묻던 놈이 밤이 새도록 쉬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그 놈들이 어떻게 제 나라의 일에 충성된 것인가를 알았다. “저놈은 이미 먹은 나라를 삭히려기에 밤을 새거늘 나는 제 나라를 찾으려는 일로 몇 번이나 밤을 새웠던고 하고 스스로 돌아보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고, 몸이 바늘 방석에 누운 것과 같아서 스스로 애국자인 줄 알고 있던 나도 기실 망국민의 근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니 눈물이 눈에 넘쳤다.”


    단재 신채호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귀에, 애국이란 말이 생생하게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그 눈에 나라(國)라는 글자가, 배회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손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봉사케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혈혈누누(血血淚淚)가 나라를 위해 솟구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응칠아(안중근 의사의 이름)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동포 모두의 분노를 세계 만방에 보여준 것이다.이 분노의 불길이 계속 타오르게 하려면 억울하더라도 상고를 하지 말고 우리민족의 대의를 위해 거룩한 죽음을 택해야 될 줄로 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이등박문을 죽인 너를 일본 놈들이 살려 줄 리가 있느냐?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에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서 상고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 기왕에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를 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기 바란다.

    안중근 유언

    나의 시체를 조국에 갖고 돌아가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감옥 묘지에 매장 인도될 것이니 하얼빈 공원 인근에 가매장 하라. 그리고 국권이 회복되는 날 고향 땅에 이장 토록 하여라.


    나는 천국에 가서도 국권 회복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너희도 나의 뜻을 동포들에게 전하여 동심일력하여 대한독립 만세를 큰 소리로 외쳐 천국까지 들리게 해주면 나도 용약하여 천상을 쏘다닐 것이다.

    끝나지 않은 한민족의 비극

    38선의 시작은 ?

    한민족이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외세에 휘둘리게 된 38선의 유래를 보면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945년 8월 11일 새벽 2시 딘 러스크와 미 국방성 작전국 정책과장 본스틸 대령이 국무, 국방, 해군 3성 조정 위원회(SWNCC)의 독촉을 받아 야간작업을 진행하여 미.소 점령구역 경계선으로 38도선을 30분 만에 획정했던 1945년판 National Geograpic이다.


    이후 5년뒤 조선땅은 피로 물든 6.25동란이 이어졌고 3년동안 밀고 당기는 동안 엄청난 민족적 비극을 겪고서야 67년이 지난 현재까지 처음 그선을 그대로 유지하고있다. 분단속에 누군가는 이득이 전제한 한민족의 수난시기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 없는 후한무치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억지주장의 극치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23일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를 요구한 데 이어 24일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영토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에도 시대부터 1905년 각의 결정으로 독도를 일본땅에 편입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또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근거 문헌이 애매하고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도 할 말이 있겠지만, 자국이 생각하는 정의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면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왕도"라고 말했다.

    일본의 독도넘보기 위험한 수준

    정부는 24일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히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 총리가)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독도 영유권 관련 기자회견 내용을 비판하는 논평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조 대변인은 "일본은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와 힘을 합쳐 한일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노다 총리는 이날 독도·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와 관련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면서 "국가의 영토 주권을 지키기 위해 단호한 태도로 냉정 침착하게 불퇴전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밝힌 바있다.


    우겨대는 독도 영유권 현주소는

    독도로 본적을 옮긴 일본인이 88명에 이른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5일 보도했다.지난 1월 79명에서 9명이 늘었다. 일본 정부가 지난 2005년 5월에 국회 답변에서 밝힌 숫자는 26명이었다.


    일본의 본적지는 지번이 있으면 현 거주지와 상관없이 일본이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 어디로든 옮길 수 있다.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이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심지어 산호초에 솟은 바위에 인공구조물을 쌓은 오키노토리(沖ノ鳥)에도 본적지를 옮긴 이들이 있다.


    본적 이전은 실제로는 호적을 관리하는 관청이 바뀐다는 의미다.한국에서는 독도로 본적을 옮긴 이가 2천700여명이고 독도에 거주하는 주민도 있다.

    독도의 `한일 공유론'논란빚은 김태우 통일연구원장

    양국 간 감정대립이 겹치면서 한-일 간 외교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가운데 김황식 국무총리는 24일 독도 주변 자원에 대한 `한일 공유론'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태우 통일연구원장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통일연구원장이 아닌 친일 연구원장과 같은데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느냐"는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김 원장은 23일 연구원 홈페이지에 한일 관계정상화를 위한 해결방안으로 "일본이 독도 육지와 인접 영해에 대한 한국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신 주변 해양 및 해저자원은 양국이 공유하는 방식을 협상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곧바로 삭제했다.


    김 원장은 "(홈페이지에 게재된) 온라인 시리즈는 학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게재하는 공간으로 통일연구원의 공식적인 정책을 발표하는 장치가 아니다"면서 공직자로서의 주장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 23일 연구원 홈페이지에 게재한 '한일 외교전쟁 조속히 매듭지어야'라는 기고문에서 "일본이 독도 육지와 인접 영해에 대한 한국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신 주변 해양 및 해저자원은 양국이 공유하는 방식을 협상할 수 있다. 그런 원칙에 따라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정을 위한 협상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독립기념관은 “독도가 한국 땅”임을 명확히 증명하는 일본 근대교과서 자료공개를 실시한다고 24일 전했다.이번에 공개되는 일본 교과서는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라고 한다.


    또한 정부기구(교육을 주관하는 문부성)에서 제작 및 검증한 자료에서 독도가 일본과 무관한 영토임을 확인하는 최초의 일본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극도로 흥분한 일본외무부상 송일국에게 "일본 오지마?"

    일본의 외무 부상(차관)이 독도 수영 횡단으로 화제를 모은 탤런트 송일국의 일본 방문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야마구치 쓰요시 외무 부상은 이날 한 민영방송에 출연해 독도 수영 행사에 참석한 송일국에 대해 “미안하지만 앞으로 일본에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면서 “그것이 일본의 국민감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보란 듯 일본의 위성TV인 BS닛폰과 BS재팬은 지난 21일 첫 방영하려던 송일국 주연의 한국 드라마 ‘신이라 불린 사나이’의 방송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에 대해 배우 송일국은 지난 24일 오후 9시20분께 자신의 트위터(?@songilkook)를 통해 "일본 외무차관 '송일국, 미안하지만 일본 못온다'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그냥 내 세 아들 이름이나 불러봅니다. 대한, 민국, 만세!" 라고 밝혔다.


    이는 이날 일본의 외무 차관 야마구치 쓰요시가 광복절 기념 독도 수영으로 화제를 모은 송일국을 향해 "앞으로 일본 방문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후 올린 글이다.


    지난 3월 세 쌍둥이를 품에 안은 송일국은 아들들의 이름을 대한, 민국, 만세로 지어 화제를 모았다.


    송일국은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가수 김장훈, 밴드 피아, 한국체육대 수영부 학생 40여명과 함께 경북 울진군 죽변-독도 간 직선거리 220㎞를 릴레이로 수영했다.


    늦었지만 잊지말자 국치일,

    민주통합당 백재현 의원(광명갑)은 지난 6일 경술국치일과 남북화해 기념일 등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국가기념일 등에 관한 법률안’과 ‘지방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고 밝혔다.


    국가기념일에 관한 법률안은 ‘경술국치일’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우리 국민이 근현대사를 바로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올바로 가늠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또 남북간의 민족 분단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정성으로 이뤄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하여 ‘남북화해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기 위해 마련했다. 국민의식 속에서도 지워지고 말았다.


    왜 국권이 상실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고, 단순한 뉘우침에서 나아가 국력신장과 독립정신, 그리고 세계열강에 진입하려는 구름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해자인 일본과는 이미 수교가 이뤄져 우호관계에 있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국치일은 꼭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국민적 관심으로 다시 기억하는 행사를 벌여 후세대에 이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건물에 조기 또는 반기를게양하고 검정색 넥타이를 착용하여 순국선열의 거룩함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한일전 축구보다 독도전 초읽기

    군당국이 9월 7일부터 독도방어훈련을 한다는 계획을 수립했으나 최종 실시 여부는 내주 관련부처 협의에서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한 소식통은 25일 "해군이 9월7일부터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독도방어훈련을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면서 "이 훈련의 최종 실시 여부는 내주 열리는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독도방어훈련은 연 2회 실시하는 통상적인 훈련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30~100여명 규모로 훈련에 참가했던 해병대는 헬기로 독도에 상륙하는 훈련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1함대사령관이 모든 과정을 주관, 통제한다.훈련에 참가하는 전력은 해군의 3200t급 한국형 구축함과 1800t급 호위함, 1200t급 잠수함, 해상초계기(P-3C), 3000t급 해경 경비함 등이 참가한다. 공군에서는 F-15K 전투기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 전력들은 가상 적성 선박이 독도 영해를 침범하는 것을 상정해 정보 입수 단계부터, 상황 전파, 식별을 거쳐 해군과 해경, 공군이 합동작전을 펼쳐 퇴각시키는 시나리오로 진행한다.


    군 관계자는 "최근에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군당국이 독도-이어도 함대 창설을 계획중이며 앞으로 한반도 주변 해역을 둘러싼 관련국들 간 '파워 게임'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은 올해 방위백서에서 독도의 관할부대까지 명기했다. 평화헌법에 근거해 국가간의 교전권(交戰權) 포기와 어떠한 전력도 가지지 않는다는 근거를 교묘히 없애고 독도에서 한일간 민간인들간에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에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방위백서에 명기한 독도관할부대는 교토부(京都府) 마이즈루(舞鶴)항에 주둔한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이다.

    [좌파세력의 태동과 변천과정 ] 한국좌파운동의 역사
    기획취재팀  |  press@bluetoday.net

       
     

    좌파세력의 태동과 변천과정 : 한국좌파운동의 역사 

    첫째, 제1기는 태동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세력 즉 공산주의세력이 태동된 것은 1920년대 무렵이다. 세계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인 1917년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은 연해주, 시베리아의 해외 한인들과 일본 유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고 이를 국내에 유포하면서 부터 좌파세력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코민테른의 지원아래 국제공산주의혁명 전사의 일원으로 조선의 해방과 조선에서의 공산주의 승리를 위해 투쟁해온 시기였다.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사는 크게 3단계로 아래와 같아 구분할 수 있다. ① 공산주의 사상 정립기(1920-1924): 상해파 고려공산당, 이루쿠츠크파 고려공산당 결성 ② 조선공산당 결성 및 활동기(1925-1928) ③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기(1929-1945)

     둘째, 제2기는 인민정권 수립투쟁기이다. 해방직후 공산주의운동은 조선공산당의 재건과 공히 인민정권 수립투쟁으로 상징된다. 이시기 공산주의세력들은 대다수 국민들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여망을 져버리고 소련의 지령에 따라 찬탁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하고 인민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각종 테러, 방화, 총파업, 유격전, 무장폭동 등을 자행하는 등, 어느 시기보다 좌파세력의 준동이 드센 시기였다. 

    해방이 되자 좌파세력들은 조선공산당의 재건작업에 즉각 착수했는데, 박헌영의 주도로 1945년 9월 11일 공식적으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다. 해방직후 남한에는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외에도 연안파의 지도를 받는 백남훈의 「조선신민당 남한지부」,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 및 군소그룹으로 좌파세력들이 분파되어 있었다. 이들 세력은 박헌영 주도로 기존 3당세력을 흡수하여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노동당」(약칭 : 남로당)을 결성하게 된다. 이 시기 좌파세력들은 1946년 7월 국립서울대학교 종합화안 반대투쟁(일명 국대안 사건), 9월 총파업, 10월 대구폭동사건, 1948년 2․7 폭동, 5․10 총선반대투쟁, 여순주둔군 반란사건, 제주 4․3 폭동 등 무장폭력투쟁을 일으키고, 지리산 등에서 무장유격투쟁을 전개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등의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하였다.

    셋째, 제3기(침체기)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전면 불법남침으로 야기된 6.25 남침전쟁(1950-53년)은 우리사회에서 좌파세력을 일소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좌파세력들은 거의 괴멸되었고 일부 잔존세력들은 잠복한 상태였다. 6.25 남침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사회엔 굳건한 반공체제가 들어서고 국민들도 확고한 반공이념으로 무장되어, 좌파세력들은 거의 발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휴전직후 부터 대남공작부서(노동당 연락부, 내무서 사회안전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등)를 재편하고 간첩을 남파시켜 지하당구축과 동조세력 포섭을 위한 집요한 공작을 진행시켰고, 그 결과 우리사회에는 소위 ‘혁명의 씨앗’이 서서히 발아하기 시작한다.

    네째, 제3기는 1960년대 지하활동기이다. 이 시기는 6.25남침전쟁의 결과 지하에 잠복해 있던 좌파세력과 1950년대 말 재발아 한 학원가의 의식화세력 등이 합류하여 지하활동으로 좌파운동의 맥을 이어 온 시기였다. 또한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의 결과 지하당이 구축되어 활동한 시기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64년 인혁당(인민혁명당)사건, 1967년 동백림간첩단사건, 1968년 통혁당(통일혁명당)사건, 1969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이 있다.

     다섯째, 제4기는 반독재민주화운동위장기이다. 1970년대는 1972년 10월 출범한 유신정권에 대항하여 좌파세력들이 사회주의 건설목표를 은닉한 채 ‘반독재민주화투쟁’의 기치를 내걸면서 세력 확산을 기한 시기였다. 또한 이시기 좌파운동은 정치문제와 학내문제 외에 노동현장과 농촌, 빈민운동 등에 까지 직접 투쟁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 계기는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사건(1970년)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후 좌파운동은 민주화운동(정치문제)뿐만 아니라 민중운동(우리사회 구석구석의 소외세력의 견인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한편 좌파세력들은 공개적으로는 일반 학생, 지식인 및 국민대중의 순수한 민주화열망을 수단삼아 정권타도를 실현하기 위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전개하면서 지하에서는 좌경의식화공작에 주력하고 북한과의 연계 속에 전국적 규모의 전위조직 결성을 시도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민주화투쟁의 행동세력이었던 학생운동세력의 성향은 지하의식화 그룹에 참여한 핵심세력만 좌익의식화된 상태였고, 유신반대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일반 학생들은 좌경혁명론에 동조한 상태는 아니었다. 핵심세력들은 여전히 일반학생들에겐 그들의 사회주의지향성을 은닉한 채, ‘민주화투쟁’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여섯째, 제6기는 사회주의지향 표출기이다. 1980년대는 한국좌파운동사에서 양적․질적으로 일대 전환을 가져온 시기이다. 그 이유는 1979년 10․26 사건이후 1980년 초 소위 서울의 봄과 5․17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1980년대 중반이후 좌파운동은 과거와는 달리 급속히 전국 규모화하여 그 세력이 양적으로 확대되었고, 질적으로는 사회주의운동성향이 단순한 민주화투쟁에서 공개적으로 친북․계급투쟁성을 표방하며 사회주의지향 투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남한판 사회주의혁명론 정립을 위한 치열한 사상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는 1980년초 ‘무학(무림-학림)논쟁’에서부터 시작하여 1982년 ‘야비-전망논쟁’, ‘깃발과 반깃발논쟁’(MC-MT논쟁), 1985년의 ‘C-N-P논쟁’, 1986년의 ‘자민투와 민민투논쟁(NL-CA논쟁)’ 1989년 ‘NL-ND-PD 논쟁’ 등으로 대표된다. 1980년대 중반 운동권은 자민투계와 민민투계로 양분되어 공개적인 좌경노선을 표방하며 치열한 사상투쟁을 전개했고, 이들 세력이 분파되어 현재 자민투계는 NL주사파계열로, 민민투계열은 NDR파, PDR파, 트로츠키파, NL비주사파 등 맑스레닌계열로 계승되었다.

     특히 주사파계열은 「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거쳐 1987년 8월 한국 대부분의 대학과 전문대학이 포함된 최대의 학생운동단체인 「전대협」(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을 결성하게 된다. 「전대협」은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수용하여 한국사회변혁 운동론을 ‘자주, 민주, 통일’ 운동노선으로 정립하고 친북편향의 각종 투쟁을 전개해오며 1980년 후반기 사회주의운동을 명실상부하게 주도해 왔다.

     반면 민민투계는 각종 정세관의 차이로 CA(제헌의회)그룹, CPC(헌법제정민중회의), CPA(헌법제정민중의회)로 분파되었고, 특히 CA그룹은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을 거치면서 다수파와 소수파로 분열되어 다수파 A그룹은 NL비주사파를, 다수파중 B그룹은 제독PD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CPA, CPC그룹은 오늘날 PD(주로 제파 PD)파로 계승되고 있는 등 매우 복잡한 분파과정을 연출한바 있다.

     일곱째, 제7기는 직업혁명가 활동기이다. 1990년대의 운동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소수정예의 전문 직업혁명가가 등장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핵심세력(전위세력)이 완전히 직업혁명화한 시기였다. 또한 활동무대가 1970, 80년대의 학원계와 노동계에서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확산되어, 우리내부에 이른바 ‘좌파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고 평가되는 시기이다. 또한 친북세력인 NL주사파 이외에도 북한과 연계되지 않은 자생적인 사회주의세력(맑스레닌계 : NDR, PDR, 트로츠키파 등)들이 대거 등장하여 영향력을 발휘한 시기이다. 이시기 운동권은 ① 이론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무장되었으며 ② 조직규모가 확대되었으며, ③ 간첩을 능가하는 철저한 조직보위책을 운용하고 있고 ④ 투쟁양상도 합법, 반합법, 비합법투쟁을 적절히 배합구사하고 있고 ⑤ 투쟁영역도 북한 및 국제 맑시즘조직과 직접 연계하는 등 비약적 변화를 가져왔다. 

    여덟째, 2000년대의 특징은 좌파세력이 제도권 및 정부사이드 등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안착하여 좌파영향력을 국가전반에 확산시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좌파세력들은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출범에 편승하여, 그들의 친북․사회주의지향 활동을 민주화운동이니, 민주개혁운동, 평화애호운동 등으로 미화하며 제도정치권 및 정부사이드에 대거 진출하여 이른바 좌파의 영향력을 정부정책 및 우리사회 전반에 확산시켜 온 시기이다. 

    실제 좌파정부 소속의 민주운동보상심의위, 의문사진상규명위, 각 부처 산하 과거사위 등을 통해, 남파간첩과 빨치산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고, 독일거주 거물급 간첩 송두율이 해외의 양심적인 민주화운동가로 미화되고, 사회주의혁명 등 반국가이적활동을 하다가 실정법을 위반하고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인사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여 명예회복과 더불어 거액의 보상금까지 수령하며 호위호식하고 있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북한과 연대한 좌파세력들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 공안기관(국정원, 경찰 보안수사대 , 기무사 등)의 무력화 공세를 펼치며 안보관련시스템의 약화 및 우리사회의 중추세력인 자유민주진영(보수우파세력)의 무력화를 시도한바 있다.


    좌파세력의 계파별 현황 


    현재 친북․좌파운동권으로 대표되는 국내 좌파세력은 매우 복잡하게 分派되어 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크게 ① 북한노선을 추종하고 있는 NL주사파와 ② 맑스레닌노선를 추종하는 PDR파 ③ 트로츠키노선을 추종하는 트로츠키파 ④ NL-PD의 혼합체인 21C파 및 ⑤ 기타 小 分派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NL주사파란 기본적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을 지칭하는데 이들은 북한의 대남혁명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에 입각하여 남한혁명을 성취하려는 세력이다. 주로 NLPDR파, NL(민족해방)파, NL1, NL우파, 주사파, 친북운동세력 또는 민족적 유물론자, 종북세력 등으로 불리워 진다. 대표적 조직으로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집행부,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한대련」(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연대」,「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한국청년단체연합」 및 친북통일전선체격인 「한국진보연대」등이 활동 중이다.

    둘째, PDR파란 민중민주주의혁명파(PDR : People‘s Democracy Revolution)라는 의미로, 소위 PDR론에 의해 한국을 사회주의화하려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파는 크게 ① 제독PD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혁명)파와 ② 제파PD (반제반파쇼 민중민주주의혁명)파로 나누어 진다.

     현재 제독PD파는 NL주사파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수의 세력이 학원계와 노동계, 문화예술계, 학계 등에 포진해 있다. 현재 활동중인 대표적인 PD파 조직을 들면, 대중조직으로 「노동자의 힘」, 「한노정연」(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학생운동체로는 「학생행동연대」(SAS), 「인학련」(인권의 정치학생연합), 「대학생사람연대」 등이 있다.

     셋째, 트로츠키파란 러시아의 공산혁명가인 트로츠키(L. Trotsky)의 혁명노선(영구혁명론)에 입각하여 한국혁명을 획책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파의 기본이념은 트로츠키즘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세력은 동구사회주의권 몰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트로츠키즘을 이의 대안으로 조심스럽게 채택하였다. 동구권에 이어 소련공산당의 붕괴가 기정사실로 나타나자 이들 세력은 기존 사회주의권을 스탈린주의에 매몰된 가짜사회주의라고 규정하고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입각한 국제사회주의혁명만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며 현재의 트로츠키파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활동중인 트로츠키계열의 조직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 「사학련」(사회주의학생연합), 「사노련」(사회주의노동자연합), 「다함께」 등이 있다.

     넷째, 21C(세기)파는 1993년 말경 NL과 PD의 대립구도에 염증을 느낀 세력들이 ‘인간적 민주적 사회주의 실현’의 기치를 들고 독자노선을 선언하며 형성한 학생운동그룹인데, 이들 세력 역시 맑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의 대표적인 조직은 「21C 진보학생연합」이다.

                            

    김지하 시인;

     

    쓸만한 자 없이 모조리 사기꾼

     

    왜 좌파 정면 비판 나섰나
     
                                                          "쓸만한 자 없이 모조리 사기꾼 
                                                        盧정권때 그들의 본질 똑똑히 봐" 
    
    
                                     ● 김지하 시인, 왜 좌파 정면 비판 나섰나 
    
    
    김지하 시인은 9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발표한 글 '좌익에 묻는다'를 
    통해 한국 사회의 '극좌' 세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 시인은 시청 앞 촛불시위를 정권 탈취 운동에 이용하려고 한 일부 
    좌파 운동가들을 '극좌'라고 지칭하면서 "진보는 극좌가 아니다. 
    더욱이 나 같은 몽양계 중도 진보는 극좌와는 거리가 멀다"고 선언했다. 
    김지하 시인은 지난 7일부터 '김지하의 촛불을 생각한다'를 프레시안에 
    매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좌우 양극단을 버리되 중간도 아닌 것. 
    전체적인 차원 변화의 참 중도"를 향한 최근 생각을 설파하고 있다. 
    이미 생명평화사상운동을 실천해 온 김 시인이 '참 중도'론을 제시한 까닭은 
    촛불시위로 인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양극단 현상을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것이다. 
    김 시인은 "촛불의 생명과 평화의 길 몇 개월 간에 이미 좌우 양쪽의 
    두 극단의 오류가 얼굴을 드러낸 바 있다"고 지적해왔다. 
    김 시인은 특히 촛불시위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한 일부 세력을 가리켜 프랑스어 
    '까쇠'(Casseur)라고 부르면서,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복면을 쓰고 끼어들어 
    이렇게 저렇게 난장판을 만드는 자를 말하는 것"이라며 
    "나는 이것을 약간 비틀어 '까부수고(파괴) 까불고(난동) 까발리는(선동) 것을 
    본업으로 하는 쇠'(마당쇠의 그 쇠)를 요약한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김 시인은 "그러나 그런 좌파 '까쇠'들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리며 
    폭력적 진압 사유와 현 정부의 엉터리 독단을 합리화시켜 세상을 
    제 멋대로 하려 드는 우파 집단 역시 나에겐 똑같은 '까쇠'로 보인다"고 말했다. 
    1970년대 현실을 판소리풍으로 풍자한 담시 '오적'으로 투옥되면서 
    민주화 운동의 수난을 상징했던 김 시인은 1980년대 이후 
    생태 환경 운동으로 관심을 돌리면서 생명 사상을 제창했고,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치사사건으로 운동권의 분신이 이어지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해 극렬 운동권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김 시인은 "(극렬 좌파들은) 감옥에 간 나를 철두철미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불굴의 혁명투사로 만들어 그 비극적 명성으로 저희들의 탈권 기획을 성사시키려 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처형당하도록 만들어 국제적인 선전전에 이용해 먹으려고 했고, 
    저희 말을 안 듣자 배신자, 변절자로 몰아 모략중상을 상시화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심지어 어떤 선배란 자는 술에 취해서 왈. '지하는 감옥에서 죽어 버렸어야 해! 
    ' 이젠 웃음조차도 안 난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그들과) 수십 년을 호형호제하던 사이"라고 털어놓으며, 
    "그들은 막상 횃불이 아닌 촛불을 위장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라. 
    이용해 먹으려 했던 것"이라고 질타했다. 
    1970년대 고위 공무원과 재벌, 군 장성들을 비판한 담시 '오적'을 썼던 
    김 시인은 이번엔 노무현 전(前)정부를 향해 신랄한 풍자 정신을 발휘했다. 
    "나는 그들의 본질을 지난 5년 노 정권 당시에 똑똑히 알았다. 
    더 이상 쓸만한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모조리 사기꾼이다. 
    한마디 말없이 다 보았다. 날치고 설치고 까불어대는 자들의 
    속치마 고쟁이(요즘에도 그런 게 있나? 있다) ××속까지 다 보아버렸다. 
    ×이 몇 개인지도 다 안다. 어느 날은 대구 갔다와, 차 속에서 
    자신만만한 운동권 출신 고급 관료 둘이 대구에 좋은 
    골프장이 있어 골프 치러 갔다 온다고 뻔뻔하게 떠벌리는, 
    술로 홍조를 띤 상판을 본 일도 있다. 
    그날은 공휴일도, 일요일도 토요일도 아니었다"고 적었다. 
    2005년부터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을 맡아 저술과 강연을 통해 
    생태환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 중인 김 시인은 최근 연작시 
    '못난 시'를 발표하면서 시적(詩的) 이력에 새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이제와/ 진종일 앉아/ 멍청하게 멍청하게 후천개벽을 생각한다// 
    지금 안 와도 좋고/ 지금 오면 더 좋고…'라는 '못난 시' 연작을 통해 
    김 시인은 비폭력에 의한 현실변혁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이번 글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철학적 배경을 설명한 김 시인은 
    오늘날 좌파 운동권의 문제점이 좌파 이념의 
    한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유물론은 더 이상 철학 구실도 못한다. 
    인도 철학자 사르카르(아난무르타)는 
    유물론처럼 오류투성이 과학은 더 없다고 개탄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그 출생 때부터 
    과학을 앞세워서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과학이면 과학일수록 실험실 운명을 못 벗어난다.(…) 
    변증법은 더 이상 정확한 논리가 아니다.(…) 결국, 
    마르크스의 이론은 한때 덧없는 
    민중 정열의 서정시였다는 결론이 된다." ▣ 
    "일부 좌파, 촛불을 횃불로 바꾸려했다" 
    ● 김지하, 인터넷신문 기고 
    "지난 5년 집권 뒤 돈 맛·권력 맛 봐… 
    정치 개떡같이 하고 나라경제 몽땅 망쳐" 
    김지하(金芝河) 시인이 지난 봄·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주도한 일부 좌파 세력을 가리켜 
    "촛불을 횃불로 바꾸려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김 시인은 "4월 29일 청계광장에서 어린이·청소년·여성들이 가만히 
    촛불을 켰을 때 비웃음을 일삼던 정의의 홍길동이들이 6월 10일 
    전후로 끼어들기 시작해 6월 29일에는 완연히 
    촛불을 횃불로 바꾸어 버리려 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9일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 '좌익에 묻는다'를 통해 
    "촛불은 옛 우리 할머니들처럼 간절한 소망을 조용히 
    뒤뜰에 맑은 물 한 그릇 떠놓고 비는 것이요, 
    횃불은 '불현당'(불켠당·明火賊)이 높이 쳐들어 
    부잣집을 덮치면서 허공에 지글지글 타오르던 것이다"라며 
    "촛불은 후천개벽으로 가려는 길이지만 횃불은 정권 탈취를 위한 
    혁명에의 몸부림이다.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 시인은 자신이 상중(喪中)일 때 조문을 온 좌파 문화운동가들이 
    "우리가 시청 광장에서 문화행동을 조직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몹시 불쾌했다. '문화행동'을 '조직했다'? 
    조직했다? 문화를?"이라고 반문하며 쓴소리를 뱉었다. 
    '조직'이란 '사기 친다'는 뜻도 된다고 한 김 시인은 
    "그들이 그 예쁘고 애리애리한 어린이, 청소년, 여성들, 
    쓸쓸한 외톨이 대중들의 소담한 촛불을 왜가리같이 악써대며 
    '씨×!' '×같이!' '죽여라!' '밟아라' '×어 죽여라!' 
    '때려 부숴라!'의 그 흉흉칙칙한 구정물 바다에 몰아넣고 횃불을 치켜올렸다는 것, 
    그것을 또 자랑처럼 으쓱대며 떠벌리는 것. 너무 추(醜)했다"고 비난했다. 
    김 시인은 좌파 운동가들을 향해 "그들이 왜 이리 됐는가"라고 물으면서 
    "지난 5년 집권 뒤부터다. 돈맛, 권력 맛을 본 뒤부터다. 
    정치는 개떡으로 하면서 만판으로 저희끼리만 즐겼던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일부 좌파 단체의 독직사건을 염두에 둔 듯 "못 속인다. 
    이제 다 드러난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 어떤 놈은 공적인 문화예산 가운데서 상당액수를 제 개인 
    빚 갚는다며 인 마이 포켓 한 놈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진보는 극좌가 아니다"고 한 김 시인은 "나는 그들의 본질을 
    지난 5년 노 정권 당시에 똑똑히 알았다. 
    마르크스 자본론은 아예 읽은 일도 없고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자들이 
    정권을 틀어쥐고 앉아 왔다 갔다 
    나라 경제를 몽땅 망쳤다"고 비판했다. ▣ 
    


     

    從北문제를 3페이지로 요약하면...
    이런 亡國的 현상은 선동적 정치, 反국가적 교육, 게으른 기자들의 합작품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문명건설 세력과 파괴세력의 대결
      
       영국의 역사학자 A.J.P. 테일러는 이런 말을 하였다.
       "文明은 보통사람들의 文明化된 습관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다. 현실에 있어서는 보통사람들이 통치자보다도 더 교양 있고 침착했다."
      
       文明(civilization)은 생활을 행복하게, 인간을 교양 있게 만드는 물질적, 정신적 유산과 자산의 總合이다. 미풍양속, 법치주의(경찰, 검찰, 재판소 등 포함), 의료보험, 아름다운 언어, 議會민주제도, 3權 분립, 언론자유, 私有재산권, 선거의 자유, 예술, 학문, 종교, 건전한 교과서, 각종 복지제도는 文明을 구성하는 정신적-정치적 요소들이다. 도로, 항만, 위대한 건축물, 통신시설, 방송, 신문, 병원, 119, 한강 고수부지, 산책길, 오염방지 시설, 대기업과 공장 등은 文明을 구성하는 경제적, 물질적 요소들이다.
       文明은 代를 이은 축적의 産物이다. 정치인이나 통치자의 명령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성실한 생활과 천재들의 창조적 활동이 쌓여서 빚어낸 작품이다. 文明국가에 살면 예측가능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여유를 가지며 예술과 문화를 즐길 수 있다. 文明국가는 개인의 존엄성을 믿기에 罪를 짓지 않으면 그 누구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고 불가침의 기본권과 私的 공간을 지킬 수 있다. 文明국가에선 개인들이 크든 작든 자신만의 王國을 가진다. 국민 개개인이 '나라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행복과 교양의 근본이다.
      
       文明의 반대말은 野蠻(야만)이다. 야만집단은, 인간에게 교양을 갖추고,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자유와 수단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런 행복과 자유의 기반을 파괴한다. 文明의 기초는 생명, 자유, 私有재산의 존중이다. 지금 기준으론 자유민주주의 정신이다. 사회주의 독재 세력은 문명의 기초인 생명, 자유, 재산, 전통, 법치를 경멸하고 말살하므로 文明파괴 집단이다. 이들은 소수를 위하여 다수를 희생시킨다. 문명국가는 국민을 차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文明국가이고 대한민국 主流세력은 文明건설자들이다. 북한정권은 文明파괴 집단, 즉 야만집단이다. 남한의 從北세력은 야만추종세력이고 惡靈숭배집단이다. 이들은 文明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악령을 추종하는 정신이 병든 자들이다. 남북한의 대결은 본질적으로 文明과 野蠻의 대결이다. 북한정권과 從北세력을 '문명파괴세력'이나 '야만집단'으로 규정한다.
      
       文明은 쌓이고, 이어져야 한다. 이는 건전한 역사 교육에 의하여 가능하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역사 교과서는 건전하고 진실되고 긍정적으로 써야 한다.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公證해준 反대한민국-親북한정권적 내용의 한국사 교과서는 文明파괴의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文明파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못된 짓이다. 인간의 행복과 교양, 그리고 생명, 자유, 재산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從北 감별-퇴치법 메모
      
       *한반도의 이념-무장대결의 본질: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한반도는 武力-이념 戰場이다. 중립지대는 없다.
      
       1. 從北의 목적: 스스로 민주세력으로 위장,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뒤엎고, 從北 독재체제를 수립, 북한정권과 연방제로 (赤化) 통일한다.
      
       2. 從北의 전술: 계급투쟁설에 입각, 인간의 증오심과 이기심을 자극,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3. 從北의 對北觀: 북한정권을 계급혁명의 사령부로 모시거나 대한민국 체제를 변혁시키는 데 협력자로 생각한다.
      
       4. 從北의 행태: 기성질서, 즉 法治-전통-예절-상식-진실을 파괴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무로 여긴다. 대한민국을 불리하게, 敵(북한정권)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하여 진실을 경멸하고 무시하며, 그리하여 도덕성의 근거를 부수고, 法治를 파괴하는 깽판을 통하여 국가체제를 흔들고, 낭비적 복지정책으로 국가財政을 무너뜨리고, 국가正體性을 파괴하여 安保의 기반인 애국심과 적개심을 허문다. 從北에 예의를 갖춰라, 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사기꾼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격이다. 깽판, 오만, 저질, 반역, 거짓과 선동은 이들의 人格이고 전략이다. 從北은 절대로 자신의 반역적 정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항상 진보, 민주로 위장한다. 이 위장막이 없어지면 망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5. 從北감별법: 민주, 진보, 통일, 개혁, 민족, 자주, 인권, 평등을 내세우나 反민주-反통일-反개혁-反민족의 북한정권을 비판하지 못하므로 이 점을 폭로해야 한다. 북한정권이 1990년대 후반 아래 다섯 가지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이들에게 지령했다. 세습-인권문제-주체사상-사회주의 체제-지도자. 북한이 가난하다는 정도의 지엽적 비판은 하되 이때도 남한을 함께 비판하는 兩非論을 쓴다.
      
       6. 從北의 구체적 활동 사례: 대한민국을 약화시키고 북한정권을 강화시키거나 유리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한미군 철수, 韓美동맹 해체, 일방적 減軍, 해외파병 금지,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 從北성향 세력에 의한 軍 통제 제도화, 연합사 해체, 천안함 폭침 북한 소행 부정, 北의 핵개발 비호, 제주해군기지 건설 방해 등은 對北안보체제를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민주당과 진보당이 하고 있는 것들이다. 낭비적 복지공약, 富者 1% 공격, 대기업 규제, 對北퍼주기 등은 한국의 경제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간첩을 민주화운동가로 세탁해주는 민보상위 설치,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으로 간첩 조기 석방 및 복권 등은 북한 공작원들의 파괴 활동을 돕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민주국가에선 안보가 헌법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점을 간파, 헌법의 체제수호장치에 구멍을 내어 종북반역자들이 멋대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 한다.
      
       7. 從北의 역사관: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합법국가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성공과 성취를 부정하고 북한정권의 실패를 변호한다. 대한민국의 성공을 주도한 이승만, 박정희, 기업인, 國軍, 그리고 대한민국의 성공을 도와준 미국을 표적으로 삼아 집중 공격한다.
      
       8. 종북판별법 實例: 천안함 폭침 北 소행 부정자, 韓美동맹 해체-주한美軍 철수론자,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론자, 국가보안법폐지론자, 대한민국 建國의 정당성 부정자, 태극기와 애국가를 조롱하는 자, 북한人權문제-김일성 3代 등을 비판하지 못하면서 이승만 박정희 대기업 미국 비방에 열을 올리는 자들이 從北이다. 송두율식 내재적 접근법 운운 하면서 억지를 합리화하려 한다.
      
       9. 從北퇴치법: 이들의 正體를 드러내 유권자들을 각성시키면 된다. 이들이 진보가 아니고 守舊반동, 민주가 아니라 독재, 민족이 아니라 事大, 평화가 아니라 戰犯편, 평등이 아니라 착취, 인권이 아니라 학살자편, 개혁세력이 아니라 부패분자들임을 폭로하면 국민들이 진실에 눈을 뜨고 투표로 응징할 것이다. 아울러 헌법의 칼을 뽑아 종북정당을 해산시키고, 犯法행위를 엄단한다. 궁극적으로는 종북좌파정권이 만든 從北구조(민보상위원회 등)를 해체한다. 국민적, 국가적, 헌법적 결단으로 지속적으로, 공격적으로, 합법적으로 추진한다. 결국 從北의 사령탑인 북한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 從北이 무너지면 北이, 北이 무너지면 從北이 끝난다. 終北해야 從北이 사라진다.
      
       10. 從北퇴치의 효과: 증오와 분열과 깽판과 선동집단이 사라지면 대한민국은 공동체의 단결을 강화, 경제, 법치, 안보, 국민교양 면에서 정상성을 되찾아 一流국가로 매진할 수 있게 된다. 노사분규, 범죄발생률, 부패사건, 안보위협이 줄어들고 경제성장률은 증대할 것이다. '종북癌(암)'을 치유하면 건강이 회복되는 것과 같다.
      
       *국회가 變故를 일으키지 않도록 국민들이 감시해야
      
       민통당 19代 국회의원 당선자의 약35%가 前科者(전과자), 從北(종북) 통진당은 62%가 전과자이고, 민통당 당선자들의 兵役미필률은 25%이다. 새누리당의 전과율은 4.7%로서 민통당의 7분의 1 정도이다. 이처럼 종북노선의 정당일수록 전과율인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從北세력은 대한민국의 法治(법치)를 파괴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군대에 가지 않고 보안법과 집시법을 어기는 것이 훈장처럼 여겨지는 집단에선 미필률과 前科率(전과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從北좌파 정당 의원들(140명)의 18%(26명)가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자들이고, 反국가단체, 利敵단체 출신 국회의원이 與野 모두 19명이나 되는 19代 국회가 난장판이 되지 않는다면 이것도 하나의 기적일 것이다.
      
       아래 22명의 국회의원(19명)과 정당인들은 反국가단체 및 利敵단체(김일성추종세력) 등에 가담하였던 이들이다. 최기영, 강종헌은 간첩으로 복역한 인물이다. 이들을 연대별로 분류하면 반세기에 걸친다. 종북좌익 조직과 인맥의 끈질긴 흐름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反국가적-反헌법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서독 같았으면 이런 이들은 출마는커녕 공직자가 될 수 없다. 이렇게 위험한 인물들을 이렇게 많이 당선시켜 국회에 들어가도록 허용한 유권자들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19代 국회가 난장판이 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국민들의 각성과 감시, 그리고 북한정권 무너뜨리기이다.
      
       ▲1960년대 사건: 북한지하당인 통일혁명당 사건 연루자 한명숙(민주당 의원)
       ▲1970년대 사건: 좌익혁명 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연루자 이학영(민주당 의원), 이재오(새누리당 의원). 재일교포 간첩 사건 主犯 강종헌(진보당 비례대표 대기 후보)
       ▲1980년대 사건: 利敵단체 三民鬪委(삼민투위) 연루자 오병윤(진보당 의원), 강기정·김경협(민주당 의원). 反국가단체 CA그룹 사건 연루 민병두(민주당 의원). 利敵단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 김태년, 박홍근, 이인영, 임수경, 오영식, 우상호, 정청래, 최재성(민주당 의원). 김일성 추종 주사파 계열 利敵단체인 구국학생연맹(구학연) 출신 김기식(민주당 의원)
       ▲1990년대 사건: 反국가단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연루자 이석기(진보당 의원). 反국가단체 남한사회주의자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연루자 은수미(민주당 의원). 利敵단체 한총련 출신 황선(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2000년대 사건: 利敵단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신 김재연(진보당 의원). 일심회 사건 간첩 출신 최기영(진보당 정책기획실장), 일심회 사건 핵심 포섭대상자 김제남(4.11총선 진보당 비례대표 당선)
      
       천안함 爆沈이 북한소행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이 유권자들중 약30%이다. 이들이 투표장에 나가서 뽑으려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사기꾼, 반역자, 깽판분자일 가능성이 있다. 高學歷者일수록 천안함 폭침 부정자들이 많다. 이런 亡國的 현상은 선동적 정치, 反국가적 교육, 게으른 기자들의 합작품이다.

    뉴스안보
    이적단체? 왜 박멸해야 할까?이적단체 해산법 제정의 필요성
    블루투데이 기획팀  |  blue@bluetoday.n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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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적단체란?

    국가보안법 (國家保安法) 에서 규정하는 ‛이적단체'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 선전,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한 단체를 말한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란 북한을 말한다.)
    ‛이적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 국가보안법상에 반국가단체

    1)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 할 목적이 있을것
    2) 결사 또는 집단일것
    3) 지휘통솔체제를 갖출 것

    ▲ 반국가단체는?

    위 3개의 성립요건에 만족하는 곳으로 볼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며 그 외 판례로 인정된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로는 20여개 단체가 있다.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재일조선인총연합(조총련),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한민통의 후신),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전국민주학생연맹-전국민주노동자연맹, 제헌의회그룹(CA), 자주민주통일그룹,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1995년 위원회(애국동맹), 구국전위 등

    ※ 이적단체는 다른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면 이적단체에 해당 됨.

    2. 이적단체해산법 신설의 필요성

    법원이 이적(利敵)단체로 규정했음에도 해당 단체는 공공연하게 친북·종북(親北從北)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다 싸잡아도 한줌도 안 되는 친미 사대 매국 세력들의 반(反)역사적 파쇼적 만행은 지금 온 민족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이는 수 년전 가을 대법원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판결받은 한 시민단체의 성명이다.

    대법원의 판결조차 부정하는 그들의 표현을 두고 일반 국민에게 누구의 말이냐고 묻는다면 북한의 주장일 것이라는 대답이 절대다수 일 것이다.

    이 단체의 강령을 보면 ‘반미 민족자주운동으로 미군을 하루빨리 철거하고, 미국의 배양식을 완전히 제거한다’고 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에 앞장선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단체의 강령이란 것에는 민족(또는 민중)과 자주라는 용어를 가장 앞세워 반미와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민족을 앞세워 오히려 민족을 분열시키는 북한 정권의 주장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민족이란 용어로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순수한 가치를 왜곡하는 저의는 북한의 이른바 주체사상을 미화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기 위한 것으로, 북한 정권의 언사(言辭)를 복창하는 반대한민국 행태일 뿐인 것이다.

    최근에는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을 자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은 대법원으로부터 반국가 단체로 판결 받았던 민족민주혁명당, 일명 민혁당의 핵심 맴버였으며, 민주통합당의 임수경 의원은 한총련 전신인 전대협 출신으로서 무단 방북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북한체제를 선전했던 자들이 국회로 진입하고 있다.

    한 탈북대학생에게 쏫아낸 탈북자 비하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근본도 없는 XX들이 굴러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 “하태경하고 북한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 하고 있다지?”, “하태경 그 변절자 XX 내 손으로 죽여버릴거야.” “하태경 그 개XX, 진짜 변절자 XX야”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어 이 변절자 XX들아” 라고 막말울 퍼 부었다.

    1995년 정식 출범한 범민련 남측본부는 1997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단체로 왕재산 간첩단 사건에도 간부진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속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등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운영중인 인터넷 사이트에도 김정일과 김정은을 찬양하는 북한의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으며 얼마전에는 종북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어 이적 표현물을 무분별하게 확산시킴으로써 많은 우려를 낳은 바 있다.

    최근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인 노수희씨가 김정일 사망 100일 추모행사 참석을 위해 밀입북을 강행,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고 북한의 체제선전용으로 활용되다가 돌아오는 웃지못할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또한 범민련 남측본부 편집국장인 최동진씨는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서적 등 이적표현물 수백점을 소지·반포한 혐의와 법정에서 판결에 항의하며 판사에게 “이 X새끼야, 너 죽을줄 알아. 미국놈의 개야” 라고 욕설을 퍼붓고 난동을 피운 혐의로 구속기소 된 충격적인 사건까지 있었다.

    문제는 우리 실정법상 엄연한 불법단체임에도 현재로선 합법적으로 해산을 명령할 방법이 없어 범민련 남측본부를 포함하여 수 많은 이적단체들이 지금처럼 버젓이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종북 단체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현행법상으로는 이들 단체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들을 해산시킬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내에서 친북 정권적 이적단체의 활동이 더 이상 범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해당 단체를 해산시키거나 그 활동을 차단할 수 있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

    북한 주민을 압살하는 북한 지배계층의 주장을 따라하는 이적단체의 의미를 분명히 짚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입법적 대책이 절실한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적단체가 대한민국의 법적 테두리 내에서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적단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상 불법 이적단체를 강제로 해산시키거나 제재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무단방북을 하여 3개월 가까이 북한에 머물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왕조를 찬양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발언을 일삼은 범민련 노수희씨 같은 경우에도 범민련이 현재 이적단체인데다 이적활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상 해산 법률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해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몇 년 전부터 이에 대처할 입법이 절실하다는 사회 일각의 요구가 제기돼 왔으나 현 야당과 좌파 시민단체의 반발에 밀려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결사법(Vereinsgesets)에서 지방행정청장 또는 내무장관이 헌법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한 단체에 해산을 명령하거나 재산압류 등 활동을 금지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일본의 파괴활동금지법에도 내란·외환죄를 교사·선동하거나, 관련 문서를 인쇄·배포·게시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등 비슷한 조항이 있다.

    해외의 이러한 유사 입법례에 따라 한국도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반국가, 이적단체를 해산하여 국가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이들 단체를 강제해산 및 재산압류, 구성원의 단체활동 금지 및 종북선전 홈페이지, 사무실 등을 강제 폐쇄 할 수 있는 내용 등을 포함한 특별법의 조기 제정이 긴요하다. 이렇듯 법원 판결로 이적단체를 강제 해산시키거나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 물론 그러한 결정은 법에 따라 엄정히 이뤄져야 하며, 헌법상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념의 과잉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배경은 휴전선 이북에서 주민에게 압제를 가하는 독존적 폭력정권이 있고, 그와 궤를 같이하는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단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짧지 않은 기간에 그들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해 왔지만, 그 결과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북한을 감싸는 종북 단체의 준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그 하나의 방안은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이적단체로 규정한 단체를 강제 해산시킬 수 있는 입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이적단체 현황

    <대법원 (大法院)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단체 현황>

    대법원 선고시기

    법원에서 이적단체로 규정한 단체

    1992

    · 전대협 정책위원회

    ·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

    1993

    · 재미한국 청년연합

    · 범청학련

    1994

    · 남한사회주의 과학원

    · 범민련 해외 본부

    1996

    · 사회 민주주의 청년동맹

    · 남한 플로레타리아 계급투쟁준비위원회

    2003

    · 한총련 10

    2009

    · 한국청년단체 연합회

    2010

    · 6.15 남북공동실언 실천연대

    2011<법원>

    ·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 <련방통추>

    4. 이적단체 선고 (大法院) 후 이적단체 들의 활동 상황

     

    <관련뉴스>

    판사가 풀어준 이적단체 "2 촛불투쟁 총진군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9559

     

    법원이 풀어 준 이적단체(利敵團體) 간부들이 또 다시 맹렬한 활동에 나섰다. 지난 해 利敵團體로 판시된 실천연대(實踐連帶)는 지난 16일과 17일 양일간 광주 전남대에서 2010총진군대회를 개최, 결정적 전화의 2010, 우리가 큰 변을 내자2의 촛불로 이명박(李明博)을 끌어내자고 선동했다.

     

    實踐連帶는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폐지-연방제통일이라는 북한의 대남적화(赤化)노선을 실천해 온 단체이다. 검찰수사 결과에 따르면, 조직원들은 중국, 독일 등에서 북한공작원 만나 김영삼(金泳三)과 황장엽(黃長燁) 응징 및 탈북자 단체를 짓뭉갤 것등의 지령을 받았고, 우리는 장군님의 전사...장군님 품이 그립다는 등 김정일(金正日)에 대한 충성(忠誠)의 노래와 충성(忠誠)맹세문을 만들었다. 實踐連帶2008년 광우병 난동(亂動) 당시 연일 청와대로 진격해야 한다거나 밤에는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낮에는 운동역량이 촛불을 들든가 해 사회를 마비시켜야 한다는 등 선동도 일삼았다.

     

    實踐連帶는 지난 해 1022일 서울고법에서 利敵團體로 재확인됐으나, 당시 이강원(李康源) 재판장은 강진구, 곽동기, 최한욱, 문경환 등 핵심간부 4인을 모두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재판장은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성과 다양성, 개방성 및 포용력을 외부에 알리는 길이 되고 나아가 남북교류와 협력에도 유익하다는 등의 이유를 댔었다.

     

    實踐連帶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행사계획에 따르면, 집행유예로 지난 해 석방된 4인 모두 2010총진군대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강진구는 116일 사범대 2호관 304호에서 큰 일꾼이 큰 변을 낸다는 주제로, 곽동기는 공대5호관 239호에서 20102년 북한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한욱은 이명박 퇴진 투쟁, 왜 지지부진한가?라는 토론마당의 사회를, 문경환은 이 토론마당의 발제를 맡았다.

     

    이밖에도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2010년 지방선거,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이재춘 민주노동당 도봉구위원회 선거대책본부 대외협력담당(진보의 재구성인가? 진보의 재정립인가?), 김상일 전한신대 철학과 교수(현대 북한 사상,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이 강연에 나섰다.

     

    2010총진군대회온 겨레의 단합된 힘으로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성대히 맞이하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자!, 반전평화수호투쟁의 획기적 전환으로 미군 없는 항구적인 평화체제 수립하자!, 4.19 50주년, 5.18 30주년을 제2의 촛불로 맞이하자!, 2의 촛불대항쟁으로 이명박을 끌어내고 국민주권 쟁취하자!, 민주노동당을 강화하고 반MB대연합을 실현하여 2010년 지방선거 승리하자!, 2010년 지방선거 승리하고 2012년 진보적 연합정권을 창출하자!는 등의 구호를 내걸었다.

     

    실천연대는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2010총진군대회기획특집을 통해 2010년은 비약과 승리의 해, 결정적 전환의 해가 될 것이라며 북한주민들의 생활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음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식량사정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북한은 지난해 급속한 속도의 발전을 이뤘으며 종전선언을 통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개시되는 형태가 될 가능성도 있다...우리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외세를 몰아내어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라며 북한정권을 비호하면서 소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이명박은 몸뚱아리는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201061일자>



     

    일본, “박정희 때문에 독도를 포기했었다”

    일본계 한국인 ‘독도사수’운동가 호사카 유지, 안티 박정희 세력에 고언

     

    웰빙코리아뉴스

    안병현 기자

     

    귀화한 일본계 한국인으로 ‘독도사수’ 운동가 호사카 유지(사진. ほさかゆうじ) 세종대 교수(사진)가 14일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부 세력의 ‘왜곡’에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말 ‘한일협정’ 관련 심포지엄에서의 자신의 발표문을 어느 인터넷신문이 크게 왜곡해서 보도했다고 비난했다.

     

    한일협정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독도문제를 한·일회담의 의제에서 제외하라”고 도쿄에 있던 이동원 외무부 장관에게 지시하면서 “본건은 한국 정부의 안정과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므로 만약에 한국 측이 수락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일회담을 중지해도 좋다”고 발표문에서 말했다고 전했다.

     

    호사카 유지(사진. ほさかゆうじ) 세종대 교수는 “한국 정부의 이런 단호한 방침에 일본 정부가 양보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하겠다는 안을 거두어들였고, 독도 명칭을 교환공문에서 삭제했으며, 한국 측이 제시한 구속력이 없는 ‘조정’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최종안이 마련되었다”며 “내 발표문의 취지는 박정희 정권이 독도문제만큼은 처리를 잘했고 이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사실상 독도를 포기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그 심포지엄 내용을 보도한 어느 인터넷신문이 내 발표문을 크게 왜곡해서 보도했다”고 분개했다.

     

    또한 그는 “박정희 정권이 독도문제를 심하게 망가뜨렸다는 취지로 내 발표문을 소개한 것”이라며 “내 발표문과는 완전히 반대인 내용을 사실인 양 써서 보도해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이처럼 심한 왜곡은 그동안 내 의견에 악성 댓글을 썼던 일본인들도 하지 않은 처사”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그런데 대한민국 내에서 자신들의 취지나 노선에 맞지 않는다 해서 주제발표자의 발표내용을 심하게 왜곡해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다니 기가 막혔다”고 전했다.

     

    특히 “한·일협정 협상 당시 독도문제가 한국 측 잘못이라는 왜곡된 결론을 내면, 국제법상 독도의 위치가 위태롭게 된다”며 아쉬워 했다.

     

    “그런 중대한 상황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왜곡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나라를 망하게 할 가능성을 내포한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이 짧은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한편 그는 “그리고 그와 같은 신념을 관철시키고 싶다”며 “나는 한 정치가를 두둔한 것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를 판단해서 알렸고 내 신념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65년도의 환경 속에서 박정희는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를 포기하게 만든 게 사실”이라며 “‘박정희’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진실은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병현 기자/웰빙코리아뉴스(www.wbkn.tv)

    메달 딴 자랑스런 예비역 병장"
    런던올림픽 출전 국가대표선수단, 런던 6·25참전기념비 참배
    국방부 홈페이지   
     ◦ 국민들에게 밤잠을 설치게 하며 진한 감동을 선사한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유도 송대남, 양궁 오진혁, 펜싱 김정환, 오은석, 최병철, 정진선, 사격 최영래, 탁구 주세혁, 오상은, 배드민턴 정재성. 이들은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 모두 국군체육부대(상무) 출신 자랑스런 예비역 병장이다. 이들이 획득한 메달 뒤에는 상무에서의 군 생활이 있어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번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상무 출신 예비역은 모두 39명이며, 축구를 사상 최초로 세계4강에 올린 홍명보, 금3·은2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달성한 사격 변경수 등 상무 출신 감독도 31명에 이른다. 상무 출신 선수들이 현재(8. 9일 오전)까지 올린 성적은 유도 송대남, 양궁 오진혁, 펜싱 김정환, 오은석 금메달, 사격 최영래, 탁구 주세혁, 오상은 은메달, 펜싱 최병철, 배드민턴 정재성 등이 동메달로 총9개(금3·은2·동4개)의 메달을 획득하였다.  

    ◦ 이번에 출전한 상무 출신 예비역 선수 39명은 우리나라 전체 출전 선수 245명의 16%에 달한다. 특히, 하키, 펜싱, 사격, 탁구는 출전선수의 과반수를 넘는 인원이 상무 출신 선수이다. 

    ◦ 이들이 획득한 총 9개의 메달은 8월 9일 오전 현재 우리나라가 획득한 25개(금12·은7·동6개) 메달의 36%, 금메달만 놓고 볼 때는 25%를 상무 출신 선수가 획득하였다.

    ◦ 상무에서는 복무기간을 통해 입대 시 실력이 우수하건, 그렇지 못한 선수이건 상관없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운동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길러 준다. 강한 체력과 기본기술, 그리고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군인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 인해 유도 송대남, 사격 최영래, 펜싱 정진선 등과 같이 상무를 제대한 이후에 빛을 보는 선수가 많으며, 유도, 펜싱, 양궁 등 비인기종목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 메달을 딴 선수들은 상무가 있어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었기에 오늘의 영광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상무에서 운동선수로 복무하지 못했다면 운동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늘의 영광도 없었을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국가와 군 그리고 상무에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한편, 상무는 '84년 LA올림픽에서 레슬링 김원기를 시작으로 ‘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김광선, ’04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문대성, ‘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이종욱 등이 금9·은5·동7개를 수확하여 국가 엘리트 체육의 산실로 스포츠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에 오르기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 이러한 역할이 하계종목에 집중되어 왔으나, 앞으로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와 관련하여 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스키 등 동계종목까지 운영 종목을 확대하게 되어 상무의 국가엘리트 체육과 올림픽에 대한 기여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끝)

    런던올림픽 출전 국가대표선수단, 런던 6·25참전기념비 참배 헌화
     
    ◦ 제30회 런던 올림픽에 참가해 대한민국의 열대야를 한 방에 날릴만한 승전보를 전해주고 있는 우리 국가대표선수단은 8월 9일 11시(우리시각으로 오후 7시)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내에 설치되어 있는 6·25 참전 기념시설을찾아 참배 및 헌화하고, 60년전 우리와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국군 참전용사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할 예정이다.

    ◦ 추규호 주영한국대사를 포함해 이기흥 선수단장, 김현수 국군체육부대장, 박태환 선수(수영 은메달리스트), 기보배 선수(양궁 금메달리스트)와 송대남 선수(유도 금메달리스트), 오진혁 선수(양궁 금메달리스트) 등 30여명이 참배해서 감사를 표할 세인트 폴 대성당은 많은 역사적 사건과 국가행사의 배경이 되어왔으며, 추모비 좌측에는 넬슨 제독, 우측에는 웰링턴 장군의 묘와 기념비가 있고,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 비치되어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패는 1999년 영국 한국전 참전용사회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참전 영국군에 대한 추모의 글과 유엔기, 태극기, 영국군 각 부대의 상징 마크가 새겨져 있다. 

    ◦ 특히 영국 한국전참전용사협회(BKVA : British Korean Veterans Association)에 소속된 참전용사 중 당시 준위(Warrant Officer Class 1)였던 루거(Cyril Lugar) 씨 등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6명도 참배행사에 동참할 예정이다. 

    ◦ 이번 올림픽 국가대표선수단의 영국내 한국전 기념시설 헌화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역만리까지 달려와 목숨을 바친 영국군 용사들의 넋을 기림과 동시에, 그들이 목숨걸고 지켜낸 자유민주주의를 토대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양국간의 우호증진에 더욱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영국군은 6·25전쟁 발발과 함께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육군 2개여단과 해군 함정 9척, 공군 1개 비행단, 총 56,000명이 넘는 인원을 보내왔으며, 이 중 1,078명이 전사하고 2,674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는 6·25 전쟁간 한국을 지원했던 UN 21개국 중 미국 다음으로 많은 참전자와 부상자 숫자이다. 

    ◦ 영국군의 용맹성은 전세계적으로도 이미 잘 알려진 바 있으며, 6·25전쟁 당시에도 정주전투(1950. 10. 29~30), 박천전투(1950. 11. 4~6), 고양전투(1951. 1. 2~3), 설마리전투(1951. 4. 22~25), 가평전투(1951. 4. 23~25) 등에 참여해 큰 공적을 세웠다. 특히 중공군의 제1차 춘계 공세를 맞아 대규모 파상 공세를 3일간이나 방어하여 서울로 진출하려던 중공군의 기도를 분쇄시킨 설마리 전투는 6·25전쟁 10대 전투로 꼽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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