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명상을 매일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자기 직전에 한 번씩 한다. 아침에는 뇌파가 알파파 상태에서 의식과 소망에 대한 에너지 정보를 쉽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고, 저녁은 뇌파가 불안정하므로 각성과 뇌파를 낮춘 상태에서 잠을 잘 때 숙면과 REM에서의 기억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저자가 말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내 의식을 보낸다는 것의 느낌을 잘 모른다. 저자는 이번엔 '양자 세계'를 설명하며 우리들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양자장의 개념을 설명한다. 양자장(혹은 통합장)이란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정보의 장이다. 시공간 너머에 존재하며, 지성 혹은 의식의 장이다. 물리적인 법칙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며, 우리의 육체의 감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양자장은 자연의 모든 법칙들을 관장하는 곳이다.
우주 속에 있는 모든 물질적인 것을 없애본다면 공기도, 눈으로 감지할 빛도 없는 암흑, 진공만이 존재하게 될 텐데, 모든 물질이 사라진 무한한 암흑공간 같은 통합장 속에 우리의 의식도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양자장안에서는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다. 양자장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각'이다.
양자장은 비어있지 않으며 주파수 혹은 에너지로 가득한 무한의 영역이다. 이 안의 모든 주파수는 정보를 담고 있다. 즉 정리하면 양자장은 물질과 감각 너머에서 진동하는 무한한 양의 에너지로 가득한 세상, 우리가 창조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보이지 않는 물결이 가득한 세상으로 이해하면 된다.
양자장은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태다.미지의 가능성들이 에너지로서 존재한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만약 미지의 어둠 속에 충분히 오래 머물 수 있다면 그곳에서 미지의 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수 있다"
붓다는 인생은 괴롭다(苦)고 하였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보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 유발 하라리도 ‘삶이란 괴로운 것이다. 나도 괴롭고 너도 괴롭다. 현대인도 괴롭고 고대인도 괴로웠다. 누구든지 각자의 이유로 괴롭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의 질문보다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라는 질문을 해야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생의 의미는 고통을 극복하는 것에 있고 고통을 극복하는 삶이 바로 의미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고통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유발 하라리는 위빠사나 명상을 통해서 고통의 원인이 자신의 정신적 관습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고통은 원하는 것이 되지 않을 때 정신이 일으키는 반응’이라고 정리했다.” 따라서 고통은 외부의 객관적 조건에서 오지 않고, 그것에 대해 정신이 일으키는 반응임을 깨닫는 것이 고통을 벗어나는 출발점”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통이 어떤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반응이라는 점이다. 고통은 특정한 사건이나 물건, 또는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대상에 대한 나의 정신적 패턴(자아)이 고통을 불러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정신적 패턴을 잘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정신적 패턴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통은 그야말로 맹목적 이어서 이성(理性)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억제할 수도 없다. 이러한 고통의 통제 불가능성에 대해 유발 하라리가 내놓은 답은 ‘방치하라’라는 것이다. 자아는 통제할 수 없으니 억지로 통제하려고 헛수고하지 말라면서 내버려 두라고 한다. 어차피 자아란 이번 생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까마득한 시간 동안 형성된 유전적 산물이다. 더구나 이성과 논리의 영역을 벗어난 일종의 생화학적 반응이므로 안간임을 써봐야 제어할 수도 없고, 정복할 수도 없다. 단지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고통이라는 현상을 그저 바라보는 관찰 수행을 통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제 당신이 명상할 때'의 저자 김병전 명상가는 피력한다.
파인밸리cc 야생화는 골프를 방해한다고 생각합니까?
산타클라라 대학교의 상담심리학 교수이자 작가, 명상과 자비 수행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인 사우나 사피로는 고통 = 괴로움 * 저항의 공식이 성립된다고 말한다. 즉 괴로움을 느낄 때 저항을 하면 할수록 고통은 더 증가한다는 논리다. 매우 동감되는 말이다. 분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의미이다.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관조(觀照)하고 지관(止觀)할 때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아침되는 되는 것은 아니다. 苦와 無我에 추가하여 諸行無常(제행무상)의 진리에 관해 믿음을 갖고,지속적으로 마음챙김을 할 때 더욱 쉽게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마음챙김은 목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도에 그만두는 경향이 흔하다. 무상의 진리를 믿고, 일상에서 마음챙김을 하는 습관화 하면서 이완과 집중의 반복하고,현존할 때 경험에서 나오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이 고통에서 의미로 전환하는 것이며, 바로이 명상이라 생각한다.
“성장의 첫 번째 단계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리고 그 하는 것을 자각(證得)하는 것이다.” – 수자타(Sujata)-
내가 진심으로 즐기는 것은 무엇인가?
활동이 나를 위한 훌륭한 명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명료하게 깨어 있는 의식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효과적인 명상이 될 수 있다.
명상은 어떤 행위가 아니라 어떤 행위를 하면서 우리가 기울이는 주의력의 질과 관련이 있다.
집중이나 명료성, 자애 혹은 통찰력을 개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때, 어떤 활동도 일상에서 명상이 될 수 있다.
① 좋아하는 활동을 선택한다. *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② 그 활동에 최고의 주의력을 기울인다.
③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음을 챙기면서 시작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진심으로 주의력을 기울이면서 이완 상태를 유지한다.
④ 주의력이 흩어지거나 약해지면 언제든지 원래 상태로 살며시 들어와
서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주의력을 기울인다. 긴장이 일어나면 이완
하고 자신에게 즐겁게 미소 짓는다.
⑤ 계획한 활동이나 시간이 끝나면 잠시 멈추고 이 활동에서 찾아낸
새로운 풍요로움에 대하여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읊조립니다.
사실, 일상을 통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설사 그것이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어도 마음을 개발하고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존 카밧진의 말이다. “ 명상이 세상의 압박이나 우리 마음으로부터 압박을 차단하는 방법이라는 견해가 일상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상에 대한 정확한 생각은 아니다. 명상은 압박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명료하게 보는 것이고 압박 상황에서 자신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위치시키는 것이다.”
☞☞ 생활 루틴화하여 일상에서 실천한다. (아침에 일어나, 잠 자기 전), 골프에서의 프리 샷 루틴을 습관화, 문제 해결시 협상 테이블 만들어 진행하기, 붓글씨, 그림 그리기, 연주하기, 조각하기, 대화할 때 등 일상에서 명상을 할 때 창조성이 발현된다.
사람들은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지금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면 미래에도 힘들 것으로 예측한다는 이야기다. 혹은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미래에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미래에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찾아올 것이다. 특히 나쁜 일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통 스러운 일이 닥칠 때 참고 견디는 수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으며, 견디기가 힘들게 만든다.
상무대 첫 홀 친구와
우리의 삶을 만드는 것은 단편적인 한 가지의 모습이 아니라 순간순간을 채우는 많은 활동이다.
명상 학우 중 한 분은 은퇴 후에 그림을 배우는 시작하면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그 어떤 단위의 시간에서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존재이다. 목표를 향해 오직 끝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길 자체에 즐거워하고, 때로는 옆길을 기웃거리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는 보자.
누군가에게 “어떤 인생을 원하는가”라고 질문을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은 ‘행복’ ‘사랑‘ ’의미‘ 이런 단어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인생에서 행복과 사랑과 의미가 주는 것이 무언지 찾아 그것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보자. 그리고 현존하면서 경험하는 것이다. 의미 없는 성공이나 곧 없어질 욕심, 미망(迷妄)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대화할 때 상대에게 경청하는 것도,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쉽게 집중에 가장 방해하는 것이 정보를 쫓는 도구들을 우리는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도 안 되다. 다만 내 삶에 집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마음챙김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달라진 말투나 외모를 알아차리고 집중하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 도시 환경과 테크놀리지도 변하고 있다. 즉 무상(無常)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알고 있다면 마음챙김으로 삶을 경험을 하여 보자.
지금, 이 순간은 삶을 보다 행복하고 사랑이 충만한 의미 있게 걸어가는 방법이라 여기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이 순간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