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질문 긴 답변. 인터뷰, 아니 강연이라는 게 맞겠다.
이어령(77) 선생과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180분 동안 그의 열변 속
문화코드를 독해하느라 한순간도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전직 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교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 많은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그냥 '선생'으로 불리길 원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사무실에서 '선생'과 마주했다.
↑ “한국엔 잡스가 없다고요? 천만에요…천리마 알아보는 백락이 없을 뿐이죠.”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 한국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독창성이라며 웃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 서울 중구 순화동 사무실에서 “생명을 자본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한반도의 미래상을 밝히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깨우친 천재지만, 진짜 놀라운 거는 사과가 왜, 그 위에 가서 매달렸느냐 하는 거예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왜 위로 올라갔느냐 하는 거예요. 과학의 법칙보다 더 대단한 거는 생명의 법칙입니다. 어떻게 물고기가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오지 않고 역류합니까. 등용문처럼 폭포수를 역류하느냐 말이지요. 바람개비가 안 돌면 아이들은 자기가 뜁니다. 뛰면 바람이 생겨요. 생명을 가진 것은 절대로 모방하거나 남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인력을 거슬러서 가장 높은 가지에 매달리는 사과, 그게 사랑이고 그게 생명입니다."
이 선생은 36억년 역사를 가진 생명을 통해 300년 동안 익숙해진 물질 자본주의의 물꼬를 바꿔야 한다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생명을 우선순위에 놓으면 노동은 작업이 되고 작업은 활동이 되고 예술이 됩니다. 정치활동 예술활동이라고 하지 정치노동 예술노동이라고 안 하잖아요. 생명이 수단이 아니라 보람이 되고 목적이 되는 거죠. 돈 버는 게 목적이라면 얼마나 우스워요, 산다는 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고, 구걸을 해도 죽은 재벌보다 나은 법이죠.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어떻게 생명자본주의로 만들어 가느냐, 교육·경제·정치·사회·문화 전반의 틀을 바꾸는 운동이 정말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선생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광장을 떠올렸다. "그때 뭘 보셨나요. 기쁨과 감동이었죠. 지금 김연아가 생산해내는 게 뭡니까. 금메달인가요? 기쁨과 감동을 주잖아요. 그런 감동은 술집에서 실컷 먹고 마신 뒤 느끼는 감동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거죠. 값으로 계산이 안 되잖아요. 기쁨이 가치가 되고 감동이 상품이 돼야 해요."
그 연장에서 이 선생은 생명경제를 논했다. "죽은 것을 살리고 먹을 걸 주고, 일어나 달리게 하는 것, 아주 평범하게 말하면 경제란 게 그거 아닙니까. 이제 생명이 자본이 되는 시댑니다. 생명이 시장화하고 생산이 돼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식농사 잘 지었다' 그러잖아요. 생명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가진 민족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세요. 저출산시대? 그건 생명자본이 사라진다는 거죠. 상실했다는 거예요. 생명자본을 다시 부활시키고 생명애, 바이오필리아를 일깨워야 합니다."
이 선생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개인이 아닌 사회, 나아가 문명의 문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새 생명이 잉태된 순간부터 세 살까지 아이를 잘 키우자는 운동과 캠페인을 벌이는 '세살마을'의 고문이다. 저출산 극복이 한국 사회를 살리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것, 생명윤리와 창조적 정신을 갓난아기 때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이 머릿속에 꽉 차 있다.
―선생님의 화두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군요.
"36억년 동안 지구에서 생명들이 진화해 오고 지금까지 발전해 오는 원동력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거든요. 장소에 대한 사랑도 있고, 고향에 대한 사랑도 있죠. 이제 추석인데, 길이 막힌다고 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게 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어 생긴 현상이니까요. 수백만명이 고향을 오가는 건 사랑이 있다는 거죠. 교통체증은 행복한 겁니다. 도로가 뻥 뚫리고 아무도 안 내려가면 그날로 끝인 겁니다. 과학자들이 블랙홀을 계산해낼 수는 있지만 생명에 대한 솔루션은 해내지 못해요.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호킹도 대단히 미안하지만 잘 못 짚고 있는 게…지구는 우주에서 예외적인 별이라는 겁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죠. 옆집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는데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고 있어요. 깨뜨린 접시값은 GDP에 들어가겠지만 두 사람의 행복과 사랑은 GDP 소관이 아니죠."
―자본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옛날엔 나무를 자르고 재단해야 자본이 됐어요. 지금은 죽이지 않고 나무라는 생명 자체가 훌륭한 자본이 된다는 거죠. 경치를 통해 감동을 주거나 아름다움을 주고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것이죠. 디지털로 표현되는 물질자본보다 아날로그식 생명자본이 더 유용하고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내야 합니다."
―생명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업그레이드입니까.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닙니다.
앨빈 토플러를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명을 제 1, 2, 3의 물결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문명론은 사실 대수로울 게 없어요. 문명은 숫자의 업그레이드로 오는 게 아닙니다. 일직선상에서 발전해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곧 제1의 물결이나
제3의 물결이 다를 게 없다는 걸 말하는 거죠. 물결은 한꺼번에 옵니다. 디지털 시대라고 아날로그가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필요하죠. 그게 '디지로그'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아는 것, 이게 문명을 읽는 지혜입니다."
이 선생은 숫자로 표현하는 것은 단순사고라고 말했다. 문화와 역사는 동일선상 위에서의 변화가 아니며, 숫자로 이어져가는 업그레이드는 직선적 사고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터페이스를 좀 변경해놓고 2.0이니 3.0이니 하죠. 아도비는 9, 10까지 나오고 있구요. 필요한 것은 융합과 통섭입니다."
이 선생의 '통섭'은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통섭이론과는 개념이 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에드워드 윌슨의 '컨실런스'(Consilience)를 번역한 통섭은 과학적 지성과 문화적 지성의 통합지(統合知)를 주장하는 것인데, 실은 윌슨 자신의 전공인 생물학을 학문의 통합축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음식물을 함께 어울리게 하는 '비빔밥문화', 모든 걸 버무려 한입에 넣는 '보쌈문화', 이렇게 섞고 버무리는 게 내가 말한 통섭입니다." 이 선생은 "내 통섭이론은 원만하게 포용하고(圓) 버무리고(融) 만나고(會) 소통하는(通) 원융회통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생각엔 산업자본시대에는 산업윤리가 있듯 생명자본시대에는 생명윤리가 있다. 모든 것을 조작해 유물화하고 생명을 물질화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생명 자체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그의 생명관은 인간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자연에 적용된다.
"생명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 가장 큰 차이는…산업자본은 자연을 자본으로 삼지만 생명자본은 자연에서 배우는 것을 자본으로 삼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교육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일종의 지식자본입니다. 꿀벌들의 6각형을 보세요. 옛날에는 꿀벌은 훔치는 대상이지만 지금은 꿀벌에서 6각형의 지혜를 배웁니다. 6각형을 이용하면 생활의 질이 향상됩니다. 비행기 날개는 벌꿀 스트럭처에서 배운 것입니다. 축구장에 가면 축구하는 거만 보지 말고 네트를 보세요. 과거엔 4각 그물이었지만 이젠 전부 6각 모양의 그물입니다. 모기가 물면 아프지 않은데 주사를 맞으면 아프잖아요. 여기서 배워 요즘은 찔러도 안 아픈 주삿바늘이 나옵니다. 타조가 시속 100㎞로 뛰어도 왜 심장이 타지 않을까, 자동차 엔진은 이걸 연구 중이구요. 오줌마저 박테리아를 이용해 모두 아미노산으로 바꾸는 바퀴벌레의 생존법을 연구하기도 하고. 3억년 살아오면서 배운 기술하고 200~300년 기술은 비교가 안 되잖아요."
글쓰기와 말하기로 평생을 살아온 이 선생은 최근 시집을 냈다. "모든 학문이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이제는 학문의 이름도 달라져야죠. 인포메이션 테크놀러지(IT)가 아니라 인포메이션 포에틱스(IP)라고 하고,
나노 테크놀러지는 나노 포에틱스,
바이오 테크놀러지는 바이오 포에틱스…. 생명을 가진 게 시인입니다. 생명의 표현이 포에틱스입니다. 그게 내가 시 쓰는 이유입니다."
이 선생의 '강의'는 계속됐다. "에로스가 지배하는 사회는 봤지만 필리아가 지배하는 사회는 아직 못 봤어요.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자유·평등·박애잖아요. 이 중에 자유와 평등은 구경해봤는데 박애는 못봤어요. 가장 중요한 게 박애, 필리아인데….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정의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시입니다."
어렵게 사회 현안으로 화제를 옮겼다. 하지만 '안철수 신드롬'을 꺼내자 이 선생은 이내 손사래를 쳤다. 50년 뒤, 100년 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과 거대담론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그날그날의 정치현상에 대한 평론을 요구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선거라는 것은 정치인을 뽑아서 권력은행에 내 권리를 맡기는 겁니다. 은행으로 치면 내 돈을 정기예금하는 건데, 이 맡긴 돈으로 은행이 아무리 잘못된 일을 해도 정기예금 기간 동안에는 마음대로 찾지를 못해요. 그래서 선거는 잘해야 됩니다."
이 선생에 따르면 정치는 '말'이다. 국회를 뜻하는 팔리어먼트(Parliament)의 어원 자체가 '말하는 집'이라고 한다. 따라서 행정력의 문제 이전에 1000만명 서울 시민에게 설득력을 주고 말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명자본의 시대 중요한 밑천은 언어인 만큼 공감이나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홀로 '독'(獨)자 옆에 빈칸이 하나 있는데, 그 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이 선생은 '獨○'의 ○를 채워보란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 빈칸에 들어갈 말은 별로 탐탁한 게 없다. 재단할 재(裁)자를 넣으면 독재(獨裁)가 된다. 착할 선(善)자를 넣으면 독선(獨善)이 되고, 끊을 단(斷)자를 넣으면 독단(獨斷)이 된다.
"전쟁을 하거나 군사적 권위주의 정권 때에는 독재로 기울었죠. 민주화를 하던 사람들이 권력을 쥐던 시대에는 독선으로 갔어요. 독선이 독재보다 더 무섭습니다. 독재는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까 힘에 의해 쓰러트릴 수 있지만 독선은 의식의 힘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 자체를 변화시키려면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산업화시대의 개발독재, 민주화시대의 이념독선, 그다음에 실용시대를 표방하며 들어선 이명박 정부에는 무슨 글자가 들어갈 것인가. "정권 초반에는 '독주'를 했어요. 혼자 뛰었으니까요. 역사는 10년 뒤 20년 뒤에 평가를 하니 아직은 모르는 거지만, 이제 독창을 추구하던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선생은 "관(官)이 정(政)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정이 경제의 속도를 넘지 못하고 경제가 뉴미디어의 통신기술의 속도를 추월하지 못한다"면서 "과속과 지속(遲速)의 불균형사회에서 오는 피해는 엄청난 분열현상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속도조정을 잘못하면 '독주'에 빠진다는 얘기다. 이 선생은 이어 "이명박 정부가 진정한 국민의 동행자가 되려면 '천천히 서두르는' 정치속도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촛불시위로 권력을 얻은 노무현 정권은 '불의 정권'이라면, 청계천 복원과 4대강 건설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권은 '물의 정권'인가. 불이 기득권을 불사른다면, 물은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낮은 곳으로 흘러갈 것이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선생이 말했다. "독창의 힘은 불까지 끌어들여 물을 맛있는 차로 변하게 합니다."
―최근의 무상급식 논란과 관련해 한 말씀….
"유상급식이냐 단계급식이냐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입맛도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동일한 메뉴로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시간에 똑같이 밥 먹는 거, 이게 과연 교육적으로 어떠냐는 게 근본적인 거죠. 일본에서는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싸줍니다. 내 아들은 내가 따뜻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평등성 속에서 다양성을 줘야 해요. 어머니 손맛이 교육이고, 도시락 열어서 어머니의 숨결과 사랑을 느끼는 게 교육입니다. 물질자본은 평등을 구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자본은 절대로 안 돼요. 개성, 분위기, 취미 이런 걸 어떻게 평등을 합니까. 경제자본이 문화자본으로 이행하면 절대로 획일적 평등성을 강요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요."
이 장관은, 그의 고백에 따르면, 평생 딱 한 번 현실 정치에 관여했다. 노태우 정권 후반기에 만 2년간 초대 문화부 장관을 했는데, 두고두고 후회했지만 요즘 와서 잘했다는 생각도 한단다. "내가 주장해서 문화부 산하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만들었어요. 지난번에 보니까
한예종 학생들이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각 분야 1, 2, 3등을 휩쓸었더군요. 과거엔 우리가 독일에 간호원을 보냈잖아요, 이제는 예술가를 보내야 할 때입니다."
―독창성을 말씀하셨는데, 한국엔 왜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나오질 않는 걸까요.
"잡스가 없는 게 아니에요. 있어요. 그걸 알아보지 못하는 거지. 또는 왕따를 시키는 거지. 독창성은 남들이 당연시하는 것, 이미 해답이 나온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는 데서 나옵니다. 유행을 따르거나 남의 것을 모방하는 데서는 독창성이 나오질 않아요. 물고기 그림을 그리면 왜 전부 왼쪽 방향을 보고 있습니까. 오른쪽으로 보는 물고기를 그리는 독창성이 필요해요. 잡스 같은 인물을 알아주고 그런 사람을 키우는 애플 같은 회사가 없는 게 문제죠. 천리마는 있는데 백락이 없는 겁니다.
페이스북을 창안한 저커버그는 몇 번이나 학업을 포기할 뻔 했지만 학교와 사회가 그를 살렸죠. 그를 인정해준 미국 사회의 문화자본과 관용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한중일'입니까.
"2000년 역사를 내려오면서 대륙과 반도와 섬이 국경을 맞대고 문화를 셰어링(나눈)한 지역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이중 한반도는 아시아의 밸런스 역할을 해왔어요. 외국에서는 한국은 보이지 않고 중국과 일본만 보이죠. 하지만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론,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대동아 패러다임, 이 모든 카드를 다 썼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도의 문화는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를 믹스할 수 있어요. 동아시아라는 말을 쓰면 안되고 '한중일'이라고 써야 해요. 좌에 중국, 우에 일본이 있는 게 우연이 아닙니다. 2항의 대립이 아닌 3항의 순환을 가져와야 해요."
이 선생은 '가위 바위 보'론을 역설했다. "주먹과 보자기만 있으면 서로 먹고 먹히는 악순환이 근절되지 않죠. 바로 이항의 대립이죠. 가위가 있으므로 주먹과 보자기 사이에서 3항의 순환을 일으키는 겁니다. 한국은 가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이 선생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화, 민주화의 영웅들 미안하지만 짐을 내려놔야 해요. 뗏목을 타고 내를 건넜으면 뗏목을 가져가면 안 돼요. 두고 가야지. 그걸 짊어지고 산으로까지 올라가는 불상사는 없어야지. 자신의 역할이 끝났으면 이를 넘어서는 제3의 힘, 새 인물들이 나와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해요. 새 바람이 안 불면 일으킬 수밖에 없죠.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뛰어서 바람을 일으켜야죠."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를 뛰어넘는 생명세대가 나타나 역사의 새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간곡한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