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광이 많은 미국 역대 대통령들

PGA와 LPGA 등 현재 세계 골프대회의 최고봉은 단연 미국입니다.

그리고 특히 미국의 대통령들 중에는 소문난 골프광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미국 역대 대통령들에서 부터 현재의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유명인사의 골프 스타일과 재미있는 뒷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 글은 미국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골프를 사랑하는 아마추어 골퍼의 골프 블로그인 [씨애틀의 골프 길라잡이]에서 가져 왔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골프 이야기

 

골프광인 [아이젠하워]는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터 내셔널] 골프코스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고, 자신의 애칭인 "아이크"라는 이름의 연못과 나무까지 있을 정도다. 미국을 골프의 나라로 만든 게 가장 큰 업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아이젠하워는 백악관 남쪽 뜰에서 치핑 연습을 하고, 집무실에서 퍼팅 연습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핸디는 90 이하였다고 한다.

그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멤버로, 이곳 17번 홀에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아이젠하워는 그 나무를 잘 맞히는 징크스가 있었다. 그 때마다 “저 나무 좀 없애줄 수 없소?”하고 여러번 요청했으나 클럽회장 [클리포드 로버츠]는 들은 척도 않고 그 나무를 ‘아이크의 나무’로 명명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골프장의 나무 한 그루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는 사실이,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듯 하다.

 

[제럴드 포드]는 거의 준프로급으로, 아마추어 경기 뿐만 아니라, 프로경기에도 자주 출전했다고 한다. 포드는 대통령 신분으로 프로암 대회에 나갔을 때 어프로치 샷한  볼을 분실했었는데, 이것을 지켜본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포드가 빗나간 샷을 쳤는데 30여명의 경호원들이 총 동원되어 볼을 찾았으나 대통령을 벌점 2점으로부터 보호하는데 실패했다”라는 기사를 송고 한적도 있다.

 

 

[빌 클린턴]은 휴가 때는 물론 틈만 나면 골프장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골프장으로 가기 위해 헬기에서 내리는 모습이나 프로골퍼 그레그노먼이나 타이거우즈, NBA스타 마이클 던, 영화배우 캐빈코스트너 등 유명인사들과 라운딩 하는 모습이 자주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백악관에서 보내는 시간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골프에 치중하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이 된다.

우리의 시각으로보면, 저렇게 골프에 미쳐서 국가는 어떻게 다스릴까?  하고 의문을 갖지만, 미국 인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골프를 제대로 친다면, 국가경영을 그르칠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클린턴이 훌륭한 골퍼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미국인들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클린턴은, 미국인들의 이 같은 의문이 오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으나 멀리건(티샷을 실수한 뒤 벌타를 받지 않고 다시 치는 행위)을  자주 사용하는 바람에 "빌리건" 이란 불 명예스런 별명도 얻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부전자전의 골프광으로, 양용은이 지난해 미국 [PGA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에서 우승하자 그를 축하하기 위해 달려가는가 하며, 이를 인연으로 함께 라운딩을 하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프로경기에 출전했던 [조지 부시 (조지 W부시 대통령 부친)]는 텍사스에서 열린 미국 시니어투어 대회에서 이틀째 헬리콥터를 타고 코스에 내렸었다. 소란을 피운 게 미안 했던지 부시는, 주변에 모인 갤러리 들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는 미국 인의 미덕이다. 그러니, 나의 플레이를 비웃지는 말아 달라"는 조크를 던져 웃음을 자아낸 뒤 경기에 임했다. 아들인 [조지 W 부시], 프로 골퍼[ 리 트레비노], 주최자인 [더그 샌더스]와 함께 라운딩을 한 부시는 몇 개의 드라이브 샷을 실수했지만 71타라는 좋은 기록을 냈는데 이는 이 대회에 참석한 아마추어 골퍼 중에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는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으로,  세계 정세가 절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별장이 있는 케네벙크 포트로 골프 휴가를 떠났을 만큼 못 말리는 골프광이었다. 집안부터 부친 [프레스콧 부시]가 미국골프협회 회장을 지냈고 처 외할아버지는 이보다 앞서 협회 회장을 지낸 골퍼 가문이다.

 

미국 대통령 중에서 골프를 가장 잘 친 주인공은 [존 F 케네디]로, 평균 80타 정도를 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매끄러운 스윙 폼과 신사적인 매너로도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농구광인 [오바마] 대통령이 골프를 하게 된 동기는 의외다. 농구를 하다 툭하면 손가락 골절에다 손목 통증을 호소하자, 아내 [미셸] 여사가 "왜 위험하지 않은 골프 같은 운동을 하지 않죠?" 라고 권하자 1997년부터 골프채를 잡았다고 한다. 골프에 입문하고 한 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100타를 깨지 못했으나 '언젠가는 실력이 좋아질 것'이라는 신념을 잃지 않았었으며, 그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그 작고 하얀 공에 절대 실망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도, 골프를 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라고 한 친구가 소개를 한 적이 있다.

현재 핸디캡 16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은 거의 매 주말 골프장을 찾는다고 한다. "임기가 끝날 때쯤 싱글 핸디캡 골퍼가 되길 바라고 있다"고  실토한 [오바마]는 스코어 카드에 단 1타도 틀리게 기록하는 법이 없다고 하는데, 스코어 카드에 11타를 모두 적은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보좌관 마빈 니콜슨은 "언젠가 파4 홀에서 11타를 쳤을 때 스코어 카드에 8(일반적으로 아마추어 경기에는 프렌드룰을 적용하여 더블 파로 기록)이 아닌 11을 그대로 적더라"”며 그의 대쪽같은 골프 스타일을 전했다. 멀리건은 사용한 적이 없으며, 벙커샷을 한 뒤 가래를 이용하여 벙커 정리는 물론, 페어 웨이에서 샷한 후에 생긴 디봇도 정성스레 다시 메워 놓는다고 한다.

 

그의 인척인 [이안 매너]가 전하는 [오바마]의 골프 뒷 이야기 중에, 매너는 "내가 친 공이 나무숲으로 향할 때는 어김없이 그 공은 나무 밑에 있었는데,  오바마가 친 공은 나무숲을 향해 가더라도 무엇인가에 맞고 50야드나 튕겨 나와 페어웨이에 있었다." 고 한다. 당시 그는 오바마에게 "골프에서처럼 정치에서도 운이 좋다면 언제가 대통령이 될 것" 이라고 농담을 던졌다고 하는데, 그 농담 덕인지 아니면 골프의 행운이 정말 정치에도 이어졌는지 그는 결국 미국 대통령이 됐다.

 

골프를 하지 않은  미국 대통령은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 지미 카터 단 3명이었다.

 

[출처 : 씨에틀 골프블로그

<파워인터뷰>이어령 “산업화·민주화 영웅들 짐 내려놓고 떠나라”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前문화부 장관)


짧은 질문 긴 답변. 인터뷰, 아니 강연이라는 게 맞겠다. 이어령(77) 선생과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180분 동안 그의 열변 속 문화코드를 독해하느라 한순간도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전직 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교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 많은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그냥 '선생'으로 불리길 원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사무실에서 '선생'과 마주했다.

↑ “한국엔 잡스가 없다고요? 천만에요…천리마 알아보는 백락이 없을 뿐이죠.”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 한국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독창성이라며 웃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 이어령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 서울 중구 순화동 사무실에서 “생명을 자본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한반도의 미래상을 밝히고 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깨우친 천재지만, 진짜 놀라운 거는 사과가 왜, 그 위에 가서 매달렸느냐 하는 거예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왜 위로 올라갔느냐 하는 거예요. 과학의 법칙보다 더 대단한 거는 생명의 법칙입니다. 어떻게 물고기가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오지 않고 역류합니까. 등용문처럼 폭포수를 역류하느냐 말이지요. 바람개비가 안 돌면 아이들은 자기가 뜁니다. 뛰면 바람이 생겨요. 생명을 가진 것은 절대로 모방하거나 남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인력을 거슬러서 가장 높은 가지에 매달리는 사과, 그게 사랑이고 그게 생명입니다."

이 선생은 36억년 역사를 가진 생명을 통해 300년 동안 익숙해진 물질 자본주의의 물꼬를 바꿔야 한다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생명을 우선순위에 놓으면 노동은 작업이 되고 작업은 활동이 되고 예술이 됩니다. 정치활동 예술활동이라고 하지 정치노동 예술노동이라고 안 하잖아요. 생명이 수단이 아니라 보람이 되고 목적이 되는 거죠. 돈 버는 게 목적이라면 얼마나 우스워요, 산다는 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고, 구걸을 해도 죽은 재벌보다 나은 법이죠.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어떻게 생명자본주의로 만들어 가느냐, 교육·경제·정치·사회·문화 전반의 틀을 바꾸는 운동이 정말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선생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광장을 떠올렸다. "그때 뭘 보셨나요. 기쁨과 감동이었죠. 지금 김연아가 생산해내는 게 뭡니까. 금메달인가요? 기쁨과 감동을 주잖아요. 그런 감동은 술집에서 실컷 먹고 마신 뒤 느끼는 감동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거죠. 값으로 계산이 안 되잖아요. 기쁨이 가치가 되고 감동이 상품이 돼야 해요."

그 연장에서 이 선생은 생명경제를 논했다. "죽은 것을 살리고 먹을 걸 주고, 일어나 달리게 하는 것, 아주 평범하게 말하면 경제란 게 그거 아닙니까. 이제 생명이 자본이 되는 시댑니다. 생명이 시장화하고 생산이 돼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식농사 잘 지었다' 그러잖아요. 생명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가진 민족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세요. 저출산시대? 그건 생명자본이 사라진다는 거죠. 상실했다는 거예요. 생명자본을 다시 부활시키고 생명애, 바이오필리아를 일깨워야 합니다."

이 선생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개인이 아닌 사회, 나아가 문명의 문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새 생명이 잉태된 순간부터 세 살까지 아이를 잘 키우자는 운동과 캠페인을 벌이는 '세살마을'의 고문이다. 저출산 극복이 한국 사회를 살리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것, 생명윤리와 창조적 정신을 갓난아기 때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이 머릿속에 꽉 차 있다.

―선생님의 화두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군요.

"36억년 동안 지구에서 생명들이 진화해 오고 지금까지 발전해 오는 원동력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거든요. 장소에 대한 사랑도 있고, 고향에 대한 사랑도 있죠. 이제 추석인데, 길이 막힌다고 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게 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어 생긴 현상이니까요. 수백만명이 고향을 오가는 건 사랑이 있다는 거죠. 교통체증은 행복한 겁니다. 도로가 뻥 뚫리고 아무도 안 내려가면 그날로 끝인 겁니다. 과학자들이 블랙홀을 계산해낼 수는 있지만 생명에 대한 솔루션은 해내지 못해요.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호킹도 대단히 미안하지만 잘 못 짚고 있는 게…지구는 우주에서 예외적인 별이라는 겁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죠. 옆집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는데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고 있어요. 깨뜨린 접시값은 GDP에 들어가겠지만 두 사람의 행복과 사랑은 GDP 소관이 아니죠."

―자본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옛날엔 나무를 자르고 재단해야 자본이 됐어요. 지금은 죽이지 않고 나무라는 생명 자체가 훌륭한 자본이 된다는 거죠. 경치를 통해 감동을 주거나 아름다움을 주고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것이죠. 디지털로 표현되는 물질자본보다 아날로그식 생명자본이 더 유용하고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내야 합니다."

―생명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업그레이드입니까.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닙니다. 앨빈 토플러를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명을 제 1, 2, 3의 물결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문명론은 사실 대수로울 게 없어요. 문명은 숫자의 업그레이드로 오는 게 아닙니다. 일직선상에서 발전해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곧 제1의 물결이나 제3의 물결이 다를 게 없다는 걸 말하는 거죠. 물결은 한꺼번에 옵니다. 디지털 시대라고 아날로그가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필요하죠. 그게 '디지로그'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아는 것, 이게 문명을 읽는 지혜입니다."

이 선생은 숫자로 표현하는 것은 단순사고라고 말했다. 문화와 역사는 동일선상 위에서의 변화가 아니며, 숫자로 이어져가는 업그레이드는 직선적 사고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터페이스를 좀 변경해놓고 2.0이니 3.0이니 하죠. 아도비는 9, 10까지 나오고 있구요. 필요한 것은 융합과 통섭입니다."

이 선생의 '통섭'은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통섭이론과는 개념이 좀 다르다. 그에 따르면 에드워드 윌슨의 '컨실런스'(Consilience)를 번역한 통섭은 과학적 지성과 문화적 지성의 통합지(統合知)를 주장하는 것인데, 실은 윌슨 자신의 전공인 생물학을 학문의 통합축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음식물을 함께 어울리게 하는 '비빔밥문화', 모든 걸 버무려 한입에 넣는 '보쌈문화', 이렇게 섞고 버무리는 게 내가 말한 통섭입니다." 이 선생은 "내 통섭이론은 원만하게 포용하고(圓) 버무리고(融) 만나고(會) 소통하는(通) 원융회통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생각엔 산업자본시대에는 산업윤리가 있듯 생명자본시대에는 생명윤리가 있다. 모든 것을 조작해 유물화하고 생명을 물질화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생명 자체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그의 생명관은 인간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자연에 적용된다.

"생명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 가장 큰 차이는…산업자본은 자연을 자본으로 삼지만 생명자본은 자연에서 배우는 것을 자본으로 삼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교육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일종의 지식자본입니다. 꿀벌들의 6각형을 보세요. 옛날에는 꿀벌은 훔치는 대상이지만 지금은 꿀벌에서 6각형의 지혜를 배웁니다. 6각형을 이용하면 생활의 질이 향상됩니다. 비행기 날개는 벌꿀 스트럭처에서 배운 것입니다. 축구장에 가면 축구하는 거만 보지 말고 네트를 보세요. 과거엔 4각 그물이었지만 이젠 전부 6각 모양의 그물입니다. 모기가 물면 아프지 않은데 주사를 맞으면 아프잖아요. 여기서 배워 요즘은 찔러도 안 아픈 주삿바늘이 나옵니다. 타조가 시속 100㎞로 뛰어도 왜 심장이 타지 않을까, 자동차 엔진은 이걸 연구 중이구요. 오줌마저 박테리아를 이용해 모두 아미노산으로 바꾸는 바퀴벌레의 생존법을 연구하기도 하고. 3억년 살아오면서 배운 기술하고 200~300년 기술은 비교가 안 되잖아요."

글쓰기와 말하기로 평생을 살아온 이 선생은 최근 시집을 냈다. "모든 학문이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이제는 학문의 이름도 달라져야죠. 인포메이션 테크놀러지(IT)가 아니라 인포메이션 포에틱스(IP)라고 하고, 나노 테크놀러지는 나노 포에틱스, 바이오 테크놀러지는 바이오 포에틱스…. 생명을 가진 게 시인입니다. 생명의 표현이 포에틱스입니다. 그게 내가 시 쓰는 이유입니다."

이 선생의 '강의'는 계속됐다. "에로스가 지배하는 사회는 봤지만 필리아가 지배하는 사회는 아직 못 봤어요.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자유·평등·박애잖아요. 이 중에 자유와 평등은 구경해봤는데 박애는 못봤어요. 가장 중요한 게 박애, 필리아인데….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정의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시입니다."

어렵게 사회 현안으로 화제를 옮겼다. 하지만 '안철수 신드롬'을 꺼내자 이 선생은 이내 손사래를 쳤다. 50년 뒤, 100년 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과 거대담론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그날그날의 정치현상에 대한 평론을 요구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선거라는 것은 정치인을 뽑아서 권력은행에 내 권리를 맡기는 겁니다. 은행으로 치면 내 돈을 정기예금하는 건데, 이 맡긴 돈으로 은행이 아무리 잘못된 일을 해도 정기예금 기간 동안에는 마음대로 찾지를 못해요. 그래서 선거는 잘해야 됩니다."

이 선생에 따르면 정치는 '말'이다. 국회를 뜻하는 팔리어먼트(Parliament)의 어원 자체가 '말하는 집'이라고 한다. 따라서 행정력의 문제 이전에 1000만명 서울 시민에게 설득력을 주고 말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명자본의 시대 중요한 밑천은 언어인 만큼 공감이나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홀로 '독'(獨)자 옆에 빈칸이 하나 있는데, 그 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이 선생은 '獨○'의 ○를 채워보란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 빈칸에 들어갈 말은 별로 탐탁한 게 없다. 재단할 재(裁)자를 넣으면 독재(獨裁)가 된다. 착할 선(善)자를 넣으면 독선(獨善)이 되고, 끊을 단(斷)자를 넣으면 독단(獨斷)이 된다.

"전쟁을 하거나 군사적 권위주의 정권 때에는 독재로 기울었죠. 민주화를 하던 사람들이 권력을 쥐던 시대에는 독선으로 갔어요. 독선이 독재보다 더 무섭습니다. 독재는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까 힘에 의해 쓰러트릴 수 있지만 독선은 의식의 힘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 자체를 변화시키려면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산업화시대의 개발독재, 민주화시대의 이념독선, 그다음에 실용시대를 표방하며 들어선 이명박 정부에는 무슨 글자가 들어갈 것인가. "정권 초반에는 '독주'를 했어요. 혼자 뛰었으니까요. 역사는 10년 뒤 20년 뒤에 평가를 하니 아직은 모르는 거지만, 이제 독창을 추구하던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선생은 "관(官)이 정(政)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정이 경제의 속도를 넘지 못하고 경제가 뉴미디어의 통신기술의 속도를 추월하지 못한다"면서 "과속과 지속(遲速)의 불균형사회에서 오는 피해는 엄청난 분열현상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속도조정을 잘못하면 '독주'에 빠진다는 얘기다. 이 선생은 이어 "이명박 정부가 진정한 국민의 동행자가 되려면 '천천히 서두르는' 정치속도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촛불시위로 권력을 얻은 노무현 정권은 '불의 정권'이라면, 청계천 복원과 4대강 건설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권은 '물의 정권'인가. 불이 기득권을 불사른다면, 물은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낮은 곳으로 흘러갈 것이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선생이 말했다. "독창의 힘은 불까지 끌어들여 물을 맛있는 차로 변하게 합니다."

―최근의 무상급식 논란과 관련해 한 말씀….

"유상급식이냐 단계급식이냐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입맛도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동일한 메뉴로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시간에 똑같이 밥 먹는 거, 이게 과연 교육적으로 어떠냐는 게 근본적인 거죠. 일본에서는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싸줍니다. 내 아들은 내가 따뜻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평등성 속에서 다양성을 줘야 해요. 어머니 손맛이 교육이고, 도시락 열어서 어머니의 숨결과 사랑을 느끼는 게 교육입니다. 물질자본은 평등을 구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자본은 절대로 안 돼요. 개성, 분위기, 취미 이런 걸 어떻게 평등을 합니까. 경제자본이 문화자본으로 이행하면 절대로 획일적 평등성을 강요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요."

이 장관은, 그의 고백에 따르면, 평생 딱 한 번 현실 정치에 관여했다. 노태우 정권 후반기에 만 2년간 초대 문화부 장관을 했는데, 두고두고 후회했지만 요즘 와서 잘했다는 생각도 한단다. "내가 주장해서 문화부 산하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만들었어요. 지난번에 보니까 한예종 학생들이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각 분야 1, 2, 3등을 휩쓸었더군요. 과거엔 우리가 독일에 간호원을 보냈잖아요, 이제는 예술가를 보내야 할 때입니다."

―독창성을 말씀하셨는데, 한국엔 왜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나오질 않는 걸까요.

"잡스가 없는 게 아니에요. 있어요. 그걸 알아보지 못하는 거지. 또는 왕따를 시키는 거지. 독창성은 남들이 당연시하는 것, 이미 해답이 나온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는 데서 나옵니다. 유행을 따르거나 남의 것을 모방하는 데서는 독창성이 나오질 않아요. 물고기 그림을 그리면 왜 전부 왼쪽 방향을 보고 있습니까. 오른쪽으로 보는 물고기를 그리는 독창성이 필요해요. 잡스 같은 인물을 알아주고 그런 사람을 키우는 애플 같은 회사가 없는 게 문제죠. 천리마는 있는데 백락이 없는 겁니다. 페이스북을 창안한 저커버그는 몇 번이나 학업을 포기할 뻔 했지만 학교와 사회가 그를 살렸죠. 그를 인정해준 미국 사회의 문화자본과 관용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한중일'입니까.

"2000년 역사를 내려오면서 대륙과 반도와 섬이 국경을 맞대고 문화를 셰어링(나눈)한 지역은 이곳밖에 없습니다. 이중 한반도는 아시아의 밸런스 역할을 해왔어요. 외국에서는 한국은 보이지 않고 중국과 일본만 보이죠. 하지만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론,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대동아 패러다임, 이 모든 카드를 다 썼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도의 문화는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를 믹스할 수 있어요. 동아시아라는 말을 쓰면 안되고 '한중일'이라고 써야 해요. 좌에 중국, 우에 일본이 있는 게 우연이 아닙니다. 2항의 대립이 아닌 3항의 순환을 가져와야 해요."

이 선생은 '가위 바위 보'론을 역설했다. "주먹과 보자기만 있으면 서로 먹고 먹히는 악순환이 근절되지 않죠. 바로 이항의 대립이죠. 가위가 있으므로 주먹과 보자기 사이에서 3항의 순환을 일으키는 겁니다. 한국은 가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이 선생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화, 민주화의 영웅들 미안하지만 짐을 내려놔야 해요. 뗏목을 타고 내를 건넜으면 뗏목을 가져가면 안 돼요. 두고 가야지. 그걸 짊어지고 산으로까지 올라가는 불상사는 없어야지. 자신의 역할이 끝났으면 이를 넘어서는 제3의 힘, 새 인물들이 나와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해요. 새 바람이 안 불면 일으킬 수밖에 없죠.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뛰어서 바람을 일으켜야죠."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를 뛰어넘는 생명세대가 나타나 역사의 새 흐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간곡한 주문이다

1.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영어로 인문학을 휴머니티(humanity)라고 하는 것도 인간성, 인간적인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인간이 무엇이며 또한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모색하는 규범적, 윤리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는 경험적 사실이나 현상에 기초하여 자연현상 및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학문분야(#1)와는 구분되며, 다소 사변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또한, 인문학은 주로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즉 인문학이란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에 관해서 가장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얻어진 지식을 일상적인 관념과 습관 위에 쏟아 부음으로써 인간의 내면적인 영혼의 성숙을 꾀하고자 한다. 인간성의 발현과 그 실천까지를 추구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인간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문법, 수사학, 시, 역사 그리고 철학을 범주에 넣었다. 문법과 수사학은 대화의 기술을 익히고 터득하게 하였고, 시와 문학은 인간의 감성과 사상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역사와 철학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의 좌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동양의 인문학 전통도 서양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의 산물이다. 동양사상의 주류인 유학은 상고시대의 신화 중심의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탈피하면서 인간중심의 학문체계를 성립시켰다. 유학은 인간성과 관련된 문학, 역사, 철학을 학문의 중심에 두었다. 한국인 역시 서양의 인문학을 접하기 전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유교적 인문의 전통 속에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그 범주를 언어·문학·역사·철학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 산업사회 이후 과학의 발달은 기계문명과 물질문명의 시대라 일컬어질 만큼 고도로 성장하였다. 인문학은 차츰 독보적 지위를 상실한 채,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과 경합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흐름으로 분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의 인문학은 이러한 문명사적 위기 속에서 그 대안을 모색하며, 인간 개개인에게 각성을 촉구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건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홈페이지>


출처 : 인문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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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서양에서 인문학을 휴머니티(Humanity)라고 하는 것도 인간성, 인간적인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원래 인문학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서 시작되었으며, 근세 르네상스 이후로 신에 예속되었던 인간을 재발견하는 과정에 고전을 재평가하게 되고 근세 인문학이 태동한 것이다.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문과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과학'은 하나의 학문분야를 칭하기 위한 것으로 보면 된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분야로서 그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파이데이아'(paideia)와 라틴어‘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한다.

'파이데이아'는 BC 5세기 중엽 소피스트들이 젊은이들을 폴리스(도시국가)의 능동적 시민으로 양성하기 위해 마련한 일반 교육과정이고, 후마니타스는 BC 55년 키케로가 '데 오라토레'(De Oratore:웅변학교)에 마련한 웅변가 양성과정이었다. 수사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중세 초기 교부들은 파이데이아와 후마니타스를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육과정으로 채택했다. 그들은 이것을 '유익한'(bonae) 과목 또는 '교양'(liberales) 과목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수학·언어학·역사·철학·과학 등이 포함되었다. 중세 후기에 후마니타스의 구성과목은 그대로 통용되었지만 후마니타스라는 말 자체는 별로 쓰이지 않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다시 널리 쓰이게 되었고 형태도 약간 바뀌었다. 15세기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은 세속적인 문예 및 학술활동(문법·수사학·시·역사·도덕철학, 고대 그리스어 및 라틴어 연구)을 가리켜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studia humanitatis:인간 연구)라는 말을 썼다. 그들은 이 학술활동을 신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과 고전에 대한 연구로 생각했다.

18세기에 디드로를 비롯한 프랑스 백과전서파는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가 오직 고대그리스어·라틴어와 고전 문헌 연구에만 몰두하는 무미건조한 학문이 되었다고 비난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인문과학은 그 범위가 넓어지자, 신의 영역과 선을 긋기보다는 오히려 발달하고 있는 자연과학의 소재론·방법론과 구분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은 인간의 의도나 목적과는 관계없이 세계와 자연현상을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시우의 promen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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