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오이디푸스』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전작에 내놓은 ≪동의보감≫과 짝을 이루는 책으로, 전작은 ‘몸’에 대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운명’에 대하여 살펴본다. 천지만물, 곧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다 운명이 있다. 사주명리학은 타고난 명을 말하고 몸을 말하고 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초보적인 명리학의 지식을 통해 ‘운명의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안내한다. 몸과 우주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운명은 무엇인지, 사주와 팔자는 무엇인지, 육친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촘촘하게 풀어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세워주며, 자신의 운명과 유쾌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도운 책이다.

 

운명과 숙명을 혼돈하면서 쓰느 경우가 흔하다. 運命은 운전할 수 있는 것이 운명이다. 예측하여 숙명이 되 않기 위해 조종하며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숙명은 부모 자식이고 내가 태어난 년,월,일 시간이다.이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 그러나 우주만물의 원리를 알면 나의 운명도 변화하고 운전할 수 있으며,오행과 잠재되어 있는 지장간의 의미를 운전할 수 있는 것이 명리학으로 알게 되었다.

명리학에 몰입하고 있는 차제에 이 책을 접하면서 운명과 미래의 삶을 어떻게 꾸며야 하는지 다소 도움이 되고 삶을 통제하는 계기도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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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신을 비우면, 인생의 답이 보인다!

그토록 얻으려 했던 것들이 마음을 텅 비우자 저절로 굴러 들어왔다『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베스트셀러 <왓칭>의 저자인 김상운이 깊은 취재와 명상, 체험을 거쳐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 그 결실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저자는 내 안에 가득 쌓인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유일한 비밀은 ‘이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자신을 텅 비우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총 4장으로 구성하여, ‘나’를 열어놓는 방법부터 육신에 대한 집착 텅 비우기, 생각 텅 비우기, 물질에 대한 탐욕 텅 비우기 등 인생의 모든 장애물들이 저절로 텅 비어버리는 우주의 원리를 다양한 사례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풀어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무엇일까?. 누구나 생각해볼만한 과제이다. 언듯 생각하면 손을 놓고 일상을 재미와 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마음을 잘 비운듯하다.현실에 만족하면서 나의 과제에 몰입하여 작품을 만들고,한장한장 써논 컬럼이 쌓이고 그것이 책이 만들어 지는 나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니 행복하자 않읗 수 없다.

베이비 붐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것이 지금은 내 눈에 보이는 것이다.특히 이책을 보면서 나는  은퇴자들의 의식과 마음 읽을 수 있는 의식이 한층 더 공고해졌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골프에서 이완을 하는 것과도 같다.이완은 모든 일상에서나 스포츠 수행동작을 위한 준비이고,집중을 하기 위한 전단계이다.. 즉 정신적,신체적으로 경직된 상태를 풀어주는 현상이다..

인생의 대부분은 잡념에 의해 소비된다고 한다. 이 잡념을 텅 비워 버리면,착각에서도 빠져 나오게 될것이며 지금하는 일을 달성하게하고 행복도 느끼게 한다고 확신한다.

여름 더위를 이기는 기회,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회,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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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민스님의 멈추면 보이는 것들' 중에서 감동의 말씀을 발체하였다.

평범한 것 같지만 깊은 감동을 갖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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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은 왓칭으로 비로소 눈앞의 현실로 창조된다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은 25년차 MBC기자이자 앵커인 김상운이 들려주는 내면세계 ‘왓칭’에 관한 이야기다. 만물이 사람의 생각을 읽고 변화하는 미립자고 구성되어 있다는 양자물리학의 ‘관찰자 효과’에 주목하고 인생의 모든 고민과 생각들을 살짝 바꾸어 바라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족들의 잇단 사망으로 마음의 병에 걸린 저자가 자신의 치유과정을 직접 들려주며 왓칭이란 무엇인지 쉽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의 원리를 노벨상을 수상한 최고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난 모든 걸 할 수는 없다.하지만 할 구 있는 게 분명히 몇 가지는 있다.할 수는 없는 것 때문에 할 수 있는 것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가지켜보고 있다는 암시만으로도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책 내용 요약]
이중슬릿실험이라는 실험을 통해 미립자를 관찰해볼 때,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으면 미립자가 슬릿을 직선으로 통과해서 뒷면에 알갱이모양의 자국을 남기는데,
바라보지 않으면 미립자는 물결처럼 통과해서 벽면에 물결자국을 남긴다.
믿기지 않겠지만 여러 번 실험을 되풀이해도 결과는 똑같다.

그렇다면 왜 내가 바라볼 때만 고체알갱이로 움직이는 것일까?
그 답은 기가 막히게도 우리가 미립자를 고체알갱이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미립자는 고체알갱이처럼 움직이고,
파장이라고 생각하면 파장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미립자는 당신의 속마음을 귀신처럼 읽어낸다.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만물이 미립자로 만들어져 있으니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대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인생은 정말 당신 스스로가 창조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험자가 미립자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모습대로 나타나는 현상을
양자물리학자들은 ‘관찰자효과(observer effect)’라고 부른다.
이것이 만물을 창조하는 우주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다.

다시 말해 미립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로 우주에 존재하다가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돌연 눈에 보이는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자 울프박사는 관찰자효과를 ‘신이 부리는 요술(God’s trick)’이라고 부르고,
미립자들이 가득한 우주공간을 ‘신의 마음(mind of God)’이라고 일컫는다.
신이 부리는 요술은 내가 얼마나 깊이 있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변화의 폭이 다르다.
생각에도 층이 있기 때문이다.
깊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깊이 변화하고, 얕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티끌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미립자란?
우주의 모든 정보와 지혜, 힘을 갖고 있고 모든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동물이나 식물, 물과 바위 등 어떤 것으로든 현실화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진 마법의 알갱이들이다.
미립자들은 불가사의하게도 거리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특히 단 한 번이라도 인연을 맺었던 미립자들은 바로 곁에 있든, 우주 정반대편에 떨어져 있든, 아무 상관없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영원히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미립자들은 인간의 두뇌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입천장세포 실험)

심장을 멈추게 요청할 때
심장은 당신의 생각대로 멈추지 않는다.
고도의 지능을 가진 미립자로 만들어져 있는 심장은 두뇌보다 더 똑똑한 지능을 갖고 움직인다.
단지 우리가 그런 사실을 모를 뿐이다.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건 고작 오감을 통해 보고, 듣고, 만지는 것 등에 국한된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모르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해 버린다.
모든 피조물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미립자들로 만들어졌으며,
사람의 속마음을 척척 읽어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미립자의 창조자는 누구일까?
독일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플랑크는
“미립자가 연출해내는 이런 요술 같은 사실의 배후에는 의식적이며 고도로 지능적인 마음이 존재한다.
이 마음이 모든 걸 창조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미립자들로 구성된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수시로 바뀔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그 무한한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그 가능성을 진심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립자의 능력
커피 잔 하나를 들고 기도를 한다.
“이 잔으로 커피를 마실 때마다 마시는 사람이 건강해지도록 해주십시오.”
그 잔을 가난한 친구에게 선물로 보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그 친구가 그 잔에 커피를 부어 마셨더니 신기하게도 맛이 확 달라졌다.
그래서 원해 마시던 잔에 커피를 부어 마셨더니 평소 마시던 커피 맛만 났다.
믿기지 않아 실험실에 의뢰를 해보았더니
그 잔에 부었던 커피 속에는 최고급커피에 들어 있는 노화방지물질이 다량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커피 잔에도 똑같은 기도를 했더니 같은 효과가 나는데
기도를 간절하게 하면 할수록, 반복적으로 하면 할수록 효과는 더욱 빠르고 강하게 나타났다.
나중에는 기도를 하던 그 방에서는 기도를 한 잔이든 아니든,
어떤 잔에 커피를 부어 마셔도 똑같은 기도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스탠퍼드 대학의 양자물리학자 틸러 박사가 수도 없이 실험해서 얻은 결과다.

미립자들은 내 마음을 읽을 뿐 아니라 그 정보를 고스란히 저장해두는 지능까지 갖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효과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기도에 담긴 뜻은 일일이 우주에 기억되고 저장된다.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남에게 입히는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내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한 언젠가 내게 돌아온다.
만일 내 생전에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세에, 혹은 후손들에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우주는 족집게처럼 미래를 예측한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 건물 폭파테러사건도 아는 사람들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넬슨교수와 연계된 41개국의 물리학자 75명은 사건발생 4시간 전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진작부터 REG 기계의 바늘이 뾰족하게 치솟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고도 나흘간이나 최고치를 기록하며 날카롭게 치솟아 있었다.
이 기계를 바라본 암스테르담 대학의 물리학자 비에르만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기계가 수십억 지구인들이 받는 마음의 충격만 읽은 것은 아닐 겁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사람의 마음을 읽으니까요.”
우주는 사람들의 마음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따라서 우주에서는 그 어느 누구의 거짓도 통하지 않는다.

미국중앙정보국 거짓말탐지 권위자 였던 백스터는
사무실의 화분을 바라보다가 문득 식물의 감정을 실험해보기로 했다.
피부반응감지기로 식물의 잎사귀에 나타나는 반응을 관찰해보기로 하고
감지기를 설치하고는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마음으로 잎사귀를 떼어버리는 생각을 했는데
공포의 그래프를 나타내며 감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냥에 불을 붙여 가까이 다가가니 그래프는 차트의 맨 꼭대기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가 옆 사무실에 성냥을 갖다놓고 오니 그제야 그래프는 정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실험을 하자 잎사귀는 공포반응을 하지 않았다.
잎사귀는 실제로 손상을 입히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까지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실험을 첨단장비로 재확인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기술대학 물리학 교수인 코로트코프 박사는 이렇게 전언했다.
“사람의 뇌파도, 식물도, 모두 똑같은 미립자로 만들어져 있다.
식물이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고 정보를 주고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쁜 생각을 잠재우는 방법
우리 머릿속을 점령한 나쁜 생각이나 부정적인 마음,
떨쳐버리고 싶은 기억들을 잠재우는 방법은 이외로 너무나 간단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덩어리들을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따뜻한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보면 바라보는 의도를 읽어내고 저절로 사라진다.
이렇게 몇 번 되풀이 하다가 이번엔 이런 질문을 속으로 되뇌어보라.
“다음 생각은 어디서 나올까?” 고요한 마음으로 다음 생각이 피어오르길 기다려보라.

생각이나 잡념은 청개구리와 같아서 억누르려 하면 더욱 기승을 부리지만
관찰자(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1초, 2초, 3초... 이렇게 몇 초가 흘러도
텅 빈 공간만 보일 뿐 아무 생각이 피어오르지 않는 때가 나타난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텅 빈 공간은 더욱 길게 지속되고 우리는 점점 더 평화로워진다.
그런데 그 텅 빈 공간은 무엇일까?
아무 생각도 없는 텅 빈 공간. 그건 바로 ‘나(我)’다.


지켜보는 냄비는 끓지 않는다
빨리 끓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면 끓지 않는 냄비의 이미지를 그리게 되므로
실제 실험에서도 달걀이 빨리 익지 않았다.
빨리 끓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요한 마음으로 끓는 냄비의 이미지를 떠올려야 한다.
선명한 이미지만 그릴 수 있다면 얼음 위에 올려놓아도 냄비는 끓는다.
티베트 승려들은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다.
하버드 의대 벤슨 교수가 티베트 승려에게 얼음물을 끼얹은 담요를 덮어주었더니
찬 물이 순식간에 증발되어 담요가 뽀송뽀송해졌다.
이것이 널리 알려진 ‘툼모’라는 티베트 승려들에게 전승되는 수행법이다.
바라보면 저절로 사라진다.

전화를 걸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상대방의 웃는 얼굴을 그려보거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그리면
상대편에서도 십중팔구 호의적으로 응대해준다.

워싱턴대학의 과학자들이 평소 마음이 잘 통하는 커플들을 모집해서 10m 떨어진 방에 따로 들어가게 하고는
한쪽 사람에게 “상대방이 미소 짓는 이미지를 그려보라.”하고는 그 상대방의 두뇌를 fMRI로 촬영을 했더니
시각피질 내 혈중 산소치가 급증했다.
미소를 그리지 않을 때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결론은 이미지를 받는 사람은 이미지를 보낸 사람과 똑같은 이미지를 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마찬가지다.


금연, 금주, 식탐(diet)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식품이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구는
우리 몸이 실제 먹고 싶어 하는 욕구가 아니라 관념적인 이끌림이다.
그러므로 상상 속에서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고 만끽할 수 있다.
실컷 먹는 이미지만 그리며 바라보아도 충동이 누그러지고 식욕도 떨어진다.
‘식탐’의 감정을 이해해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식탐이 조용해진다.
우리가 원하는 건 실제 음식이 아니라 관념적인 마음속의 가짜 음식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어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담배를 피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나는 식욕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어요.”라고 생각하면 결코 식욕을 억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서 있거나 걷거나, 청소를 하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설거지를 할 때
“지방이 한 방울씩 빠져 나가겠지.”라고 생각만 해도 체중이 줄어든다.

운동을 할 때도 운동을 하는 신체부위에 마음을 집중하고 그 부위가 강해진다고 생각하면
다른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한 경우보다 훨씬 운동효과가 좋다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따라서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신문을 읽거나 TV를 시청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우리 몸이 당신의 생각을 훤히 읽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우리의 생각을 읽고 변화한다.
그러므로 우리 젊은 시절의 건강했던 상상을 하면 심신이 놀라울 만큼 젊어진다.
한편 젊은 사람에게 늙음, 은퇴, 무력감, 회색, 휴식, 피로, 노숙 등의 단어로 문장을 지어보라고 한 후
걸음걸이와 근력을 측정해보면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노화는 나이가 들면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노화는 가차 없이 진행된다.
이처럼 우리 몸은 바라보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현실화된다.

세계적인 명 연설가였던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대중연설이 계획된 전날은 잠자리에 들기 전 반드시 상상 속에서 연설을 했다.
연설 내용뿐 아니라 연설 속의 상황도 세세하게 그렸다.
청중들이 환호하는 모습, 자신이 취해야 할 제스처, 미소, 목소리 톤까지 구체적으로 그렸다.
자신이 생길 때까지 연습을 하면 누구나 명연설가가 될 수 있다.
단, 상상 속에 반드시 청중을 등장시켜야 한다.

19세기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활동했던 실로스 신부는
말기암 환자인 하이벨 할머니에게 신부님이 암을 씻어내는 상상을 하는 기도를 하게 했는데,
9일 후 검사 상 감쪽같이 암이 나아 있었다.
믿음이 강한 신부와 그 할머니 자신이 함께 제 3의 관찰자가 되어
암이 사라지는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써 치료효과를 배가 시켰던 것이다.

기도 방식에 따라 치료효과가 달랐다.
“암세포들이 자연의 질서를 회복해 다시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해주세요.”와
“암세포들을 파괴시켜 주세요.”
실험기간 동안 전자의 기도는 암세포를 39% 감소시킨 반면 후자의 기도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암세포들도 사람처럼 부정적인 메시지보다는 긍정적인 메시지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막연한 기도보다는 자신이 갈망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기도가 훨씬 잘 통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것은 다른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키가 유독 작았던 23세의 한 청년이 키를 크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성장을 멈춘 지 오래인 그 청년이 1년에 8cm가 컸다.
어떻게 기도를 했기에 그게 가능했는지 물었더니, 제 기도가 꼭 이루어진다고 믿고,
“매일 밤 자기 전에 제 척추 마디마디가 조금씩 늘어나는 이미지를 그렸어요.
그걸 보고 기뻐하시는 부모님과 동생도 이미지에 함께 그렸죠.
가족들도 제 키가 커지는 걸 너무나 원하고 있었거든요.”
이처럼 관찰자효과는 제 3자가 개입될수록 더욱 효과적이었다.


지능
(1) 지능을 타고나는 것, 즉 고정된 것으로 바라보면 → 관찰자효과에 따라 지능은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
(2) 지능은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여기면 → 관찰자효과에 따라 내 머릿속에 든 생각만 돌고 돈다.
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착각을 떨쳐버리면 닫혀있던 지능은 저절로 열리게 된다.
즉, “지능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변하는 것” 또는 “지능은 내 머리 밖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고의 폭이 획기적으로 넓어지고 지능도 저절로 껑충 올라간다.
“여학생은 수학에 약해”라는 편견을 떠올린 채 시험을 치른 여학생들의 성적은 남학생들보다 떨어졌다.
반면 아무 생각 없이 시험을 친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같은 수준의 성적을 거뒀다.
이것은 스탠퍼드 대학의 스틸 교수가 실시한 실험이다.
난 머리가 나쁘다느니, 어느 특정과목에 약하다느니 하는 편견을 상기하는 것 자체만으로 성적이 크게 떨어진다.

지능을 높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나의 지능을 높이고 싶다면 나의 지능을 높게 바라보면 그만이다.
전적으로 내 두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린 문제다.
지능은 고정된 게 아니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진심으로 마음을 먹고 의심하지 않으면 바로 현실이 된다.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머리도 열린다.
반면 가능성을 닫아버리면 관찰자효과에 따라 머리도 닫혀버린다.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이 접근금지 상태가 되고 만다.
두뇌를 활짝 열어젖히고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
이게 바로 지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비결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롤링이나 모차르트와 같은 대가의 세계적인 명작들이
작가의 뛰어난 머리에 의한 창작만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두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바라보면 우주에서 아이디어가 저절로 흘러들어온다.
천재들은 한 가지 문제에 몇 달, 혹은 몇 년씩 몰입을 한다.
깊이 몰입할수록 우주에 무수하게 떠다니는 온갖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모두 내 선택의 대상이 된다.
“난 머리가 좋은 게 아니야. 그저 문제를 오래 생각할 따름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난 머리가 나빠.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안돼”, “난 IQ 150이야”, “난 하버드 대학을 나온 사람이야” 하는 식의 말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지능을 무한한 우주를 향해 열어놓지 못하고 비좁은 두뇌에 가둬놓는 말들이다.


부정적 감정과 아미그달라
아미그달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켜고 끄는 스위치이다.
동물이나 인간의 두뇌에 인위적인 시술을 하여 아미그달라를 마비시키면 모욕을 주어도 화를 내지 않고,
때려도 통증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목숨을 빼앗기는 과정에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아미그달라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대번에 친구인지 적인지 부터 가려내려 든다.
이렇게 첫눈에 호불호(好不好)가 정해져 버리면 그대로 잠재의식 속에 저장된다.
네 편, 내 편을 가르려드는 이 과정은 불과 몇 초 만에 결단이 나고 만다.

아미그달라의 정신연령은 겨우 5세 유아수준이다.
요약하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생존에만 집착하는 머릿속의 5세 유아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편이 어떤 젊고 예쁜 여자와 호텔에서 나오는 걸 목격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내는
숨이 턱 막히고 분심이 끓어올라 머릿속 5살 어린아이가 빨간불을 켰다.
만사가 귀찮고 부정적으로 보이고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데
“언니, 형부가 어제 멋진 호텔에서 저녁 사줬어. 취직축하 한다고.”
이처럼 해제신호를 보내주지 않으면 빨간불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
이 부정적인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화가 나서 새빨갛게 달아오를 때 눈을 감고 10,9,8,7,6,5,4,3,2,1 숫자를 세면서 식히거나,
“이건 분노야” “이건 불안이야” 등의 해석을 부여하고 제3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아미그달라는 즉시 진정이 된다.
즉, 자신의 감정을 남의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아미그달라는 식어버린다.

바라보는 단순한 행위가 머릿속 어린아이의 불쾌신호를 꺼주는 off스위치이다.
우리가 스스로 화를 부추기지만 않으면 90초 이상 지속되는 분노는 없다.
화는 바보들의 가슴속에나 존재한다.
화는 거울처럼 비춰주기만 하면 사라지는 건데, 거기에 파묻혀버리는 행위가 바보스러운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육신이 자신의 전부라고 믿는다.
육신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은 ‘나의 영원한 끝장’이라고 여긴다.
육신은 영혼이 잠시 발을 걸치고 사는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영혼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덩어리쯤이야 무시하고 짓눌러도 아무 탈 없으려니 착각한다.
하지만 생각덩어리도 엄연히 지능과 자존심을 갖고 있으므로 달래주어야 한다.
무시하고 짓누르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틀어박힌다.
그게 쌓이고 쌓이면 병이 된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억누르면 반대급부가 생겨 더욱 더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된다.
실컷 울고 나니 우울증이 하루만에 다 나았어요~! 라는 말처럼 달래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상보성의 원리
아가씨로도 보이고 노파로도 보이는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진 그림이 있다.
그림을 아가씨로 보는 순간 노파는 사라진다.
그렇다고 노파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건 아니다.
잠재하고 있다가 노파로 바라보는 순간 표면으로 나타난다.
대신 이번에 아가씨가 의식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한쪽만 보인다고 해서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전체는 두 쪽이 서로 보완적 관계에 있다.
이것을 양자물리학에서는 상보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입학시험에서 불합격을 했거나 사업적으로 실패를 겪었을 때,
비관을 하면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든다.
불행의 원인이 불합격과 사업적 실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정말 그럴까? 세상과 상황은 아무런 감정이 없다. 철저한 중립이다.
“이번 실패에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이렇게 돌려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진다.
실패는 더 배우라는 신호다. 모든 실패에는 어김없이 교훈이 들어있다.
교훈을 잘 배우면 실패는 곧 끝나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패는 계속 되풀이 될 것이다.
행복은 환경, 운수, 머리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한다.

링컨은 40대 후반까지 무려 8번이나 선거에 낙선했고, 사업이나 해볼까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에디슨은 평생 1,093가지나 되는 발명품을 만들어냈지만 그걸 위해 수십만 차례나 실패했고,
축전지를 발명하기 위해 무려 5만 번의 실패를 감내해야 했다.
농구황제 마이클조던은 고등학교 농구팀에 지원했다 거절당해 온종일 울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저는 선수생활 중 10,000번이나 넘는 슛에 실패했고, 300차례 경기에서 졌습니다.
제 손에 동점골을 깨라는 기회가 주어진 게 26차례나 됐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평생 수없이 실패했지만 그 때문에 슛을 잘 날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은 뒤 그의 방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방안에 빼곡하게 쌓여있는 실패작들을 보고 놀랐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세익스피어도 평생 154편의 시를 썼는데 성공한 몇 편 이 외에는 형편없는 졸작이었다.
이처럼 심혈을 쏟아 만들어낸 작품들의 99% 이상이 졸작으로 사장되고,
겨우 나머지 1% 정도만이 인정받아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는 것이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둠 속에 숨겨진 밝은 면에 초점을 맞춰놓고 몰입했다.
그러다 보면 밝은 면이 점점 커져서 어두운 면을 완전히 덮어버리게 된다.


관찰자는 누구인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는 관찰자는 누구인가?
넓게 바라볼수록 왜 지능도 점점 높아질까?
지능이 우주에서 무한하게 흘러나온다면 우주에 있는 ‘완벽한 지능’의 소유자는 대체 누구인가?
짐작대로다. 관찰자는 바로 영혼이다. 하지만 당신은 영혼의 정체를 알고 있는가? 영혼은 두뇌의 바깥에 있다.
관찰자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넓게 바라볼수록 지능이 높아지는 것도,
지능이 우주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모두 완벽한 지능을 가진 영혼이 두뇌 밖의 우주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뇌세포를 최대한 확대해보자.
초고성능 전자현미경으로 뇌세포의 섬유질을 확대해 살펴보면 분자가 보인다.
분자를 확대해보면 허공뿐이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도 그렇다.
원자의 지름이 10m가 되도록 원자를 1만 배 크기로 확대해보면 폭 1mm에 불과한 핵이 가운데에 보인다.
원자를 축구장만 하게 더 확대를 해보면 나머지는 온통 비어 있고, 0.001%도 되지 않는 쌀알만 한 핵이 보인다.
핵을 또 확대해보면 텅 빈 공간이 나온다.

핵을 둘러싼 원자 궤도에서 돌고 있는 전자들도 확대할 수 없을 때까지 확대를 해보면 역시 빈공간이다.
전자고 원자고 핵이고 모두가 빈공간일 뿐이다. 모든 세포가 마찬가지다. 쪼개보면 빈 공간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실체는 텅텅 비어 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일찌감치
“우리는 시각적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스텐퍼드 대학의 양자물리학자인 틸러 박사는 인간의 99.9999%는 빈공간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色卽是空이다.
양자물리학자인 울프박사도 영혼의 0.00001%만 육신 속에 들어 있고 나머지는 육신 밖의 우주에 퍼져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우주가 곧 영혼이며, 육신 속에는 육신의 부피에 해당하는 만큼의 영혼만 들어 있다는 뜻이다.
믿기지 않는가? 당신은 우주보다 더 큰 것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육신 속에 들어 있는 당신인가? 육신 속의 당신은 육안이 볼 수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에 퍼져있는 당신, 즉 당신의 영혼은 모든 걸 다 볼 수 있다.


사후세계에 영혼이 정말 존재할까?
우주에 퍼져 있는 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확인 할 수 있을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과학적으로 사후세계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완벽한 죽음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모든 생명체가 완전히 얼어 죽도록 기온을 어마어마하게 떨어뜨리는 것이고,
둘째, 모든 물질이 도저히 생존하지 못하는 완전진공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기온은 분자나 원자의 진동으로 생기는 열이다.
기온을 절대영도인 섭씨 영하 273.15도까지 떨어뜨리면 열은 완벽한 제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이하의 기온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열을 발산한다.
그러나 죽고 나면 아무런 열도 발산하지 않는다.
절대영도에서는 오로지 고요한 죽음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완벽한 죽음 속에서도 살아남는 게 있을까?
모든 게 죽어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뭔가 빛을 내며 움직이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저건 도대체 뭐지? 완벽한 죽음의 공간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게?”
그건 광자나 전자, 양자 등의 미립자들이었다.
그들은 절대영도에서도 여전히 왕성하게 진동하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분명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절대영도에서 완전진공 상태를 만들어버리기로 했다.
모든 생명체를 한 번 더 완벽하게 죽여버리려는 시도였다.
완전진공상태를 만들려면 철저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을 깡그리 제거한다.
둘째,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와 공기도 제거한다.
셋째, 모든 전자기파도 제거한다.
절대영도의 완전 죽음 상태에 이처럼 완전진공이라는 또 다른 죽음 상태를 이중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보다 더 철저한 죽음이 존재할까?
하지만 이중의 죽음 상태에서도 미립자들은 끄떡없었다.
미립자들은 그 안에서도 끄떡없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처럼 영혼은 육신이 죽어도 살아 있는 미립자로 존재했다.
미립자로 만들어진 영혼은 절대로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인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밤하늘의 별을 보라.
별빛이 내 눈에 도달하는 데는 수백만 년이 걸리기도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먼 거리를 수백만 년간 날아오면서 소멸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얘기다.

그 빛은 나를 통과한 뒤에도 수백만 년 혹은 수억 년간 소멸되지 않고 반짝이며 우주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빛은 무엇인가? 빛을 구성하는 미립자나 영혼을 구성하는 미립자나 다 같은 미립자이다.
미립자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죽지 않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우주라 불리는 전체의 티끌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우주와 분리된 개체로 보며 살아가지만 그건 시각적 착각일 뿐이지요.
이런 착각이 인간을 고통의 감옥에 빠트립니다.
이 비좁은 감옥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를 연민의 감정으로 껴안고 살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완전한 경지에 이를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비좁은 감옥을 벗어나려는 노력 자체만으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미립자는 모든 정보, 지혜, 사랑, 에너지를 다 갖고 있다.
모르는 것도 불가능한 것도 없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그래서 물리학자인 라즐로 박사는 미립자들이 가득한 영점공간을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라고 정의한다.
무한한 정보창고, 영혼의 공간, 신의 마음, 신의 공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요 종교들이 말하는 영생, 구원, 해탈 등을 얻을 수 있는 곳도 바로 여기다.

쥐들에게 미로 찾기 실험을 해보면,
전혀 학습을 시키지 않았음에도 세대를 거쳐 가면 갈수록 시행착오를 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그것은 선조들이 터득한 미로 찾기 정보와 지혜가 영점공간에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자들은 영점공간에 저장된 선조들의 모든 정보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달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른 채 살아가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관찰자효과 때문이다.
내 영혼이 내 육신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관찰자효과에 따라 비좁은 내 육신이 내 능력의 한계가 되고,
내 영혼을 육신 밖의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바라보면, 관찰자효과에 따라 육신의 한계를 벗어난다.

그렇다면 조물주는 왜 모든 게 낱낱이 기록되도록 창조를 해놓았을까요?

“그건 영혼을 갈고 닦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인과응보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남에게 가한 심신의 상처는 반드시 내게 되돌아와요.”

영적 깨달음을 얻어 영계와 물질계를 넘나드는 사람들,
수십 년간 영혼을 연구해온 정신의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양심을 지키고 남을 돕다가 손해를 보게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미립자들에 저장된 선행의 정보는 영구히 지워지지 않으므로
어느 순간 어떻게 내게 이득으로 되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시기는 내일일 수도 있고, 10년 혹은 100년 후의 내세나 영계일 수도 있다.
우주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眞空妙有
나를 텅 비우면 오묘한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 의식의 표면은 시도 때도 없이 피어오르는 생각들로 늘 뒤덮여 있다.
주로 ‘나’와 관련된 생각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조용히 바라보면 그 생각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면서 아무 생각도 없는 텅 빈 무한한 공간, 무(無)가 드러난다.
그 공간은 생각이 싹트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생각들이 사라진 후에도 영원히 존재한다.
즉 나는 늘 생각에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텅 빈 공간이다.
양자물리학자들의 말대로 나는 텅 비어 있다.
그런데 그 텅 빈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는 누구인가?
몸속의 ‘나’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가?
그건 몸 밖에 있는 나이다.
몸 밖에 있는 나도 텅 비어 있다.
어떤 방법으로 보든, 진정한 나는 텅 비어 있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많은 연습을 통해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마음대로 장시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에겐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불가능한 일이 없다.
왜냐하면 그 텅 빈 공간, 즉 영점공간에는 당신이 원하는 정보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원하는 바를 그리면 곧바로 현실로 나타난다.
UCLA의 생리학 교수인 헌터 박사는 50여 년간 氣 에너지 연구에 몰입해온 세계 최고의 권위자이다.
그녀는 자신을 텅 비우는 방법을 완전히 몸에 익히면서 저절로 신비한 힘을 얻었다.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방 한복판 바닥에 손을 짚고 거꾸로 설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읽을 수 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질병도 치료할 수 있다.

그녀는 천리안이나 도술, 혹은 명상법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 순수한 학자이다.
오로지 우주의 원리를 깨닫고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뿐이다.
단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런 신비한 능력이 저절로 생긴 것이다.
우주왕복선 파이어니어 10호가 목성을 촬영한 사진을 보내오기 전,
스완이라는 투시력자는 목성을 관찰하고는 목성에도 고리가 보이네요.
처음엔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 뒤 이것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마음을 완전히 비우면 실제로 천국이 보인다.
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내 안에 있다.
누구나 마음을 비우는 연습만 충분히 한다면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는 당신에게 천리안이나 투시력과 같은 불가사의한 능력을 배워보라고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단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으라는 것이다.
앞서 누차 언급했듯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는 것 자체만으로도
관찰자효과에 따라 능력의 크기가 저절로 달라진다.
능력의 크기는 단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내 모든 능력은 내 육신 속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반면 ‘나는 우주만큼 무한한 존재’라고 바라보면 능력도 무한하게 쏟아져 나온다.
단순한 시각의 차이로 인생이 갈린다.


육신과 영혼은 늘 숨바꼭질을 한다
육신이 눈을 뜨면 영혼이 잠들고, 영혼이 눈을 뜨면 육신이 잠든다.
그래서 돈과 권력, 명예 등 육신의 욕망에 집착하면 영혼이 눈멀고,
영혼의 실체를 깨달으면 그런 욕망이 저절로 멀어진다.

동시에 두 가지를 바라볼 수는 없다.
상보성의 원리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아인슈타인의 말 속에 진리가 담겨 있다.
영혼에 눈뜨고 살면 기적 같은 나날이 꼬리를 문다.

영혼의 눈을 뜨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를 남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는 순간 영혼은 저절로 눈뜨기 시작한다.
영혼을 거대한 우주의 거울로 삼아 나를 남처럼 비춰가며 살면
영혼이 지닌 양심, 사랑, 평화, 연민, 지능, 에너지가 저절로 흘러들어온다.
우주라는 무한한 거울에 나를 비춰가며 산다면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맑아질까!
이처럼 우주가 늘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맑은 영혼을 지키는 길이자 최고의 인생을 사는 길이다.

한 설문조사 결과, 80세 이상 노인들의 90% 이상이 자신의 인생을 후회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무얼 가장 후회하느냐는 물음에 “내가 꼭하고 싶었던 걸 못 했어요”라고 응답했다.
“꼭 하고 싶었던 게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대답은 뜻밖에도 여행, 돈, 출세 등 거창한 게 전혀 아니었다.
“내 아이가 소원했던 걸 해 주지 못했어요.”
“가족에게 좀더 따뜻한 말을 건네고 살았더라면...”
“돌아가신 어머니께 좀 더 친절하게 대해 드렸더라면...”
쉽게 말해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살았던 걸 가장 후회했다.

사랑은 영혼의 본질이다.
나를 비우고 남에게 베풀면 영혼이 열린다.
하지만 영혼의 눈을 뜨지 못하고 살다보니 사랑은 뒷전이 되어버린다.
겨우 죽음에 이르러서야 다급하게 영혼을 찾고 사랑을 찾는 것이 보통사람들이다.

 

 

책소개

경계를 넘나들며 무한한 가치를 창조하는 새로운 인재상,
실천적 지식인, 브리꼴레르가 되어라!


세상은 우리에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박학한 팔방미인 인재가 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의 양을 고려해 보면 우리는 결코 다빈치가 될 수 없다. 매 순간 쏟아지는 지식을 어떻게 다 습득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브리꼴레르다. ‘브리꼴레르’는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해서 실력을 쌓은 전문가라기보다 체험을 통해 해박한 식견과 안목을 갖게 된 실전형 전문가에 가깝다. 레비 스트로스는 브리꼴레르가 다양한 기존 지식을 융합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제3의 지식을 자유자재로 창출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자신의 지식을 세상의 지식과 끊임없이 융합시킴으로 자신의 좁은 지식만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해법을 생각하고, 다다를 수 없는 높은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브리꼴레르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교육분야는 물론 인문사회과학, 문학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브리꼴레르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가 안내하는 지적 여정에 동참하다 보면, 어느새 브리꼴레르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차이를 ‘지식’으로 만드는 융합형 인재이자,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현답’을 찾는 실천적 지식인, 당신은 브리꼴레르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당신의 숨겨진 능력이 1만 배 증폭될 것이다.경계를 넘나들며 무한한 가치를 창조하는 새로운 인재상,
도전과 야생적 사고로 무장한 실천적 지식인, 브리꼴레르가 되어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될 위기는 한두 가지의 지식과 한두 번의 시도로는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난해하고 복잡할 것이다. 책상머리에서 배운 좁은 지식에서 벗어나 과감한 추진력과 역발상으로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역경을 뒤집어 남다른 경력으로 만들어가는 지식인, 당신이 ‘브리꼴레르’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무한한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한 명의 인재가 1만 명을 먹여살린다’는 모 회장의 말이 인구에 회자된 적 있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내가 가진 한정된 지식이나 정해진 매뉴얼만으로는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다양한 역량을 갖춘다고 스펙을 쌓아보지만, 그것도 천편일률적이어서 차별화가 안 된다. 판에 박힌 스펙도, 협소한 전문성도 필요 없는 시대를 맞아, 이제 우리는 한 분야에만 맴도는 전문가(specialist)를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이는 전인(whole Man)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세상에는 같은 정보와 지식으로 한 가지밖에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똑같은 정보와 지식으로 만 가지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잠재력으로 1만 배의 능력을 발휘하는 초인적인 사람들, 머릿속 생각을 실전에 적용해 놀라운 성과를 내는 실천적 지식인, 그럼으로써 세상을 이끄는 사람들, 이들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브리꼴레르(bricoleur)’의 사고력이다.

세상이 원하고 당신이 되어야 할 인재상
당신은 브리꼴레르인가?


세상은 우리에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박학한 팔방미인 인재가 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과 오늘날의 지식의 양을. 매 순간 쏟아지는 지식을 어떻게 다 습득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는 결코 다빈치가 될 수 없다. 우리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다빈치가 되어야 하는데 될 수 없는 것.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브리꼴레르다. ‘브리꼴레르’는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손재주꾼’으로 번역되는 브리꼴레르는 보잘것없는 판자조각, 돌멩이나 못쓰게 된 톱이나 망치를 가지고 쓸 만한 집 한 채를 거뜬히 지어내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들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해서 실력을 쌓은 전문가라기보다 체험을 통해 해박한 식견과 안목을 갖게 된 실전형 전문가에 가깝다. 레비 스트로스는 브리꼴레르가 다양한 기존 지식을 융합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제3의 지식을 자유자재로 창출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자신의 지식을 세상의 지식과 끊임없이 융합시킴으로 자신의 좁은 지식만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해법을 생각하고, 다다를 수 없는 높은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

이 책은 브리꼴레르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교육분야는 물론 인문사회과학, 문학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브리꼴레르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분야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인재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 자체가 브리꼴레르의 실험무대이기도 한 셈. 저자가 안내하는 지적 여정에 동참하다 보면, 어느새 브리꼴레르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분야 간의 ‘차이’를 ‘지식’으로 만드는 융합형 인재이자 ‘역경’을 ‘경력’으로 만드는 야생적 사고의 소유자,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현답’을 찾는 실천적 지식인, 당신은 브리꼴레르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당신의 숨겨진 능력이 1만 배 증폭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유영만

저서(총 31권)
유영만교육공학박사이자 지식생태학자. 현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Learning Systems Institute 연구원을 역임하고,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을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민사고 천재들은 하버드가 꿈이 아니다', '죽은 기업교육, 살아있는 디지털 학습', '지식경영과 지식관리시스템', '지식경제 시대의 학습조직'등이 있고, 역서로는'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디지털 경제를 배우자', '열린 조직 열린 경영'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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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 예술교육과 인문학

제2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WCAE)가 28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생각의 탄생’의 저자 로버트,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 교수는 이번 대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예술은 21세기에 요구되는 창의적 상상력을 촉발한다”며 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아이’ 시리즈로 이어지는 독창적인 제품을 내놓고 있는 미국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을 유난히 강조해온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리드대 재학 시절 동양 서체(書體)에 매료됐던 경험이 나중에 매킨토시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됐다고 고백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회장 빌 게이츠도 “인문학이 없었다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계적인 석학과 기업인들이 이처럼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듯이 인문학 공부가 이끌어내는 상상력과, 예술에 대한 이해가 선사하는 감수성은 21세기 인재들에게 필수 능력으로 꼽힌다. 기업들도 이런 실력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려고 심혈을 기울인다.

세계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 1위로 뽑힌 구글은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업무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 내에서 직원들이 계단 대신에 봉을 타고 이동하도록 건물을 설계했다. 인문학과 예술 전공자도 다수 채용한다. 기념일이나 사회적 이슈에 따라 구글 로고를 바꾸는 ‘구글 두들(Google Doodle)’을 만든 웹마스터 데니스 황은 대학 시절에 미술을 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부전공으로 했다. 최근 이 회사가 구글TV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탄생시킨 것도 창의력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존중하는 이런 작업 여건에서 비롯됐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국내 기업의 3차원(3D) TV 개발 붐에 대해 기술혁신 작업이 창의력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기업의 선제적 변신에 자극받은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회사 행사인‘LG스킬올림픽’에 참석해 “상상력을 바탕으로 과감히 혁신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아직도 산업화시대의 낡은 프레임과 과목 이기주의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정부가 학습량을 20%가량 줄이는 내용의 창의 인성교육 방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미흡하다. 예술교육 강화 등 획기적 대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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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지혜를 삶과 나누어 보기 위해  꿈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법조인을 글이다. 약 7년에 걸쳐 집필하였다 한다.

인문학을 중사하는 이유는 이제 조금 깨닭게 되었다.조직의 경영에서 ,마케팅,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인본을 중시하는 생각과 관념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또한 우리의 미래 경쟁력과도 직결돼 있다.
21세기는 하드웨어가 아닌 콘텐트의 시대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콘텐트를 채울 스토리와 상상력이다.
그것을 길러주는 것이 문사철이다. .
우리 미래는 또한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융합시켜야 하는 컨버전스 시대다. 제품과 서비스가 융합되고, 사람의 능력과 능력이 결합해야 하는 시대다. 이 시대는 서로 다름을 끌어안는 포용력이 경쟁력의 원천이다. 사람 사이의 여백과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인문학이다.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지 못할 때, 그것은 이 사회가 가져야 할 정신의 빈곤 문제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의 결핍으로 연결된다

 

문,사,철 그리고 음악 미술,심리등이 바로 인간중심의 學이다.인간 누구도 인문의 숲에서 살게 마련이다.미래의 지도자,통치자,인문학의 거름을 갖고 않았다면 과연 인간중심의 통치,관리 경영,등을 할수 있을까?

 

조직의 장으로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고민하는 입장에서 항상 인문학을 가깝게 접하며 목표달성에 밑거름으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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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3

- 정진홍 지음
21세기북스 (2010년 10월)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 정진홍



작년, 나에게 새삼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려준 책이 있다. 바로「희망의 인문학」이다. 「희망의 인문학 -얼 쇼리스 (이매진) 2006년 11월」의 ‘클레멘트 코스’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하층민들을 상대로 대학 과정에 맞먹는 험준한 코스의 인문학 교육을 실시하여 교육 후에 이전과 달라진 삶을 주제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교도소 수감자나 하층민들을 상대로 정치, 사회, 역사, 예술, 철학을 가르친다는 사실이 굉장히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에게 그런 공부를 가르쳐서 어디다 써 먹을 수 있는가? 일반적인 상식으로 인문학은 시간적 여유가 되는 한량들이나 즐길 수 있는 굉장히 어려운 분야의 공부임에 틀림없고, 인문학을 배운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확실히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문화를 즐길 틈이 없었던 밑바닥 인생들이 점점 자신감을 찾아가고, 인문학에게 깊이 있는 인생과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변화하는 속도는 저마다 틀리겠지만, 책 속에 길이 있으니 그 길을 천천히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는 옛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인문학. 참으로 어렵다. 교양과목으로 약소하게나마 배웠던 역사, 철학, 문학, 나아가 심리학, 기호학, 종교, 예술을 배운다고 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하나하나가 이어져 지금의 세계가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각의 학문들은 언제나 서로 소통하고 있다. 각각의 학문들이 모여 커다란 틀 안으로 편입되고, 최종적인 인류의 문화가 완성된다. 인문학을 배우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살아보는 것이다. 가장 찬란했던, 가장 훌륭하다고 판단되었던 과거의 문장 속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한 인문학이 점점 소외 시 되어 가고 있던 와중, 최근 들어 새삼 고전이나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인문학 속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배울 점이 무궁무진하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는, 이렇듯 중요한 인문학을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렵고 딱딱한 인문서적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바쁜 현대인들을 위하여 고전 반열에 오른 책들의 엑기스를 모아서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적절한 어드바이스로 기업인들에게 유익한 정보까지 함께 제공해준다. 총 10 챕터에 달하는 인문의 숲에서의 산책은, 중국의 흥망성쇠에서부터 시작해서 로마에서 끝을 맺는다. 클레오파트라나 옥타비아누스 같은 역사적 인물에서부터, 아문센과 섀클턴 등의 모험가, 조지 마셜, 맥아더 등의 2차 세계대전의 전쟁 히어로,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력과 탁월한 리더쉽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어 유혹의 기술과 감각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어드바이스도 잊지 않는다.

어렵고 지루한 인문학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쉽고 간편한 인문학 안내서를 찾는다면 과감하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편안하고 간결한 자세로 인문학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본서를 읽는 동안 여러 분야의 책을 동시에 읽은 뿌듯함과 역사 속의 인물들을 발견하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다. 변화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성급하게 쫓기 보다는 지성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인문학을 섭취하여 남들과 다른 나 자신의 인격과 교양을 먼저 가꾸어 가야 한다. 단,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이다.


* 일상은 소소하다. 그러나 그것은 인문의 저수지다. 일상은 인문을 키우는 거대한 자연이다.
일상이 메마르면 인문과 인문학은 고사하고 만다.
삶과 일상의 소소한 것들로부터 활기와 활력을 재충전함 없이 진정한 인문의 부흥은 불가능하다.


* 만남,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성공한다.
내가 변하고 역사가 생성되는 그 순간의 기적을 뜨겁게 포옹하라.


* 불안, 그것은 추락과 혼돈과 절망의 한 이름이지만
맞서는 순간 욕망을 실현시키는 긍정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불안, 그것과 맞서 함께 걸어라!

 

* 속도를 위한 속도는 줄여야 한다. 그것은 자칫 불안만 키우기 때문이다.
쓸데 없는 조급증과 불안은 내려 놓고 이젠 내실 있게 느리지만 확실한 걸음으로
우직하게 우리의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 삶에 지름길이란 따로 없다. 열정의 갑옷을 입고 몰입의 방패를 들고 의지의 검으로 돌파하라!
삶은 살고자 하는 의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지금 품고 있는 의지의 힘이 미래를 만든다.
시작은 미약해도 미래가 창대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의지 덕분이다.
결국 의지의 힘이 꿈을 이루고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다.

 

*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결정하지 못하고 그 시기를 놓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시간의 보복을 잉태하는 일이다.
위대한 결정은 곧 위대한 실행이다. 결정했거든 바로 실행하라.


* 유머와 위트는 타인의 마음을 얻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먼저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오고, 웃으면 평화가 온다.
유머와 위트는 자기만의 색깔과 뿌리가 있는 것이어야 상대의 반응을 확실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깊이와 여유, 다양한 체험이 중요하다.
삶의 속내가 깊어지면 자연스레 여유가 생겨나고 삶의 진정한 여유는 유머와 위트로 드러나는 법이다.
삶의 위기를 벗어나려면 마음의 바람을 살짝 빼는 일이 필요하다.
바로 유머와 위트라는 멋진 도구를 사용해서 말이다.

 

* 모든 인간의 성장과 성숙은 독자적인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이기보다는 관계속에서 완성된다.
진정한 자아, 최고의 나를 찾는 것은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가능하다.


* 오늘을 최고로 살아라. 매일매일이 인생의 꽃봉오리다.
삶은 한켜 한켜 쌓여서 구축되는 것이지 일순간의 점핑이나 역전 게임이 아니다.


*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알면 오히려 불만 가질 이유도 없다.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이요, 분노는 적이라고 생각해라.
모자라는 것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 자기 분수를 알아라
.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삶이 응축된 '마지막 한마디', 유언.
지금 그 인생의 끝을 생각하는 이유는 현재를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또 무엇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리더는 늘 이 물음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
꽃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어진 덕은 만년 동안 훈훈하다.
우리는 어떤 향기로 기억될 것인가. 그 마지막 향기의 응집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 향기의 응집이 곧 우리의 유언이다.
삶은 한 권의 책과 같다. 나의 책 갈피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만의 향기가 배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도 그 향기가 지속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삶을 고투하자

* 정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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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스타인 김연아 선수는 10년 동안 공중회전만 무려 12만번을 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3만 번은 넘어졌습니다. 넘어졌을때는 반드시 일어났습니다.
 넘어진 것은 실패와 고통이였지만, 일어나는 것은 꿈이고 희망이고 도전입니다.
 넘어졌을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열등감이고,

이를 악물고 일어나는 건 자존심입니다. p.18

 먹고 싶은 걸 애써 참는 건 도전이고,

  먹고 싶을 때마다 먹는 건 포기입니다.

 

  소통은 나와 남 사이에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자신과 먼저 소통 해야만 진짜 소통입니다. 
   옛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 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고 했습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못하면 아프다는 뜻입니다. 
   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참 기묘한 것은 상대의 마음은 몰라서 괴롭고

  내 마음은 너무 잘 알기에 괴롭다는 것입니다. p.33


  누구나 밥과 반찬은 씹다가 꿀꺽 삼키지마느 알약을 삼킬 때는 고개를 젖힙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음식은 그냥 삼키는데,

   몇 알 안되는 알약을 삼킬 때 고개를 젖히는 것은 오랜 세월의 습관때문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먹기 싫다는 느낌이 있어서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려면 순조롭지 않습니다.p.36-37

  죽을 만큼 미친 듯이 사랑하면 어려운 일도 못해낼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연인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지옥에 빠진 듯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천당가 지옥을 모두 경험해 봐야 합니다.
   살다보면 천당에 오른 적보다는 지옥에 빠진 듯한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이겨내는 지혜는

  바로 사랑에서 나옵니다. p.46-47


 스페로 스페라 (spero spera) -라틴어 경구.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 p.55


 지금의 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지금의 내 얼굴과 몸을 살펴보세요.
  거짓 없이 내가 먹은 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도 있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연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감출 수 없는 것은 내 모습에 나타난 삶의 흔적들입니다.p.86


  인생도 소중한 걸 얻으려면

  반드시 그만큼의 산고를 겪어야 합니다.
   작게 아프면 작은 걸 얻고,

  크게 아프면 큰 걸 얻습니다.p.94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가 위해

 뼈에 사무치도록 원해본 적이 있습니까?
 
 절실하게 원해아 얻을 수 있습니다.
  크게 원하면 더 크게 절실해야 합니다.
  
  나만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도 내가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걸 간절히 원하기 때문데

  더 절실한 사람이 그것을 차지하게 됩니다.
  꿈속에 나타날 정도로

  절실해야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p.113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번쯤은

  남에게 불빛이 되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p.133


  일체유심조- 세상만사 마음

먹기 달렸다..
  

 혼자는 왠지 외롭고 쓸쓸해 보이지만

 함께는 따뜻하고 정겨워 보입니다.
  혼자와 함께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말 한마리는 2톤을 끌지만

  두 마리가 함께라면 무려 23톤을 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p.183


 청춘들에게 전하는 여덟가지 당부
  1) 사람과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가꾸기
  2)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도록 차분히 쌓기
  3) 가능하면 개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일하기.
  4) 취미생활을 게을리 말고 여행을 통해 세상을 널리 볼 줄 알아야 함
  5) 꾸준히 운동하고 가볍게 먹기
  6) 날마다 웃으며 재미나게 살 궁리하기.
  7) 지식인에 머물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껑충 뛰어오르기
  8) 물처럼 유유하고 바람처럼 걸림 없이 살기.



   김홍신의 '그게 뭐 어쨌다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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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썸네일

남자의 물건


 

 

요즘 한창 '잘나가는' 교수 김정운의 책 《남자의 물건》을 읽으면, ‘여자의 물건’이라면 “목걸이, 반지, 가방, 구두, 화장품 등등 화려하고 다양한 물건”이 떠오르는데, “‘남자의 물건’이라면 기껏 ‘거무튀튀한 그것만 생각난다니”하고 프롤로그에서 적고 있다. 그래서 여자들의 삶은 흥미롭고 이야기 할 것도 많으며, 모이면 끝이 없단다. 한국남자들의 존재의 불안은 할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며, 적을 만들거나 적에 대한 적개심이나 분노표출 등 적을 분명히 하는 방법으로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는 데, 김정운 교수는 존재확인의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남자의 물건을 이야기 해 보잔다. “인간은 바로 이야기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며, 생각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내러티브 전환-narrative turn) “이제부턴 근면, 성실, 고통, 인내 같은 지난 시대의 내러티브와는 구별되는 성공한 삶의 조건이 되는 재미, 행복, 즐거움의 내러티브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간 상호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표정, 몸짓, 말투로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시각이 55%, 청각이 38% 영향을 미치며, 전달하고 싶은 말의 내용은 고작 7% 에 불과하고 시각과 청각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내는 0.1초에 지니지 않는다.”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을 갖고 기분 좋은 느낌을 주어야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자신의 삶이 재미있는 사람들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귀결되므로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겨야 한단다.

 

 그는 또 제1부 ‘남자에게“에서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터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의사소통 행위인데, 현대사회에서 남자들에게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거의 모든 상호작용에서 금지되며, 따라서 신체적 접촉이 사라진 디지털세상에서 손끝의 세밀한 움직임에 반응하는 아이폰, 아이패드에 사람들이 열광한다.”고 분석한다. 그런 측면에서 룸살롱, 안마시술소 등에서 터치를 통해 위로 받고자 하며, 터치와 연관된 산업인 배려경제(care economy)가 번창하고 있단다. 어쩌면 이런 ‘터치’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기억할 만한 일들을 자꾸 만들어 인간이 경험하는 ‘현재’의 길이 약 5초를 주관적 경험으로 팽창시키려는 행위”의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차이에 관대해 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뜻한다.”고 하면서 “굵고 짧게 살 것이 아니라 아무리 바빠도 삶의 마디를 자주 만들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나의 물건’은 뭘까?”라고 물었더니 “종 아니냐?”한다. 해외생활을 하면서 나와 아내는 도자기, 유리, 쇠로된 여러 가지 모양의 종을 150여개(?) 이상 모았고, 그중 60여개는 거실 장식장에 진열해 두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와 아내가 함께 모으기 시작한 ‘티스푼’, ‘시계’, 그리고 혼자 수집했던 '연필과 볼펜'보다 숫자가 조금 많을 뿐, 나나 가족의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되거나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어서 김정운 교수가 말하는 ‘남자의 물건’으로는 볼 수 없고 단지 한때 관심을 갖고 수집하였던 애장품(?)일뿐이다.

 

 

김 교수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남자의 물건’을 보면, 자신의 만년필(60여개), 시인 김갑수(4.1 모 방송사의 명작스캔들 프로그램에도 출연)의 커피그라인더, 사진작가 윤광준의 모자, 이어령 전 장관의 한국에서 제일 큰 책상, 신영복교수의 벼루(남자의 물건이란 책의 제호도 그의 글씨), 차범근의 계란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사각안경, 김문수의 찢어지지않는 수첩, 유영구 명지대이사장의 고지도와 고서적, 화가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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