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2012]‘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도전은 계속된다
 
런던올림픽 남자 육상 400m 준결승에서 역주를 펼치고 있는 남아공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AP/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윤석민 기자] 절단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 육상 선수 최초로 올림픽 무대에 출전해 정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의 아름다운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6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육상 남자 400m 준결승에서 46초54로 2조 최하위인 8위에 그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4일 열렸던 400m 예선에서 45초44를 기록하고 조 2위에 올라 준결승에 진출했던 피스토리우스는 예선에도 못 미치는 기록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피스토리우스는 이번 준결승에 진출한 24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늦은 출발 반응 속도를 보였다. 의족에 의지해 스타팅 블록을 밀다보니 초반 레이스에서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출발 후 30m 정도는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는 준결승전을 마친 뒤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발목이 없기 때문에 스타팅 블록을 치고 나가는 힘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추진력이 부족한 것은 레이스를 하는 데 있어서 최대의 약점이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프리토리우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 때는 내 선수 인생도 절정기에 달해 있을 것”이라며 “그때는 반드시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피스토리우스는 “내년에는 400m에서 45초 이내로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며 “체중을 지금보다 더 줄이고 오랫동안 높은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스토리우스는 온전히 두 다리를 쓸 수 있는 동료 선수들에게는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세대에게 영감을’이란 런던올림픽 슬로건처럼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9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남자 1600m 계주에서 남아공의 주자로 나서 또한번 위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지 주목된다

 

<  조선일보>

       

올림픽의 또 다른 전쟁 "앰부시 마케팅을 막아라"

 

 

 

 

 

박태환과 미국의 펠프스(위 좌우 사진)가 애용하는 헤드폰‘비츠’는 런던올림픽 공식 후원사가 아니면서 최고의 광고 효과를 누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미국의 100m 허들 선수인 돈 하퍼가‘룰 40(Rule 40)’이 선수들의 입을 막고 있다는 뜻으로 트위터에 올린 자신의 항의 사진. /연합뉴스·트위터

런던올림픽 개막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난달 25일 스포츠용품업체인 나이키는 유튜브에 60초 광고 동영상을 올렸다. 제목은 '당신의 위대함을 발견하라(Find Your Greatness)'. 무명의 남녀노소가 각종 운동을 즐기는 내용이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것은 각 장면의 무대. 남아프리카의 '이스트 런던', 자메이카의 '리틀 런던', 홍콩의 '런던 플라자', 미국의 '오하이오 런던'…. 세계 25개국 각지 '런던'이란 이름을 가진 장소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다만 올림픽 개최지인 '영국 런던'만 없었다.

공식 올림픽 후원사가 아니면서 올림픽 이미지에 편승한 마케팅, '앰부시 마케팅(Ambush Marketing·매복 마케팅)'의 신호탄이었다. 정작 런던올림픽 조직위에 거액을 낸 공식후원사인 아디다스는 경쟁사의 교묘한 광고 공세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올림픽은 또 하나의 전장(戰場)이다. 선수들 간 메달 경쟁 외에 기업들의 마케팅 전쟁이 불꽃을 튀긴다. 올림픽조직위는 대회 때마다 올림픽 브랜드에 무임승차하려는 앰부시 마케팅과 일전을 벌인다. 조직위로서는 대회 돈줄이 공식 후원사들이고 이들의 독점권 보장이 계약 조건이기 때문이다. 런던 대회의 경우 코카콜라, 맥도날드, 비자, 아디다스, 파나소닉 등 11개 대기업이 각각 약 1억달러의 돈을 내고 올림픽 상표 사용권을 얻었다.

런던올림픽 조직위는 대회 개막을 앞두고 단단히 별렀다. 상표 사용권과 관련해 새로 만들어 공지한 규정인 '룰 40(Rule 40)'은 대회 사상 가장 엄격한 방어장치로 꼽힌다. 대회 기간 중 선수가 비공인 후원사 광고에 나섰다가 적발될 경우 거액의 벌금에 출전자격 박탈까지 감수해야 한다. 트위터 같은 SNS에 비공식 후원사의 홍보성 메시지를 올리는 것도 단속 대상이다.

조직위는 각 경기장 500m 이내 '이벤트 존'을 설정하고 28곳에 단속반도 파견했다. 불법 광고물은 가차없이 차단되거나 철거된다. 화장실 휴지에 찍힌 브랜드 로고까지 검정테이프로 덮는다. 일부 양궁 선수들은 모자에 새겨진 로고마저 테이프로 가리고 나오기도 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이런 조치가 없으면 후원이 없을 것이고, 후원이 없으면 올림픽 또한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인생 최고의 광고 기회를 막는다"며 불만이다. 특히 개별 기업 후원이 많은 미국 육상 선수들은 트위터상에서 '룰 40' 완화를 요구하는 릴레이 캠페인에 나섰다. 베이징올림픽 100m 허들 챔피언인 미국의 돈 하퍼는 '룰 40'이라고 적은 테이프로 자신의 입을 막고 찍은 사진을 올려 항의를 표시했다.

격전의 사각지대에서 덕을 본 회사도 있다. 미국산 헤드폰인 '비츠(Beats)'는 공식후원사도 아니면서 최고의 광고 효과를 올리고 있다. 미국 랩 가수인 닥터 드레가 투자해 2006년 설립한 회사 제품으로 레이디 가가와 저스틴 비버 같은 팝가수들이 애용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상품이다. 그 뒤 한국의 박태환을 비롯해 중국의 쑨양,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 등 유명 수영 선수는 물론 최근엔 볼트 같은 육상 선수들까지 트레이드마크인 'b'가 적힌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제작사는 이번 대회에는 더 공세적으로 나섰다. 영국대표팀에 유니언잭 디자인을 넣은 제품을 선물하는 등 약 20개국 선수단에 무상 제공한 것. 전자제품 분야 공식 후원사인 파나소닉으로서는 속이 탈 일이다. 하지만 IOC 대변인 마크 애덤스는 지난 3일 "선수가 (특정상품) 로고가 찍힌 장비를 사용하는 것과 특정 상표를 광고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며 면죄부를 줬다.

골프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작성하자!

버킷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를 의미한다. 2007년 미국에서 제작된 롭 라이너 감독, 잭 니콜슨·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 리스트>가 상영된 후부터 ‘버킷 리스트’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풋볼코치 Low Holtz의 버킷리스트 중 33년이 경과한 후 107가지 중 103가지를 달성하였다고 한다. 골프계에도 버킥리스트의 좋은 예가 존재한다.

지금부터 골프계의 두 거장 바비존스와 바이런 넬슨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바비 존스 [Robert Tyre Bobby Jones Jr, 1902.3.17~1971.12.18]

사람들은 바비 존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마추어 골프선수라고 칭한다. 성실한 성격을 가졌으며 언제나 가족을 제일로 생각했던 인물이었다고 기억되고 있다.

1923년, 1926년, 1929년, 1930년에 미국 오픈 선수권을, 1924년, 1925년, 1927년, 1928년, 1930년에 미국 아마추어 선수권을 획득하였고 1926년, 1927년, 1930년에는 영국 오픈 선수권도 획득하였다. 1930년에는 영국과 미국의 오픈 및 아마추어의 4대 선수권을 획득하였다.

바비 존스는1916년 14세의 나이로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선수 생활 초반에 그는 뉴욕 인우드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진 사라젠, 맥도널드 스미스, 월터 헤이건, 짐바네스, 알 와트로스와 레오 디젤과 같은 톱 플레이어들을 제치고 첫 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따낸다. 다음해 메리온에서는 US 아마추어 챔피언에 오른다

1920년대 말까지 존스는 아홉 차례의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얻었으며, 가장 먼 비거리를 기록하는 최고의 선수로 꼽혔다. 그는 미국과 영국의 아마추어대회와 오픈 챔피언쉽을 같은 해에 모두 휩쓰는 『아마추어 슬램』의 꿈을 1930년 이루어낸다.

바이런 넬슨 [John Byron Nelson, 1912.2.4~2006.9.26]

2006년 9월 26일. 세계 언론은 미국 텍사스발 짧은 외신을 빠짐없이 실었다. 골프전설인 바이런 넬슨의 사망소식이었다. 텍사스 현지 언론은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 언론들은 바이런 넬슨의 골프인생을 회고하는 특집을 실었다.

근대골프에서 전설적인 골프스타는 수없이 많지만 바이런 넬슨만큼 전설 그자체가 된 골퍼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존바이런 넬슨이란 본명보다 바이런 넬슨이란 애칭이 더 유명한 그는 짧은 프로생활동안 골프사에 남을 탁월한 성적을 냈을뿐만 아니라 우아한 스윙과 깜끔한 매너로 신사의 대명사로 추앙받았다. 그에 따라다니는 ‘철의 바이런’ ‘그린이 신사’ ‘바이런 경’ 등의 별칭이 평생 따라다닌 것은 결코 예우가 아니다.

1912년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또다른 미국의 전설적인 골퍼 벤호건(William Benjamin Hogan)과 함께 어릴때부터 동네의 글렌가든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며 골프를 익혔다. 1923년 캐디골프 챔피언쉽에서 호건을 물리치고 우승한 그는 1932년 프로로 전향하여 1946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통산 54승을 거두었다.

15년동안 54승이라는 기록도 경이적이지만 마스터즈(1937, 1942), US오픈(1939), PGA선수권(1940, 1945) 등 5회의 메이저대회 우승과 지금도 깨어지지 않은 1945년에 거둔 18승의 기록이 넬슨을 전설적인 골퍼로 불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45년 113개의 대회에 참가하여 3월의 마이애미 대회를 시작으로 6월의 PGA선수권까지 11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1942년부터 1946년까지 65개 대회 톱10 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세웠다.

평소 “우승 상금으로 목장에 필요한 트렉터와 소를 구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던 넬슨은 34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한 것도 위장병이 악화한 탓도 있지만 어려서부터 꿈꾸어온 목장주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은퇴 후 여가로 골프를 해온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바이런 넬슨 클래식에 참석하여 인자하고 멋있는 노골퍼의 모습을 팬들에게 보였다.

세계 골프역사의 거장은 목표가 뚜렷하고 명확하였으며, 달성 후에는 본연의 삶의 목표로 원상 복귀한 사례이기도 하다. 역사기록에 존재하면서 후손에 존경받던 분들을 살펴보면 실패를 거듭했으나 오뚜기같이 다시 일어나 목표를 뚜렷하게 재설정하고,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시간을 집약적으로 활용하는 등 버킷리스트가 미래의 업적을 달성하는데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나를 잘 다스리는 법

총명하고 생각이 밝더라도 어리석음으로 자기를 지키고,
공이 천하를 덮을만하더라도 겸양으로 자기를 지키고,
용맹이 세상에 떨칠지라도 겁냄으로써 자기를 지키고,
온 세상을 차지할 정도로 부유하더라도
겸손으로써 자기를 지켜야 한다.
-공자(‘출근길에 읽는 한 토막 명심보감’에서 재인용)

촌철활인

서경(書經)에 ‘만초손(滿招損) 겸수익(謙受益)’,
즉 ‘가득 차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오만한 사람보다 늘 겸손한 사람을 존경하고 따릅니다.
평범한 진리인데,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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