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 사성제(四聖諦)라고 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이 있고(苦),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으며(集,)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가 존재하고(滅,)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이니 길이(道) 있다고 한다.

사성제는 일종의 심리적 처방이다. 증상과 증상의 원인, 치유의 가능성과 치유에 이르는 방법이다.

 

첫 번째 진리는 고(苦, 쓰다), 즉 ‘괴로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삶 자체가 아픔(pain)이 따른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불교 심리학은 아픔과 괴로움(suffering)을 분명히 구분한다. 괴로움과 아픔은 다르다. 괴로움은 삶의 피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해 일으키는 저항이다. 아픔은 몸에서 일어나고 괴로움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괴로움은 집착하고 저항할 때 발생한다. 즉, 고통 = 괴로움 × 저항의 공식이 성립된다.

두 번째 진리는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집착이 그 원인이다. 본질적으로 諸行無常(제행무상)의 진실을 거부하며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 번째 진리는 멸(滅),‘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가 있다’는 사실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경지, 괴로움이 끝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픔과 달리 괴로움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자동 반응과 두려움, 집착을 내려놓을 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을 때 자연스러운 평온과 행복이 있다. 이 자유를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열반(涅槃)’이라고 부른다.

네 번째 진리는 ’괴로움의 소멸에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道)이 곧 ’팔정도(八正道)‘이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 바른 집중(正定)의 여덟 가지를 말한다. 팔정도에서 ’바른‘은 치우치지 않는다’ 온전하다. 효과적이다. 완벽하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팔정도의 여덟 가지는 항상 상호 작용한다. 하나를 깊이 닦으면 다른 일곱 가지도 함께 닦는 것이 된다. 이 길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중도는 삶에 집착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을 때 슬픔과 기쁨의 한가운데서 깨어 있음과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괴로움이 닥치면 사성제에서 길을 찾아보자. 자신을 진정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 그 괴로움의 성질과 원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행동으로 인해 지금의 괴로움이 왔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찾자.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라는 실체를 깊이 들여다보자. 그렇게 할 때 무엇이 지금 우리의 괴로움을 일으키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괴로움을 향해 미소 지으면서 더 수월하게 깨어 있을 수 있다. 나 자신이 겪는 괴로움이 줄어들수록 세상에 존재하는 슬픔과 괴로움에 대한 자각은 커진다. 가슴이 열리면서 나와 세상의 모든 사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안정되고 평온감에 머물 때 탐욕, 성냄, 어리석음(貪瞋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 명상입문 신지욱 著 중에서-

 

사성제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조건에 의한 발생’을 의미하는 연기(緣起)에 근거하고 있다. 조건에 의한 발생의 법칙을 말하는 연기의 입장에서 보면, 원인과 조건에 해당하는 집(集)에 의존하여 결과로서 괴로움[苦]이 생겨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조건으로 하여 괴로움의 소멸[滅]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붓다가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설하는 방법은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의사로써 붓다는 먼저 병을 진단하고, 그 병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 찾아낸 다음, 병의 제거 방법을 검토하고 나서 병을 치유하는 방법[처방]을 내렸다. 괴로움[苦, dukkha]은 병이다. 갈애(渴愛, taṇhā)가 병의 발생 원인이다[集]. 갈애를 없앰으로써 병이 제거된다. 그것이 치유이다[滅]. 여덟 갈래 고귀한 길은 그 처방이다[道].

 

이 사성제의 가르침은 마음챙김명상의 기반임을 알 수 있다. 마음챙김명상은 동양의 지혜와 철학이 서양의 과학과 접목된 것이다. 미 심리학자이고 명상가인 타라 블랙은 RAIN 명상 기법으로 괴로움을 인지하고Recognize),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Allow), 부드러우면서 호기심에 찬 주의집중으로 살피고(Investigate), 사랑이 가득한 현존 감으로 보살피기,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내면으로 부드러운 포옹, 연민을 선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Nurture). 이후는 행위(Doing)모드에서 존재(Being)모드로 옮겨간다. 즉 현존감의 특성인 열린 마음, 깨어 있음, 부드러움에 집중하면서 어떠한 상황(苦)에서 마음챙김명상을 전개하게 된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결과, 즉 변화는 생각과 느낌의 일관성을 요구한다>

2014년을 맞이하였다. 년 초가 되면 무언가 새로운 계획을 만들고 실천할 것을 스스로 약속한다. 새로운 면을 창조하고 싶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 즉 경험에 대한 반응이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누군가가 되어야 하고, 새로운 마음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결과를 관찰해야 한다.

 

홍도 일출


양자물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관찰자로서 다른 존재 상태를 창조해야 하고 새로운 전자기 서명(재능, 건강, 자유, 부 등)을 만들어 잠재성으로 존재하는 양자장 내 잠재적 현실과 연결되어 내가 그 잠재적 현실로 이끌리거나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생각과 느낌을 사용하여 양자장과 소통한다. 우리의 생각은 에너지이며 파동과 입자로서의 이중적 특성이 있다. 파동은 일정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생각도 느낌도 마찬가지다. 머리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느끼면서 무언가 변화하려고 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일관성 없는 양자장과의 소통은 아무것도 변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동이 일관성을 띨 때 훨씬 강력해지는 것처럼, 생각과 느낌이 열정적인 감정과 함께 목표에 대한 분명한 생각이 있을 때 우리가 원하는 잠재적 현실로 자신을 끌어당겨 줄 강력한 신호를 보내게 된다.

만약 의도와 바람이 지속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일관성 없는 메시지를 보냈을 확률이 높다. 왜야하면, 생각은 뇌의 언어이고 느낌은 몸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즉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일 때, 양자장은 결코 일관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과 느낌이 정렬될 때, 마음과 몸이 함께 작동할 때, 새로운 결과를 낳는 일관성이 있는 파동을 보내게 된다.

변화를 할 수 있는 답은 바로 명상이다. 불교에서의 身(신)- 受(수) - 心(심)-法(법)이고 명상 지도자 타라브랙의 인지(Recognize) - 인정(Allow) – 조사(Investigate) - 친절한 보살핌(Nurture)이 답이다. 일정한 시간과 조용한 장소, 이완하고 집중을 할 때 생각과 느낌, 감정을 정리하고 목표를 향한 간절한 심상을 하는 것이 명상이다.

친구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면서 변화하고 창조하려면 답은 명상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는 부처님의 四聖諦(사성제,苦/集/滅/道)에 대한 해석에서 집착에 대해 아름답게 말한다.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슬픔의 뿌리는 집착욕구이다.

슬픔 없는 삶의 해답은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 깨침과 사랑 – 중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욕망하고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그것에 집착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기억하라!

무집착이 곧 당신의 본성이다.

무집착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알아차림은 곧 행복이다.

 

#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 평상수련 2023 년 1~2월

# 명상 뇌 과학

# 마음의 기적을 만든다.

마음 발견의 기술’(국제공인 마스터 코치,김종명 著)에서는 코칭을 단순한 스킬이라는 관점을 넘어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관점에서 명쾌하고 흥미롭게 풀어냈습니다. 코칭을 공부하는 이들은 물론, 불교와  명상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불교와 코칭이 완벽한 합일로 보는 코칭 전문가 김종명 저자의 마음 발견의 기술책을 읽은 후, 불교의 기본 교리를 이해하면 명상에 입문하는  분들께 도움을 주고자 본 도서의 불교 교리와 코칭의 패러다임  인용하여 명상을 하기 위한 진리와 지혜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붓다는 깨달음을 證得(증득)후 대중에게 행한 최초의 설법이 사성제(四聖諦)’ 였습니다.고집멸도(苦集滅道)입니다.인간의 고통은 집착으로부터 비롯되고 집착을 소멸시키기 위해 팔정도를 수행을 해야 합니다. 마음챙김은 팔정도의 첫 과정의 정견(正見)을 개발하기 위한 수행법입니다.
 
MBSR 마음챙김은 고통의 원인이 되는 느낌, 감각, 생각 등에 집착하거나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고 수용적으로 직면하도록 한다. 지금 현재에 일어나는 느낌, 감각, 생각을 비판단적으로 주시하고 알아차림으로써 이러한 대상들을 분리하여 나 자신과 동일시 하지 않으며,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것들을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마음챙김을 정의하고 있다.
 
•  다음의 구조는 불교 교리와 코칭의 패러다임입니다.
불교교리와 코칭의 패러다임(김종명 著)

 

0.명상 역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교리를 익히는 것은 필수이, 교리를 이해와 지혜의 알아차림은 명상에 기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상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께  필수인, 불교의 기본교리인 상기 내용에 명시된 삼법인과 연기설,사성제,팔정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삼법인> 불교에서는 인감도장이라고 합니다.진리를 증명하는 세 개의 도장입니다.

1.제행무상(諸行無常) :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존재 현상이 영원할 거라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한다.즐거움과 마찬가지로 괴로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제행무상은 변화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지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한다는 것은 특정한 시점에만 변하는 게 아니라,변화의 흐름이고 연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제행무상의  지혜는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고,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생각, , 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자기 존재의 변화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한편 제행무상의 원리에 의하면, 모든 것은 현재입니다. 과거는 이미 가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현재만 존재만 존재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제행무상은 모든 것이 변화한다.현재의 순간을 알아차리고, 현재의 모든 순간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2.제법무아(諸法無我) : 영원히 존재하면서 개체의 정체성(正體性)을 보장해주는 실체가 없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들게 생각합니다. 내가 엄연히 있는데 내가 없다. 무아다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여기서 무아라는 말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실체로서의 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  더 붙이면 무아란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나라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무아의 의미를 해석하면 변하자 않는 특정한 모습으로서의 고정된 자기가 있을 거라고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이고,인간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존재이기 대문에 고정불변한 모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그래서 무아의 지혜라면 고정된 나라개념이 없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유연하고 열려 있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명상에서는 셀프리스 (Selfless)라고 말할 수 있고 코칭에서는 에고리스(egoless)거 같습니다.

     * * 제법무아는 연기법으로 더욱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연기법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일체만물의 존재원리입니다. ‘모든 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원인과 조건이 있어야 비로서 생기고, 원인과 조건이 없어지면 존재도 사라집니다. 원인과 조건이 있기 전에는 비어 있는 상태였다가,원인과 조건이 있어야 비로서 생기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공()이다라고 표현합니다.空이란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무조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원래부터 고정되어 있는 성품이 없기에 비어 있다고 합니다.그러므로 공이란 원인과 조건이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비어 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진공묘유(眞空妙有,참다운 공은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묘하게 존재 한다는 뜻) 제법무아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연기하는 존재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따라서 제법무아와 연기법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원리입니다.

 

3.일체개고(一切皆苦) : '()에는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적 고통뿐만 아니라 불만족이나 불충분함도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변화하여 영원한 자아가 없는 존재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완전무결할 수가 없다. 모두 불완전한 인격체일 수밖에 없습니다.'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기(緣起)하며 변하고, 변하여 고()라고 한다' 한 순간도 내 욕망을 채워주지 않고 변하니까 고()입니다. 또 사람의 본능인 욕심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을 더 괴로워합니다.  석가모니가 출가하여 수행한 것은 바로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다시 요약하면 "세상은 무상한 것이고 [제행무상(諸行無常], 나라고 할 것이 없기 [제법무아(諸法無我)]때문에 모든 것은 고통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이다. 우리는 모든 고통을 [일체개고(一切皆苦)]극복하기 위해 네 가지의 자세[사제(四諦)]와 여덟 가지의 가르침[팔정도(八正道)]을 깨닫고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 * 부처님께서 “어리석은 중생들의 삶은 괴롭다.(一切皆苦)”고 가르치신 것은 ‘깨달아야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핵심은 모르고, ‘세상은 본래 괴로운 것이다.’라고 잘못 해석을 하고 있다. 고해(苦海) 즉 ‘괴로움의 바다’라는 것은 어리석은 중생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괴로운 세상이라는 뜻인 것이다" <송강 스님>

따라서 그가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으로 행한 설법에서 고, 고의 원인(), 고의 소멸 그리고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4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설한 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불교는 바로 고의 인식에서 출발하여 고의 소멸을 지향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고의 종류는 흔히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4가지 괴로움(四苦)이 있으며, 여기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싫어하는 이와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이러한 모든 괴로움을 담고 있는 이 몸이 성하게 존재하고 있는 괴로움(五陰盛苦)를 더한 8가지 고통(八苦)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12 연기설
연기(緣起)란 말의 뜻은 어떤 조건에 의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모든 존재와 현상은 원인과 조건이 서로 관계하여 성립된다. 따라서 인연에 의해서 그와 같은 모습으로 성립되어 있을 뿐이며, 독립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와 같이 연기법은 사물의 존재와 성립에 대한 법칙을 밝힌 가르침이다.
특히 12가지 요소가 서로 인과 관계를 이루어 가면서 성립되는 것을 12연기라 하며, 이는 초기 불교 이래로 연기법의 기본으로서 설명되고 있다.
12가지 요소는 무명(無明), (), (), 명색(名色), 6(), (), (), (), (), (), (), 노사(老死) 등이다.
이러한 12 연기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파했던 가르침들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교리이며, 불교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다.


무명: 4() 등의 진리를 모르는 미망의 근본인 무지를 말한다.
: 무명으로부터 다음의 의식 작용을 일으키는 상()으로 우리가 짓는 업을 뜻..
: 인식 주관으로서의 6().
명색: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마음, 또는 정신을 명()이라 하고, 형체가 있는 물질 또는 신체를 색()이라 한다.
⑤ 6: (), (), (), (), (), () 등의 6()이다.
: 감각과 지각 등의 성립 조건인 6, 6, 6, 이 셋이 만나서 생겨나는 것이다.
: 6, 6, 6, 셋이 만나서 촉을 이루고, 그 후에 생기는 고통, 쾌락 등의 느낌을 말합니다.
: 욕망의 만족을 바라는 욕구와 열망, 갈애 등이다.
: 자기 자신이 소유하고 싶어하는 집착을 말하다.
: 생사 윤회하는 중생의 생존계로서 3() 25()를 말한다.
: 중생이 어떤 부류의 중생계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노사: 태어나서 늙고 죽는 것으로서 중생의 모든 고통을 대표.
 
   진화론은 연기론이다. 생명의 모습에 대한 정견(正見)이다.

 

사성제(四聖諦) : ···道의 네 가지 진리를 의미하는 불교교리, 성인들이 체험적으로 이해한 네 가지 진리라는 의미
()
괴로움이라는 진리
() · 느낌() · 생각() · 의지() · 인식()5()이라 하는데, 5온에 집착이 번성하므로 괴로움이고, 5(,.,,)은 집착을 일으키는 근원이므로 괴로움이며, 5온에 집착하므로 괴로움
()는 구체적으로 ···(生老病死)4()와 원증회고(怨憎會苦애별리고(愛別離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온성고(五蘊盛苦)의 네 가지를 합한 8
불완전하고 더러움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
()
괴로움의 발생이라는 진리
괴로움은 어떤 원인과 조건이 성숙하고 결합해서 일어나는데, 그 원인은 갈애(渴愛)
마음속에 갈애가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한 발짝 물러서서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게 수행의 시작
()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
5온의 작용에서 집착이 소멸되고, 또 그 5온에 집착하지 않아 갈애가 소멸된 상태이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소멸된 열반의 경지.
()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
이상향인 열반에 도달하는 원인으로서의 수행방법이며, 구체적으로 팔정도(八正道)라는 여덟 가지 수행 법을 제시
사성제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조건에 의한 발생’을 의미하는 연기(緣起)에 근거하고 있다. 조건에 의한 발생의 법칙을 말하는 연기의 입장에서 보면, 원인과 조건에 해당하는 집()에 의존하여 결과로서 괴로움[]이 생겨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조건으로 하여 괴로움의 소멸[]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붓다가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설하는 방법은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의사로써 붓다는 먼저 병을 진단하고, 그 병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 찾아낸 다음, 병의 제거 방법을 검토하고 나서 병을 치유하는 방법[처방]을 내렸다. 괴로움[, dukkha]은 병이다. 갈애(渴愛, taṇhā)가 병의 발생 원인이다[]. 갈애를 없앰으로써 병이 제거된다. 그것이 치유이다[]. 여덟 갈래 고귀한 길은 그 처방이다[].
팔정도(八正道) :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
① 정견
  (正見)
바르게 보기, 올바로 보는 것. 바른 견해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먼저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
② 정사()
(正思())
몸과 말에 의한 행위를 하기 전의 바른 의사 또는 결의를 가리킨다. 출가자라면 출가자 다운 유화(柔和:부드러운 조화)와 자비와 충정의 마음으로 사념사유(思念思惟:바르게 기억하고 바르게 생각함)하는 일이다. 일반 사회에서도 자기의 처지를 언제나 바르게 생각하고 의지를 바르게 갖는 것이 정사유이다
정어
(正語)
.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언어적 행위이다. 망어(妄語:거짓말악구(惡口나쁜말양설(兩說:이간질 하는 말기어(綺語:속이는 말)를 하지 않고, 진실하고 남을 사랑하며 융화시키는 유익한 말을 하는 일이다
④ 정업
(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올바른 직업관과 직업윤리 . 바른 생각과 말에서 나아가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⑤정명
(正命)
바르게 생명을 유지하기, 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바른 생활이다. 옳은 일에 종사하고 몸과 마음과 말의 (신구의)삼업을 청정히 하면서 바로 사는 것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바른 직업관을 가지고 생업에 임해야 한다.
⑥정근,정정진(正勤, 正精進)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다. 정진은 이상을 향하여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은 종교·윤리·정치·경제·육체 건강상의 모든 면에서 이상으로서의 선()을 낳고 증대시키되, 이에 어긋나는 악을 줄이고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⑦ 정념
(正念)
바른 의식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언제나 잊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되 무상(無常:모든 것은 항상 하지 않고 변화함(苦:모든 것은 불완전하여 괴로움무아(無我:나라는 실체가 없음) 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잊지 않는 일이다
⑧정정
(正定)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바른 수행이다. 번뇌 망상에서 바른 견해나 행동이 나올 수 없다. 마음과 몸을 평안하게 하고 바로 수행해야 한다

 

마음챙김명상을 하시는분! 불교의 기본 교리를 이해한다면 수행하는 데 수월 할 것입니다. 

명상은 결국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한 수행입니다. 일상에서 미망(迷妄)으로부터 벗어나 평온과 안정을 하고

현존에 머물며 지혜를 실천할 때 행복합니다. 물론 주변도 같이 행복을 공유합니다.

 

<마음 챙김과 정견(正見)>

 

0.불교 존재론의 핵심은 無我다. 무아란 ' 모든 존재의 실체(實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조건들이 결합에 의해

   존재되었다가 그 조건들이 해체되면 존재도 없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나'라는 實在는 五蘊(오온,色,受,想,行,識)이다.

 

0.나를 구성하는 오온이 생멸(生滅) 조건이다.

- 물질적인 요소인 色, 감각 요소인 受, 인식 작용의 想, 의지작용의 行, 그리고 마음 작용의 識

* 내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감각도 조건에 의해서 일어났다가 조건이 해체되면 사라진다.

   그리고 감각기관이 주시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 느낌도 사라진다.

 

0.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접촉하여 일어나는 느낌도 사람마다 다르다.

- 왜야하면 사람 안에 조건화된 마음의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정서바탕 또는 정서 환경)

- 마음의 바탕에 따라 거친 마음 또는 맑고 고운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 마음의 환경에 따라 느낌, 감각, 생각 등이

   사람마다 다르다.

 

0.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지각 작용이 조건화되어 경험을 만들고 이 경험에 의해 조건화되어 마음작용이 일어난다.

- 인간의 습관적 행위는 패턴화돤 반응양식으로 사물과 현상을 접촉했을 때 마음의 바탕에서 여과되지 않고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양식을 말한다.

 

0.마음챙김은

- 습관적 반응양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나는 느낌, 감각, 생각 등을 주시하고 알아차림으로써

   습관 된 반응양식에 빠지거나 끌려가지 않고 내가 선택한 반응을 할 수 있게 한다.

   (분노, 우울감, 소외감 등의 표현 양식)

- 각기 반응이 다른 것은 그 사람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의식의 패턴이 있기 때문, 즉 구조화된 반응 양식

  *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감정반응 양식으로 내면세계에 형성된 인지도식(Schema)을 거쳐 자동 반응한다.

- 불교심리학에서 인간의 고통은 집착에서 오고 집착의 소멸이 자유와 해탈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여기서 집착의 소멸은

  팔정도(八正道) 수행으로 통제 가능하다.

  * 팔정도 中 첫 번째가 正見이다. 바르게 보고 바른 견해다. 바른 견해는 바른 생각을 하게 되고 바른 생각은 바른 말과 행동을 한다.

 

-정견(正見)의 길이 바로 사티(Sati)이다. 즉 마음챙김, 알아차림이다.

 * 알아차림의 힘을 개발하면  관념체계를 깰 수 있고, 알아차림을 통해 느낌이나 감정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것이다.

    즉 감정 반응양식에 자동 반응을 하지 않고 선택적 반응을 한다.

- 감정을 거부하거나 감정을 없애려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감정을 바꾸려는 것도 아니다.

* 일어나는 느낌, 감정, 생각 등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대로 주시하면서 알아차림을 하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감정반응을  알게된다. 즉 선택적 반응이다.

- 알아차림의 힘이 강해지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감정반응 혹은 내 안에 구조화된 스키마(schema)가 깨어진다.

  - New MBSR 중에서, 이재영 著-

 

 마음챙김 명상은 정견이고, 명상으로 알아차림이 강해지면 내 안에 있는 습관화된 반응 양식이 깨어지고 선택적 반응이 형성된다.

자신의 내부 구조에 느낌이나 감정,생각 등이 종합처리하여  정화된 마음이 새로운  반응을 형성하는 것이다.

정견은 시작이다. 시작의 단계에서 바르게 접근될 때 결과의 반응은 바르게 됨에 진리를 우리는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잘 알고 있는 진리를 지킬 수 있는 수용의 자세도 필요하다.

즉 정견은 바른 말과 행동에서 시작하여 내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의 사람, 조직, 사회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교훈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정견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챙김의 훈련,즉 명상을 할 때 접근이 용이합니다.

 

*충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는 '명상 뇌과학' 과정을 매 학기를 시작으로 한 학기 (15강, 매주 수용일,2시간)과정으로 운영합니다.

 명상을 슬럼프,우울, 불안 등를  예방의학의학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성제(四聖諦)

 

사성제는 말 그대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네 가지 진리를 말씀드리자면 괴로움의 진리.’ 해서 고성제(苦聖諦).’ 그 다음에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苦集聖諦).’ 해서 집성제.그 다음에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苦滅聖諦).’ 해서 멸성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苦道聖諦).’ 해서 도성제가 되겠습니다.

 

사성제는 초기불교의 궁극적 가르침에 해당합니다. 붓다는 바로 이 사성제의 가르침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서 가르쳤습니다. 다시 말해서 보시(施論)에 대한 가르침, 그 다음에 계율(戒論)에 대한 가르침, 그 다음에 천상세계(生天論)에 대한 가르침 따위의 예비적인 가르침을 먼저 설파를 하고 그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내면의 번뇌가 어느 정도 정화된 사람에 한해서 초기불교의 본래적 가르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사성제의 가르침을 펼쳤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사성제를 초기불교의 경전어인 빨리어로 표현하자면 짜따리 아리야삿짜(cattāri ariyasaccāni)라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짜따리는 네 가지를 의미하고 그 다음에 아리야삿짜.’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아리야하는 그 말은 성스럽다혹은 고귀하다라는 의미가 되겠고 그 다음에 삿짜진리.’라는 표현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괴로움이라고 하는 현상에 대해서 나라고 하는 관념을 투사해서 사변적으로 재구성합니다. 이것은 육체적 괴로움에 대해서건 정신적 괴로움에 대해서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어떠어떠한 괴로움에 빠져있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혹은 나는 괴롭다.’ 혹은 나는 이 괴로움이 싫다.’ 라는 따위의 생각을 지니곤 합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내가 괴롭다.’고 하는 것과 괴로움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붓다는 나는 괴롭다.’ 라는 생각 대신에 여기 이러저러한 괴로움이 있다.’ 라고 하는 방식으로 괴로움 자체만을 직시할 것을 권장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성제의 가르침에서 첫 번째 항목으로 제시되는 고성제, 즉 괴로움의 진리에 우리가 접근해 나가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깊이를 지닙니다. 우리는 나라든가 너 혹은 우리 따위의 관념에 메인 상태에서 괴로움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결과 괴로움을 나의 것으로 만들거나 혹은 괴로움을 짊어진 나 혹은 나의 자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붓다에 따르면 이러한 유형의 괴로움은 나라고 하는 관념이 투사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증폭이 된다고 진단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괴로움은 도대체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의 이 지긋지긋한 괴로움을 누구에게 호소한단 말인가?’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바로 그러한 상태에서는 괴로움을 괴로움 자체로 보지 않고 나라는 관념과 얽힌 상태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괴로움의 실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붓다는 말합니다. 당연히 괴로움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괴로움의 원인도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또한 괴로움의 소멸 상태에 대한 바른 전망도 가질 수 없다는 게 고성제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될 부분입니다.

 

섣부르게 우리가 괴로움을 맞선다거나 혹은 괴로움을 제거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괴로움 자체를 더 증폭시킬 수가 있습니다. 또한 괴로움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새로운 괴로움의 악순환으로 초래되기 쉽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괴로움들이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증폭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괴로움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나라든가 너라든가 우리 따위의 관념을 내려놓고 경험하는 현실 속에서 괴로움 자체만을 냉정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수용적인 태도는 괴로움이 야기 시킨 여러 가지 부정적 정서들로부터 얼마간 벗어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괴로움과 연결된 혹은 괴로움에 수반된 여러 가지 정서적, 심리적 요인들로부터 우리가 거리를 둘 때 괴로움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고 그 다음에 그러한 괴로움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현상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 이었는가하는 부분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에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에 대한 올바른 전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붓다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괴로움을 바라 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성제의 가르침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할 올바른 태도입니다. 괴로움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보기 이전에 괴로움 자체로서 보는 것.’ 바로 여기에 사성제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실전적 접근의 실마리가 담겨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성제의 가르침은 언어적 유희의 차원에 머무는 사변적 형이상학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것은 괴로움을 실제적으로 대처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한 치유책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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