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 사성제(四聖諦)라고 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이 있고(苦),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으며(集,)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가 존재하고(滅,)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이니 길이(道) 있다고 한다.

사성제는 일종의 심리적 처방이다. 증상과 증상의 원인, 치유의 가능성과 치유에 이르는 방법이다.

 

첫 번째 진리는 고(苦, 쓰다), 즉 ‘괴로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삶 자체가 아픔(pain)이 따른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불교 심리학은 아픔과 괴로움(suffering)을 분명히 구분한다. 괴로움과 아픔은 다르다. 괴로움은 삶의 피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해 일으키는 저항이다. 아픔은 몸에서 일어나고 괴로움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괴로움은 집착하고 저항할 때 발생한다. 즉, 고통 = 괴로움 × 저항의 공식이 성립된다.

두 번째 진리는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集)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집착이 그 원인이다. 본질적으로 諸行無常(제행무상)의 진실을 거부하며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 번째 진리는 멸(滅),‘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가 있다’는 사실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경지, 괴로움이 끝난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픔과 달리 괴로움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자동 반응과 두려움, 집착을 내려놓을 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을 때 자연스러운 평온과 행복이 있다. 이 자유를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열반(涅槃)’이라고 부른다.

네 번째 진리는 ’괴로움의 소멸에 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道)이 곧 ’팔정도(八正道)‘이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 바른 집중(正定)의 여덟 가지를 말한다. 팔정도에서 ’바른‘은 치우치지 않는다’ 온전하다. 효과적이다. 완벽하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팔정도의 여덟 가지는 항상 상호 작용한다. 하나를 깊이 닦으면 다른 일곱 가지도 함께 닦는 것이 된다. 이 길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중도는 삶에 집착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을 때 슬픔과 기쁨의 한가운데서 깨어 있음과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괴로움이 닥치면 사성제에서 길을 찾아보자. 자신을 진정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 그 괴로움의 성질과 원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행동으로 인해 지금의 괴로움이 왔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찾자.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라는 실체를 깊이 들여다보자. 그렇게 할 때 무엇이 지금 우리의 괴로움을 일으키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괴로움을 향해 미소 지으면서 더 수월하게 깨어 있을 수 있다. 나 자신이 겪는 괴로움이 줄어들수록 세상에 존재하는 슬픔과 괴로움에 대한 자각은 커진다. 가슴이 열리면서 나와 세상의 모든 사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안정되고 평온감에 머물 때 탐욕, 성냄, 어리석음(貪瞋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 명상입문 신지욱 著 중에서-

 

사성제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조건에 의한 발생’을 의미하는 연기(緣起)에 근거하고 있다. 조건에 의한 발생의 법칙을 말하는 연기의 입장에서 보면, 원인과 조건에 해당하는 집(集)에 의존하여 결과로서 괴로움[苦]이 생겨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조건으로 하여 괴로움의 소멸[滅]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붓다가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설하는 방법은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의사로써 붓다는 먼저 병을 진단하고, 그 병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 찾아낸 다음, 병의 제거 방법을 검토하고 나서 병을 치유하는 방법[처방]을 내렸다. 괴로움[苦, dukkha]은 병이다. 갈애(渴愛, taṇhā)가 병의 발생 원인이다[集]. 갈애를 없앰으로써 병이 제거된다. 그것이 치유이다[滅]. 여덟 갈래 고귀한 길은 그 처방이다[道].

 

이 사성제의 가르침은 마음챙김명상의 기반임을 알 수 있다. 마음챙김명상은 동양의 지혜와 철학이 서양의 과학과 접목된 것이다. 미 심리학자이고 명상가인 타라 블랙은 RAIN 명상 기법으로 괴로움을 인지하고Recognize),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Allow), 부드러우면서 호기심에 찬 주의집중으로 살피고(Investigate), 사랑이 가득한 현존 감으로 보살피기,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내면으로 부드러운 포옹, 연민을 선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Nurture). 이후는 행위(Doing)모드에서 존재(Being)모드로 옮겨간다. 즉 현존감의 특성인 열린 마음, 깨어 있음, 부드러움에 집중하면서 어떠한 상황(苦)에서 마음챙김명상을 전개하게 된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내  생각일 뿐, 내 삶이 아닙니다.

 

 생각에 집착하면 두렵고 고통스러워집니다.

         생각을 생각하지 않을 때 

      나는 비로서 자유로워집니다.  

    모든 문제는 생각에서 비롯되며 

  그 생각에대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도 네게 상처 즐 수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상처 줄 수 있습니다.

               - 바이런 케이티-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외로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

괴로운 인간관계, 일상의 스트레스로 인한 몸과 마음의 병리 현상들 ----

 

마음챙김명상(冥想, Mindfulness)은 받아 들림이고 끌어 안음입니다.

고독함, 두려움, 불안도 인지와 인정하며, 다정하게 살펴보고 연민에 의한  보살핌의 과정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 트랜스 상태에서바로 자동반응하지 않고 대응하는 법을 익혀 습관화 한다.타나브랙의RAIN의첫 두단계 인지(Recognize) 하고 인정(Allow)하는 단계에서 마음 챙김의 현존감을 깨운다면 자유로운 마음의 길로 들어선다.

<“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으며, 바로 그 곳에 당신의 힘과 자유가 있다.”  - 빅터 프랭클->

고요하게 앉자 호흡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상처, 분노, 두려움, 수치심,(트라우마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 이외)에서 중간 정도의 정서적 자동 반응을 유발하는 상황을 떠올려본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갈등일 수도 있고 중독적인 행동, 혹은 직장에서의 고민일 수도 있다. 그 정서가 가장 강렬해지는 지점까지 영화를 보듯 되플이 해서 생각한 다음, 어떤 것이든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점에 집중해본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내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런 다음 가장 괴롭거나 가장 강렬한 감정을 감지하라.

이제 그 감정에 대한 태도를 자각한다.아마 자신의 경험에 항상 노, 라고 했을 것이다. 뭔가 잘못 되었고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사라지길 바라고 자신이나 타인을 비난하고 변화시키려 하거나 밀어내고 있는가? 실험 삼아 ‘노’라는 말과 그 에너지를 가장 괴로운 부분에 직접 보내보라. 자신의 감정을 거절할 다음, 가슴,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느껴보라.그리고 그런 감정을 자주 느끼는지, 그것이 자신에게 익숙한 부분인지 생각하라.

 

심호흡을 몇 번하라. 이 상황에서 가장 힘든 부분을 다시 떠올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을 회상한다. 이번에는 이렇게 질문해보자. 이 감정을 함께 할 수 있을까?” 혹은 이것을 내버려둘 수 있는가?” 당신이 찾아낸 것 전부를 품을 수 있는 자각의 공간에 이것을 온전하게 그대로 둘 수 있다고 생각하라. 일어나고 있는 것에 노, 라고 거부하던 당신의 그 부분에 예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가장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것에 “예스”라는 말과 그 에너지를 보내본다. 몸에 어떤 느낌이 드는가? 가슴은? 마음은 ? 확실히, 무조건, “예스”라고 하라. 예스,라고 말할 때 자신의 존재감은 어떠한가?

 

다가올 며칠, 몇 주일을 상상하라. 이런 상황이 다시 발생했을 때 힘든 정서에 이름을 불러주고, 완전히 멈추고,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멈춰서 자신의 내면에다 예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떤 가능성이 열릴까?

 

* 붓다는 마라(불교의 창시자 가모니를 여러 차례 유혹한 '욕계의 지배자')에게 다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라 ---다시 만났네요. 와서 차 한 잔 합시다."라며 마라를 귀한 손님으로 맞이하였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이성은 정념(情念.passon)의 노예"라고 말했다.여기서 정념은 강한 욕정과 원한에 사로잡혔을 때 이성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흄이 말한 정념은 조금 다른 의미인 우리가 느끼는 '일반 느낌'을 가리킨다. 즉 인간의 동기에서 이성적 사고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기를 일으키는 주도권은 결코 이성이 쥐고 있지 않다고 보고,무엇가를 하기를 결정할 때 이성이 아니라 '느낌'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로버트라이트#불교는 왜 진실인가

    그 후 과학은 인간이 갖는 동기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보는 두구를 개발하였다. 스탠포드 대학,카네기멜론 대학,MIT 대학의 인지과학자들은 실험에 의해 물건을 구매할 때 찬반요인을 비교하는 작업을 생각만큼 합리적인 과정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건을 보여주고 가격을 결정하는 피험자들의 뇌 영상을 촬영한 결과 이성적인판단과 관련된 뇌 부위는 활성화되지 않고 주로 느낌과 관련이 있는 중격의지핵(Mucleus accumben)이 그 중 하나인데 이 부위는 쾌락을 분배하는 역할을 하며 보상을 하거나 좋아하는 물건을 보았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반면 뇌성엽(Insula)은 통증 등 불쾌한 경험을 예상할 대 활성화되는 부위도 피험자들에게 가격을 보여 주었을 때 뇌섬엽이 많이 활성화 될수록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낮았다고 한다. 즉 '끌림과 싫음'이라는 것이 구매결정의 동기가 된다. 이성만으로는 의지적 행동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킬수 없다고 말했다.

   진화의 관점에서도 보면 느낌이란 원래부터 삶의 동기유발의 도구였고,좋은 느낌은 좋은 정보를 주기기 위해 사용한 도구 였기에 이것이 바로 지능이다. 이처럼 느낌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 또 생각이 끝난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해준다다. 그러므로 오랜 진화를 거치면서 유용한 정보를 주는 계산법은 더욱 정교해졌고,생각의 역할을 점점 커져지만 삶의 동기를 유발하는 긍정적 요인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통제의 본질은 이성이 느낌을 제압하는 문제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 전전두엽 피질에 의해 확장추론, 계획, 자기통제의 능력을 부여하는 집행부로 불린다.그러나 전전두엽 피질은 인류진화가 만들어낸 지휘통솔 모듈이 아니라 전전두엽 피질이 가진 이성의 힘은 그 자체로 느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콜릿바를 봤을 때 먹고 싶고 실제로 먹는다고 생각하면  좋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고혈당이 신체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관 내용을 상기하면 먹고 싶은 생각에 죄책감이 들게 되므로  느낌에 따라  지배를 받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즉 인간은 하나의 이성적 기능이 아니라 여러개의 이성적 여러개의 이성적 기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음 챙김은 느낌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변화시키는 도구이다. 마음 챙김 명상을 통해 중독증 등의 '자기 통제' 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다. 마음 챙김 명상에서 기본적인 역설,즉 가까이 다가가 제대로 관찰할수록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을 보게 된다는 역설을 이용한다.또한 자극과 공간 사이의 고통의 순간의 마음 챙김의 기법인 TRUE REFUGE(호흡하세요 그리고 미소지으세요)와 Radical Compassion(끌어 안음)의 저자이고 명상지도자,임상심리학자이신 타라브랙의 RAIN의 4단계(인지, 인정, 살피기,느낌을 동일시 안함과보살피기)와 불교에서대표하는  마음챙김의 수행법 사념처(四念處 : 몸·느낌·마음상태·현상[身·受·心·法]에 대해 주의력을 불러일으키는 불교 수행법) 수행과 대동소이하다.

 

# 타라브랙 # 끌어안음

    중독의 관점에서도 자신이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도 자신의 특성상 기능이 무언가 결여되었다기보다는 자신의 '느낌'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문제에 더 가까워보인다는 사실이 더 타당하다.즉 어떤 문제에 충동은 약화시키는 비결은 충동에 맞써 싸우는 것이 아니라 충동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통제라는 영역에서 '치료영역' 영적 영역' '도덕영역' 모두에서 우리가 현상을 우리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느낌'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광범위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자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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