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2012]‘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도전은 계속된다
 
런던올림픽 남자 육상 400m 준결승에서 역주를 펼치고 있는 남아공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AP/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윤석민 기자] 절단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 육상 선수 최초로 올림픽 무대에 출전해 정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의 아름다운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6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육상 남자 400m 준결승에서 46초54로 2조 최하위인 8위에 그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4일 열렸던 400m 예선에서 45초44를 기록하고 조 2위에 올라 준결승에 진출했던 피스토리우스는 예선에도 못 미치는 기록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피스토리우스는 이번 준결승에 진출한 24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늦은 출발 반응 속도를 보였다. 의족에 의지해 스타팅 블록을 밀다보니 초반 레이스에서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출발 후 30m 정도는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는 준결승전을 마친 뒤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발목이 없기 때문에 스타팅 블록을 치고 나가는 힘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추진력이 부족한 것은 레이스를 하는 데 있어서 최대의 약점이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프리토리우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 때는 내 선수 인생도 절정기에 달해 있을 것”이라며 “그때는 반드시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피스토리우스는 “내년에는 400m에서 45초 이내로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며 “체중을 지금보다 더 줄이고 오랫동안 높은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스토리우스는 온전히 두 다리를 쓸 수 있는 동료 선수들에게는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세대에게 영감을’이란 런던올림픽 슬로건처럼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9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남자 1600m 계주에서 남아공의 주자로 나서 또한번 위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지 주목된다
[런던2012]‘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도전은 계속된다
 
런던올림픽 남자 육상 400m 준결승에서 역주를 펼치고 있는 남아공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AP/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윤석민 기자] 절단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 육상 선수 최초로 올림픽 무대에 출전해 정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의 아름다운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6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육상 남자 400m 준결승에서 46초54로 2조 최하위인 8위에 그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4일 열렸던 400m 예선에서 45초44를 기록하고 조 2위에 올라 준결승에 진출했던 피스토리우스는 예선에도 못 미치는 기록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피스토리우스는 이번 준결승에 진출한 24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늦은 출발 반응 속도를 보였다. 의족에 의지해 스타팅 블록을 밀다보니 초반 레이스에서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출발 후 30m 정도는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는 준결승전을 마친 뒤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발목이 없기 때문에 스타팅 블록을 치고 나가는 힘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추진력이 부족한 것은 레이스를 하는 데 있어서 최대의 약점이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프리토리우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 때는 내 선수 인생도 절정기에 달해 있을 것”이라며 “그때는 반드시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피스토리우스는 “내년에는 400m에서 45초 이내로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며 “체중을 지금보다 더 줄이고 오랫동안 높은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스토리우스는 온전히 두 다리를 쓸 수 있는 동료 선수들에게는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세대에게 영감을’이란 런던올림픽 슬로건처럼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9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남자 1600m 계주에서 남아공의 주자로 나서 또한번 위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지 주목된다

나를 잘 다스리는 법

총명하고 생각이 밝더라도 어리석음으로 자기를 지키고,
공이 천하를 덮을만하더라도 겸양으로 자기를 지키고,
용맹이 세상에 떨칠지라도 겁냄으로써 자기를 지키고,
온 세상을 차지할 정도로 부유하더라도
겸손으로써 자기를 지켜야 한다.
-공자(‘출근길에 읽는 한 토막 명심보감’에서 재인용)

촌철활인

서경(書經)에 ‘만초손(滿招損) 겸수익(謙受益)’,
즉 ‘가득 차면 손해를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오만한 사람보다 늘 겸손한 사람을 존경하고 따릅니다.
평범한 진리인데,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인연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면 학업을 통해서, 사업을 통해서 사부(師傅)나, 지혜있는 분들로부터 자문과 교훈을 많이 들어야 성공의 첩경이 될 수 있다. 또 서책을 통해서 1천년의 인간이 겪은 지혜를 원용하여 오늘에 지혜롭게 살 수 있다. 도선국사로부터 자문, 교훈을 얻어 고려국을 건국한 고려국의 태조 왕건의 아야기와, 무학대사의 자문과 교훈을 받아 이조(李朝) 왕가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성공담 같은 사례는 한국과 중국, 일본, 삼국(三國)의 역사에 교훈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다.

삼국의 사례를 보면, 한결같이 고승으로부터 개국의 창업자는 자문과 교훈을 비밀리에 받았고, 민심수람을 위한 비책과 관세음보살전에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였다.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무학대사와 이조의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이야기만을 소개한다.

이성계가 젊은 무장(武將)으로 활약할 때, 어느 날 밤에 기이한 꿈을 꾸었다. 무너져가는 큰 기와집에 들어갔는데, 그 큰 기와집이 워낙 낡아서 붕괴 직전이었다. 이성계는 붕괴가 불안하여 큰 기와집집에서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등에 석가래 셋을 가로 짊어지고 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이성계는 흉조(凶兆)인지, 길조(吉兆)인지 스스로 알 수가 없어 다음날 근처의 유명하다는 여무(女巫)를 찾기로 하였다.

유명한 여무(女巫)는 이성계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강신(降神)하여 신의 해몽에 대한 신탁(神託)을 알고져 방을을 흔들며 신전에 노력했으나 이상하게도 강신이 되지 않았다. 여무는 정색하여 이성계에게 자신은 도저히 그 꿈 해몽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가까운 설봉산 토굴에 한 고승이 혼자 수행하고 있으니 찾아가면 해몽을 들을 수 있다고 권하였다.

이성계는 혼자 토굴의 고승을 찾아가 예를 갖추고 대면했다. 그 고승이 바로 무학대사였다. 무학대사는 이성계가 오기 전에 이미 올 것을 전조(前兆)를 통해 알고 있었고, 이성계의 관상을 살핀 후, 꿈 이야기를 들은 무학대사는 금방 의미를 깨닫고 이성계에게 누가 엿들을것을 두려워 하는 듯 나직히 말했다.

“낡아 붕괴되는 큰 기와집은 망해가는 고려국(高麗國)을 의미하는 것이요, 그 집에서 나오면서 등에 석가래 셋을 짊어지고 나왔다는 것은 왕(王)을 의미하는 것이니, 장군은 장차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는 천기를 미리 깨닫게 해주는 길몸입니다. 차후 어느 누구에게도 두 번 다시 그 꿈 이야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날 무학대사는 이성계에게 재삼 꿈 아야기를 두 번 다시 해서 천기(天機)를 누설하여 대업을 스스로 망치는 입조심을 강조하며, 첫째, 백성의 민심은 물론, 수하 장병들과 여타 장병들까지 민심을 얻는 노력을 기울이라 했고, 둘째, 신불(神佛)전에 남몰래 기도하여 가호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날,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서로의 손을 힘차게 잡았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자문대로 첫째, 백성과 장병들의 민심을 얻는데 진력하고, 둘째, 금산(錦山)을 비롯한 명산에서 남몰래 산기도를 드리고, 석왕사(釋王寺)에서 기도를 드렸다. 특히 신분을 승려들에까지 숨기고 관세음보살전에 간절히 기도하고, 명상, 즉 속마음으로 소원성취의 축원을 드렸다 전한다.

이성계장군과 무학대사는 친구와 같이 다정하게 지내면서 단둘이서 막걸리 즉 곡차(穀茶)를 마시면서 국운이 쇠진해가는 고려에 대해 우국(憂國) 우민(憂民)과 또 백성의 태평성세에 대해 범새워 토론하였다. 무학대사는 평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부운(浮雲)처럼 혼자 전국을 돌아 다니는지 자취를 감추다가 때가 되면 가끔씩 이성계장군을 찾았다. 대업의 때를 은밀히 묻는 이성계장군에게 무학대사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으니 부지런히 민심을 얻는 일을 많이 하고, 관세음보살전에 기도할 것”만 강조하였다.


마침내 이성계가 고려의 대병력을 지휘하는 때가 도래했다. 당시 고려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지위에 있는 최영장군이 이성계장군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렸다. 대병력을 내줄 터이니 망해가는 원(元)나라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새롭게 요원의 들불처럼 일어나는 명(明)나라를 토벌하라는 군령을 내린 것이다. 이성계는 황급히 무학대사를 찾아 자문을 얻고자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행방 묘연한 무학대사에 대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이성계는 병력을 이끌고 중국 땅으로 진격하는 변경지역인 '위화도'에 진을 쳤다.

드디어 최영장군의 특사가 군대를 지휘하여 즉시 명나라를 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성계가 출병직전의 밤, 칠흙같은 밤, 은밀히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장막을 찾았다. 그동안 무학대사는 중국 땅에 건너가 원(元)나라가 끝나고, 새로운 명(明) 나라가 중국 대륙을 거의 장악한 것을 직접 목도하고 황급히 귀국하는 길이었다. 무학대사는 엄숙히 이성계에게 明을 공격하는 출병에 대한 부당성을 세 가지를 들어 강조했다.

첫째, 고려를 속방으로 공녀(貢女), 공물(貢物) 등으로 괴롭히든 원(元)은 明의 군대에 쫓겨 거의 멸망한 탓에 출병해서 元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 한족(漢族)이 주도하는 새나라를 희망하는 기세등등한 백만이 넘는 명군(明軍)을 몇 만의 고려군이 맞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도저히 승산이 없고 출병한 고려군은 다시는 고향에 부모형제와 처자를 볼 수 없이 몰살 당하는 것은 물론 그 시체는 대륙에 버려지고, 영혼은 주인없는 고혼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 元을 멸망시킨 明軍은 복수를 위해 고려를 침공하면, 고려군은 물론이요, 무고한 고려의 백성은 집단살해를 당하는 살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고려의 왕과 최영을 위시한 고려조정의 실력자들은 왜 승산없는 전쟁으로 고려군을 출병하는 것인가에 대한 혜안의 논평을 무학대사에게 구했다.

무학대사는 거침없이 답하였다.
첫째, 망해가는 고려국이기 때문에 판단이 흐려 망해가는 元을 구하려는 것이고, 둘째, 최영을 위시한 실력자들이 민심을 얻는 이성계를 시기하고 미워해서 따르는 장병들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지(死地)로 보내는 것이는 음모일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무학대사는 외치듯 말했다. “망해가는 元을 구하기 위해 장군을 따르는 장병들은 물론, 무고한 고려 백성을 몰살 당하는 출병을 하실 것이오? 이제 고려국의 국운은 끝났습니다. 이제 장군은 망한 元을 위해 죽어야 하는 장병들과 함께 살아서, 백성이 원하는 새나라를 건국하시는 때가 온거요.”

또, 무학대사는 중국 땅에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고,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는 때이기 때문에 이 땅에 원(元)과 함께 망하는 고려국을 망하게 하고, 새나라를 세우는 것은, 새로운 중국의 명황제(명황제)가 시비하지 않고 오히려 승인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자문해주었다.


다음날 이성계는 장병들에게 “망한 元을 위해 우리장병이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조의 선동연설을 하였다. 또 고려군의 출병이 결국 장병들은 몰사하고, 명나라의 보복전쟁으로 고려국의 백성이 몰사한다는 것을 연설했다. 특히 중국 땅에 출병하면, 살아서는 고향의 부모형제, 처자를 살아서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여 연설했다.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을 깨달은 고려군은 하늘이 떠나가라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자신들을 죽이려는 최영을 타도하기 위해 회군(回軍)하자는 성난 군심(軍心)으로 돌변해 버렸다.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건국을 위해 중국이 원(元)나라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 명(明)으로 바뀌는 중국정치를 절묘하게 이용하였다. 또 무학대사는 고려인들의 대다수 민심이 元과 함께 망해가는 고려국에 대한 희망을 접은 지 오래라는 것을 환히 알고 있었다. 중국 백성이 明을 선택하듯이 고려국의 백성은 이제 새나라를 원한다는 것을 전국을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다니면서 통찰한 것이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천명(天命)의 이씨 조선의 개국의 단초를 열었다.

중국 땅에서 원(元)나라를 멸망시킨 새로운 제국 명(明)의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누구인가? 주원장은 중국 역사에 탁발 승려가 황제가 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어릴 때, 황각사(皇覺寺)에 출가위승한 법명이 법해(法海)라는 승려였다. 법해는 황각사의 경제가 어려워 탁발을 다니다가 24세에 미륵불의 재림이 왔다고 선전하는 미륵교도들 일명 원나라에서는 홍건적(紅巾賊)이라 부르는 민중의 군대에 졸병으로 투신했다. 법해는 주원장(朱元璋)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지혜와 용기가 출중하여 언제나 전투에 앞장 서는 상승장군(常勝將軍)이었다. 주원장은 44세에 명(明)의 황제위에 올랐다. 주원장 역시 열열히 관음기도를 하는 황제였다.

전해오는 항설(巷說)에 의하면, 주원장은 황제가 되었지만, 두 가지 근심이 있었다. 첫째, 출신이 탁발승려였기에 군심(軍心)과 민심이 비웃고 조롱하는 것이요, 둘째, 몽고로 패주한 원(元)이 고려국 같은 속국의 군대와 연합하여 다시 중원으로 쳐들어오는 것을 크게 근심하였다.

주원장은 자신이 승려 출신이었기에 승려들을 황궁에 초대하여 거하게 대접하고 황금을 불사에 쓰라고 나눠주면서 자신이 같은 승려 출신이었음을 상기시키며, 나이로 따져 사형사제로 불렀다 한다. 주원장은 황궁에서 대접받고 황금까지 받아 만족해하는 승려들의 귀에 이렇게 부탁했다. “자신은 운수좋은 승려출신 황제”가 아니라, 하늘이 낸 진명천자(眞命天子)라는 것을 중국 전역에 홍보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주원장이 황궁으로 전국 고승들을 초대하여 대접할 때, 승려들의 무리속에 무학대사가 끼어 있었다고 한다. 무학대사는 유창한 중국어로 황제의 근심인 망한 원(元)나라의 군대가 고려국의 군대와 연합하여 명(明)을 침공하는 일을 막아주겠다고 말했다. 조건으로 중국에도 새로운 제국을 개국 했듯이, 고려땅에 새나라를 개국해야 할 터이니 이를 무조건 승인 해주고 지원해줄 것을 청했다.

주원장은 주위를 긴급히 물리치고, 무학대사의 손을 잡고서는 “사제는 나의 근심을 꿰뚫보는 혜안이 있구먼. 사실 나도 사제처럼 운수납자로 살아야 하는데, 머리를 기르구 황제 노릇을 하고 있으니…. 늘 부처님께 송구한 마음이지…. 그러나 내가 원(元)을 타도하고, 명(明)을 개국하고, 사제가 고려에 새나라를 개국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은 하늘과 제불보살의 뜻이야. 우리가 어찌 하늘의 뜻을 거스리겠는가? 그런데 고려에 개국할 큰 인물은 있는가? 반드시 원(元)의 편에 서지 않게 막아야 하네. 알겠지?”

명태조 주원장은 임종시 까지 관음기도를 했다. 그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타인 출입엄금의 방에 자신이 예전에 탁발 다닐 때의 낡아 헤어진 삿갓, 더덕더덕 누빈 헌 승복, 낡고 때묻은 걸망을 놓아두고, 가끔씩 혼자 방안에 들어가 만지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관세음보살님께 감사하며 소리없이 울었다 한다.

무학대사의 자문대로 이성계는 이조(李朝)를 개국했고, 명(明)나라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무학대사는 이성계에게 새로운 나라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정해주고 또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무학대사가 이성계 앞에 나타난 것은 태종 이방원이 이성계가 작은부인 강(姜)씨 부인의 아들을 왕위 후계자로 정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강씨 부인의 아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소위 왕자의 난(亂)을 일으킨 후이다.

이성계는 두 사람에게 자문을 많이 받고 있었는 데, 무학대사와 정도전(鄭道傳)이었다. 무학대사는 중국의 유방(劉邦)이 한(漢)제국을 창업하도록 결정적으로 도와주고 홀연히 산으로 사라진 장량(張良)같은 처신을 하여 이성계에게 부귀를 원하지 않았다. 정도전은 자신이 중심이 되는 재상정치를 탐하고, 이성계의 본부인 아들인 태종 편에 서지 않고, 이성계의 둘째 부인 강(姜)씨의 소생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정치 공작을 펼치다가 태종 이방원에게 쫓겨 자신의 집 마루 밑에 숨었다가 붙잡혀 참수 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부귀의 욕망에 의한 잘못된 판단에 정도전은 참수 당했지만, 무학대사는 초연히 이 산 저 산으로 유유자적하는 인생을 살았으니 그것은 부귀를 탐하지 않은 원인이다.

이성계는 작은 댁 강씨 부인의 아들을 모조리 살해한 태종에 대해서 노기충천하여 한양을 떠나 함흥에 머물면서 태종을 죽이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태종은 태조인 아버지를 함흥에서 대궐로 모셔오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 성난 이성계는 찾아오는 태종의 사자를 번번히 화살로 쏘아 죽이는 것을 반복했다. 그것을 돌아오지 않는 사자라는 뜻에서 '함흥차사(咸興差使)'라 칭한다.

이성계가 태종의 사자로서 자신을 설득하려 오는 함흥차사를 화살로 쏘아 죽이는 것을 반복할 때, 어느 날, 홀연히 무학대사가 이성계 앞에 나타났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화살을 쏠 수는 없었다. 그날, 무학대사는 꾸짖듯 이렇게 이성계를 깨우쳤다. "이씨 조선이 오백년을 가는 천운인데, 대왕이 천운을 망치고 있습니다. 정말 강씨부인을 위해 천운을 망칠 거요?" 무학대사는 또 이렇게 꾸짖듯 말했다.

“이제 대왕은 정치를 방하착(放下着)할 때가 되었지 않습니까? 장수(將帥)로 있을 때, 왕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명을 칼과 화살로 죽였습니까? 그것이 모두 악업인데, 또 함흥차사를 화살로 쏘아 죽여 악업을 짓습니까? 곧 저승사자가 찾아올 터인데, 생전에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전에 대왕이 죽인 사람들의 영혼 천도제를 지내면서 남은 여생을 살아야 양심이 있는 불자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즉시 사람죽이는 일을 중지하시고, 한양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말에 크게 깨달았다. 한양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하며 함께 잠에 들었다. 이성계가 눈을 떠보니 무학대사는 홀연히 사라지고 몇 자의 경책(警策)의 글이 남겨 있었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경책(警策)대로 태종을 후계자 왕으로 정식 인정하고, 자신은 회암사 등 사찰을 찾아 다니면서 그동안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영혼천도를 위해 관세음보살전에 기도하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 관세음보살전에 기도하다가 목숨을 마치는 순간을 맞았다.

이성계는 죽음을 앞두고 무학대사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찾았다. 그러나 무학대사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진정 명리(名利)를 떠난 무학대사는 하늘의 뜻이 이씨 조선을 원하고, 그 기간은 5백년이 간다는 것을 알고 이성계를 인도해주고, 소임을 다한듯, 사라졌다. 그는 천명의 전달자였다. 무학대사는, 어느 산 토굴에서 홀로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을 부르는 기도를 하다가 입적했을 것이라는 풍문만 무성할 뿐, 한양의 거리, 시골 어디서고 무학대사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李法徹(bubchul@hotmail.com)

▲ 최나연 선수(사진출처:bangordailynews.com)



최나연은 지난 9일(한국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울프 런 골프장(파72·6954야드)서 열린 2012 US여자오픈(총상금 325만달러)서 최종합계 7언더파로 우승을 차지했다. 


최나연은 10일 오후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오션코스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US오픈 우승 소감을 전했다.


최나연은 "메이저 대회서 우승하고 나니까 영광이나 감동이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두 배로 왔다"며 "특히 세리언니가 우승한 골프장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영광이 더 컸다. 세리언니가 더 축하해줬다. 모든 분들이 14년 전의 추억을 다시 되새길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 최나연 선수와 캐디(사진출처:golfchannel.com)


최나연은 이번 대회 우승에 캐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캐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셰인은 남자 선수와 오랫동안 캐디 생활을 했는데 그린의 라인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이번 대회에서도 퍼트의 95%는 캐디의 말만 믿고 쳤다"고 말했다.


최나연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최나연은 "중학교 2학년 때 달기 시작했던 태극마크는 그 자체로 부담이 크지만 결과가 좋았을 때의 기쁨은 두 배 이상이 된다"며 "올림픽에서 우승한다면 LPGA투어에서 우승한 것보다 더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나연은 시즌 네 번째 메이저대회 에비앙 마스터스를 마친 뒤 올림픽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런던에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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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지존 스크린 골프
글쓴이 : 지존골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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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향상에서 사회적 성공까지,무엇이 삶을 긍정으로 이끄는가?  안정의 기반을 둔 인간관계

 

아이들은  안정된 기반이 주는 안전함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된다.심리치료사는 성인에게 자신의 아품을 끝낼 기회를 제공한다. 유사한 치유효과가 낭만적 동반자 혹은 보살피고 어루만져줄 수있는 좋은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삶에서 치유의 효과를 주는 인간관계가 효율적으로 진행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갖고 있는 연결의 능력을 더욱 높혀줄 것이다.(대니얼 골만의 사회지능)

 

부모의 역할, 친구, 직장의 상하 관계등 사회의 지능(SQ)을 펼 수 있는 지혜를 갖을때 진정한 우리들의 둥지를 만들 수 있다

 

 
레슨중간에 읽은 銘句(!)가 있어 옮깁니다...
검찰에 소환되는 정치꾼들의 행적에 관한 내용에 이런말이 있네요
“정치인 한명이 한강 다리에서 떨어지면 폴루션(pollution,환경오염)이고 정치인 전부가 한강다리에서 낙하하면 솔루션(solution,문제해결 또는 해법)"
너무 명쾌한 말이라서 옮깁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정치탄압이라고 엉기는건지?
당당하면 출두해서 다시 당당하게 걸어나오면 되고
나오면서 무슨말인들 못하리오?

다른 넘은 몰라도
이넘은 틀림없이 뒤가 캥기는 거겠지...
목포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수준에 기대를 할 수 밖에...

 

 

(스카이 72cc 헤드프로 양찬국)

 

 


같은 곡을 연주하는 첼리스트의 우뇌 신경회로 리듬을 보면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띤다고 한다. 이처럼 일체감은 한사람의 좌뇌와 우뇌보다, 다른 두 사람의 뇌와 뇌 사이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 좋은 영화를 볼때, 내 머리 안에서 좌뇌와 우뇌가 결합하는 강도보다 함께 그것을 향유한 다른이의 뇌와 느끼는 일체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이입을 통해 공감을 끌어내는 사회 지능이 사회적으로 하나로 모이면 그 위력은 핵무기에 버금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개인은 매력이 없다. 정확히 말해 설사 매력이 있다손 쳐도 누구도 그의 매력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똑똑한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잘생긴 것도 다소용 없다, 자아도취적인 매력은 더 이상 매력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핵무기에 비유했듯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그렇다면 공감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품격 있는 말’이다. 입‘구(口)’3개가 모이면‘품(品)’자가 된다. 사람의 품격은 입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아무리 잘 차려입어도 말에 품격이 없으면, 그 사람 자체도 품격이 없어 보인다.

품격있는 사람이 되려면 입을 열었을 때 단 한마디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향취가 풍겨야 한다. 자기만의 향취가 담긴 말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하는 화술이다. 동경 긴자의 유명한 마담 마스이 사쿠라는 경험을 통해 체득한 성공적인 관계를 위한 대화법을 말했다.


 

 


첫째, 상대와 말할 때는 ‘여럿 중에 하나’ 가 아닌 ‘오직 당신뿐’ 이라는 자세로 대하라. 누구나 특별한 대접을 받길 원하며, 내가 유일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바란다.

둘째, ‘기분은 직구로, 협상은 변화구로’ 던져라. 현재의 기분을 에둘러 표현하다 보면 오해를 사기 쉽다. 쓸데없이 오해를 살 바에야 차라리 가벼운 신상 얘기는 직구로 던지고, 변화구는 진중한 협상에서나 구사하는 것이 좋다.

셋째, 상대가 불평불만을 쏟아놓을 때는 대화의 속도를 늦춰라. 흥분하면 대화의 초점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제지해봐야 불평불만만 커진다. 즉 흥분을 가라앉히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넷째, 상대가 관심을 보일 때는 한걸음을 물러서라. 관심이 시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상대의 관심을 지속시키려면 곧장 반응 하지 말고 다소 무관심해 보이는 게 좋다. 연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다섯째, 대화의 마지막은 항상 희망적으로 매듭지어라. 대화의 마지막이 찝찝하면 서로에 대한 존재감도 불편해진다. 희망이 있어야 마음 깊은 곳에 서로를 각인하기 쉽고,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기 전에,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 상대를 설득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설득이 아니라 공감에 있다. 실제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지간해서 설득당하지 않는다.

설득된 듯이 보이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배-피지배의 관계일 때가 대부분이다. 공감은 마음과 마음의 파장이 만나 서로에게 조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감 없이는 감동도 없다.

공감력을 키우려면‘심파티코(simpatico)’를 높여야 한다. 심파티코란 상대가 자신을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진실하게 대한다고 느낄 때 생기는 친근감이다.

또한 원활한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비언어적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해 그에 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이른바‘디세미아(dyssemia)’에도 주의해야 한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이야기 하는 말귀를 못 알아먹는‘사오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감정과 필요를 눈치 채고 알아서 반응하는‘아마에’도 중요하다.

일본인들은 바로 이 아마에를 가장 높은 덕목으로 삼는다. 겸양의 차원이 아닌 감정이입의 감수성 차원에서 아마에를 이해하면, 자연스레 디세미아에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정진홍,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에서)

 

 

"인터넷으로 포옹이나 입맞춤을 할 수 없다"

사회지능(SQ) 21세기  새로운 인간관계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지능(SQ)은 긍정인  힘을 발휘하게 하여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능력이다.

사회지능은 사회지각과 사회능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이 시대의 정치인, 교육자, 경영자,가장등 우리 모두가 사회지능 펼칠 수 있는 가치관 정립과  사회환경을

조성시켜야  한다.

21세기! 감성과 영성이 주입되는 인간적 패러다임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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