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2 09:08
http://blog.naver.com/monkhaemin/120108470110
*** 아래의 글은 혜민스님의 책 "젊은날의 깨달음"에 나온 내용입니다. 원하시면 퍼가셔도 무방합니다.
사랑론
혜민스님
뜬금없이 평소에 알고 지내는 속인 도반 한 명이 갑자기 나에게 이메일로 물어 왔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냐고. 부인과 결혼해서 3년째 잘 살고 있는 그이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으니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그 도반 말로는 아무런 일도 없다고 한다. 단지 평소에 부인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그 말을 많이 하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냥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출가승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 오니 처음에는 난감해서 그냥 모르는 체 넘어가려 했더니 꼭 내 의견을 듣고 싶단다. 아차 이를 어쩐다.
사랑이라… 먼저 사랑을 언어로써 정의한다는 것부터 일종의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언어의 작용이 그렇듯 일단 말로써 이야기해 버리면 흐르는 강물에다 양 옆으로 댐을 만들어 물을 고이게 하는 것처럼 사랑이 그 자체 고유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고착화되어 버린다. 그래서 섣불리 이렇다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래도 무언가를 듣고 싶어하는 도반이기에 뭐라고든 몇자 적어서 보내야 한다.
사랑은 중생 본래의 성질인 자기 본인 위주의 이기적 마음이 어떤 대상을 통해서 최소화되었을 때 겪게 되는 마음의 상태 같다. 사랑을 시적으로 좀 멋있게 표현하지 않고 심리학과 교과서 글처럼 서술해 놓으니 좀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사랑에 빠지면 본인 위주로 생각하는 중생의 습관이 잠시 쉬고 마음의 축이 사랑하는 대상으로 향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가 무슨 음악을 즐겨 듣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의 옷을 즐겨 입는지까지 하나하나 알고자 하니 마음은 오직 그 대상밖에 없다. 그런데 사랑은 또 희생이라는 음계와 종종 화음을 이룬다. 사랑을 하기 때문에 내가 아닌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도 있는 마음가짐과도 함께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사랑은 다치기 쉽기도 하고 사람을 크게 변화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구속하기도 한다. 사랑이 소유가 되었을 때 사랑 고유의 향기를 잃고 시들어 버린 꽃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이 그랬던가. 사랑하는 두 사람의 영혼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고. 마치 한 지붕을 받들고 있는 사원의 두 기둥처럼 너무 가까이 있지도 그러나 너무 떨어져 있지도 말라고. 서로 사랑을 하되 하늘 바람이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춤을 추게 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적 심리적 여유를 가지라고.
반대로 사랑이 구속이 아닌 승화의 길을 걷게 되면 수행의 과정이 된다. 인도에서는 사랑하는 대상을 중생이 아닌 신으로 향하게 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업식을 신에 대한 헌신을 통해서 소멸시켜 버리는 박티 요가(Bhakti Yoga)라는 수행 방법을 고대로부터 실천해 왔다. 이슬람교의 영적 수행자, 수피(Sufi)들도 알라신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통해 신과의 합일의 경지를 경험한다.
사랑은 그래서 내가 원한다고 아니면 내가 잘 준비가 되었다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것 같다. 사랑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어느날 문득 손님과 같이 찾아오는 생의 귀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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