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 방송 BBC는 세계 12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 이 왜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지를 심층보도했다.
'한국은 지하철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고, 살사클럽에서 밤새도록 춤출 수 있고, 출근길에는 맛있는
카푸치노를 살 수 있는 나라일 정도로 부유해졌지만, 사람들은 한국전쟁 직후의 어려웠던 시절보다도 덜 행복해 보인다.'
↑ [조선일보]뇌 부위는 크게 두정엽(위), 전두엽(앞), 측두엽(옆), 후두엽(뒤), 소뇌(아래), 척수(척추 안쪽), 말초신경 등으로 분류한다. 정신분열병은 ‘조현병(調絃病)’으로 개명됐다.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으로, 치료가 가능한 정신 기능의 부조화임을 지적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통합실조증’, 홍콩에선 ‘사각(思覺)실조증’이라고 부른다.
↑ [조선일보]권준수 박사는 "괴담과 선동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뇌의 전두엽 기능이 퇴화한 까닭"이라고 말했다.
자살, 광기, 불안, 우울, 집착, 망상, 피해의식, 게임중독,
사이코패스 등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해마다 한국인 545만명(전체 인구의 17%)은 한 번 이상 정신병을 앓는다. 2006년 건강보험으로 진료받은 정신질환자는 180만명으로 2001년에 비해 35% 증가했다. 이는
보건복지부 통계다.
"급격한 사회 변화의 스트레스가 사람을 몰래 무너뜨려 온 것이다. 정신질환은 숨어 있다. 자기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남들 보기에는 괜찮았는데 어느 날 우울증으로 자살한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 환자는 터질 듯이 심장이 뛰고 땀을 흘리며 본인은 죽을 것 같아 응급실로 실려온다. 하지만 맥박이나 혈압검사를 해보면 정상이다."
권준수(52) 서울대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와 마주 앉아 있다. 그는 국내 최고 권위의 의학상인 분쉬의학상(2009년)을 받았다. 대한조현병학회의 이사장, 국제정신분열병학회에서는 동양인 최초의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매년 연인원 9000여명의 정신질환 환자를 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 항상 희희낙락 기분 좋은 게 정상인가, 약간 가라앉아 있는 기분이 정상인가?
"명랑하거나 침울한 것은 성격의 특징일 뿐이다. 정도가 심하거나 이상한 반응을 보이면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상태란 어떤 것인가?
"비유하면 어떤 집단에서 눈 두 개보다 눈 하나뿐인 원숭이가 월등히 많으면 그게 정상이다."
―통계적으로 다수가 되면 정상인가?
"정상이란 주위 환경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가령 사랑하는 연인이 숨졌는데 '기분이 좋다'고 하면 비정상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안 들리는데 혼자 환청(幻聽)이 들린다거나, 피해망상도 그런 것이다."
―세상 사람을 관찰해보면 뭔가에 집착하고 있다. 직장 일에 매달리고, 종교에 사로잡히고, 술과 게임에 중독되고, 성적 쾌락에 빠지고, 권력에도 미친다. 이렇게 사로잡힌 것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심하면 정신질환으로 볼 수 있다. 오로지 일밖에 모르는 워크홀릭은 남들이 보기에는 안타깝지만, 본인은 거기서 쾌락 혹은 내적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 사람은 일을 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실제 뭔가에 쉽게 빠지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 가령 술 중독인 사람이 술을 끊으면 다른 무엇에 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대체 어디까지를 정신질환으로 규정하나?
"당(糖)수치가 얼마면 당뇨, 혈압이 얼마면 고혈압이라든지, 다른 질환처럼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 하지만 나름대로 기준은 있다. 우울증의 경우 흥미 상실, 입맛 감소, 잠이 많이 오거나 적게 옴, 자존감 상실, 자살 생각 등과 같은 증상 중 몇 가지가 2주(週) 이상 계속 되면 전문가가 주관적으로 판단을 내린다."
―전문가 판단은 틀릴 때가 없나?
"분명한 것은 뇌 상태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모든 정신 현상은 뇌의 기능·조직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는 1996년부터 2년간 하버드대학 정신과에서 연수하는 동안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는 뇌파 중 감마파에 이상이 있다는 걸 최초로 발견했다. 언어기능 이상은 뇌의 '편평측두엽' 손상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정신병을 앓은 예술적 천재들도 적지 않았다. 그것이 창작 행위에 어떤 작용을 하는 걸까?
"정보를 전달하는 이들의 뇌 신경세포는 연결이 엉성하다. 배열도 가지런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정보 전달이 이뤄진다. 일반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참신한 발상과 창의성을 가져올 수 있다."
―정신병자와 천재의 차이는 뭘까?
"천재는 현실 속에서 판단할 능력이 있다. 정신병자는 환청·환시를 현실로 믿는다. 본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평소의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천재 예술가는 약간 덜 미친 광인으로 정의할 수 있나?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자폐증 환자의 경우 대인관계와 관련된 사회적인 기능이 떨어져 있을 뿐, 기억력이 뛰어나거나 예술 운동 분야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이기도 한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적 천재의 경우도 특정 뇌 기능은 몹시 발달했으나, 다른 기능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뇌의 모든 기능이 다 뛰어난 경우는 없다."
―뇌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이 불안·우울·피해의식 등 어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도 알 수 있나?
"도박중독자의 경우 뇌 신경세포 간에 전달하는 물질(일종의 전기적 자극)인 '
도파민' 기능에 이상이 있는 걸로 발견됐다. 도파민이 쾌락과 중독과 관련돼 있다는 뜻이다. 도파민이 쉽게 분비되면 그 사람은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우울증을 앓는 이들은 신경물질인 '세라토닌'에 문제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위축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현재로는 이런 노이로제 증상에 뇌의 어떤 영역이 어떻게 달라져 있다는 식으로 정의할 수준에는 와있지 않다."
―우울·불안감 같은 감정 상태를 뇌가 지시하는가?
"뇌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지시가 아니라 인지하는 것이다."
―본인이 자살충동에 이르는 우울증에 걸려 있다는 걸 의식했을 때, 그런 감정에 빠지지 말자고 마음을 먹으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일시적인 우울증은 영화나 쇼핑 등으로 기분 전환이 된다. 그러나 중증이면 약물이나 다른 운동치료를 통해 뇌 상태를 변화시켜야 한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세라토닌'을 높이는 약을 투여해 뇌의 변화가 오면 기분이 바뀐다. 지속적인 운동을 하거나 억지로라도 웃는 것도 뇌 상태에 변화를 준다."
―몸의 어떤 행위나 훈련으로 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나?
"저글링을 하루 30분 이상 석 달간 꾸준히 연습한 사람에게는 시각과 공간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에서 변화가 있었다.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된 것이다. 우리 팀도 바둑기사들의 뇌 영상을 관찰해본 결과, 뇌의 여러 영역에서 상호 연결성이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몸의 반복훈련을 통해 뇌 상태가 바뀔 수 있다. 이를 '뇌 가소성(plastisity)'이라고 한다."
―음식도 뇌에 영향을 미치는가?
"나는 그렇게 보는데 과학적인 증명은 아직 안 됐다."
―음주는?
"술을 많이 마시면 치매가 빨리 온다. 치매의 경우 뇌 피질이 굉장히 얇아져 있다. 요즘 어떤 TV 드라마에 젊은 여자가 치매에 걸린 걸로 나온다. 실제로 30대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치매는 65세 이후에 나타나는 병이다. 자폐증은 어릴 때, 조현병은 10대와 20대, 우울증은 중년 이후에 잘 나타난다."
―당신은 명상(瞑想)의 효과에 대해서도 실험해본 적이 있다고 들었다.
"명상 수련자 40여명의 뇌를 찍어보니 '전두엽' 부위가 일반 사람들의 평균보다 두꺼웠다. 고등동물이 될수록 '전두엽'이 점점 커진다. 그 부위의 앞쪽인 '전(前)전두엽'은 욕망과 충동 등을 절제하는 기능을 맡는다. 요즘 트위터 괴담(怪談)이나 선동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개체적으로 보면 이런 '전전두엽'의 기능 퇴화와 관계가 있다."
―소위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도 결국 뇌를 조절한다는 뜻인가?
"바로 그거다. 마음과 뇌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마음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뇌다."
―비슷한 조건에서 어떤 사람은 정신질환을 앓고, 어떤 사람은 괜찮다. 타고날 때 정해진 것인가?
"정신질환자는 보통 사람들보다 외부 스트레스에 취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사이코패스나 유아 성폭행범도 선천적 유전 결함으로 설명하려는가?
"외부 환경보다 생물학적 요인에 더 발병 원인이 있다는 게 과학계 정설이다. 감정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속의 '편도체(신경세포 다발)'가 쪼그라들어 있었다. 합리적인 결정에 기여하는 '전전두엽 피질'도 정상인의 8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인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유전자의 문제로 범죄가 이뤄진 셈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그 개인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가?
"그게 신경윤리학계의 핫 이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자유의지로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타고난 뇌의 문제로 뇌가 시켜서 한 것이라면 그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논쟁이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동은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것은 에드워드 윌슨(미국 하버드대 교수 출신의 생물학자)의 '
사회생물학'에서 비롯됐다. 유전자가 모든 걸 결정한다, 한 개체의 장래 삶은 유전적으로 결정돼 있다, 정신은 뇌신경의 현상일 뿐이다…. 이는 인간 탐구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지만 인종적 편견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어려운 문제다. 유전 못지않게 후천적 환경이 중요하다. 취약한 유전자를 타고나와도 환경과 마음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유전자는 불변(不變)이 아니다. 오랜 세월 환경 속에서 유전자도 바뀌어왔다. 그런 유전자 결함을 타고났다고 다 사이코패스가 되지는 않는다. 마음을 잘 갈고 닦아라는 게 이런 뜻이다."
―현재 우리가 뇌에 관해 아는 지식은 어디까지인가?
"뇌는 신경세포의 다발과 연결에 불과하다. 그런 물질적인 뇌가 근육운동·감정·인지기능은 물론이고, 고도의 정신영역인 철학과 신앙까지 모두 관여한다. 뇌의 신경세포는 10의 11승(乘)이나 있다. 이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 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정신 현상이 뇌와 관련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뇌 연구를 통해 정확하게 정신 질환의 원인과 치료에 접근할 수 있다. 가령
대뇌피질의 두께 감소 등이 조현병의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대뇌피질 두께가 얇아지기 전에 대처하면 조현병을 억지시킬 수 있다. 또 뇌의 특정 기능을 개선하면 행복감을 느끼고 창의성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왜 살아가고 어떤 의미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하는 답도 나올까?
"과학기술이 발달해 우리의 뇌를 1㎜간격으로, 수백분의 1초의 간격으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고 해도 그 답이 그저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