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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GSA 골프레저산업 전문가과정(경영관리사)
글쓴이 : KGSA교육개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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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하면 아래와 같이 해 보세요.

제 1 동작 ( 목부위 )

목뒤, 머리와 목이 연결되는 움푹 패인곳을 꾹 누르면
통증이 있거나 기분이 좋은 반응을 느끼게 되는데...

이곳에 자극을 가하게 되면 뭉쳐 있던
어깨와 목 근육들이 완화되어 통증이 빨리 해소된다.

제 2 동작 (어깨부위)

어깨뼈의 위쪽, 어깨뼈의 안쪽 가장자리와
쇄골뼈가 만나는 움푹 패인곳,

목이나 어깨가 결리고 딱딱하게 굳어진
어깨를 편안하게 해준다.


제 3 동작 ( 귀볼 뒤 )

귀볼의 뒤에 오목하게 들어간 곳.
이곳을 누르면 눈의 피로가 풀어진다.

손끝으로 귓볼의 뒤를 반복하게 누른다.
목 아래의 기사 주변까지 근육을 따라서
가볍게 문지르면 시원해저 좋다.



제 4 동작 ( 등부위 )
견갑골의 불룩 올라온 곳에서 안쪽으로 약간 움푹 파인곳.
쉽게 말해서 한쪽 손을 반대쪽 어깨 뒤로 넘겼을 때
중지가 닿는 끝 부분.

이누르는 동작을 하면 어깨와 등에 근육통증을
빨리 해소해 주는 효과가 있다.


제 5 동작 ( 어깨뒤 부위 )

어깨 뒤 뼈밑에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
쉽게 말해서 한쪽팔로 반대쪽 팔을 잡았을때
줄 물러 주는 느낌.

이동작은 어깨와 팔통증을 해소 시켜준다.

이 지압과 어울러서 팔을 안쪽부분을 위에서 아래까지
잡듯이 주물르면 더욱 효과적이다.




제 6 동작 ( 허리부위 )
양손을 허리위에 올린후 엄지 손가락이 닿는 끝부분.
이 동작은 허리통증에 도움을 준다.

자신이 직접 엄지로 눌러도 좋고 엎드린 상태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 2. 스트레칭 요령 ●

내 건강을 위하는 일이니 따라 해보세요.

1. 양손 깍지 끼고 팔 들어 올리기

* 양손을 깍지를 끼고 고개를 숙이여 천천히
하늘위로 들어주세요.
* 호흡은 코로 최대한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세요.
* 한동작에 15초 ~ 20초동안 동작을 유지하세요..
* 이동작을 5회이상 반복해주세요.


2. 목을 누르기
* 상체를 곱게 펴고 앞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여주세요.
* 양손을 깍지 끼어 정수리 부위에 얹고 내쉬는 호흡에 팔꿈치를
가슴쪽으로 가져가며 지그시 눌러준다.
* 호흡은 코로 최대한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입으로 ! 천천히 내쉬세요.
* 한동작에 15초 ~ 20초동안 동작을 유지하세요.
* 이동작을 5회이상 반복해주세요.
* 뒷목은 물론 허리 스트레칭에도 효과적임.


3. 목 틀기
* 좌/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주세요.
(! 이때 손으로 지긋이 눌러주어 자극을 주세요)
* 호흡은 코로 최대한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내쉬세요.
* 한동작에 15초 ~ 20초동안 동작을 유지하세요.
* 이동작을 5회이상 반복해주세요.


4. 어깨 돌리기
* 양팔을 상체에서 살짝 띄어 벌려주세요.
* 어깨를 으쓱으쓱한다는 느낌으로 당겼다/내렸다를 반복하세요.
(횟수는 10회~15회)
* 이 동작을 5회이상 반복하세요.


5. 어깨 틀기
*열중 쉬어 자세에서 왼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잡고
왼손을 최대한 왼방향으로 당겨주세요.
*머리도 왼쪽으로 기울여 목선부터 어깨 주변의 근육이 함께
당겨지도록 하세요.
* 몸이 옆으로 휘지 않도록 주의
* 한동작에 15초 ~ 20초동안 동작을 유지하세요.
* 이동작을 5회이상 반복하세요.
6.팔을 펴고 당기기
*한 팔을 펴고 다른 손은 팔굼치를 굽혀 힘을 잡아당겨 편다.
*다른 팔을 펴고 같은 동작으로 팔굽치 굽혀 당긴다
*이 동작을 반복해서 10회정도 한다.




강남스타일 싸이

6집 싸이6甲 Part.1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오빤 강남스타일

Eh- Sexy Lady
오빤 강남스타일

Eh- Sexy Lady
오오오오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오빤 강남스타일

Eh- Sexy Lady
오빤 강남스타일

Eh- Sexy Lady
오오오오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You know what I’m saying

오빤 강남스타일

Eh- Sexy Lady
오빤 강남스타일

Eh- Sexy Lady
오빤 강남스타일

15일 방송된 SBS '인기가요'(MC 니콜 이종혁 구하라)에서

싸이는 2년만에 들고온 6집 타이틀 곡 '강남 스타일'을 열창했다.

싸이가 직접 작사 작곡한 '강남스타일'은

멜로디는 물론 가사와 안무 등 중독성있는 곡으로 무대를 후끈달궜다.

특히 유재석, 노홍철, 포미닛 현아등이 출연한

초호화 뮤직비디오가 무대 전 살짝 공개돼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열심히 추면서도 코믹한 싸이의 댄스는 '강남스타일'에서도 확실히 어필한다.

 

 


출처 : 골프사랑 친구사랑
글쓴이 : 새야 원글보기
메모 :

 

뇌와 몸을 활기차게 만드는 실천법 안내서. 삶의 방 식이 달라지는 우뇌 사용법, 선천뇌 응용법, 효과적인플러스 발상법, 식사, 운동, 명상의 효능, 뇌내 모르 핀을 분비하는 실천법 등을 설명하였다

 

 

 

플러스 발상법에서 오감을 이용한 우뇌 활성화,이미지 트레이닝, 명상,복식호흡,근육운동등을  활용법을 제시하고 있다.이 중에서 뇌에 모르핀을 분비하는 활동으로는 1.자율 훈련법 2.복식호흡법 3.명상 4맨손체조5.워킹6.얼굴 맛사지7. 음식 고단백,저칼로리등이다.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미흡한 것도 있다.

몇가지 실천할 수 있는 노하우를 나의 생활 패턴에 적용하려한다. 골프하는 선수들에게도 가르치려한다.

누구나 읽고 실천한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많은 조건으 충족시킬 뿐더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습관을

갖는다면 창조적인 두뇌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 부분씩 정리하여 존안하고 실천하리라

다음은 뇌내 혁명 3권 완결판이 준비되어 있다. 장수비결?~~` 장수해야지요

베토벤이 좋아했던 격언

어느 날 모셀레스가 베토벤에게
오페라 ‘피델리오’의 피아노악보를 건넸다.
악보 한 귀퉁이에 ‘신의 가호로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길!’
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베토벤은 즉시 연필을 들어 그 글귀 아래 다음 글을 써 넣었다.
“신의 가호가 다 무엇이냐? 자신이 자신을 돕는 것이다”.
-박종평,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에서

촌철활인

“강한 의지에 불타는 유능하고 근면한 사람에게
‘여기서 정지’라는 벽은 없다” 베토벤이 좋아했던 격언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은 삶의 절반만 관여하고,
나머지 절반은 삶의 주인에게 맡겨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될 경술국치 102년

독립군의 목숨으로 회수한 대한민국




일장기가 걸린 경복궁 근정전 을사조약의 어두운 그림자

조선시대 왕들이 나랏일을 보던 경복궁 근정전에 일본 국기인 일장기가 걸려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0년 8월 대한 제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후 근정전은 일본군이 장악했다.


앞서 일본은 1875년 ‘운요호’라는 일본 군함으로 강화도를 침략하여 1876년 강화도에서 불평등한 내용이 담긴 조약을 맺은 이후 미국, 영국 등 서양 여러 나라와 조약에서도 평등과는 거리가 멀어 한반도는 너도나도 넘보는 연못속의 물고기 형국이 되고 말았다.


1894년에 안으로는 나라를 바르게 세우고 백성을 위해, 밖으로는 서양과 일본을 몰아내고자 하는 동학농민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일본은 이를 핑계로 경복궁을 강제로 점령하고 1894년 청일전쟁을 벌였다.


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자 모든 백성은 분노하였고, 고종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막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군대를 동원하여 일국의 국모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896년 고종은 일본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갔다가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알리기 위하여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1897년 황제로 즉위하지만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노리던 일본은 1904년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하였다.


일본은 조선 침략 계획대로 군대를 조선에 마음대로 파견할 수 있는 협약을 강제로 맺고(1904년 한일 의정서), 미국과 비밀협정(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영국과는 동맹(1905년 제2차 영일동맹)을 맺은 결과 한국에서 일본의 힘은 커져만 갔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특사인 이토 히로부미는 경운궁을 총칼로 무장한 일본 군인들이 몇 겹으로 둘러싸게 한 후 우리나라를 일본의 보호국으로 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제2차 한일협약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을사늑약에 의해 대한 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기고, 일본 왕이 임명한 통감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조약을 맺은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군부대신 이근택 이 다섯 명을 을사5적이라고 부르며 매국노로 낙인찍혔다.

당시 대한 제국은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대표단을 파견하였지만 일본은 고종 황제를 내몰고 그의 아들 순종을 황제에 올린 후 대한 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1907년 일본인을 정부의 관리로 앉히는 조약을 강제로 맺었다.


대한 제국의 외교권, 사법권을 차례로 빼앗고, 군대마저 해산시킨 일본은 1910년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만들고자 한국에 총독부를 세우고 데라우치를 총독으로 보냈다


데라우치는 한국의 총리대신 이완용을 불러 ‘대한 제국 병합에관한 조약’이라는 문서를 통해‘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주며 준다.’순종 황제의 옥새를 찍어 오라고 했고 순종 황제가 이를 끝내 거부하자 총리대신 이완용이 황제를 대신한다는 위임장을 강제로 받아 ‘한일 병합’ 조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1910년 8월 22일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순간이자 2천만 동포들에게 처참한 식민지의시작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 건국 27대 519년 만에, 대한제국이 성립된 지 18년 만에 합병의 형식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1910년 8월 29일일본의 데라우치가 ‘한일 병합’ 조약을 발표한 날 한국은 사라져 버렸고 102년이 흐른 지금까지 일제의 잔재는 곳곳에서 그힘을 과시하고 있다.

아래는 을사조약의 전문이다.

일본국 황제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는 양국간에 특수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의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고자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이 선책이라고 확신하고 이에 양국간에 병합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하여 일본국 황제 폐하는 통감 테라우치 마사타케 자작을, 한국 황제폐하는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을 각각의 전권위원으로 임명한다.

그러므로 위 전권위원은 합동 협의하고 아래의 제조를 협정한다.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에 기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


제3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한국 황제폐하,황태자 전하 및 그 후비와 후예가 각기의 지위에 적응하여 상당한 존칭과 위엄 및 명예를 향유하게 하며 또 이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제4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 이외의 한국 황족 및 그 후에도 각기 상응하는 명예 및 대우를 향유하며 또 이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의 공급을 약속한다


제5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훈공 있는 한국인으로서 특히 표창에 적당하다고 인정된 자에게 영작을 수여하고 또 은급을 부여한다.


제6조 일본국 정부는 전기 병합의 결과로 완전히 한국의 시정을 담당하고 동지에서 시행하는 법규를 준수하는 한인의 신체 및 재산을 충분히 보호해 주며 또 그들의 전체의 복리 증진을 도모한다.


제7조 일본국 정부는 성의로써 충실하게 신제도를 하는한국인으로써 상당한 자격을 가진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한 한국에서의 일본제국 관리로 등용한다.


제8조 본조약은 일본국 황제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서 공포일로부터 시행한다.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선 사람들

최익현은 유학자를 중심으로 농민들이 뭉쳐 의병을 일으켰다. 또 태백산 호랑이로 유명한 신돌석은 평민 출신으로 의병을 이끌었다.


1907년 8월 1일 통감부의 지시로 약 2만여 명의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당하자 박승환 참령은 이에 항의하고자 권총으로 자결하였고, 우리 군대는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전국의 의병들은 13도 창의군이라는 이름 아래 서울로 진격하였지만 이를 눈치 챈 일본군에 패하고 말았다. 1908년 11월 신돌석 의병장마저 믿었던 옛 부하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총으로 쏘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람을 기르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사람의 힘을 모으기 위해 애국 단체를 만들었다. 또 일본에 진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온 국민이 품삯을 모으고, 반지와 비녀를 모았으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일본의 식민지시절 그 참상은 불과 100년전 현실

가난한 시대에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나는 장사(?)

일본은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관리와 위안부 이송에 관여했고, 위안부 모집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최근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 데 이어 24일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문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시모토 시장은 이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간사이 네트워크’라는 단체가 오사카 시청을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 철회와 사죄를 요구하는 공개 질문서를 제출하자 “군이 위안소를 공적으로 관리했다는 것과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고노 담화는 애매한 표현으로 일·한 관계를 악화시킨 최대의 원흉”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우익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군이 강제로 매춘시켰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며 “(고노 담화가)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강제성을)인정해 일·한 관계를 망쳤다.”고 비판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太?) 일본 도쿄도 지사가 24일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인이 강제로 종군위안부로 끌고 갔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며 "가난한 시대에 매춘은 매우 이익이 나는 장사였고 (위안부는)이를 피하지 않고 그 장사를 선택한 것"이라는 망언을 또다시 되풀이했다.


일본 지지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시하라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지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당시)의 담화에 대해 "영문도 모른 채 (한국의 주장을)인정한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지적했다.

조상이 저지른 죄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해야할 후손들이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태연히 보여주고있다.


곳곳에 살육의 현장이 ...


고성- 학살 후 장바닥에 효수,학살한 시체를 공개리에 가마솥에 끓여 골육을 보라고 강요

원주-나무에 묶어 할복각피(割腹刻皮), 그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웃도록 강요

평산-남녀 수 십명을 잡아 겨울에 얼음을 깨고 밀어 넣어 얼어 죽게 했다

어떤 곳-주민들을 반신만 땅에 묻고, 풀 베듯 칼로 목을 쳤다


연길현 와룡동 창동학교 교사 정기선 심문, 얼굴 가죽을 다 벗겨내고,눈알을 도려냄 2~3세 되는 유아를 창 끝에 꿰어 들고 다니기도 함


한국통사(韓國痛史1920.10~1921.5(8개월간) 봉오동, 청산리 전투 패배에 대한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37,000명 학살) 및 가옥,학교,교회 방화용정 장암동 주민을 교회에 집결시키고, 40대 이상 남자 33명 포박, 교회에 가두고 방화


음악까지 일본 가락을?


한국의 대표 근대 음악가인 홍난파 선생이 1938년 작곡한 '희망의 아침''봉선화', '고향의 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도 작곡했지만 이처럼 반민족적 내용의 친일음악도 많이 썼습니다.


홍난파와 조두남, 현제명 등 친일작곡가들의 음악과 일본색이 짙은 가요 우리 노래로 알고 있는 '퐁당퐁당'이나 '학교종이 땡땡땡' 같은 동요도 일본식 5음계와 2박자 장단 등 일본음악의 특징이 강한 음악일본풍의 동요나 가요다.


애국자의 말말말...


윤봉길 의사 유서 중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쟁취하는 것이다역사(歷史)라는 것은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동포에게 보내는 글


-백범 일지 중에서-



처음에 내 성명을 묻던 놈이 밤이 새도록 쉬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그 놈들이 어떻게 제 나라의 일에 충성된 것인가를 알았다. “저놈은 이미 먹은 나라를 삭히려기에 밤을 새거늘 나는 제 나라를 찾으려는 일로 몇 번이나 밤을 새웠던고 하고 스스로 돌아보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고, 몸이 바늘 방석에 누운 것과 같아서 스스로 애국자인 줄 알고 있던 나도 기실 망국민의 근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니 눈물이 눈에 넘쳤다.”


단재 신채호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귀에, 애국이란 말이 생생하게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그 눈에 나라(國)라는 글자가, 배회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손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봉사케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혈혈누누(血血淚淚)가 나라를 위해 솟구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응칠아(안중근 의사의 이름)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동포 모두의 분노를 세계 만방에 보여준 것이다.이 분노의 불길이 계속 타오르게 하려면 억울하더라도 상고를 하지 말고 우리민족의 대의를 위해 거룩한 죽음을 택해야 될 줄로 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이등박문을 죽인 너를 일본 놈들이 살려 줄 리가 있느냐?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에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서 상고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 기왕에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를 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기 바란다.

안중근 유언

나의 시체를 조국에 갖고 돌아가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감옥 묘지에 매장 인도될 것이니 하얼빈 공원 인근에 가매장 하라. 그리고 국권이 회복되는 날 고향 땅에 이장 토록 하여라.


나는 천국에 가서도 국권 회복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너희도 나의 뜻을 동포들에게 전하여 동심일력하여 대한독립 만세를 큰 소리로 외쳐 천국까지 들리게 해주면 나도 용약하여 천상을 쏘다닐 것이다.

끝나지 않은 한민족의 비극

38선의 시작은 ?

한민족이 분단의 아픔을 겪으며 외세에 휘둘리게 된 38선의 유래를 보면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945년 8월 11일 새벽 2시 딘 러스크와 미 국방성 작전국 정책과장 본스틸 대령이 국무, 국방, 해군 3성 조정 위원회(SWNCC)의 독촉을 받아 야간작업을 진행하여 미.소 점령구역 경계선으로 38도선을 30분 만에 획정했던 1945년판 National Geograpic이다.


이후 5년뒤 조선땅은 피로 물든 6.25동란이 이어졌고 3년동안 밀고 당기는 동안 엄청난 민족적 비극을 겪고서야 67년이 지난 현재까지 처음 그선을 그대로 유지하고있다. 분단속에 누군가는 이득이 전제한 한민족의 수난시기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 없는 후한무치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억지주장의 극치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23일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를 요구한 데 이어 24일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독도가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영토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에도 시대부터 1905년 각의 결정으로 독도를 일본땅에 편입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또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근거 문헌이 애매하고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도 할 말이 있겠지만, 자국이 생각하는 정의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면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왕도"라고 말했다.

일본의 독도넘보기 위험한 수준

정부는 24일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히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 총리가)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이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독도 영유권 관련 기자회견 내용을 비판하는 논평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조 대변인은 "일본은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와 힘을 합쳐 한일간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노다 총리는 이날 독도·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와 관련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면서 "국가의 영토 주권을 지키기 위해 단호한 태도로 냉정 침착하게 불퇴전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밝힌 바있다.


우겨대는 독도 영유권 현주소는

독도로 본적을 옮긴 일본인이 88명에 이른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5일 보도했다.지난 1월 79명에서 9명이 늘었다. 일본 정부가 지난 2005년 5월에 국회 답변에서 밝힌 숫자는 26명이었다.


일본의 본적지는 지번이 있으면 현 거주지와 상관없이 일본이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 어디로든 옮길 수 있다.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이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심지어 산호초에 솟은 바위에 인공구조물을 쌓은 오키노토리(沖ノ鳥)에도 본적지를 옮긴 이들이 있다.


본적 이전은 실제로는 호적을 관리하는 관청이 바뀐다는 의미다.한국에서는 독도로 본적을 옮긴 이가 2천700여명이고 독도에 거주하는 주민도 있다.

독도의 `한일 공유론'논란빚은 김태우 통일연구원장

양국 간 감정대립이 겹치면서 한-일 간 외교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가운데 김황식 국무총리는 24일 독도 주변 자원에 대한 `한일 공유론'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태우 통일연구원장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통일연구원장이 아닌 친일 연구원장과 같은데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느냐"는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김 원장은 23일 연구원 홈페이지에 한일 관계정상화를 위한 해결방안으로 "일본이 독도 육지와 인접 영해에 대한 한국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신 주변 해양 및 해저자원은 양국이 공유하는 방식을 협상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곧바로 삭제했다.


김 원장은 "(홈페이지에 게재된) 온라인 시리즈는 학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게재하는 공간으로 통일연구원의 공식적인 정책을 발표하는 장치가 아니다"면서 공직자로서의 주장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 23일 연구원 홈페이지에 게재한 '한일 외교전쟁 조속히 매듭지어야'라는 기고문에서 "일본이 독도 육지와 인접 영해에 대한 한국 영유권을 인정하는 대신 주변 해양 및 해저자원은 양국이 공유하는 방식을 협상할 수 있다. 그런 원칙에 따라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정을 위한 협상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독립기념관은 “독도가 한국 땅”임을 명확히 증명하는 일본 근대교과서 자료공개를 실시한다고 24일 전했다.이번에 공개되는 일본 교과서는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라고 한다.


또한 정부기구(교육을 주관하는 문부성)에서 제작 및 검증한 자료에서 독도가 일본과 무관한 영토임을 확인하는 최초의 일본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극도로 흥분한 일본외무부상 송일국에게 "일본 오지마?"

일본의 외무 부상(차관)이 독도 수영 횡단으로 화제를 모은 탤런트 송일국의 일본 방문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야마구치 쓰요시 외무 부상은 이날 한 민영방송에 출연해 독도 수영 행사에 참석한 송일국에 대해 “미안하지만 앞으로 일본에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면서 “그것이 일본의 국민감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보란 듯 일본의 위성TV인 BS닛폰과 BS재팬은 지난 21일 첫 방영하려던 송일국 주연의 한국 드라마 ‘신이라 불린 사나이’의 방송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에 대해 배우 송일국은 지난 24일 오후 9시20분께 자신의 트위터(?@songilkook)를 통해 "일본 외무차관 '송일국, 미안하지만 일본 못온다'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그냥 내 세 아들 이름이나 불러봅니다. 대한, 민국, 만세!" 라고 밝혔다.


이는 이날 일본의 외무 차관 야마구치 쓰요시가 광복절 기념 독도 수영으로 화제를 모은 송일국을 향해 "앞으로 일본 방문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후 올린 글이다.


지난 3월 세 쌍둥이를 품에 안은 송일국은 아들들의 이름을 대한, 민국, 만세로 지어 화제를 모았다.


송일국은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가수 김장훈, 밴드 피아, 한국체육대 수영부 학생 40여명과 함께 경북 울진군 죽변-독도 간 직선거리 220㎞를 릴레이로 수영했다.


늦었지만 잊지말자 국치일,

민주통합당 백재현 의원(광명갑)은 지난 6일 경술국치일과 남북화해 기념일 등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국가기념일 등에 관한 법률안’과 ‘지방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고 밝혔다.


국가기념일에 관한 법률안은 ‘경술국치일’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우리 국민이 근현대사를 바로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올바로 가늠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또 남북간의 민족 분단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정성으로 이뤄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하여 ‘남북화해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기 위해 마련했다. 국민의식 속에서도 지워지고 말았다.


왜 국권이 상실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고, 단순한 뉘우침에서 나아가 국력신장과 독립정신, 그리고 세계열강에 진입하려는 구름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해자인 일본과는 이미 수교가 이뤄져 우호관계에 있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국치일은 꼭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국민적 관심으로 다시 기억하는 행사를 벌여 후세대에 이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건물에 조기 또는 반기를게양하고 검정색 넥타이를 착용하여 순국선열의 거룩함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한일전 축구보다 독도전 초읽기

군당국이 9월 7일부터 독도방어훈련을 한다는 계획을 수립했으나 최종 실시 여부는 내주 관련부처 협의에서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한 소식통은 25일 "해군이 9월7일부터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독도방어훈련을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면서 "이 훈련의 최종 실시 여부는 내주 열리는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독도방어훈련은 연 2회 실시하는 통상적인 훈련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30~100여명 규모로 훈련에 참가했던 해병대는 헬기로 독도에 상륙하는 훈련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1함대사령관이 모든 과정을 주관, 통제한다.훈련에 참가하는 전력은 해군의 3200t급 한국형 구축함과 1800t급 호위함, 1200t급 잠수함, 해상초계기(P-3C), 3000t급 해경 경비함 등이 참가한다. 공군에서는 F-15K 전투기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 전력들은 가상 적성 선박이 독도 영해를 침범하는 것을 상정해 정보 입수 단계부터, 상황 전파, 식별을 거쳐 해군과 해경, 공군이 합동작전을 펼쳐 퇴각시키는 시나리오로 진행한다.


군 관계자는 "최근에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군당국이 독도-이어도 함대 창설을 계획중이며 앞으로 한반도 주변 해역을 둘러싼 관련국들 간 '파워 게임'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은 올해 방위백서에서 독도의 관할부대까지 명기했다. 평화헌법에 근거해 국가간의 교전권(交戰權) 포기와 어떠한 전력도 가지지 않는다는 근거를 교묘히 없애고 독도에서 한일간 민간인들간에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에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방위백서에 명기한 독도관할부대는 교토부(京都府) 마이즈루(舞鶴)항에 주둔한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이다.

뇌내혁명 1은 2001년에 읽었다. 단장님이었던 금기언 장군이다.심리학 공부에 몰입되어 단숨에 읽어 골프에 적용시키는 구상을 하였다,2,3은 최근에 구입하여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2권에서는 좌뇌와 우뇌의 사용법부터 시작된다. 1권의 내용은 아래 내용과 같다. 지금까지 1권만으로도 많은 습관으로 도움을 많이 받고 골프 심리학을 발전시켜 학생들에게 좋은 생활패턴을 인도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하루야마 시게오’ 라고 하는 일본인이다.
이 사람은 어릴 적부터 가업인 동양의학을 전수 받기 위하여 네 살 때부터 지압, 침구를 배웠고 여덟 살 때 침술사 자격을 받았다.
그렇게 가업 전수 수업을 받던 그는 성인이 되어서는 서양의술을 접하게 되어 서양의학을 공부하게 되었으나 동양의학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였다.
그러던 그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전원도시 후생병원’ 이라는 병원을 세우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그가 바라던 동양의학의 효용성에 대한 설득 근거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또, 밝혀진 많은 사실들과 그의 고찰 내용을 접목시켜 이 ‘뇌내혁명’이라는 책을 펴내게 된 것이다.
그의 생각 중에서 가장 큰 줄기는 바로 ‘뇌내 모르핀’이다. 뇌내 모르핀이라는 물질은 마약 ‘모르핀’과 상당히 구조적으로 흡사하고, 기능도 비슷하지만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고, 마약 몰핀의 효력이 5∼6배나 된다. 긍정적인 요소로만 작용하는 뇌내 분비 호르몬이다. 그는 이 ‘뇌내 모르핀’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의 생각들이 물질화 된다고 말하며, 그 물질이 바로 ‘호르몬’이라 말한다. 우리가 만약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모르핀’계통의 호르몬이 분비되어 우리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아드레날린’계통의 호르몬이 분비되어 우리의 몸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생각의 가장 큰 줄기는 바로 이 뇌내 분비 호르몬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뇌내 분비 호르몬을 어떻게 하면 잘 분비할 수 있으며 행복하게 장수를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악성 산소 중에 활성산소가 있는데 인체가 운동을 할 때 필연적으로 활성산소가 생성되는데 그것을 중화하기 위한 SOD(superoxide dismutase/유해산소 중화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효소의 활발한 생성 능력은 뇌 운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 아드레날린의 분비는 활성산소 발생을 촉진시키므로 화를 내거나 열을 잘 받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훈련을 해야 한다.
뇌에서 몰핀을 분비시키자. 세 가지 포인트로는

 1. 식사 : 콩이나 된장은 최고의 자연 식품임. 고단백 저 칼로리 음식을 섭취하고
 2. 운동 : 근육을 붙이고 지방을 없애는데 주력해야 하는데 걷는 것(원래는 만삼천 보, 편의상 오천 보에서 만 보까지)이 뇌내 몰핀 분비를 용이하게 한다. 그러므로 걸으면서 명상 등 + 발상을 하면 효과가 3∼4배라고 한다.

 3. 명상 : + 발상(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 인문계와 이공계 중 인문계 전공한 사람이 더 오래 사는데 그것은 전자가 우뇌를 후자는 좌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임. 뇌내 몰핀을 이끌어내는 신경 덩어리의 근본은 A10 신경이다.
암세포를 불러오는 스트레스, 모든 악의 근원 쥐 실험 - 상자 속에 넣어 두고 밖으로 고양이가 돌아다니게 했는데 암 발병률이 현저하게 높았으며 나중에는 죽었다고 한다. 동양의학에서의 고대에서부터 뇌로 혈액이 올라가는 량을 조사하여 질병을 진단했는데 서양에서는 그것이 큰 발명이라고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성인병의 원인은 대부분 지방 때문이다. 30대 이후는 맨손체조나 가벼운 운동이  효과적이다.
인간의 수명 25×5=125세이다. 신념을 가지면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고 플러스발상도 쉬워짐.
인간은 각자가 다른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게 되었을 때 뇌에서 모르핀이 분비되며 다시없는 충실감과 지칠 줄 모르는 발전적인 사고 방식을 갖을 수 있게 된다.

 

2권에서는 플러스 발상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물론 지식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부모의 입장에서 학습이나 골프하는 아이들에게 전수하기위한 부모의 변화와 전수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제자들에게 전수하려 한다. 

드림 소사이어티 교육원에서는 부모코칭프로그램과 골프지도자 과정이 진행할 예정이다.프로그램에 적용시킬 예정이므로 기대가 된다.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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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윤의 golf & golfer] 
[박호윤의 golf & golfer] 타이거 우즈의 기록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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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7, 미국)가 골프 역사에 또 하나의 위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4일 끝난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2차전인 도이체방크챔피언십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54만4,000달러의 상금을 추가, 미PGA투어 개인 통산 상금 1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1억35만700달러로 통산 상금 2위인 비제이 싱(6,679만1,396달러)에 3,300여 만 달러 앞서고 있다. 투어 역사상 첫 1억달러 돌파이기도 한 이 기록은 현재 통산 순위 톱10에 올라 있는 선수들의 나이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최소 10년, 아니면 상당 기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업적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우즈는 세계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여전히 그가 넘어야 할 산이 몇 개 더 있긴 하다. 통산 최다승, 통산 최다 메이저 우승 등... 물론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우즈의 현 기량이 전성기 시절에 다소 못미치나 여전히 세계랭킹이나 투어 각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하나씩 새로운 기록을 추가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통산 상금 1억 달러 돌파에 즈음해 우즈가 그간 세웠던 주요 기록과 향후 경신할 가능성이 있는 기록들을 정리한다.

1. 통산 승수 및 메이저 우승

지난 96년, US주니어챔피언십과 US아마챔피언십 등 아마추어 내셔널 타이틀을 6년 연속 차지하는 전무한 대기록을 수립한 뒤 프로로 뛰어든 우즈는 이제껏 미PGA투어에서만 74승을 기록 중이다. 데뷔 첫 해인 96년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프로 첫 승을 신고한 우즈는 같은 해 월트디즈니월드/올즈모빌클래식에서 또 다시 우승, 루키 시즌에만 2승을 올리며 통산 최다승을 향한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올해 AT&T내셔널에서 우승한 것 까지 17년 동안 통산 74승을 올렸다. 이는 잭 니클러스의 73승을 넘어 통산 2위 기록이며 최다승 1위인 샘 스니드의 82승에 8승차로 접근한 기록이다. 우즈가 올시즌 정도의 활약을 앞으로도 보여 준다면 3년 이내 통산 최다승 고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현역 선수 중 우즈 다음으로 많은 승수를 기록중인 선수는 40승의 필 미켈슨이다.

우즈의 통산 74승 중에는 14회의 메이저 타이틀이 포함돼 있다. 우즈는 데뷔 이듬해인 97년 마스터스를 제패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14번의 메이저 우승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을 잇달아 우승한 뒤 이듬해 마스터스까지 제패, 4대 메이저를 연속해서 우승함으로써 '타이거 슬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메이저 14승은 잭 니클러스의 최다 메이저우승 기록인 18승에 4승 못미치고 있는데 우즈가 2008년 이후 4년 여 동안 메이저 타이틀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잭 니클러스 기록 추월이 가능할 지 의견이 분분하다.

2. 통산 상금 1억달러의 위업

데뷔 이듬해인 97년 투어 첫 상금왕에 올랐던 우즈는 올해까지 17년 중 모두 아홉차례 시즌 상금왕을 차지했다. 99년 부터 2002년 까지는 4년 연속 상금왕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고 2005년 부터 3년간도 상금왕을 독식했다. 2005년과 2007년에는 단일 시즌 상금 1천만달러 돌파라는 위업이 포함돼 있다. 단일 시즌 최다 상금은 2004년 비제이 싱(피지)이 기록한 1,090만5,166달러.

3. 연장 승부의 지존

우즈는 이제껏 치른 20차례의 연장전(미PGA투어 및 유러피언투어 등 기타 투어와 이벤트대회 포함)에서 16승4패를 기록, 승률 80%를 보이고 있다. 큰 승부에 강한 우즈만의 강인한 멘탈을 입증하는 수치. 96년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데이비스 러브3세를 연장 승부 끝에 제치고 우승, 자신의 투어 첫 승도 연장 승부 끝에 따낸 바 있다. 이후 우즈는 플레이오프 마다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승수를 추가했다. 미PGA투어만을 놓고 볼 때 연장 승패는 11승1패로 오히려 승률이 더 높다. 무려 91.6%. 98년 닛산오픈에서 빌리 메이페어에게 연장 첫 홀에서 버디를 맞아 패한 것이 유일할 뿐 나머지는 모조리 승리로 이끌었다. 11승 중에는 2000년 PGA챔피언십(상대 밥 메이), 2005년 마스터스(상대 크리스 디마르코), 2008년 US오픈(상대 로코 미디에이트) 등 세차례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 포함돼 있다. 98년 닛산오픈 패배 이후에는 현재까지 연장전서 9연승 중이다. 참고로 한국의 박세리는 통산 6차례의 연장전을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전승을 거둬 미LPGA투어의 연장 지존으로 불리고 있다.

4. 가장 좋아하는 골프장

우즈는 특정 코스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우즈는 모두 34개 코스에서 74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는데 이 중 9개의 골프장에서 3승 이상을 올리며 44승을 수확했다. 가장 궁합이 맞는 코스는 토레이 파인스, 파이어스톤 남코스, 베이힐 등 3개 골프장으로 각각 7승씩을 거뒀다. 3개의 골프장에서 무려 21승을 집중한 셈이다. 그 다음은 5승씩을 올린 코그 힐과 뮤어필드 빌리지이며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만도 4승을 챙겼다. 3승씩을 거둔 골프장은 도랄과 나코스타 워윅힐스 등 3곳이며 페블비치 등 5곳의 골프장에서는 2승씩을 올렸다. '편식'이 심한 편이긴 하나 다른 많은 골프장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림으로써 특정 골프장에도 강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강하다는 평가가 옳은 것 같다.

5. 그 밖의 진기록들

-우즈는 4대 메이저대회 중 3개 대회의 최소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97년 마스터스에서 18언더파를 기록한 것을 필두로 2000년에는 브리티시오픈 19언더파, PGA챔피언십 18언더파(밥 메이와 공동)를 각각 기록했으며 2006년 PGA챔피언십에서도 18언더파를 다시 한번 세운 바 있다.

-또한 우즈는 경기 시작 초반 5개홀 최소타 기록도 가지고 있다. 2009년 뷰익오픈에 출전한 우즈는 2라운드에서 10번홀을 출발해 14번홀까지 버디-버디-이글-버디-버디를 잡아내 초반 5개홀에서 6언더를 치는 괴력을 보였다.

-우즈는 2000년 US오픈에서 2위인 어니 엘스에 15타 앞선 기록으로 우승, 이 부문 메이저대회 기록을 세웠다. 일반 대회 최다타수차 우승은 16타다.

-우즈는 모두 7차례에 걸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했다. 2000년과 2002년 US오픈, 2000년 NEC인비테이셔널, 2002년과 2006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챔피언십, 2003년 웨스턴오픈, 2005년 브리티시오픈 등이다.

-연속 경기 예선 통과 기록 역시 우즈의 몫이다. 98년 뷰익오픈 부터 시작된 우즈의 연속 컷오프 통과는 무려 7시즌 후인 2005년 와코비아챔피언십 까지 142경기 동안 계속됐다. 종전 기록은 바이런 넬슨의 113경기 연속 통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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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7, 미국)가 골프 역사에 또 하나의 위대한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4일 끝난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2차전인 도이체방크챔피언십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54만4,000달러의 상금을 추가, 미PGA투어 개인 통산 상금 1억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1억35만700달러로 통산 상금 2위인 비제이 싱(6,679만1,396달러)에 3,300여 만 달러 앞서고 있다. 투어 역사상 첫 1억달러 돌파이기도 한 이 기록은 현재 통산 순위 톱10에 올라 있는 선수들의 나이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최소 10년, 아니면 상당 기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업적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우즈는 세계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여전히 그가 넘어야 할 산이 몇 개 더 있긴 하다. 통산 최다승, 통산 최다 메이저 우승 등... 물론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우즈의 현 기량이 전성기 시절에 다소 못미치나 여전히 세계랭킹이나 투어 각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하나씩 새로운 기록을 추가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통산 상금 1억 달러 돌파에 즈음해 우즈가 그간 세웠던 주요 기록과 향후 경신할 가능성이 있는 기록들을 정리한다.

1. 통산 승수 및 메이저 우승

지난 96년, US주니어챔피언십과 US아마챔피언십 등 아마추어 내셔널 타이틀을 6년 연속 차지하는 전무한 대기록을 수립한 뒤 프로로 뛰어든 우즈는 이제껏 미PGA투어에서만 74승을 기록 중이다. 데뷔 첫 해인 96년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프로 첫 승을 신고한 우즈는 같은 해 월트디즈니월드/올즈모빌클래식에서 또 다시 우승, 루키 시즌에만 2승을 올리며 통산 최다승을 향한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올해 AT&T내셔널에서 우승한 것 까지 17년 동안 통산 74승을 올렸다. 이는 잭 니클러스의 73승을 넘어 통산 2위 기록이며 최다승 1위인 샘 스니드의 82승에 8승차로 접근한 기록이다. 우즈가 올시즌 정도의 활약을 앞으로도 보여 준다면 3년 이내 통산 최다승 고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현역 선수 중 우즈 다음으로 많은 승수를 기록중인 선수는 40승의 필 미켈슨이다.

우즈의 통산 74승 중에는 14회의 메이저 타이틀이 포함돼 있다. 우즈는 데뷔 이듬해인 97년 마스터스를 제패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14번의 메이저 우승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을 잇달아 우승한 뒤 이듬해 마스터스까지 제패, 4대 메이저를 연속해서 우승함으로써 '타이거 슬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메이저 14승은 잭 니클러스의 최다 메이저우승 기록인 18승에 4승 못미치고 있는데 우즈가 2008년 이후 4년 여 동안 메이저 타이틀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잭 니클러스 기록 추월이 가능할 지 의견이 분분하다.

2. 통산 상금 1억달러의 위업

데뷔 이듬해인 97년 투어 첫 상금왕에 올랐던 우즈는 올해까지 17년 중 모두 아홉차례 시즌 상금왕을 차지했다. 99년 부터 2002년 까지는 4년 연속 상금왕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고 2005년 부터 3년간도 상금왕을 독식했다. 2005년과 2007년에는 단일 시즌 상금 1천만달러 돌파라는 위업이 포함돼 있다. 단일 시즌 최다 상금은 2004년 비제이 싱(피지)이 기록한 1,090만5,166달러.

3. 연장 승부의 지존

우즈는 이제껏 치른 20차례의 연장전(미PGA투어 및 유러피언투어 등 기타 투어와 이벤트대회 포함)에서 16승4패를 기록, 승률 80%를 보이고 있다. 큰 승부에 강한 우즈만의 강인한 멘탈을 입증하는 수치. 96년 라스베이거스 인비테이셔널에서 데이비스 러브3세를 연장 승부 끝에 제치고 우승, 자신의 투어 첫 승도 연장 승부 끝에 따낸 바 있다. 이후 우즈는 플레이오프 마다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승수를 추가했다. 미PGA투어만을 놓고 볼 때 연장 승패는 11승1패로 오히려 승률이 더 높다. 무려 91.6%. 98년 닛산오픈에서 빌리 메이페어에게 연장 첫 홀에서 버디를 맞아 패한 것이 유일할 뿐 나머지는 모조리 승리로 이끌었다. 11승 중에는 2000년 PGA챔피언십(상대 밥 메이), 2005년 마스터스(상대 크리스 디마르코), 2008년 US오픈(상대 로코 미디에이트) 등 세차례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 포함돼 있다. 98년 닛산오픈 패배 이후에는 현재까지 연장전서 9연승 중이다. 참고로 한국의 박세리는 통산 6차례의 연장전을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전승을 거둬 미LPGA투어의 연장 지존으로 불리고 있다.

4. 가장 좋아하는 골프장

우즈는 특정 코스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우즈는 모두 34개 코스에서 74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는데 이 중 9개의 골프장에서 3승 이상을 올리며 44승을 수확했다. 가장 궁합이 맞는 코스는 토레이 파인스, 파이어스톤 남코스, 베이힐 등 3개 골프장으로 각각 7승씩을 거뒀다. 3개의 골프장에서 무려 21승을 집중한 셈이다. 그 다음은 5승씩을 올린 코그 힐과 뮤어필드 빌리지이며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만도 4승을 챙겼다. 3승씩을 거둔 골프장은 도랄과 나코스타 워윅힐스 등 3곳이며 페블비치 등 5곳의 골프장에서는 2승씩을 올렸다. '편식'이 심한 편이긴 하나 다른 많은 골프장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림으로써 특정 골프장에도 강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강하다는 평가가 옳은 것 같다.

5. 그 밖의 진기록들

-우즈는 4대 메이저대회 중 3개 대회의 최소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97년 마스터스에서 18언더파를 기록한 것을 필두로 2000년에는 브리티시오픈 19언더파, PGA챔피언십 18언더파(밥 메이와 공동)를 각각 기록했으며 2006년 PGA챔피언십에서도 18언더파를 다시 한번 세운 바 있다.

-또한 우즈는 경기 시작 초반 5개홀 최소타 기록도 가지고 있다. 2009년 뷰익오픈에 출전한 우즈는 2라운드에서 10번홀을 출발해 14번홀까지 버디-버디-이글-버디-버디를 잡아내 초반 5개홀에서 6언더를 치는 괴력을 보였다.

-우즈는 2000년 US오픈에서 2위인 어니 엘스에 15타 앞선 기록으로 우승, 이 부문 메이저대회 기록을 세웠다. 일반 대회 최다타수차 우승은 16타다.

-우즈는 모두 7차례에 걸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했다. 2000년과 2002년 US오픈, 2000년 NEC인비테이셔널, 2002년과 2006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챔피언십, 2003년 웨스턴오픈, 2005년 브리티시오픈 등이다.

-연속 경기 예선 통과 기록 역시 우즈의 몫이다. 98년 뷰익오픈 부터 시작된 우즈의 연속 컷오프 통과는 무려 7시즌 후인 2005년 와코비아챔피언십 까지 142경기 동안 계속됐다. 종전 기록은 바이런 넬슨의 113경기 연속 통과다.
출처 : KGSA 골프레저산업 전문가과정(경영관리사)
글쓴이 : 이경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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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세력의 태동과 변천과정 ] 한국좌파운동의 역사
기획취재팀  |  press@bluetoday.net

   
 

좌파세력의 태동과 변천과정 : 한국좌파운동의 역사 

첫째, 제1기는 태동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세력 즉 공산주의세력이 태동된 것은 1920년대 무렵이다. 세계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인 1917년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은 연해주, 시베리아의 해외 한인들과 일본 유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고 이를 국내에 유포하면서 부터 좌파세력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코민테른의 지원아래 국제공산주의혁명 전사의 일원으로 조선의 해방과 조선에서의 공산주의 승리를 위해 투쟁해온 시기였다.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사는 크게 3단계로 아래와 같아 구분할 수 있다. ① 공산주의 사상 정립기(1920-1924): 상해파 고려공산당, 이루쿠츠크파 고려공산당 결성 ② 조선공산당 결성 및 활동기(1925-1928) ③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기(1929-1945)

 둘째, 제2기는 인민정권 수립투쟁기이다. 해방직후 공산주의운동은 조선공산당의 재건과 공히 인민정권 수립투쟁으로 상징된다. 이시기 공산주의세력들은 대다수 국민들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여망을 져버리고 소련의 지령에 따라 찬탁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하고 인민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각종 테러, 방화, 총파업, 유격전, 무장폭동 등을 자행하는 등, 어느 시기보다 좌파세력의 준동이 드센 시기였다. 

해방이 되자 좌파세력들은 조선공산당의 재건작업에 즉각 착수했는데, 박헌영의 주도로 1945년 9월 11일 공식적으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다. 해방직후 남한에는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외에도 연안파의 지도를 받는 백남훈의 「조선신민당 남한지부」,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 및 군소그룹으로 좌파세력들이 분파되어 있었다. 이들 세력은 박헌영 주도로 기존 3당세력을 흡수하여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노동당」(약칭 : 남로당)을 결성하게 된다. 이 시기 좌파세력들은 1946년 7월 국립서울대학교 종합화안 반대투쟁(일명 국대안 사건), 9월 총파업, 10월 대구폭동사건, 1948년 2․7 폭동, 5․10 총선반대투쟁, 여순주둔군 반란사건, 제주 4․3 폭동 등 무장폭력투쟁을 일으키고, 지리산 등에서 무장유격투쟁을 전개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등의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하였다.

셋째, 제3기(침체기)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전면 불법남침으로 야기된 6.25 남침전쟁(1950-53년)은 우리사회에서 좌파세력을 일소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좌파세력들은 거의 괴멸되었고 일부 잔존세력들은 잠복한 상태였다. 6.25 남침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사회엔 굳건한 반공체제가 들어서고 국민들도 확고한 반공이념으로 무장되어, 좌파세력들은 거의 발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휴전직후 부터 대남공작부서(노동당 연락부, 내무서 사회안전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등)를 재편하고 간첩을 남파시켜 지하당구축과 동조세력 포섭을 위한 집요한 공작을 진행시켰고, 그 결과 우리사회에는 소위 ‘혁명의 씨앗’이 서서히 발아하기 시작한다.

네째, 제3기는 1960년대 지하활동기이다. 이 시기는 6.25남침전쟁의 결과 지하에 잠복해 있던 좌파세력과 1950년대 말 재발아 한 학원가의 의식화세력 등이 합류하여 지하활동으로 좌파운동의 맥을 이어 온 시기였다. 또한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의 결과 지하당이 구축되어 활동한 시기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64년 인혁당(인민혁명당)사건, 1967년 동백림간첩단사건, 1968년 통혁당(통일혁명당)사건, 1969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이 있다.

 다섯째, 제4기는 반독재민주화운동위장기이다. 1970년대는 1972년 10월 출범한 유신정권에 대항하여 좌파세력들이 사회주의 건설목표를 은닉한 채 ‘반독재민주화투쟁’의 기치를 내걸면서 세력 확산을 기한 시기였다. 또한 이시기 좌파운동은 정치문제와 학내문제 외에 노동현장과 농촌, 빈민운동 등에 까지 직접 투쟁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 계기는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사건(1970년)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후 좌파운동은 민주화운동(정치문제)뿐만 아니라 민중운동(우리사회 구석구석의 소외세력의 견인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한편 좌파세력들은 공개적으로는 일반 학생, 지식인 및 국민대중의 순수한 민주화열망을 수단삼아 정권타도를 실현하기 위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전개하면서 지하에서는 좌경의식화공작에 주력하고 북한과의 연계 속에 전국적 규모의 전위조직 결성을 시도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민주화투쟁의 행동세력이었던 학생운동세력의 성향은 지하의식화 그룹에 참여한 핵심세력만 좌익의식화된 상태였고, 유신반대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일반 학생들은 좌경혁명론에 동조한 상태는 아니었다. 핵심세력들은 여전히 일반학생들에겐 그들의 사회주의지향성을 은닉한 채, ‘민주화투쟁’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여섯째, 제6기는 사회주의지향 표출기이다. 1980년대는 한국좌파운동사에서 양적․질적으로 일대 전환을 가져온 시기이다. 그 이유는 1979년 10․26 사건이후 1980년 초 소위 서울의 봄과 5․17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1980년대 중반이후 좌파운동은 과거와는 달리 급속히 전국 규모화하여 그 세력이 양적으로 확대되었고, 질적으로는 사회주의운동성향이 단순한 민주화투쟁에서 공개적으로 친북․계급투쟁성을 표방하며 사회주의지향 투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남한판 사회주의혁명론 정립을 위한 치열한 사상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는 1980년초 ‘무학(무림-학림)논쟁’에서부터 시작하여 1982년 ‘야비-전망논쟁’, ‘깃발과 반깃발논쟁’(MC-MT논쟁), 1985년의 ‘C-N-P논쟁’, 1986년의 ‘자민투와 민민투논쟁(NL-CA논쟁)’ 1989년 ‘NL-ND-PD 논쟁’ 등으로 대표된다. 1980년대 중반 운동권은 자민투계와 민민투계로 양분되어 공개적인 좌경노선을 표방하며 치열한 사상투쟁을 전개했고, 이들 세력이 분파되어 현재 자민투계는 NL주사파계열로, 민민투계열은 NDR파, PDR파, 트로츠키파, NL비주사파 등 맑스레닌계열로 계승되었다.

 특히 주사파계열은 「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거쳐 1987년 8월 한국 대부분의 대학과 전문대학이 포함된 최대의 학생운동단체인 「전대협」(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을 결성하게 된다. 「전대협」은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수용하여 한국사회변혁 운동론을 ‘자주, 민주, 통일’ 운동노선으로 정립하고 친북편향의 각종 투쟁을 전개해오며 1980년 후반기 사회주의운동을 명실상부하게 주도해 왔다.

 반면 민민투계는 각종 정세관의 차이로 CA(제헌의회)그룹, CPC(헌법제정민중회의), CPA(헌법제정민중의회)로 분파되었고, 특히 CA그룹은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을 거치면서 다수파와 소수파로 분열되어 다수파 A그룹은 NL비주사파를, 다수파중 B그룹은 제독PD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CPA, CPC그룹은 오늘날 PD(주로 제파 PD)파로 계승되고 있는 등 매우 복잡한 분파과정을 연출한바 있다.

 일곱째, 제7기는 직업혁명가 활동기이다. 1990년대의 운동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소수정예의 전문 직업혁명가가 등장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핵심세력(전위세력)이 완전히 직업혁명화한 시기였다. 또한 활동무대가 1970, 80년대의 학원계와 노동계에서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확산되어, 우리내부에 이른바 ‘좌파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고 평가되는 시기이다. 또한 친북세력인 NL주사파 이외에도 북한과 연계되지 않은 자생적인 사회주의세력(맑스레닌계 : NDR, PDR, 트로츠키파 등)들이 대거 등장하여 영향력을 발휘한 시기이다. 이시기 운동권은 ① 이론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무장되었으며 ② 조직규모가 확대되었으며, ③ 간첩을 능가하는 철저한 조직보위책을 운용하고 있고 ④ 투쟁양상도 합법, 반합법, 비합법투쟁을 적절히 배합구사하고 있고 ⑤ 투쟁영역도 북한 및 국제 맑시즘조직과 직접 연계하는 등 비약적 변화를 가져왔다. 

여덟째, 2000년대의 특징은 좌파세력이 제도권 및 정부사이드 등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안착하여 좌파영향력을 국가전반에 확산시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좌파세력들은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출범에 편승하여, 그들의 친북․사회주의지향 활동을 민주화운동이니, 민주개혁운동, 평화애호운동 등으로 미화하며 제도정치권 및 정부사이드에 대거 진출하여 이른바 좌파의 영향력을 정부정책 및 우리사회 전반에 확산시켜 온 시기이다. 

실제 좌파정부 소속의 민주운동보상심의위, 의문사진상규명위, 각 부처 산하 과거사위 등을 통해, 남파간첩과 빨치산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고, 독일거주 거물급 간첩 송두율이 해외의 양심적인 민주화운동가로 미화되고, 사회주의혁명 등 반국가이적활동을 하다가 실정법을 위반하고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인사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여 명예회복과 더불어 거액의 보상금까지 수령하며 호위호식하고 있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북한과 연대한 좌파세력들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 공안기관(국정원, 경찰 보안수사대 , 기무사 등)의 무력화 공세를 펼치며 안보관련시스템의 약화 및 우리사회의 중추세력인 자유민주진영(보수우파세력)의 무력화를 시도한바 있다.


좌파세력의 계파별 현황 


현재 친북․좌파운동권으로 대표되는 국내 좌파세력은 매우 복잡하게 分派되어 있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크게 ① 북한노선을 추종하고 있는 NL주사파와 ② 맑스레닌노선를 추종하는 PDR파 ③ 트로츠키노선을 추종하는 트로츠키파 ④ NL-PD의 혼합체인 21C파 및 ⑤ 기타 小 分派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NL주사파란 기본적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을 지칭하는데 이들은 북한의 대남혁명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에 입각하여 남한혁명을 성취하려는 세력이다. 주로 NLPDR파, NL(민족해방)파, NL1, NL우파, 주사파, 친북운동세력 또는 민족적 유물론자, 종북세력 등으로 불리워 진다. 대표적 조직으로는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집행부,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한대련」(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연대」,「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한국청년단체연합」 및 친북통일전선체격인 「한국진보연대」등이 활동 중이다.

둘째, PDR파란 민중민주주의혁명파(PDR : People‘s Democracy Revolution)라는 의미로, 소위 PDR론에 의해 한국을 사회주의화하려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파는 크게 ① 제독PD (반제반독점 민중민주주의혁명)파와 ② 제파PD (반제반파쇼 민중민주주의혁명)파로 나누어 진다.

 현재 제독PD파는 NL주사파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수의 세력이 학원계와 노동계, 문화예술계, 학계 등에 포진해 있다. 현재 활동중인 대표적인 PD파 조직을 들면, 대중조직으로 「노동자의 힘」, 「한노정연」(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학생운동체로는 「학생행동연대」(SAS), 「인학련」(인권의 정치학생연합), 「대학생사람연대」 등이 있다.

 셋째, 트로츠키파란 러시아의 공산혁명가인 트로츠키(L. Trotsky)의 혁명노선(영구혁명론)에 입각하여 한국혁명을 획책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파의 기본이념은 트로츠키즘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세력은 동구사회주의권 몰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트로츠키즘을 이의 대안으로 조심스럽게 채택하였다. 동구권에 이어 소련공산당의 붕괴가 기정사실로 나타나자 이들 세력은 기존 사회주의권을 스탈린주의에 매몰된 가짜사회주의라고 규정하고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입각한 국제사회주의혁명만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며 현재의 트로츠키파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활동중인 트로츠키계열의 조직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 「사학련」(사회주의학생연합), 「사노련」(사회주의노동자연합), 「다함께」 등이 있다.

 넷째, 21C(세기)파는 1993년 말경 NL과 PD의 대립구도에 염증을 느낀 세력들이 ‘인간적 민주적 사회주의 실현’의 기치를 들고 독자노선을 선언하며 형성한 학생운동그룹인데, 이들 세력 역시 맑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의 대표적인 조직은 「21C 진보학생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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