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ICARUS)’신화(神話)---
● ‘ 이카루스 신화 ’
<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 >
다이달로스라는 아주 솜씨 좋은 명장(名匠)이 미노스 왕을 위해 미궁을 만든다. 그것은 수없이 꾸불꾸불한 복도와 굴곡으로 되어져 서로 통하도록 만든 것인데 한 번 들어가면 거의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다.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끝나는지도 모를 정도로 마치 마이안드로스 강이 바다로 가는 도중에 굴곡하여, 때로는 앞으로 흐르다가 때로는 뒤로 역류하는 것과 같은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다.
<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힌 아버지와 아들>
후에 왕의 총애를 잃고 미노스 왕의 미움을 받아 자신이 만든 미궁에 아들과 함께 크레타 섬에 갇히게 된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자유를 향한 탈출을 꿈꾸게 된다. 그는 그의 감옥으로부터 도망할 궁리를 하지만 육지와 바다로는 탈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왕의 감시의 눈초리가 심했기 때문이다.
< 하늘로의 탈출을 위한 날개준비 >
'미노스왕은 육지와 바다를 지배할 수 있으나, 공중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길을 택해 보겠다.' 하고 다이달로스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어린 아들 이카로스를 위하여 날개를 만들기 시작한다. 우선 조그마한 깃털을 합치고, 점점 큰 것을 덧붙이자 날개의 표면이 점점 커져간다. 큰 털은 실로 잡아매고 작은 털은 밀초로 붙인다. 그리고 전체를 새의 날개처럼 가볍게 구부린다. 마침내 작품이 완성되자 그가 날개를 흔드니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공기를 쳐서 균형을 잡으니 몸이 둥실 공중에 머문다. 그는 아들에게도 날개를 달아 주고,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
< 아들에 대한 당부 >
날 준비가 되자, 그는 아들에게 말한다. "이카로스야, 적당한 높이를 유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저공을 날면 습기가 날개를 무겁게 할 것이고, 너무 상공을 날면 태양의 열이 날개를 용해할 것이니, 내 곁으로만 따라오너라. 그러면 안전할 것이다.“
< 하늘로의 탈출 시작 >
이런 교훈을 하면서 아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의 얼굴은 눈물에 젖고 손은 떨린다. 그는 이것이 마지막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들에게 키스를 한다. 그리고는 날개를 치며 공중으로 날아 올라간다. 그는 아들에게 뒤를 따르도록 격려하고 뒤를 돌아보며 아들이 날개를 조종하는 모습을 살핀다.
< 이카로스의 죽음과 아버지의 안타까움 >
그들은 왼편으로는 사모스와 델로스의 섬을, 오른편으로는 레빈토스 섬을 통과한다. 그 때 소년은 기쁨에 겨워 아버지의 곁을 떠나서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올라간다. 그러자 불타는 태양은 날개를 고착시키고 있던 밀초를 녹이므로 날개가 떨어져 내린다. 이카로스는 팔을 흔들지만 공중에 몸을 뜨게 할 날개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 아버지를 향하여 부르짖으나 그의 몸은 바다의 푸른 물속에 가라앉고 만다. 결국 뜨거운 태양의 햇볕에 날개를 붙인 풀이 녹아버리고 바다로 추락해 죽고만 것이다.
아버지는 “ 이카로스야, 이카로스야, 이카로스야 어디 있느냐 ”하고 울부짖는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의 시신을 건져 섬에 묻는데, 나중에 이 섬을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서 이카리아 섬이라 부르게 되고, 그 후부터 이 바다는 이카로스 해라고 부르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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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신화에 대한 일반적 해석
1.다이달로스와 아카루스의 ‘하늘’은 무한한 가능성이며, 도전이고, 시험대였다고 본다. 만약 그들에게 하늘이 없었다면 그들은 아마 동반 자살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2.이카로스의 ‘날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상징한다. '날개'로 대표되는 자유 공간으로의 의지, 즉 ‘상승(上乘)’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물리적인‘비행’이든, 사회적인‘신분상승’이든, 경제적인 ‘부의 축적’이든 간에, 자신에게 금지되었던 영역에서 수직으로의 상승을 꿈꾸는 것은 이카루스의 이야기처럼 위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영원한 이상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3.‘이카루스(ICARUS)'라는 단어는, 현대에서 ‘(욕망으로 인한) 사회적 추락’, ‘젊은이의 부주의함’을 은유하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된다.‘ 이카루스의 꿈’이라고 하면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이라는 의미와, ‘인간의 덧없는 욕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카로스는 무모하지만 꿈을 경험하는 존재이다. 무한한 가능성과 도전에의 의지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스며드는 자유로움을 느끼며 자신의 의지로 욕망의 경계선인 수평선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한다. 다시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카루스는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카루스는 그 사실을 자각하면서 비행한다.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올라가면 밀납이 녹아 떨어져 죽을 것을 알고 있었으나, 무모하게도 더 높이 오르다 죽음을 맞이한다. 이카루스의 ‘무모한 도전’이 현실적인 패배로 귀결되었을지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젊은이의 열정적 삶, 즉 이상을 향한 노력과 경주를 게을리 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인류의 역사는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은 수많은 이카루스들에 의해 발전해 왔음을 이 신화는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명사】
[그리스신화] 이카로스: 밀랍으로 붙인 날개로 Crete 섬에서 탈출했는데, 아버지 Daedalus의 충고를 듣지 않고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서 바다에 떨어져 죽음
4. ‘다이달로스’는 조심스럽지만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장인이며, 마침내 자유를 향해 비상(飛翔)하기 위한 준비가 끝나자, 아들 이카루스에게 바다와 태양의 중간선을 적당히 유지하면서, 너무 높지 않게, 그리고 너무 낮지 않게 비행하라고 말한다. 중용과 절제에 대하여 충고를 하는 것이다. '다이달로스'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들이 갖고 있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 등의 원형적 심상들이 드러난다. 생에 있어서 모험은 감정을 따르되 지나친 욕망을 절제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성공할 수 있다는 '중용(中庸)의 도(道)'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게 한다.
■ 내가 본 ‘이카루스 신화’
1. 살아남은 이카루스라면?--제2탄의 이카루스 신화
우리가 ‘날개’라고 하면 먼저 ‘새’를 떠올리게 된다. 날개달린 새, 그들이 갖고 있는 날개는 고정적인 것으로, 죽는 순간까지 녹아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이 신화 속의 날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환경에 의해 녹아내리는 임시적이고도 유한한 날개다. 고정적인 날개가 달린 새는 자신의 환경에서 날며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한다. 더 이상의 무한한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이 없다. 그러나 유한한 날개를 지닌 이카루스는 자신의 유한한 한계를 알기에 다시 무한의 세계로 도전한다. 마치 비행기, 헬리콥터, 우주선, 인공위성 등, 더욱 강력하고도 새로운 형태의 대체 날개를 향한 인간의 도전이 멈춰지지 않듯이 말이다.
물론 신화 속 이카루스는 떨어져 바다 속에 빠져 죽은 것으로 나왔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카루스를 연상해 본다. 1번, 2번 떨어져 본 경험이 있는 이카루스는 소위 아버지 세대인 기성세대가 말하고 있는 ‘중용의 미덕’을 따르며 적정선만 유지한 채 새로운 도전을 안 했을까? 여기서 나는 제2탄의 아키루스 신화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떨어져 살아남은 이카루스’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카루스로 재 탄생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살아남게 된 이카루스라면 죽을 때까지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모험만 일생하다 가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한 번 떨어질 때마다 밀납으로 붙인 날개가 아닌 새로운 솔루션을 가진 날개를 만들어 시도하고 도전했음이 분명했을 테니까.
2. 자신이 만든 생의 미궁에 갇힌 우리 자신들
누에가 자신의 입에서 뽑아낸 실에 결국 갇히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 말이 곧 그 사람이다’라고 하는 말처럼 우리네 인생도 결국 자신이 내린 순간순간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자기 삶의 형태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 신화 속 장인 다이달로스가 직접 만든 미로(迷路)의 궁, 바로 그 안에 자신과 아들이 갇힌 것처럼 우리들도 인생을 살아가며 다른 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 엮어 놓은 환경 안에 갇히게 된 것임을 늦게라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결국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도 그 어떤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
3. 미궁, 즉 생(生)의 위기 속 살아남는 법 3가지
육지로도 바다로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도저히 회생 불가한 위기의 상황이다. 그 어떤 솔루션(solution)도 찾지 못하면 남은 평생, 그 미궁에 갇혀 바깥구경 한 번 못한 채, 자유의 신선한 공기 한 모금 들이마시지 못한 채 죽어가야 한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도 살아오며 앞으로도, 뒤로도, 좌로도, 우로도 갈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수도 없이 겪으며 살아온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사고의 전환은 다음의 세 가지다.
a. 반드시 해결할 길이, 그 어떤 해결안이 어딘가에 있을 것을 믿어야 한다.
b. 해법이 나올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려가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c. 탐색되어지고 모색되어진 방법들을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야 한다.
신화 속 다이달로스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a. 그는 육지, 바다가 가로막히자, 공중, 즉 하늘을 생각하고 그 하늘로 날아 탈출할 수 있음을 믿는다.
b. 하늘로 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색한다.
c. 조그마한 깃털을 모아 덧붙이며 실로 잡아매고 밀초로 붙이는 작업을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개의치 않고 진행해 나간다. 마침내 날개를 만들어 붙여 그것을 흔들어 뜨게 하고 균형을 잡아 몸을 움직여나간다. 그리고 아들에게 나는 법까지 가르쳐 함께 비상한다.
4. 초 날개의 한계로 추락한 그 자리의 의미
인간 모두에게는 누구나 날 수 있는 이 날개가 있다. 어떤 와중 속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직선적(vertical)탈출을 할 수 있다. 태양을 향해 가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즉 역사와 문화와 문명을 향한 시대적, 세기적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무 낮게도 너무 높게도 날지 말라고 충고했는데 너무 낮은 목표도 너무 높은 목표가 아닌 적당한 높이의 목표만 갖고 살면 그 날개로도 충분히 계속 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향해 비상하는 사람은 그 밀납으로 만든 날개로만은 도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마치 우주 여행시(時) 하나의 캡슐을 벗고 다시 비행하듯 평범한 꿈이 아닌 특수하거나 범상한 꿈을 꾸며 그것을 향해 비상하려는 사람은 스페어 날개를 준비해야한다. 작열하는 태양 빛에 이내 녹아내리는 그런 밀납 수준의 날개가 아닌 우주 항공선의 로켓트 발사 장치만큼의 세부화 되고 첨단화된 대체날개 장치를 장착하고서야 비상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향해 약간 높이 올라갔다가 1~2번만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고 나면 기겁하여 더 이상 날 꿈조차 꾸지 못한다. 초 날개를 단 사람은 너무 높이 날면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렇게 떨어져 보았기에 그토록 본인이 의지해왔던 그 초 날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도 잘 안다. 한 번 떨어져 보았기에 거저 준다고 해도 안 받게 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영원히 안 떨어지고 잘라 나가지 않는 날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초 날개를 의지하다가 낭패를 본 사람은 떨어져 보았기에, 다쳐 보았기에 누구보다 강력한 욕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2, 제3, 제4의 비상에서는 떨어지지 않도록----!
5. 한계 극복을 위한 도전이 산출한 대체(代替)날개
인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녹아내린 날개로 인해 추락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영원히 녹아내리지 않을 날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가장 멀리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고 한다. 가장 강력한 날개를 가진 자만이 가장 강력하게 높이 우주까지라도 날 수가 있다.
대다수의 일반 사람들은 대학 교육까지 받으면 학문의 전당에서 배운 그 지식의 날개로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삶의 현장에 뛰어든다. 그러나 날개 몇 번 퍼덕이다 그대로 땅에 고꾸라져 넘어지는 경험을 한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직사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불구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떨어진 바로 그 순간부터라고 생각한다. 그 수대로 있는 초 날개가 녹아져 내려 추락해 있는, 그리하여 작고 큰 상처는 물론 부러지고 병든 그 곳에서 살아남아 다시 추락하지 않을 수 있는 날개를 만들어나가는 도전을 시도해야한다는 것이다. 눈 찢어지고 코뼈 부러지고 다리 분질러져 절뚝대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이 두 번 다시 추락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날개를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다시 날게 하는 일 , 이것이 지도자와 사명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패하고 패배한 사람일수록 성공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도 절실한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본다. 목회자가 무엇인가를 되짚어 본다. 이 신화 속 밀납 날개를 만들어 아들에게 달아준 다이달로스처럼 이 세대를 살아가는 목회자나 설교자는 추락의 경험으로 앓고 있고 신음하고 있는 수없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 고공과 찬란한 태양을 향해 높이, 더 높이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어 달아주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더 좋은 기능과 성능을 가진 날개를 만들어 나도 달고 나의 다음 세대도 달아 고공을 날게 해야지.’라고 중얼거리며 태양 가까이 가장 멀고 높은 그 곳까지 날아도 까딱없는 고성능 우주 발사 캡슐이상의 대체 날개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난 다시 나의 작업장을 향한다. 다음과 같은 누군가의 말을 마음에 담으며...
---“진보나 발전 없이 답보하는 '안정적 절제나 보수적 중용' 보다는 희생이 따르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무모한 이카루스의 도전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리고 그 도전은 값질 것이다. 언젠가 인류는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뚫고 그 속으로까지 진출하는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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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성세대의 나이를 살아가고는 있으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나 ‘중용(中庸)의 도(道)’와는 이별하고 마지막 죽는 순간가지 이카루스 ‘도전세대’의 일원으로 살다 갈 것을 결심한다. 어디선가 ‘푸드득’소리가 들려 옆을 본다.
---‘아앗! 날개가 보인다!’
다시 정신 차려 자세히 보니 내 몸에 붙은 나 자신의 날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