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집권안위를 위하여 철도 및 공기업 방만운영과 노조의 비대함에도 이쁘게 봐주고,국민들은 사랑하지 않았으며 기만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동안 국민의 고통과 인내를 존경하며,앞으로는 모든 국민들에게 균형된 행복을 주려고 한다.이제는 국민의 세금으로 철도 및 공기업의 손실과 노조의 비대함에 지원하지 않고 좌시 않을 것이다.

 

서울광장에 있는 비만과 성인병에 걸린 철도 노조들을  좌시할 수 없을 것이다.그들도 결국 사랑스런

우리 국민이니까.

대통령의 국정기조는 국민모두에게  균형된 행복을 찾아 주는 것이다. 함께 응원합시다.

  * P/S 시위현장에 앉아 있는 종북세들의 심판은 우리 국민이 꼭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창조하는 가운데 경영학은 시작된다. 그래서 경영학도는 무엇보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맺어가는 인간관계를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가슴과 배는 궁궐과 같고, 四肢는 교외에 경계가 있는 것과 같다.

관절은 百官의 할 일이 나눠어진 것과 같다.神은 임금이고,血은

신하이고 氣는 백성이다.

몸을 다스릴 줄 알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백성을 아끼면 나라가

편안해지듯이 氣를 아끼면 몸이 온전하게 된다.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듯이 氣가 고갈되면 사람은 죽는다.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고,망한 나라는 보전할 수 없다(내경편 中에서)

본다는 것은 읽는 다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세상의 보이는 변화를 보고 보이지 않는 변화의 이면을 읽고
먹구름이나 천둥이나 번개를 보고 비가 올 것임을 읽고...
작은 징후나 조짐을 보고 커다란 변화가 몰려 올 것임을 읽는다.

늘 똑같이 보는 사람은 똑 같이 세상을 읽는다.
틀에 박힌 눈으로 보는 사람은 틀에 박힌 방식으로 읽는다.
세상을 다르게 읽고 싶은가?
그럼 세상을 다르게 봐야 한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싶은가?
그럼 세상을 다르게 읽어야 한다.

이 처럼 세상을 보는 일과 세상을 읽는 일은
톱니바퀴처럼 엮여져 있어서
다르게 보려면 다르게 읽은 앎이 있어야 하고
다르게 읽기 위해서는 다르게 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특히 보는 것을 바꾸고
본것에서 다르게 뭔가를 이끌어내가 위해서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앎을 통해 축적된
인식의 깊이와 넓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볼 수 있는 시력(視力)은
지금까지 내가 본 역사적 기록, 시력(視歷)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멋진 광경이나 의미심장한 장면을 봤어도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인식의 지평과 깊이가 없다면
그저 어제 봤던 방식대로 보일 뿐이다.
보이는 것만 보면서 틀에 박힌 방식대로 세상을 읽을 수 밖에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다른 것을 읽고 싶고
어제와 동일한 현상이지만 거기서도 뭔가 다른 것을 읽어내려면
나의 앎이 바뀌어야 한다.

그 앎의 체계와 구조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바로 독서다.
그래서 남다르게 읽지 않으면
늘 남을 읽기 전에 읽히는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세상을 남다르게 읽고 남다르게 구상한 사람의 사유체계에 구속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읽지 않으면 읽히고
읽지 않으면 많은 것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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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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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라지망살

(명반법)| 사주학

sungjh | 조회 277 |추천 0 | 2009.02.17. 11:40

 


天羅地網殺(천라지망살)
글쓴이: 왕건 조회수 : 150 07.01.28 20:34 http://cafe.daum.net/mastersaju/Ekp2/104
天羅地網殺(천라지망살)

천라지망살이란 하늘에 그물을 치고 땅에도 그물을 치는 殺로서
억압 . 통제 . 구속을 당하는 일이 많고 관재구설 . 시비 . 송사 등의 악제가 많다

천한 사람이 귀한 사람을 구박 . 구속하는 결과와 같으며
남자는 만사가 여의치 못하고 금전운 . 사업운이 박하여 가난하게 살며 과실수가 많다

여자는 남편 운이 없고 별거 . 이별 등으로 소박을 당하는 수가 많고 자식 복이 없다는 살로
남녀간에 감금 . 구속 . 시비 . 송사를 당해 보기 쉬우며 직업을 가지려면 강한 직업을 가져야 하며
경찰․법관 . 종교인 . 간호사 . 역술인 등의 직업을 같으면 나쁜 殺이 변하여
명예와 재물 운이 따르며 부귀해진다

특히 역술인 . 도인 . 승려가 되면 더욱 좋다
◉ 보는 법은 日辰으로 보는데   丙丁日이 戌亥를 보면 천라가 되고,
                                                         壬癸日이 辰巳를 보면 지망이 된다
.

※ 生日 支에 辰日 . 戌日이 있어도 천라지망이 된다
① 구성
戌亥는 天羅 . 辰巳는 地網(지망)이라 하늘과 땅에 망을 씌웠으니 監禁 拘束을 의미한다
戌亥는 하늘(天) 火가 墓絶이요 辰巳는 땅(地) 水가 墓絶로 暗昧하고 不明하며
불쾌한 凶殺이 되는 것이다

② 작용
㉮ 日支 一 字에 他支 일자 봉이라야 成立한다
㉯ 男命은 戌亥를 꺼리고
女命은 辰巳를 꺼리는데 惡殺이 加重이면 흉사가외라
㉰ 감금구속으로 관재구설 시비송사를 당해 보고 혹 납치도 可畏라
㉱ 女命은 파혼을 당하여 보고 극자지액이 있다
㉲ 戌亥는 天門星이라고도 하여
지혜 총명하고 활인업에 종사하여 본다는 吉星으로도 작용한다
亥가 있거나 해당되는 六親은 대개 종교신앙을 갖는데 천주교인이 많다
㉳ 羅網殺이 있는 사람들은 활인업에 많이 進出하는데
다음과 같은 職業이라
경찰 . 헌병 . 형무관 . 특수 수사관 . 의사 . 법관 . 역술인 . 宗敎人 . 약사 . 간호원
辰戌은 工業星이라고도 하여 기술 공업계에 進出하기도 한다
㉴ 運에서 加重이면 관재구설 可畏라
*************************************************************************************************************

천라지망(天羅地網)

천라지망은 戌亥가 천라가 되고 辰巳가 지망이다.
하늘이 西北으로 기울어져 戌亥에 이르면 六陰이 마치는 것이고 땅은 東南에 이르면 六陽이 마치는 것이니 陰陽의 종극(終極)에 이르면 명암(明暗)이 분명치 못하니 천라와 지망은 그러한 뜻이다.
사주에 戌亥 辰巳가 있으면 불리하고 戌이 辰을 보면 관재나 송사가 있게 되고 지체(遲滯)가 있으며 선후(先後)가 맞지 않고 조상이 방해(妨害)하고 부부궁이 불길하고 재앙이 많다.
戌은 영기(靈氣)가 있어 무녀 박수가 많고 亥는 학문(學問)으로 역학자가 많다. 戌亥는 천문(天門)이라고도 한다.

戌亥-天羅. 辰巳-地網.
戌亥는 六陰이 마치는 곳이고 辰巳는 六兩이 끝나는 곳이다.
陰陽이 같이 極에 도달하면 명암(明暗)이 분명치 못하다는 뜻이다.
戌亥는 남자에게 辰巳는 여자에게 더 해롭다.
戌亥는 天門이니 고독성이므로 극처 극자라 孤獨 無妻다.
戌亥는 돼지와 개가 서로 미워한다는 뜻이다.
辰巳는 龍蛇혼잡이라 하여 일진일퇴니 辰이 蛇를 보면 退요 蛇가 辰을 보면 조상이라 하여 進한다.
日時가 重하고 年月이면 조상이 破하고 부모와 무연이다.
여명은 파혼이 중중하고 자식 복이 박하다.
辰巳가 혼잡하면 남녀 모두 부부 緣이 박하다.
辰巳는 거미줄이 앞에 처져서 전도(前途)가 안 보인다.
戌亥는 고독성이요 辰巳는 장애(障碍) 패망성이다.
戌亥는 天門星이고 종교 무속 등이고 고독을 의미한다.
戌亥 日時면 경신(敬神)에 뜻이 있다.
戌은 日時는 輕하고 亥는 戌時면 重하다.
戌亥나 辰巳가 원명에 있을 때는 戌亥는 辰巳年 辰巳는 戌亥年이 오면 반드시 재해(災害)가 발생한다.

**************************************************************************************************


천라지망살론(천라-술해,지망-진사)



1) 천라살



하늘에 구름이 덮혀있어 만물이 태양빛을 받지 못하니 제대로 성장이 안되고 다른말로는 태양빛이 너무나 아름답고 고와서 비단보자기로 싸놓고 보니 빛과 열의 발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따뜻한 좋은 양지라도 음지가 되어 쓸모 없는 땅이 되는 이치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동물상으로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개가 돼지우리에 들어가면 쫓겨 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돼지가 개 집에 들어가면 역시 쫓겨 날수밖에 없는 이치인 것이다.



2)지망살



지상에서 수증기등이 너무 난무하게 되니 역시 태양빛을 가로막는 작용을 하여 만물의 성장에 큰 타격을 주게 되니 살이 되는 것이다.



3) 원국에 천라살이 있는 자는 일찍 타향객지에 나가서 자수성가의 터전을 닦는 것이 개운법이고 지망살이 있는 자는 선대부터 내려오는 조업을 지켜야만 평온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만약 타향살이를 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사항이 온다 해도 끝내는 망하고 마는 천박한 신세가 되기 쉬우니라.



4) 운세상의 나망살 작용



ㅡ,나망살은 모두가 한빈하고 고독하게 산다.특히 파혼살,불거살 작용을 하게 되니 누구든지 부부간에 불행을 가져다 주는 살이라 생각하면 된다.

예로 진생이 사운을 만나거나 사생이 진운을 만나는 지망살운에서는 부부불화하고 심지어는 생이별하는 수도 많으며 같이 산다고 하여도 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한 미혼자는 지망살 태세에는 혼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ㅡ,천라살 운에서는 천살대운과 같은 작용을 하니 관재가 아니면 수술수가 생기는 특색이 있다.그리고 명예상에도 불길한 일이 발생하는 흉살 작용을 한다. 이 흉살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해외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천라살 대운에서는 반드시 고향을 등지고 객지로 출타하거나 외국으로 이동수가 따르는 것이다.



ㅡ,궁합상의 나망살 작용



궁합상 특이한 것은 진생과 사생이 결혼을 하거나 술생과 해생이 결혼을 하면 금슬이 유지 되고 해로도 하지만 반면에 가난하게 사는 결함이 있느니라.



ㅡ,나망살의 개운법



나망살 자체는 원천적으로 흉살이다. 그래서 이 살이 들어오면 일찍 이웃이나 친척을 찾아가 더부살이를 하던가 아니면 의술,점술업을 해서 활인구명에 힘쓰면 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경험에 의하면 의사,약사,간호사,종교인,역술인들을 보면 대부분 나망살 작용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많고 부귀공명을 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외는 대개가 불출세,고독,한빈의 과정을 밟는 사람으로 자기집 한채도 건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출처 : 정도명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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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은 읽는 다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세상의 보이는 변화를 보고 보이지 않는 변화의 이면을 읽고
먹구름이나 천둥이나 번개를 보고 비가 올 것임을 읽고...
작은 징후나 조짐을 보고 커다란 변화가 몰려 올 것임을 읽는다.

늘 똑같이 보는 사람은 똑 같이 세상을 읽는다.
틀에 박힌 눈으로 보는 사람은 틀에 박힌 방식으로 읽는다.
세상을 다르게 읽고 싶은가?
그럼 세상을 다르게 봐야 한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싶은가?
그럼 세상을 다르게 읽어야 한다.

이 처럼 세상을 보는 일과 세상을 읽는 일은
톱니바퀴처럼 엮여져 있어서
다르게 보려면 다르게 읽은 앎이 있어야 하고
다르게 읽기 위해서는 다르게 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특히 보는 것을 바꾸고
본것에서 다르게 뭔가를 이끌어내가 위해서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앎을 통해 축적된
인식의 깊이와 넓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볼 수 있는 시력(視力)은
지금까지 내가 본 역사적 기록, 시력(視歷)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멋진 광경이나 의미심장한 장면을 봤어도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인식의 지평과 깊이가 없다면
그저 어제 봤던 방식대로 보일 뿐이다.
보이는 것만 보면서 틀에 박힌 방식대로 세상을 읽을 수 밖에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다른 것을 읽고 싶고
어제와 동일한 현상이지만 거기서도 뭔가 다른 것을 읽어내려면
나의 앎이 바뀌어야 한다.

그 앎의 체계와 구조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바로 독서다.
그래서 남다르게 읽지 않으면
늘 남을 읽기 전에 읽히는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세상을 남다르게 읽고 남다르게 구상한 사람의 사유체계에 구속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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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음의 모든 걸 다 놓고서 정목 스님의 명상음악을 들어보세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느새 따듯하여 금세 다 넉넉해질 겁니다.

오시는 이, 가시는 이.. 모두가..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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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 밝음으로, 밝음에서 사랑으로 나누는 마음 수련

『비울수록 가득하네』는 매일의 삶과 싸우고, 사랑하고, 아프고 꿈꾸는 이들을 위한 마음수련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머무는 어느 곳에서든 떠날 수 있는 특별한 마음 여행으로 안내한다. 이 책은 힐링캠프, 아이러브인에 출연해 감동을 선사한 정목 스님의 소박하고 따뜻한 명상 이야기를 담아냈다. 분노와 우울, 불안을 껴안는 법에서부터 직장인, 청소년, 임신부를 위한 명상에 이르기까지 몸과 마음, 영혼을 성장시키는 명상법과 이야기가 다채롭게 실려 있다.

특히 20여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명상법을 단계별, 대상별로 소개하여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또한 명상에 진입하기 위한 에피소드, 자신의 경험담과 잠언, 그리고 실제로 명상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과 팁을 자세하고 다양하게 담아내어 좀 더 쉽게 명상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다.

저자소개

저자 정목

저서(총 8권)
정목동국대 선학과와 중앙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오랫동안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전화 상담기관인 '자비의 전화'를 만들었으며, 서울대병원, 동국대병원과 함께 하는 아픈 어린이 돕기 운동 '작은사랑'을 펼치고 있다. 불교방송 개국과 동시에 세계 최초의 비구니 MC로 탁월한 방송 진행 능력을 인정받아 한국방송대상MC상,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가 주는 진행자상 등을 수상했다. 1995년 수행 정진을 위해 방송을 떠났던 스님은 2004년 '마음으로 듣는 음악'(FM 토·일 저녁 6시30분)으로 돌아와 방송국의 청취율을 단숨에 상승시키며 지금까지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불교계의 큰 상인 제4회 불이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시사저널'에서 '한국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영웅' 불교 부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부터 명상과 마음공부전문 인터넷 방송 '유나방송'(una.or.kr)을 개국해 세계 34개국의 청취자들에게 종교를 초월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명상과 마음공부를 전파하고 있다. 저서로 '마음 밖으로 걸어가라', '산빛 이야기', '티벳 사자의 서',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등이 있다.
 

목차

책을 열며_찻잔을 비우듯 삶을 비우네

1. 온전히 깨어나기
걸을 때 걷는 것을, 먹을 때 먹는 것을 알아차리기
진정으로 혼자 있어본 적 있나요?
인도의 꼬마 성자
재잘거리는 마음을 비우는 ‘초침 바라보기’
들숨 날숨의 기적 ‘호흡 명상’

2. 분노와 함께 숨 고르기
마음의 도둑고양이, 분노
기다리면 사라지네
맡겨놓은 화
분노 응급 처방 1 쿰바카 호흡법
분노 응급 처방 2 반응하지 않겠다
분노 응급 처방 3 감정에 이름표 붙이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화 내려놓기 명상’

3. 좌절과 우울의 터널 지나가기
무엇이 부족한가?
빛은 어둠으로부터
죽음의 신을 부른 나무꾼
마음을 열어주는 ‘손체조’
몸과 영혼을 깨우는 시간 ‘몸 관찰 명상’

4. 불안한 마음 바꾸어놓기
의미 없는 걱정
불안을 잠그는 자물쇠
당신 눈 속에 내가 있어요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는 ‘쇄골타점 두드리기’
불안을 잠재우는 ‘소리 명상’
나를 밝히는 내면의 빛 ‘햇살 명상’

5. 용서의 언덕을 넘어
복수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대지와 같이 흔들림 없는
산을 넘는 용서
원한을 떠나보내는 ‘용서의 편지쓰기’
자신을 수용하는 ‘나와 화해하세요’
나와 그를 위한 최고의 선물 ‘용서 명상’

6. 날마다 성장하는 내 안의 나
확장된 의식
소가 된 수행자
마음은 소원성취 나무입니다
잠재력을 키워주는 ‘망원경 명상’
마음의 지우개 ‘미용고사’
우주 속의 완전한 존재 ‘성장 명상’

7. 자비와 사랑으로 안는 세상
숲속 작은 집 창가에
생각의 파동
한때 내 어머니 아닌 사람 없어라
풍요로운 대지와 호흡하는 ‘맨발로 걷기 명상’
연민의 마음과 연결되는 ‘등 마주대기 명상’
무한한 사랑 베풀기 ‘티베트의 영혼, 통렌 명상’

8. 모두가 행복합니다
ㆍ 행복을 잉태하세요, 태교 명상
엄마도 아기도 행복한 ‘콧노래 명상’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들꽃 바라보기’
고맙다, 아가야 ‘태교 명상’
ㆍ 날마다 성장하는 가족 명상
시원한 마음 씻김 ‘등 밀어주기 명상’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흰쌀 명상’
ㆍ 집중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청소년 명상
자기 사랑을 키우는 ‘거울 명상’
이완과 집중력을 함께 ‘숫자 세기 명상’
ㆍ 진정한 성공을 이루세요, 직장인 명상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이들을 위한 ‘틈새 명상’
하루를 마무리하는 행복 ‘종소리 명상’

책을 닫으며_꽃 한 송이 피어나듯 기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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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상처를 받을 때 상처받은 마음을 비춰주어 바라보도록 하면 그 상처는 사라진다..화날 때 화난 마음을 비춰주어 바라보도록 하면 그 화는 사라진다.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 필요하다.어릴땐 부모가 이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이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사람은 고통의 바다에서 살아간다.

 

고통은 고통을 통해 영혼을 갈고 닦으라는 우주의 신호다.그래서 고통을 외면하려 들면 더욱 심해진다.하지만 거꾸로 " 이 고통을 통해 뭘 깨달을 수 있지?" 하고 받아들여 깊이 바라보면 거짓말처럼 고통은 저절로 사라지고,값진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레서 양자물리학자들은 왓칭을 "신이 부리는 요술"이라고 것이다.

    <왓칭中에서>

 

 

 

책소개

자긍심’에서부터 ‘비루함’까지, 스피노자와 함께 떠나는 내면의 여행!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의 감정수업』.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이성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철학 전통에서 ‘감정의 윤리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감정이 중요한 키워드임을 주지시켰다.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자기감정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강신주는 이 책에서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분류한 인간의 48개의 감정을 48권의 문학과 어드바이스, 명화와 함께 살펴본다.

가령,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저자는 순수한 열정으로 데이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에게서 ‘탐욕’의 욕망을 읽어내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대담함’을 사랑과 관련시킨다. 이 외에도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데도 이별을 고하지 못하는 이들, 나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친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경멸의 대상’과는 단호히 결별할 것을 충고하는 등 다년간의 상담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어드바이스를 철학자의 시선으로 정제하여 담아낸다.[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강신주

196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그는 강단에서 벗어나 대중 강연과 책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인문학자가 되었다. 새로운 철학적 소통과 사유로 모든 사람이 철학자인 세상을 꿈꾼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상상마당 등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출판기획사 문사철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강단철학에서 벗어나 대중 아카데미 강연들과 책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소통과 사유를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한다. 우리 삶의 핵심적인 사건과 철학적 주제를 연결시켜 포괄적으로 풀어간 『철학, 삶을 만나다』, 장자의 철학을 ‘소통’과 ‘연대’의 사유로 새롭게 해석한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원치 않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자본주의 비판을 시도한 『상처받지 않을 권리』,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을 담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기존의 연대기적 서술을 지양하고 56개의 주제에 대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철학자들을 대비시킨 철학사 『철학 VS 철학』 등을 펴냈다. 동양철학 전공자이면서 서양철학의 흐름에도 능한 그는 쉽게 읽히는 철학을 지향하고, 철학과 문학을 동시에 이야기하며 이성과 감성을 만족시키는 철학자이다.

“위대한 작품을 남겼던 작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다른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남겼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야 할 인문정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문정신을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정치가나 자본가, 혹은 멘토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저 자신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문정신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우리에게 항상 물어봅니다. 스스로 주인으로 사유하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은 용기가 있는가? 당신은 주인으로서의 삶을 감당할 힘이 있는가?”

[YES24 제공]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1부 땅의 속삭임
1비루함,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
『무무』, 이반 투르게네프
2자긍심, 사랑이 만드는 아름다운 기적
『정체성』, 밀란 쿤데라
3경탄,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로미터
『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4경쟁심, 서글프기만 한 사랑의 변주곡
『술라』, 토니 모리슨
5야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
『벨아미』, 기 드 모파상
6사랑,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동풍서풍』, 펄 벅
7대담함,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 비밀
『1984』, 조지 오웰
8탐욕, 사랑마저 집어삼키는 괴물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9반감, 아픈 상처가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저주
『풀잎은 노래한다』, 도리스 레싱
10박애, 공동체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11연민, 타인에게 사랑이라는 착각을 만들 수도 있는 치명적인 함정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12회한, 무력감을 반추하도록 만드는 때늦은 후회
『전락』, 알베르 카뮈
2부 물의 노래
13당황, 멘붕, 즉 멘탈붕괴와 함께 하는 두려움
『채털리 부인의 연인』, D. H. 로렌스
14경멸, 자신마저 파괴할 수 있는 서글픔
『여인의 초상』, 헨리 제임스
15잔혹함, 사랑의 비극
『인생의 베일』, 서머싯 몸
16욕망, 모든 감정에 숨겨져 있는 동반자
『프랑스 중위의 여자』, 존 파울즈
17동경, 한때의 기쁨을 영속시키려는 서글픈 시도
『아우라』, 카를로스 푸엔테스
18멸시, 사랑이라는 감정의 막다른 골목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에드워드 올비
19절망,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는 치명적인 장벽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20음주욕, 화려했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발버둥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21과대평가, 사랑의 찬란한 아우라
『허조그』, 솔 ...(하략)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출판사 서평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 주는 욕망의 인문학
“자신의 감정을 지키는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감정의 윤리학자’ 스피노자와 함께 떠나는 내면의 여행


이성과 감성, 인간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부장제와 물질만능주의가 야기하는 억압적인 구조 아래에서 감정을 억누르며 살 수밖에 없다. 이성이 절대 위치에 있는 철학 전통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감정이 중요한 키워드임을 주지시켰던 ‘혁명적인’ 철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17세기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교회에서 파문당한 스피노자다. 스피노자는 『에티카』 3부에서 인간의 감정을 크게 48가지로 분류하고, 그와 유사한 감정들을 비교하면서 파고들었는데,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세분해서 소개한 철학자는 없었다. 대중과의 소통을 소중히 여기는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지금 시급한 문제는 바로 자기 감정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철학자의 어려운 말을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하여 위대한 심리학자와도 같았던 작가들의 이야기에서 예를 가져온다. 또한 자칫 추상화될 수 있는 인문학을 구체적인 현실과 연결 짓기 위하여 저자는 지난 10여 년간 ‘철학 카운슬러’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를 덧붙였다. 이제 우리는 잠자고 있는 감성을 깨울 시간이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위하여 각 장마다 그림 보는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하여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스피노자의 48개의 감정, 48권의 세계 문학의 걸작, 철학자가 들려주는 48개의 어드바이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시각화했던 예술가들의 명화 45개로 이루어진 책이다.

★ 우리는 왜 내 감정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가?

현재에 살지만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힌 사람의 행동 준칙은 ‘선(Good)과 악(Evil)’이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의 행동 준칙은 ‘좋음(good)과 나쁨(bad)’이다.


감정은 우리 삶의 속도만큼 충분히 지속적이다. 그러니 감정의 색채를 믿고 따르라! 자신의 심장 소리와 함께 지속되는 그 감정의 목소리를 존중하라! 그것이 당신의 삶을 현재로 충만하게 사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고 당당해져야만 한다. 주변 사람들은 자유로운 감정의 소유자와 당당한 사람을 무서워하는 법이다. 그건 자신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비겁함 때문에 자신이 따먹지 못한 과일을 과감히 따먹는 사람을 보고 마음이 편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 감정을 순간적이라고 저주하면서 현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그래서 현재에 살지만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 준칙은 ‘선(Good)과 악(Evil)’이다. 반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 준칙은 ‘좋음(good)과 나쁨(bad)’이다. 돌아보면 경제적인 여러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를 포기한 여성은 ‘좋음과 나쁨’의 기준이 아니라 ‘선과 악’의 기준을 따른 것이다. 여러 가지로 무능력해 보이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수용하고 있는 부모나 친구들에게서는 악으로 보였던 것이다.
ㅡ「에필로그」에서

이 책에서 감정 하나하나를 구체적인 예와 함께 파고드는 이유는 스스로 나의 감정의 정체를 식별하는 훈련을 하기 위함이다. ‘연민’이나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여자들, ‘질투'를 사랑의 증거라고 오해하는 남자들, ‘경멸'과 ‘멸시' 속에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들… 억압적인 자본주의와 권위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현대인은 나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돈 버는 남편으로서, 공손한 며느리로서, 말 잘 듣는 자식으로서 인습의 노예로 살아간다. “나쁜 감정인데 좋은 감정이라고 착각하거나, 반대로 좋은 감정인데 나쁜 감정이라고 혼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감정의 혼동은 삶의 혼동을 낳고, 마침내 자신을 불신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이것은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또 비로소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자신의 감정과 삶을 교살시키는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선과 악’이라는, 부모나 타인들의 가치 평가를 그대로 수용했기에 이런 비극이 발생한다. 하지만 감정의 중요성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이런 비극을 막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감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내 삶을 행복하게 살아낼 수 없다는 진실을. 비극이 발생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뒤흔드는 다양한 감정들에 너무나 서툴렀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두 번째 이유에서 발생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 지금 자신을 휘감고 있는 감정이 슬픈 것인지 아니면 기쁜 것인지 정확히 식별할 수 있어야만 한다.
ㅡ「에필로그」에서

★ 『에티카』와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감정을 다스리려는 칸트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이 필요하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와 그의 저서 『에티카』는 철학사에서 많은 논란과 동시에 흠모의 대상이다. 이성 중심의 서양 철학 전통에서 ‘감정의 철학자’로 불리게 되는 혁명적인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이 스피노자의 감정을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존재일까? 이것은 감정의 강력함에 직면했던 인간의 절망스러운 소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한 번이라도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응시했다면, 누구나 인간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이성은 감정보다 먼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이성은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성이 감정을 적대시한다면 언젠가 감정의 참혹한 복수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에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칸트의 이성과는 다른 종류의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감정의 쓰나미를 무모하게 막아서려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 말이다.
ㅡ「프롤로그」에서

★ 철학자가 풀어주는 48가지 욕망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에서 윤리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스피노자는 자신의 윤리학을 욕망에서부터 출발했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지닌 혁명성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성보다 감정에 좌우되는 존재다. 하지만 나의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감정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내 옆에 있는 남자에 대한 끌림이 단순히 좋은 사람에 대한 호감일까, 아니면 사랑의 시작일까? 지금 연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연민일까, 진짜 사랑일까? 나의 선택은 올바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소심함 때문에 선택한 실수일까? ‘대담함’이란 감정은 용기와 동의어일까? 나의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을 나도 좋아하는 것은 진심일까, 아니면 경쟁심의 발로일까? 우리는 나도 모르는 감정에 이끌려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의 감정을 분명히 파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종류와 성격에 대해 인문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삶보다는 사회질서를 우선시하는 대부분의 윤리학자들이 스피노자를 그토록 비난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전체 사회를 위해 개인의 욕망은 통제되거나 절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까. 이렇게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자신의 욕망을 검열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역할이다. 결국 이성의 윤리학은 사회의 윤리학이지 ‘살아 있는 나’의 윤리학일 수는 없다. 욕망을 긍정하면서 스피노자가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윤리학이었던 것이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존재이고, 당연히 나의 욕망을 부정하는 것과는 맞서 싸우는 존재이다. 그러니 만일 욕망을 억압당한 채 끝내 실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살아도 죽은 것과 진배없는 것 아닐까.
ㅡ「16 욕망, 모든 감정에 숨겨져 있는 동반자」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얻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은 “평범한 삶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들 수 있는 힘”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신적이기까지 하다.

★ 철학자가 읽어주는 48권의 소설

사랑의 감정은 질투라는 감정을 낳지만,
반대로 질투라는 감정이 사랑의 감정을 낳지는 못하는 법.
질투는 단지 사랑의 찌꺼기에 해당하는 감정일 수밖에 없으니까.


스피노자는 ‘비루함(abjectio)’의 감정을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렇게 철학적인 명제를 일반 독자가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감정을 소설 문학을 통해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 투르게네프의 『무무』에서 농노 게라심은 그토록 사랑하는 강아지 무무를 왜 자기 손으로 직접 강물에 던져야 했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빼앗기고 나자, 게라심은 자신도 모르게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도 지킬 수 없다는 진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기적이다. 나 또한 사랑의 기쁨을 지켜낼 수 있는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ㅡ「1 비루함,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에서

“노예는 사랑을 할 자격이 없다.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은 오직 자유인에게만 허락되니까.” 투르게네프가 어머니를 모델로 지었다는 이 짧은 이야기에서 무지막지한 여지주는 비록 벙어리이지만 위엄 있는 훌륭한 농부 게라심의 손에 빗자루를 쥐어주고 마당쇠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하릴없이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게라심이 사랑에 빠지자 여지주는 게라심이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하인에게 시집 보내 버린다.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지키려는 순간, 충직했던 게라심은 당당한 주체로 거듭나게 될 테니까.” 이렇게 여지주가 주인으로서의 삶을 부정할 때, 즉 “어떤 타자가 나의 삶의 의지를 꺾으려고 할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비루함’이다.

‘야심’ 하면 우리는 보통 정치적, 사회적 욕망을 떠올린다. 하지만 저자는 좀 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들여다본다. 스피노자는 야심을 “모든 감정을 키우며 강화하는 욕망”이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야심이야말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한 감정임을 지적한다. “더 위험한 것은, 야심이 커질수록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감정들이 모조리 고사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야심은 아카시아나무와도 같다. 너무나 생명력이 강하고 뿌리가 깊어서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아카시아나무 말이다. 그렇지만 아카시아 꽃향기는 어찌나 매혹적인지!”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에서 철학자는 ‘야심’을 신성하고 순수한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의 감정에서도 떨쳐버리기 힘든 욕망이라고 말한다.

사랑에도 이미 야심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행복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자신의 행복을 알려 모든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싶기 때문이다.
ㅡ「5 야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에서

『위대한 개츠비』에서 철학자는 순수한 열정으로 데이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의 꿈에 숨어 있는 ‘탐욕’의 욕망을 읽어낸다. “결국 개츠비의 사랑도 탐욕에서 출발했던 셈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개츠비, 데이지, 그리고 톰을 가로지르고 있는 ‘탐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대담함’을 사랑과 관련시킨다. 주인공 윈스턴과 줄리아는 당국이 그토록 금지하는 사랑을 감행함으로써 빅브라더에 맞서려 했다.

대담함을 욕망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스피노자의 비범함을 발견하게 된다.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기쁨의 증진을 도모하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랑만큼 살아갈 힘과 기쁨을 증폭시키는 경험이 또 있을까?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모색했던 것도 바로 사랑의 파괴력, 그러니까 압도적인 힘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대담함이라는 감정이었다.
ㅡ「7 대담함,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 비밀」에서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에서 철학자는 “질투의 바닥에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질투는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드는 감정이니까.”라며 질투의 본질을 드러내 보이는 한편, ‘질투’가 결코 ‘사랑의 증거’는 아님을 짚는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화자에게 사랑이 완전히 복원될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럴 수는 없다. 사랑의 감정은 질투라는 감정을 낳지만, 반대로 질투라는 감정이 사랑의 감정을 낳지는 못하는 법. 질투는 단지 사랑의 찌꺼기에 해당하는 감정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프랑크는 일종의 손전등과 같은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화자의 시선에 중심적으로 들어오지 않던 아내가 그의 눈과 마음에 들어온 것은 프랑크가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카메라 앵글과 같은 화자의 눈에 그녀가 다시 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다. 프랑크가 더 이상 그녀를 주시하지 않고,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순간 다시 북아프리카의 하루하루는 모든 활기를 잊고 무미건조하게 돌아갈 것이다. 무심하게 작열하는 태양에 널브러져 있는 모래알처럼.
ㅡ「28 질투, 사랑의 껍데기와 같은 서글픈 감정」에서

소설 읽기는 가상의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만든다. 소설가들이 경험했던, 혹은 묘사한 소설 주인공의 감정들을 이해하는 것은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하나의 친절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철학자가 문학에서 예를 가져와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 주는 문학과 철학의 소통을 통해 헷갈릴 수 있는 개념들을 일상의 철학으로 끌어내려 친절하게 가이드해 준다.

★ 철학자가 들려주는 48개의 어드바이스

인간의 희망은 여전히 사람 그 자체를 향해야만 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려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버려야만 하는 것이 바로 오만이다.
완전한 기쁨은, 몸이나 마음 중 어느 하나를 희생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독자들은 이미 「색다른 상담소」나 「벙커」 등을 통해 저자와 직간접적으로 상담을 접해 보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년간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어드바이스를 철학자의 시선으로 정제하여 담았다. 예를 들어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에서 저자는 사랑받는 사람이 ‘자긍심’을 느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금방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충분히 소중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타인이 나를 사랑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스토커로서 편지를 쓰기 위해 장마르크는 지금까지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샹탈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금까지 간과하고 있었던 연인의 매력,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그녀가 얻게 된 새로운 변화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찾아낸 샹탈의 모습에서 장마르크는 자신의 가슴에 사랑이, 과거와는 다른 색깔의 사랑이 새롭게 차오르는 것을 느낀 것이다.
ㅡ「2 자긍심,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로미터」에서

아울러 저자는 실제 삶에서 “항상 떠날 준비를 하라!”고 조언한다. 이것은 “상대방에 대해 항상 자유로워라!”는 뜻이다. 이것이 곧 연인이나 친구가 나에게 무관심해지거나 심드렁해지지 않도록 만드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떠날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의 곁에 머물 수가 있다. 이런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자유를 가슴에 품고 있을 때에만 상대방도 우리를 주인으로 대우할 것이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데도 이별을 고하지 못하는 여자들, 나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친구인데도 외로워서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것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여인의 초상』에서 철학자는 독자에게 ‘경멸의 대상’과는 단호히 결별할 것을 충고한다. “남편을 경멸함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삶을 유지하려는 비겁함 때문에, 마침내 이사벨은 자신을 경멸하는 데 이른다.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경멸하는 대상과 단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이 자신의 소중한 감정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레 미제라블』에서 공동체의 의미와 ‘박애’의 원리를 설명한다.

사랑의 원리는 무소유의 원리를 토대로 한다. 겨울 찬바람에 사랑하는 사람이 떨고 있다면 기꺼이 추위를 무릅쓰고 자신의 옷을 벗어 줄 것이다. 이럴 때 두 사람은 최소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공동체의 범위는 자신이 가진 것을 어디까지 나누어주느냐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ㅡ「10 박애, 공동체 의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에서

한편 저자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 즉 ‘자긍심’을 심어 주기도 하고 ‘대담함’을 갖게도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지려면 반드시 ‘오만’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랑을 하면 우리는 그 대상을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의 동의어는 ‘알려고 한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는 오만에 빠지는 순간, 그래서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오만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한때는 사랑받았던 그것이 이제 우리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네가 정말 나를 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만 때문에 우리는 순간순간 변하는 자동차의 상태를 민감하게 읽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암벽의 상태를 제대로 점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또 애인의 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복수를 당할 수밖에.
ㅡ「43 오만, 사랑을 좀먹는 파괴적인 암세포」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위대한 유산』에서 핍의 희망과 좌절을 통해 “인간의 희망은 여전히 사람 그 자체를 향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속물은 속물을 만나고, 진지한 사람은 진지한 사람을 만나는 법이다. 이것은 불확실성을 내포하는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경험이 쌓이면 누구나 확실히 알게 되는 삶의 진리가 아닌지.” 이 책에서 저자가 감정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이유는 감정의 긍정을 통해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윤리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강신주는 스피노자의 프리즘을 통해 인간 감정의 참모습을 찾아낸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자아’를 찾는 첫 걸음이자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첫 단추이다.

★ 우리 시대 멘토 철학자의 대표작 『강신주의 감정수업』

낯선 상황에서 내 안에 전혀 예상치 못한 욕망을 발견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즉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확인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따라서 당황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신 혹은 맨얼굴을 찾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출발점은 스피노자이지만 온전히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다. 평생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며 살기 위해 노력한 철학자이며,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감정’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저자가 이성과 감정에 관하여 평생 고민해 오고 현실에서 부딪히며 다시 생각했던 본인의 철학이 녹아 있는 강신주 박사의 대표작이다. 물론 인간의 감정을 48가지에 한정할 수는 없다. 스피노자 또한 『에티카』 3부 「정서의 정의」 부분에서 대표적인 감정을 48가지로 정리하긴 했지만, 그와 유사하거나 반대되는 부차적인 감정들에 대한 설명은 더 많다. 예를 들어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는 스피노자의 10번 ‘헌신’의 감정이 빠지는 대신 31번 ‘치욕’에 대한 부가 설명으로서 ‘수치’의 감정을 추가하였다. 한 권의 책에 모든 감정을 다 담을 수 없으므로 ‘헌신’은 사랑의 감정에 따라오는 ‘경탄’과 유사한 감정이기에 ‘사랑’과 관련된 감정들 부분에서 함께 논의될 수 있는 반면, ‘수치’의 감정은 ‘치욕’의 감정과 비교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소개되는 감정을 문학의 예를 통해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력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나 저자가 보여 주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 실험실에서 각각 하나의 감정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연구를 끝낸 후에 독자는 그 경험을 통해 새롭게 내 안에 들어오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데 하나의 사고 틀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그동안 헷갈렸던 감정을 또한 새롭게 점검해 보는 좋은 기회도 될 것이다. 독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적 허영의 습관이 아니라 내 삶에 빛을 들이대는 절실하고 적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신주 박사는 독자에게 편안한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설 『레베카』는 주인공이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얻고 나서 자아가 변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서 ‘확신’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에 숨어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놓치지 않는다.

확신은 의심이 없다면 애초에 발생할 수도 없는 감정이다. 의심을 일으킬 만한 원인이 사라져야 확신의 기쁨도 찾아오니까. 만약 의심이 크고 깊었다면, 확신은 그만큼 더 강한 희열을 안겨 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신에는 어떤 흉터, 그러니까 의심을 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ㅡ「41 확신, 의심의 먹구름이 걷힐 때의 상쾌함」에서

반대로 ‘수치심’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그 긍정적인 역할에 주목한다. “수치심은 앞으로 치욕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이나 소심함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수치심을 느낄 때에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게 된다. 그러니 마비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는 수치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 사랑에 빠진 사람의 헌신을 전적으로 이타적인 것으로 판단하지 말자고 당부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가급적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은 헌신적인 것이라고 섣부른 오해는 하지 말자. 그의 뜻을 존중하는 건 나의 행복을 위해 그를 내 곁에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당신 뜻대로’는 일종의 유혹, 내 곁에 있으면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노예로 두고 영원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유혹인 셈이다.
ㅡ「6 사랑,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힘」에서

‘동경’의 감정에 대해서는 한때 절정이었던 시절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해서 현실과 직시하지 못하는 삶을 경계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우리의 감정이 결코 우리가 속한 체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결혼 상대를 돈이냐 사랑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연인들이 많은 현재 사회에 대하여 철학자는 이렇게 성찰한다. “부와 사랑, 둘 중에 어느 것이 기쁨을 주고 어느 것이 슬픔을 주는지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자본주의 자체가 바로 슬픔의 기원이라는 통찰일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저자는 ‘수업’을 통해 무엇보다도 잠들어 있던 ‘자아’를 깨우고, 억압하고 있는 ‘감정’을 확인하고, 무뎌져 있는 ‘정신’에 날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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