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30년을 준비하라. 요약
장수는 재앙이 아닌 축복
1960년 우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52.4세. 그러던 것이 2008년에는 80.1세가 되었다. 평균 수명이 90세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21세기 삶의 공식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았다. 이른바 ‘트리플 30(30+30+30)’이다.
즉 부모 밑에서 30년,
부모 노릇하며 30년,
환갑을 지내고 나서도 또 다른 30년이 기다리고 있다.
장수를 재앙이 아닌 축복으로 만드는 일, 그것은 각자가 어떻게 노후를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지막 30년을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즐기며 마무리할 수 있는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환갑 이전에 열심히 저축해서 노후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이제 여생은 ‘남은 생’이 아니라 아름다울 여(麗), 날 생(生), 즉 ‘아름다운 생’이라는 의미로 바뀌어야 한다.
Humor
사오정- 45세면 정년이라는 말
오륙도- 56세까지 퇴직하지 않고 자리 지키고 앉아 있으면 후배들이 도둑이라고
부른다는 뜻
아들의 촌수
아들 낳았을 때 – 1촌
중학생이 되면 – 4촌
대학생이 되면 – 8촌
애인이 생기면 – 사돈의 8촌
결혼하면 – 헤외동포 ㅋㅋㅋ
딸
대학생이 되면 – 엄마의 베스트 프렌드
결혼하면 – 사위 월급 끝자리까지 안다(아들 월급은 모른다)
자식 보험이 깨지고 있다
샌드위치 세대(낀 세대) – 자식들 뒷바라지하면서 부모를 돌봐야 하는 세대
말초세대 – 효도를 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
우골탑(牛骨塔)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를 팔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이 상아탑 대신 우골탑으로 불리기도 했다.
Humor
세상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은 초등학교에서 다 배웠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국어와 산수를 배운다.
국어 시간 – 주제 파악
산수 시간 – 분수 ㅋㅋㅋ
이 두 가지만 제대로 배우면 이 세상을 사는 데 크게 부족함이 없다. 사람들은 주제를 모르고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다가 망신을 당한다.
인생 3대 바보와 3대 실패
주말에 노부부가 함께 놀러 갈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일을 해야 한다며 아이를 맡기러 오는? 자식들 때문에 모처럼의 약속을 취소하는 사람들은 '첫 번째 바보 노인'으로 친다. 예전 같았으면 가장 복 받은 모습의 노인이 지금은 첫째 바보가 된 것이다.
'두 번째 바보 노인'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니 하고 자녀들에게 미리 재산 다 물려주고 용돈 타 쓰겠다는 사람들이다. 몇 해 남지 않았을 것 같던 노후가 10년, 20년을 넘기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게다가 병구완까지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3년 병 구완에 효자 없다"는 속담도 생겨난 것이다. 손주들에게는 용돈 많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단연 인기가 높다. 결혼하고 아이 낳더니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투덜대봐야 자기 속만 상할 뿐이다. 놀러올 때마다 용돈을 주면 오지 말래도 아이들이 졸라서 오게 된다.
돈으로 정을 사는 삭막한 세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아 얼굴 잊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최선이 어려운 현실이라면 차선이라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번 째 바보 노인'은 손자들이 놀러 와 자고 가면 방 모자랄까 봐 뒤늦게 집 늘려 가는 사람이다. 인생을 가장 경제적으로 산 사람은 죽을 때 장례비만 남기고 다 쓰고 죽는 사람이라고 한다. 근래 역모기지론 혹은 주택연금이 노후 생활의 한 방법으로 등장했다. 평생에 집 한 채 마련하고 은퇴하여 별도의 생활비가 없는 사람들이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빌려 쓰고, 자기가 죽으면 팔아서 정산하는 방식이다.
예전에는 정년 퇴직후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재산 다 물려주고 손자 보살피며 재롱 보고 몇 년 살다 죽는 게 가장 복 받은 노후라고 여겨졌다. 자식에게도 큰 부담 없고 부모에게도 여한이 없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몇 년이 아니고 몇 십년을 더 산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늙어 몸은 아프고 돈은 다 떨어진 천덕꾸러기 부모로 살게 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인생 3대 실패도 있다, 첫째 청년 실패, 남보다 너무 일찍 앞서가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점이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40대에 장관을 지낸 사람은 장관을 그만두고 난 뒤 남아 있는 긴 세월 동안 무엇을 하고 살지 난감하다는 이야기다. 젊을 때는 그저 남들보다 한 발짝 빨리 가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지만 오를 데까지 다 오르고 나면 결국 남보다 먼저 나가게 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가늘고 길게 살자'를 외치며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둘째는 중년 상처(喪妻). 남자들은 실감할 것이다. 부인이 죽으면 화장실 가서 웃는다는 농담도 있지만 언제 새 장가 가고 서로 맞춰가며 살 것인가? 사람이 평생 살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겪는 때가 배우자를 잃었을 경우라고 한다. 그만큼 배우자를 잃는 것은 큰 시련이다.
셋째는 노년 무전. 환갑을 맞았는데 나머지 30년을 살 경제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자식들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나머지 30년은 악몽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준비된 이들에게 나머지 30년이 축복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준비된 사람에 속한다면 내가 이런 책을 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와 같은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조삼모사의 재해석
조삼모사(朝三暮四)란 먹이를 '아침에 셋, 저녁에 넷' 준다는데 불만이던 원숭이가 '아침에 넷, 저녁에 셋' 준다고 하자 만족해 하더라는 이야기를 빗대어 어리석음을 일컫는 사자성어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좀 다르게 해석하려고 한다. 아침에 3인 것이 저녁에 4가 될지, 5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들은 실제 예를 하나 소개해본다.
한 지인이 20여 년전 적금 500만원을 타게 되자, 이 돈으로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태우고 다닐 때 쓰라고 부인에게 자동차를 한 대 사줄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마침 아는 이가 차를 바꾼다며 자기 차를 200만원에 사가라고 했다. 새차 대신 중고차를 산 덕에 생긴 여유자금 300만원으로 이 사람은 고향에 땅을 사두었다.
지금 그 땅은 3억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같은 100만원을 저축하더라도 20세 때 100만원과 30세 때 100만원은 분명히 다르다. 나는 노후 대비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란 시간에 비례하여 불어나가 때문이다. 물론 워낙 돈이 많아서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골고루 재테크를 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노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유한 집이 과연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노후 대비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지금 이 순간부터 각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할 과제다.
기러기 가족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느라 가족이 떨어져 사는 사회현상을 가리킨다. 왜 기러기 가족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예전 결혼 풍습에는 신랑이 신부 집을 방문해 기러기 한 쌍을 예물로 드렸다. 기러기는 암수가 한번 만나서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고 사는 동물로 신의, 화목, 정절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만들어낸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모는 있고 부부는 없다.
부부는 다른 말로 부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정에 부모는 있지만 부부는 없는 경우가 많다. 자녀를 낳아 키우는 부모역할에만 초점을 맞추고 부부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들의 하루 일과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남편이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경우, 아침 식사를 차려서 함께 먹기보다는 혼자 출근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전에는 밥상을 차려서 함께 먹는다. 아이를 데리고 학원에 돌아 다니기 위해 차량을 사용하는 것도 엄마다. 남편이 어쩌다 일찍 퇴근하면 아이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안방에만 머물게 하거나 아예 늦게 들어오라고 종용한다. 시험기간에는 말할 것도 없다. 밤11시며 새벽 1시며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위해 간식 준비하랴, 차 태우고 다니랴 정신이 없다.
우리시대 아빠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부부 관계는 회복이 될까? 하숙생처럼 떠돌았던 아빠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만약 아이가 제대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훗날로 미룬 '부부의 자리'는 언제까지나 회복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마음의 끈이란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해야만 연결되는 예민한 성격을 지녔다. 몇 년이고 방치해 두었다가 어느날 "이제부터 우리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거야"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다시 생겨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길고 긴 인생, 함께 끝까지 갈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배우자다. 배우자와 함께 즐기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노후일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배우자를 존중하고 마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일이다.
요즘 부부 풍속도
최근 어느 모임에서의 일이다. 40대 중반의 회사 임원인 A씨가 이야기 끝에 "아침을 못 먹은 지 10년이 넘었다"면서 "그런데 아이들 학교 갈 때는 아침을 차려주는 아내가 얄밉다"고 했다. 그날 모임에서의 반응은 놀라웠다. 예전에는 "나 같으면 당장 데모라도 하겠다"라거나 "그렇게 아내에게 위축되어서 아침도 못 얻어먹고 다니면서 회사 생활이 되느냐"는 등의 반응이 나오곤 했다. 각자 집에서의 실제 생활이야 어떠하든 간에 일단 겉으로는 그렇게 큰소리를 쳐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다들 "어떻게 감히 아침을 먹겠다는 마음을 가지느냐", "어부인이 잠 깨시지 않게 조용히 까치발로 나와서 말없이 출근하는 것이 요즘 남편의 매너"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그를 위로하는 것이다.?
어느 등산 모임에서는 B씨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B씨는 북한산 정상에 이르자 배낭에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과일이나 오이, 커피 등 등산 중에 먹으면 아주 맛이 있는 것들을 꺼내는데 깎아온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물어보았더니 아내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싸준 것이라고 했다. 그 순간 모두들 B씨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다들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챙겨야만 하는 형편인데 아내가 직접, 그것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챙겨주었다니 놀라운 일인 것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B씨에 대한 부러움과 찬탄의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결혼 생활 20년이 넘도록 저렇게 아내의 사랑을 받고 있단 말인가. 대충 그런 뜻이 담겨 있는 눈길들이었다.
남편과 아내의 '권력지도'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우리 시대의 남편은 역할 분담이 뚜렷했을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다소 권위적인 태도로 군림하기도 했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남편의 책임을 다했다고 인정받기도 했다. 남성우월 주의니 남아선호사상이니 하는 세태가 다분히 사회를 지배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림하는 남편에게 순응하고 참는 아내들이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남편이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남편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심지어 자신의 경제활동을 뒷바라지 해주고 가사를 상당 부분 책임져줄 '머슴 같은 남편'을 찾는 여성도 있다고 한다. '백마 탄 왕자'보다는 '돌쇠'를 찾는다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주말에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빠가 아이의 수학을 가르쳐주기 위해 함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내의 눈길은 한없이 부드러워질 것이다. 만약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면 아이와 함께 운동을 하는 것은 어떨까. 공부하다가 지친 아이와 공원에 가서 배드민턴을 친다거나 농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운동을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끈이 형성될 수 있다.
부부가 될 때도 준비가 필요해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대학 입시나 취업 등의 관문을 통과할 때는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지만 인생의 또 다른 중요한 관문인 결혼이나 출산등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결혼이나 출산등은 어쩌면 대학 입시난 취업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데 우리는 얼떨결에, 별 준비 없이 실행한다.
사실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결혼하기까지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라도 그 성격과 생김새가 제각각인데 하물며 전혀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면 두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다를 것이다. 연애 기간을 거치면서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결혼은 생활을 함께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이해와 탐색은 사실 결혼 이후에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랑과 신부가 집과 혼숫감을 준비하기는 해도 '마음의 준비'는 하지 않는다. 결혼해서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될 어려움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 부족인데도 그에 대해서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혼 첫날부터 또는 거의 일주일 이내에 크게 부딪치고 실망하고 싸우고 분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혼 시절에 많은 갈등을 겪는다고 고백한다.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차이, 개인의 차이, 성장환경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크고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일 수도 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차이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뿐 임을 깨닫기까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른다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예비부부는 결혼 생활을 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하면서 서로에 대해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예상되는 문제에 대비하는 등 공부를 해야 한다. 준비된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이혼율도 낮고 행복하게 산다고 한다. 이들이 특별히 잘나고 이해심이 깊어서라기 보다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 가지 욕구를 통해 본 부부관계
부부 행복의 첫 걸음은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배우자가 어떤 사람이며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면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현대 심리 치료의 대가로 평가받는 윌리엄 글라서 박사는 부부관계를 다섯 가지 욕구를 통해 분석했다. 글라서 박사는 인간에게 다섯 가지 욕구, 즉
사랑과 소속의 욕구
힘에 대한 욕구
자유에 대한 욕구
즐거움에 대한 욕구
그리고 생존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분석했다.
금슬 좋은 부부의 경제적 가치
하루 20분 동안 헬스 크럽에서 뛰는 것보다 배우자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쪽이 훨씬 좋다.고 주장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가 그렇지 않은 부부에 비해 평균 4년을 더 살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부부일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고, 행복한 부부일수록 부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금슬 좋은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더 건강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선사후공(先私後公) 선공후사(先公後私)
내 주변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남자들이 많다. 기업을 일구어 당대의 기업가가 된 남자, 청운의 꿈을 품고 관료가 되어 나라의 정책을 책임졌던 남자, 법관으로 살면서 권력과 명예를 한 손에 쥐고 앞서서 달려온 남자, 그런데 이들은 거의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옆을 보거나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한자 시간에 배웠던 선공후사(先公後私) 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당연히 회사와 일이 앞이고 집안일, 사적인 일은 뒤로 미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일을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출세하면 그걸로 모두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중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 친구들은 바깥에서의 성공이 결코 가정에서의 '성공'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명예퇴직이다 뭐다 해서 50대 초반부터 직장에서 떨어져 나와 가정으로 돌아온 친구들은 '왕의 귀환'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가족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살았으니 가족이 내게 잘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꿈이 무참하게 깨진 친구들은 하소연을 한다.
"내가 30년 넘도록 밖에서 돈을 벌어다 주었는데 왜 이제 나를 찬밥 대접하는지 모르겠어. 정말 이해가 안 돼. 아이들은 아빠를 심드렁하게 보고 아내도 처음에는 밥도 잘 차려주고 신경도 좀 쓰는 것 같더니 한두 달 지나니까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거야. 밖에 나갈 일이 없느냐? 식사 약속이라도 좀 하지 그러느냐... 눈치를 팍팍 주면서 나를 밖으로 내몰려고만 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갈 곳이 없어. 만날 사람도 없고... 친구 만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주 괴로워."
Humor
여자가 50대를 넘으면 필요한 것이 두 가지, 필요 없는 것이 한 가지
필요한 것 두 가지 – 딸, 돈
필요 없는 한 가지 – 남편 ㅋㅋㅋ
이사갈 때 정리 하고 가려 한단다. 혹시 이삿날 자기를 몰래 빼놓고 갈지도 모르니까 애완견을 껴안고 조수석에 일찍감치 앉아 있어야 한다는 ‘행동 요령’이 나돌기도 한다.
한 술 더 떠 어떤 남자는 집에서 이사갈 때 ‘절대 버리고 가지 않을 품목’으로 냉장고를 선택해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밖이 조용하여 문을 열고 나와보니 난지도 쓰레기장이었다. 냉장고째로 버리고 간 것이다. 웃자고 하는 애기지만 나름대로 세태를 반영한 부분이 있어 씁쓸하다.
행복은 노력형
영국 버크셔주 슬라우 마을에서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 심리학자 리처드 스티븐스는 슬라우 마을에 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행복 지수 높이기' 실험을 했다. 가사 노동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을 앓은 전업주부, 인생의 재미가 뭔지 모르겠다는 할인점 점원등 도무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고 점점 더 우울해지고 불행해지기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스티븐스 박사가 주관한 첫 만남은 마을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이루어졌다. 삶과 죽음에 대해 느끼고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몇 가지 생활 수칙을 전달했다. 이 생활 수칙의 주제는 감사, 친절, 그리고 선행이었다. 하루를 마칠 때는 일기를 쓰고, 특히 그날 있었던 일 중에서 감사할 일이 있으면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 그중 하나였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감사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감사 편지를 쓰도록 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라는 생활을 하도록 했고, 매일 신문을 보면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마음을 움직이는 기사등을 찾는 것도 포함됐다. 사람들은 이런 내용의 수칙을 보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무슨 거창한 비법이라도 있는가 했더니 겨우 이런 내용이었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삶들은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몇 개월 후 그들의 행복지수를 측정했더니 실험을 시작할때보다 약 33%높아졌다. 행복은 '노력형'임을 입증하는 실험이었다. 나는 이같은 내용을 TV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하면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전달한다.
행복 지수 = 가진 것/ 바라는 것
과학자들은 광고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자신들의 상태를 실제보다 더 나쁘다고 인식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내가 정의하는 행복 지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가 정의하는 행복지수는 아주 간단한 수식이다. 즉 '가진것/ 바라는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고 이룩한 것이 80인데 바라는 것은 100이라면 행복 지수는 80이다. 물론 명확히 정의된 개념을 아니고 세상을 살면서 느꼈던 생각을 정리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감사할 줄도 모른다. 자신이 아직 갖지 못한 것, 지금 바라는 것만을 더 크게,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진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이 커지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하는데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행복은 몸과 마음의 욕구가 채워진 상태라고 했다. 몸(물질)의 욕구가 채워졌는데도 행복해지지 않았다면 마음의 욕구를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행복 지수 중 분모인 '바라는것'말이다. 바라는 것을 실제로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만큼 가진 것을 늘리기는 어려운 반면에 바라는 것이 늘어나기는 너무나 쉽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끝없이 늘어나는 사람의 욕심, 즉 바라는 것의 속도를 분자가 따라가기는 매우 힘들다.
아무리 분자(물질)가 늘어나도 그보다 분모(욕심)가 늘어나는 속도가 크고 빠르기 때문에 분자를 늘려서는 결코 전체 크기를 크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가진 것을 늘려서는 결코 행복을 크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줄이는 길이 처음에는 더디지만 행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예수의 산상수훈에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 임이요." 이구절을 강론하시는 목사님들의 '마음이 가난한 자'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르겠지만 나는 '욕심을 다스리는 자'로 해석하고 싶다.
원숭이와 복권
밀림에서 원숭이를 잡을 때 나무 둥치에 원숭이 손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놓고 그 안에 바나나를 넣어둔다. 그러면 원숭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구멍 속으로 손을 넣어 바나나를 빼내 먹으려 한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움켜쥔 채로 손이 빠지지 않아 끙끙대는 순간에 다가가 사로잡는 것이다. 움켜쥐고 있는 바나나를 놓으면 원숭이는 도망갈 수 있다. 그런데도 바나나를 놓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에 사람에게 사로잡힌다. 이러한 원숭이 사냥이 수백 년이나 계속되었다는 것을 보면 '원숭이는 원숭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욕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젊은이가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지 모르겠다"며 한탄을 했다. 옆에서 듣고 있는 노인이 젊은이에게 물었다. "자네는 천 달러를 준다면 손가락 하나를 자르겠는가?" 젊은이는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자네는 10만 달러를 주면서 두 눈을 실명시킨다면 동의하겠는가?" 젊은이는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자네는 100만 달러를 주면서 80세 노인이 되라고 하면 하겠는가?" 마지막 질문에도 젊은이는 역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자네는 벌써 수백 만 달러로도 바꿀 수 없는 건강과 젊음을 가지고 있는데 왜 가난하다고 하나?"라고 되물었다. 젊은이는 그제야 힘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로또 복권으로 인해 깨진 사랑이야기가 사회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사랑스런 딸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아온 부부가 로또 1등 당첨으로 벼락 부자가 되자 서로 자기 돈이라고 주장하며 법정 다툼까지 가게 되었다. 아내는 자기가 좋은 꿈을 꾼후 남편에게 돈을 주어 사게 했으니 자기 돈이라고 돈을 차지 했다. 남편은 그런 사실이 없고 자기가 샀으니 자기 돈이라며 아내가 돈을 갖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심지어 한 조사에서는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현재의 배우자와 계속 살 생각입니까 아니면 헤어질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헤어지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로또 당첨자의 삶의 만족도는 1년도 안 돼 평범한 사람들과 같아졌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로또 당첨자들의 상당수는 당첨될 당시 짜릿할 정도의 최고 만족도를 맛본 만큼 그런 자극이 계속되지 않아 사람의 만족도가 급속하게 떨어진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 인간이 어리석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 인간은 노력해서 자신의 욕심을 다스릴 수 있다. 완벽하게 다스리기야 어렵겠지만 노력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의 욕심을 다스리고 주변을 보살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행복을 채우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넘치는 행복을 나누자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힘들게 공부하고 일하는 것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런데 주객이 전도된 경우를 종종 본다.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를 얻는다고 해서 행복 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새벽에 서울역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새벽에 나와 길을 깨끗하게 치우면 출근하는 사람들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고, 그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성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그 자리가 빛나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 또 이분이 '나는 지구의 한 구석을 쓸고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높이고 행복 지수도 높인다고 하는 어느 심리학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도 있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중년이 되어서 자식이 유일한 자랑거리가 될 때, 그때부터 부모의 비극은 시작된다.
실력과 싸가지를 겸비하도록
최근 미국의 어느 사립학교 선생님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그녀는 한국 학생들이 이제 더 이상 예의 바르지 않고 과거와 같은 성실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실망감을 전했다. 그녀는 과거 한국으로부터 유학 온 학생들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비록 나라는 가난했지만 학생들은 성실하고 뛰어났으며 더구나 예의 바르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았다.
그녀는 그런 한국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려고 노력했고, 한국 학생들은 그녀의 호의를 고맙게 받고 또 갚으려고 노력했다. 좋은 관계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 학생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그녀는 개탄했다. 예의가 없으며 성실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좀 힘들면 그저 당면 문제를 피하려고만 하지 제대로 직면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남과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생활에 매우 약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왜 그럴까? 내가 앞서 여러 차례 애기한 것처럼 아이들이 왕자와 공주로 자랐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인사 가는 시간을 아껴서 학원에 보내고 문제집을 풀게 한다. 친구들에게 학원 이름을 가르쳐주지 말라고 시킨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 해결해주고 떠받들어 모신다. 아이는 한마디로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자랄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부모의 잘못이다. 실력은 기본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사람의 성패를 가르지는 않는다. 특정조직에 입사한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것은 싸가지라고 할 수 있다. 싸가지란 싹수의 사투리다. 나는 실력 못지 않게 싸가지를 갖추어야만 아이가 세상에 나아가 적응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섭공이라는 제후가 있었다. 별로 선정을 베풀지 못했던지 백성들이 다른 나라로 많이들 떠났다. 이에 당시 가장 현명한 학자인 공자님을 모시고 족집게 과외 수업을 받았다.
그러자 공자님이 간단명료하게 여섯 글자로 축약된 답을 말씀하셨다.
“근자열 원자래- 가까운 사람, 즉 네 나라 백성을 기쁘게 하라. 그러면 소문 듣고 먼 나라 백성이 몰려올 것이다.”
가정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가족이 기쁘지 않은데 밖에서만 성공하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
내 가족으로부터 사랑 받고 신뢰받는 가장이 되는 것,
이것이 곧 진정한 성공이요 참 행복이 아닐까?
- 은퇴후 30년을 준비하라. 오종남 저, 삼성경제연구소
출처 : 행복의샘(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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