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경기를 뛰는 선수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이

명예를 놓이 쌓았다는 것이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

인생에서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 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으로

인생이라는 경기에 성실히 임했다는 자부심이다.

아직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아직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더라도

계속 걸어가는 법만은 잊지 말아라.

아직 그대 안에

꽃피지 못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

천천히,그대 안의 가능성을 펼쳐라.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존 멕스웰

 

자기계발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긍정 수업!

30년간 500만 리더들의 삶을 바꾼 기적의 성장 프로젝트『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세계 최고의 리더십 구루라 칭송받는 존 맥스웰이 500만 명이 넘는 리더들을 교육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생의 끝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15가지 ‘성장 불변의 법칙’을 오롯이 담아냈다. 저자는 열심히 일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듯이 어른이 된다고 내적인 성장까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충고하며,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힘들고 고달플 때 잠시 주저앉아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금 일어나 나아가도록 만드는 힘, ‘성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나아갈 방향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막막한 독자들에게 내면에 잠든 잠재력과 가능성의 거인을 깨울 수 있는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성공은 결과가 아니고 과정이다.골프선수가 화이널 라운드를 남겨놓고 성공을 기대하고 승리만을

생각한다면 ,심리적 각성이 올라가 흥분이 되며,그러면 정상적인 샷이 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를 흔히 봐왔다.

이번에 출전하는 후보님들 !

충실한 과정없이 승리만을 위해 야합의 과정으로 대체하여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십니까?

이제와서  몇명이 모여 정책을 만든다고요?.룰을 만든다구요?

결코 국민들이 허락하지 안습니다. 지금이라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단일화를 멀리하고 정정당당한 자세로 임한다면 다음기회에 당신들을 환영하겠지요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그날 나는 누군가에게 미소 짓기만 해도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 지지 의사표시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야 안젤루,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에서

촌철활인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고 갈파한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처럼,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성공을 축적해 갈 수 있습니다.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빼빼로  데이의 추억,그러나 그 옛날  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 날은 11월 11일뿐 빼빼로 데이는 아니었다.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충남 아산에서 다녔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육상운동하다가 전국체전에서 탈락한후  그만두고, 서울로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자취도 하고 하숙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1차 불합격되었고 2차 발표하는 날(72년)의 해프닝이다.수험번호가 1111번이었는데, 게시판에 붙은 합격자 발표 게시문이 한자가 세로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키가 크지 않은 나로서는 일자가 두개만 보이고 밑에 두 일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식간에 앞의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 확인하고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그래서 명문 숭문고등학교 24회로 졸업하게 된 것이다.

 

또 한 사건은 골프라운드에서  드라마이다.89년 11월 11일이다.골프싱글끼리 한팀이 되어 스크레치 플레이를 하는데, 팽팽하게 진행되다가 5번째 파5홀에서 내가 2nd 샷에 오비를 두방 날리고 애봐(9타)를 했다.배판이었기에 지갑은 순식간에 홀쭉해졌다.그늘집에서 국수 한그룻 먹고 티그라운드에 올라와 샷하기전에 내가 동료들에게 물었다"홀인원을 한다면  어떻게 계산합니까?"하니까 수영이라는 형님이 "지갑 다 주기로 한다"라고 단호하게 말을 하였다.전홀에서 쌍오비낸 나는 말구가 되어 6번 아이언(Ping 2)을 빼 들었다.핀의 위치는 2시 방향의 후방에 위치였고 포대 그린이었으며,거리는 160m였다. 샷을 하고 공을 보는 순간 공이 일직선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공이 원 바운드될 때 수영 형이" 애이~~들어 가삐러라" 하였고 ,2nd 바운드되고 세번째 바운드 순간 공이 없어지는 것 이었다. 잠시후 웨이브 준 앞 플레어들은 함성을 지르며 "홀인원"이라고 싸인을 보냈다.,뒤팀도 마찬가지로 야단 법석이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팀은 조용히 있고 처음 맛본 나는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일단 우리팀은 그린에 접근하여 확인 해보니 진짜 나의 탑플라이트 볼이 홀겁에 끼어 있었다. 캐디의 머리에 쓴 보자기를 핀앞에 펼치고 절을 하고 볼을 끄집어 냈다 .그후에는 이밴트가 진행될 뿐이다. 세 동료의 지갑은 보니 대략 금액은 약 몇백만원 될듯 싶었다.나는 이돈을 다 받아야 하는지 돌려주어야 하는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고스란이 정중하게 돌려 주었다.그러나 광식이 형은 바로 5만원씩을 캐디에게 팁을 주는 것이었다.나또한 캐디피는 그날 배로 지불하였다. 그리고 골프장 사장에게 양해를 하고 우리와 캐디 아가씨들과 저녁과 나이트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헤어질때는 서울에서 온 신사 광식형은 택시비라며 다시 그들에게 십만씩  주었다.그때 나는 30대 중반이었다.그후  10년뒤인 99년에 두번재 홀린원을 하였고 , 2000년에 세번째 ,2002년에는 네번째 하였고 한달뒤에 기념라운드를 하다가 다시 5번째 홀인원을 하였다.그래서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같은 멤버였으며 다섯번째 기념패는  우드패에 멋진 詩 한수를 쓰여저 있는 의미가 깊은 패였기에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6번째 홀인원은 강원도 도계의 블랙밸리 cc에서 2008년 8월10일 목원대학교 골프CEO과정생들과 여행중에 하였다.인원이 많은지라  바기지를 옴팍 쓰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만든 것이었다.두번째 홀인원부터의 추억의 스토리는 다음 기회에 기술할 것이며, 골프의 나의 버킷리스트는 홀인원 10회와  Age shot을 해 보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나의 스토리와 추억은 골프와 함께 만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포츠산업경경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골프심리기술의 코칭,골프마케팅, 경영학 강의등이 모두가 추억과 함께 형성되었다고 생각된다.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콘텐츠개발과 골프교육 프로그램 기획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아름답기도 하다..

 

    2014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 아침  한국골프전문인협회 교육개발원장 이경진.

"똑똑한 리더는 스토리로 설득하고 멍청한 리더는 그저 명령만 내린다"

[CEO & 리더십] 스토리텔링의 대가 로버트 맥기 美 교수
리더는 숫자와 팩트만 줄줄줄 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롬니는 설득력이 약해요
리더는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록키 같은 스토리 말이죠
그래야 직원도 고객도 마음을 움직입니다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바다로, 달로, 대통령궁으로, 농부의 집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스토리는 우리가 세상에 눈뜨고 세상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울 수 있게 해 주지요."

로버트 맥기(Robert Mckee·71) 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마치 어디론가 달려가는 듯 허공을 응시하며 얘기했다. 그는 할리우드의 저명한 시나리오 전문가이자 스토리텔링의 세계적인 대가다. 그의 제자들이 수많은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받았고 구글이나 GE 같은 세계적 기업이 그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서울 강남의 리츠칼튼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난 그는 백발에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는 그는 방이 좀 춥다며 옅은 갈색 재킷을 챙겨 입고 자리에 앉았다.

스토리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고 첫 질문을 던지자, 그의 주름진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리곤 "음, 당신은 음악을 한 문장으로 말하라고 하면 뭐라고 답하겠소?"라고 거꾸로 물어왔다. 의외의 반문에 당황하자 그는 곧바로 "스토리는 우리의 작은 삶을 확장시켜 주는 훌륭한 장비"라고 답했다. 한 시간여 동안 그렇게 맥기의 이야기 세상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아주 작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를 통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험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하면서 우리의 작은 삶은 확장합니다. '나도 저렇게 할 것 같아' '어머, 나는 저러지 않을 텐데'라고 하면서요. 역사와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고, 무엇보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스토리 없이 살게 된다면 우리는 매우 작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리더십의 요체는 스토리텔링

그는 리더십에도 스토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리더십의 요체는 상대방을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팩트(사실)만 나열해서는 상대방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어요. 데이터는 숫자일 뿐입니다. 리더는 팩트들을 갖고 이야기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거야. 지금은 이렇지만, 내일은 이렇게 바뀔 거야'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롬니는 팩트와 데이터만 갖고 말하는데 그래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리더는 이야기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합니다."

그는 "나쁜 리더는 명령을 내리고 협박하고 조작하지만, 좋은 리더는 사람들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말하고 이해시킨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천 년 전에 항해를 하던 사람들은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어떻게 바다로 나갔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곧바로 스스로 답변했다. "그들은 스토리를 만들었어요. 검은 돌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은 후 지는 해를 향해 가다 보면 새 떼가 나온다는 식으로요. 이야기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지도였던 셈이죠."

◇좋은 스토리와 나쁜 스토리

―좋은 스토리란 어떤 것인가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삶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첫째고, 강력해야 한다는 것이 둘째입니다. 많은 스토리가 진실이지만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거짓 스토리가 매우 잘 포장돼 이야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스토리텔러 두 사람은 처칠과 히틀러였습니다. 히틀러는 매우 효과적으로 이야기할 줄 알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것이야말로 나쁜 스토리입니다. 인간을 사실과 완전히 다르게 묘사하고 인생을 그릇되게 그리고 결국은 인간이 거짓된 삶을 살도록 이끄는 스토리입니다."

―한국 문화 가운데 부족한 점이 있다면?

"세계적인 코미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한국 문화를 세계화하는 데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코미디는 사회가 균형을 이루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회 조직들이 너무 커져서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웃지 못할 때 그들의 힘은 너무 커지고, 그들은 현실을 왜곡합니다. 코미디는 그런 거대 조직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서 그들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지는 것을 막습니다."

맥기 교수는 "경영진에 언더독을 납득시키기가 너무 힘들다"고 푸념했다. "'힘 있고 지배적인 회사로 비쳐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돌아설 것'이라고 말하지만 잘 먹히지 않습니다. 경영진은 언더독이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언더독이 작고 힘이 없어도 훨씬 똑똑하다는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더독에 자신을 동화한다는 것도요. '록키'같이 말입니다."

[로버트 맥기는 누구인가?] 반지의 제왕 감독도 이사람 강의에 눈 번쩍

로버트 맥기(71)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아홉 살 때부터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미시간대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 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1983년 스토리텔링 수업을 바탕으로 1984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스토리텔링 세미나를 세계 곳곳에서 열면서 ‘스토리텔링 구루(guru· 스승)’로 일컬어진다. 영화감독 피터 잭슨, 영화배우 커크 더글러스를 포함해 5만명 이상이 그의 수업을 들었다.


특별히 아름다운 인연 

어느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
시골에 갔다가 수영을 하려고
호수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발에 쥐가 나서
수영은 커녕...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귀족의 아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한 농부의 아들이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귀족의 아들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그 시골 소년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키웠습니다.

어느덧 13살이 된 시골소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귀족의 아들이 물었습니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의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하고
아이들도 아홉 명이나 있어서
집안 일을 도와야 해...

귀족의 아들은 가난한 시골소년을 돕기로 결심하고
아버지를 졸라 그를 런던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결국 그 시골 소년은 런던의 의과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그 후 포도당 구균이라는 세균을 연구하여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약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1945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렉산드 플레밍”입니다. 

그의 학업을 도운 귀족 소년은
정치가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26세의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정치가가
나라의 존망이 달린 전쟁 중에
폐렴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폐렴은 불치병에 가까운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그러나“알렉산드 플레밍”이 만든
‘페니실린'이 급송되어
그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골 소년이 두 번이나
생명을 구해준 이 귀족 소년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를 굳게 지킨
“윈스턴 처어칠”입니다.

어릴 때 우연한 기회로 맺은 우정이
평생동안 계속 되면서
이들의 삶에 빛과 생명을 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내가 다른 이의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다면 그에게 있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유한 귀족의 아들 “윈스턴 처어칠”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우연히 알게 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을 무시했더라면
시골 소년은 의사가 되어 ‘페니실린’을

만들 수 없었을 테고
처어칠은 폐렴으로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귀족 소년과 시골 소년의 깊은 우정으로
농부의 아들은 의사가 되어
노벨 의학상을 받을 수 있었고
귀족 소년은 전쟁 중에
나라를 구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수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 인연도 이렇게 오래도록
좋은 인연으로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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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발전, 문화마케팅(교재 8장)

 

문화를 통한 (문화코드와 감성을 매개로 하는) 마케팅

문화산업, 문화단체, 기관, 프로그램의 마케팅(문화의 마케팅)

기업의 감성, 문화적 이미지 제고.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마케팅. `문화적인 품격이 없는 기업은 도태되는 세상

 

문화산업과 마케팅 1, 2 - 김소영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책임연구원)

문화마케팅의 이론과 실제 1, 2 - 박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공연장 운영과 마케팅 1, 2 - 홍사종 (숙명여대 교수/ 경기문화예술회관 관장)

Art Dealer와 마케팅 / 관객분석과 문화상품 개발 - 이호재 (가나아트 대표/ 前숙명여대 겸임 교수)

축제.이벤트와 마케팅 (정강환 배재대학교 관광문화대학 학장 / 관광이벤트연구소장)

해외공연마케팅 성공 사례 - 설도윤 (오페라 유령 제작자/ 재미로 대표)

퍼포먼스 공연 기획과 마케팅 - 송승환 (난타 제작자 / PMC 프로덕션 대표)

기업의 문화마케팅 사례 연구 - 이장우 (이메이션 코리아 대표)

국제영화제의 기획과 마케팅 - 김홍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

기업홍보전략과 광고마케팅 - 김동욱 (삼성물산 마케팅팀 과장/ 경영학 박사)

문화코드를 활용한 프로모션 전략 - 오세진 (제일기획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문화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문화(포지션)을 창조하고 계발하는 일

일반적인 마케팅이 상업적 성과에 촛점을 맞추는 반면, 문화마케팅은 문화예술의 미학적/의미적 가치/상징을 활용한 기업의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에 촛점을 맞춘다

 

문화마케팅과 국가

국가브랜드 홍보는 사실상 실종됐고, 코리아를 상징하는 로고와 슬로건 역시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 지원 정책에도 아쉬움을 표현했다. 외국 학자의 눈에는 한국 정부의 소프트파워 진흥 의지가 보이지 않은 셈이다.

프랑스 소비자 10명 중 8명은 현대차와 삼성 휴대폰이 일본산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는 에펠탑,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로고가 없다”면서 “외국인들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다이나믹 코리아`, `하이 서울` 등 각기 다른 로고에 혼란스러워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마케팅과 도시

 

1) 기존의 역사와 중심도시를 활용한 사례 - 로마, 프랑스, 뉴욕

I love new york과 다시 태어난 문화도시 뉴욕. 첨단산업, 뉴미디어산업, 광고산업, 영화산업, 패션산업... 비제조업 부분 강화.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 뉴욕 레스토랑 위크,

 

2) 새로 만든 유, 무형의 모든 것 (랜드마크 ) - 라스베가스, 두바이

라스베가스와 두바이와 같은 도시들은 없던 랜드마크를 만들어 개발한 것

라스베가스의 호텔에 오면 유럽을 다 본 것과 같다고 할 만큼 내부의 인테리어를 다양하게 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두바이는 버즈 알아랍 등으로 고급화 랜드마크의 이미지를 확립

3) 국가의 정책사업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

자동차 산업의 특성화 정책.

자동차 관련 역사 박물관, 포드 박물관 등을 설립하고 매년 1월에는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개최.

 

▶ 문화마케팅 5가지 유형

 

1. 문화 판촉 : 문화를 광고나 판촉의 수단으로 활용

☞ 벤츠 - 전통 한옥의 고풍스러움과 견고함을 벤츠의 이미지와 결합해 , 한국형 소재를 광고에 활용

☞ 태평양 -설화수는 설화수와 함께하는 한국의 미라는 전시회를 열어 전통 공예활동을 지원 함.

 

2. 문화지원 : 문화활동, 이벤트지원으로 이미지를 제고

☞ IBM -현물지원형태의 스폰서 활동. 세계문화재복원, 명화디지털 도서관 구축 등

☞ 하나은행 - 상설무료 전시공간 하나사랑, 아마추어 여성문인 등단을 위한‘여성 글마을 잔치’ 등

 

3. 문화연출 : 제품이나 서비스에 문화이미지를 체화

☞ 스타벅스 - 인테리어와 음악틀 통해 매장을 집이나 직장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포지셔닝 함.

☞ SK텔레콤 - TTL 신세대의 감성에 어필하는 전략으로 유행을 쫓는 1823세대에게 어필 함.

 

4. 문화기업 : 새롭고 독특한 기업으로 포지셔닝

☞ 소니 - 문화와 오락을 매개로 한 비즈니스 전개 했고 그 결과로 플레이스테이션 출시.

☞ 에버랜드 - 계절별 축제, 야간시간대의 멀티미디어 쇼 등 다채로운 문화이벤트 개최.

 

5. 문화후광 : 국가의 문화적 매력을 후광으로 활용

☞한류열품과 디지털 기술의 부상으로 외국에서 아바타, 아이러브스쿨 같은 한국형 비즈니스가 인기 끌고 있음.

 

▶ 문화마케팅 5가지 전략

 

1.장기적 관점에서 수행되어야 하는 전략적 투자이다.

대부분은 문화 마케팅보다는 메세나 운동에 가깝고 그마저 단기지원에 그치고 있다.

 

2.명확한 목표와 평가가 수반되어야 한다.

대부분 문화 마케팅의 목표는 상품이나 기업의 인지도 및 이미지 제공이다.

 

3. 전사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다양한 문화프로그램 계발로 직원의 자발적 참여는 물론 내부고객드의 만족도 까지 향상 될 수 있다.

 

4. 마케팅을 위한 문화식으로 문화 마케팅을 실행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자사의 이윤을 위해 문화를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 반기업 정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몇 안 되는 마케팅 도구중 하나다.

 

5. 학습효과를 중시해야 한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학습효과를 최대로 높일 수 있는 것은 비공식적 학습인 모방인데, 고객들이 쉽게 모방할 수 있도록 안내서나 설명 책자를 이용하도록 한다.

*어릴 때 소비습관도 비공식적 학습방법(모방)으로 이루어진다.

 

 

 

문화마케팅의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 문화예술의 후원자였던 정치가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로부터 유래한 메세나(Macenat)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의 메세나는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없이 수행되는 이타주의적 목적의 문화 및 사회의 여러분야를 지원하는 활동의 개념이었다. 이처럼 문화마케팅의 원천적 의의는 기업들이 조건 없이 문화지원 활동을 통해 문화 및 예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관점의 사회 공헌적 활동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마케팅은 기업 경영환경의 변화, 다양한 가치관을 통해 그 의미와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기업들은 이미지 제고와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마케팅 도구로 문화예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현대적 의미의 문화 마케팅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기존 개념과 더불어 문화예술의 감성 코드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 문화가 체화된 상품 개발, 글로벌 문화경영 전략 등을 통해 기업의 전략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메세나 패러다임의 변화는 메세나의 개념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적 관점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동시에 문화를 통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이 강조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최근의 메세나는 새로운 문화의 주체인 기업에 의해 문화예술을 마케팅 전략에 접목시키는 문화마케팅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업은 기존의 문화행사 후원의 차원을 넘어 회사가 주체가 되어 문화예술공연을 기획하기 하고 기업과 상품의 이미지를 담는 CF속에 그림이나 오페라등을 삽입해 기업의 문화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문화마케팅은 문화예술분야가 주체가 되는 문화의 마케팅(Marketing of Culture)과 기업이 주체가 되는 문화를 통한 마케팅(Marketing through Culture)의 두 차원이 있으며, 문화를 토대로 소비자와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가치도 높여주는 일련의 마케팅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관점적 차원에서 주체의 논란이 존재하나 궁극적으로 기업과 문화예술이 상호호혜의 관계를 통해 윈윈을 목표로 문화마케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호주의 AFCH와 아더앤더슨컨설팅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문화마케팅 효과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기업이라는 인식, 두 번째 시장우위 효과로서 기업인지도 제고, 가격 프리미엄 획득 및 매출증대와 같은 시장효과, 그리고 세 번째 종업원의 생산성 향상, 창의적 사고 및 만족도 증대와 같은 효과이다. 또한 영국의 Art & Business에 따르면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주요 동기를 기업 이미지의 전략적 관리로 분석하고 있다. 기업 인지도 제고, 기업 이미지 제고, 부정적 이미지 개선, 차별적 이미지 창출 등이 문화마케팅의 주요 동기라는 것이다.

현대 기업 경영에서 브랜드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의 모든 마케팅 전략이 브랜드 인지도를 고취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문화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지금 기업의 브랜드 제고에 있어 문화예술 코드의 활용은 매우 중요한 역할과 효과를 발휘한다. 문화예술의 감성 코드는 소비자에게 기업과 상품으로의 쉽고도 편한 접근을 제공하면서 소비자의 인식 속에 강력한 기업 이미지를 형성하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한다.

기업의 문화마케팅은 광고를 활용한 문화코드에서부터 국내외에서의 기업이미지 제고 그리고 내부고객인 직원들에 대한 문화 복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광고, 판촉 등을 활용한 이벤트적인 문화커뮤니케이션에서 부터 브랜드나 기업에 문화를 체화시키는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문화브랜드 및 문화기업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문화커뮤니케이션은 문화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기존 문화를 차용하거나 새로운 문화코드를 창출함으로써 문화예술을 통해 기업이 의도하는 이미지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할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 하우젠의 런칭 광고에서 예술작품이 브랜드 이미지로활용되거나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사용해 고급스어운 이미지를 표출하는 것이 좋은 예다. 또한 영화나 공연에 PPL과 같은 간접광고 형태로 활용, 삼성전자의 경우 매트릭스2에서 영화의 디지털과 네트워킹이라는 문화코드를 애니콜의 브랜드 이미지로 연결시켜 유럽시장에서 애니콜 인지도 제고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문화지원은 문화를 활용해서 기업을 홍보하고 사회 환원 차원의 공익성 부각을 통해 기업의 호의도나 평판을 제고하기 위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국내 기업들의 문화마케팅은 이 같은 지원이나 협찬의 문화지원 형태가 대부분이다. 신한, 조흥, 우리은행 등 금융권의 경우 우수고객 공연 초청이나 문화소외계층의 문화 체험을 지원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또한 필립스가 동대문, 광화문 등에 적합한 조명을 디자인하고 시공하는 것도 문화지원의 한 예로 한국 문화재에 빛을 비추는 호의적인 기업 이미지 형성을 위한 현지화 문화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지 사회에 대한 이해로 체계적인 해외 진출를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 문화투자를 통해 그것을 효과적으로 실현해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문화의 중심인 볼쇼이극장을 꾸준히 후원해오고 있다. 결과 러시아내 삼성브랜드 인지도와 브랜드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극장에서 발행되는 팸플릿과 포스커, 매거진에 인쇄되는 삼성로고와 광고는 삼성의 잠재 고객인 극장 방문객에게 삼성이 러시아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사회 공헌적 기업이라는 긍적적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와 같이 기업의 해외 진출시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지원을 통한 문화마케팅은 기업이미지 제고 및 브랜드가치 구축에 크게 기여한다.

또한 내부고객인 종업원에게 문화혜택을 제공하여 생산성 증대, 만족도 증가를 통한 조직문화 고양이라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문화투자적 관점의 문화마케팅으로 뉴욕의 에디슨사는 직원들에게 문화카드를 제공하여 가족들이 무료로 뉴욕 지역 박물관을 입장하게 해준다. 이는 내부 고객인 종업원의 문화적 소양, 창의성 증대 및 만족에 기여할 뿐 아니라 박물관에는 새로운 고객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와 상품의 판매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제공한다. 기업과 문화예술기관 모두가 윈윈하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한 잔의 이미지를 판매한다는 스타벅스는 도심 속 여유 공간 그리고 테이크아웃 문화라는 스타벅스만의 문화를 창조해낸, 스타벅스에 문화를 체화시켜 문화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고객들은 이제 인스턴트 커피를 구매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 스타벅스를 선호한다. 많은 사람들은 커피 맛보다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커피 문화를 접하기 위해서 스타벅스를 찾는다. 한국의 경우 대표적인 문화기업으로는 쌈지를 들 수 있다. 예술이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신념하에 상품의 예술화, 예술의 생활화를 지향하고 있다. 기업과 예술가가 상호호혜의 파트너십 관점의 문화마케팅 프로그램으로 문화기업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최근의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경제적 소비자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 소비자로 이동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감성적 욕구와 상징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독특한 소비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는 상품을 선호하고 있다. 이제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어떤 문화적 이미지를 전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제품 개발때마다 흔히 얘기하는 고객층, 제품 및 브랜드의 아이덴티니, 시장의 트렌드만으로는 부족한 그 무엇을 채워줄 문화적 코드로 접근해야 한다.

 

참고. 1.문화마케팅의 성공을 위한 8가지 전략과제 - 김우정

출처 : 이정덕수업
글쓴이 : OvercomeWest 원글보기
메모 :

 

길을 떠나 홀로 걸어보라… 길이 보이리니
" 길,나만 구원한게 아냐…85%인 청소년 재범률, 걷고 나면 15%로 떨어져"

은퇴 후폭풍… 걷기로 버텼다
아내의 죽음 겹쳐 우울증 앓아 자살까지 시도했다
예순에 처음 무작정 길 떠나
흘러가는 구름… 미모사 향기…
평소 못 봤던 세상, 걸으며 만나고… 몸과 마음엔 진정한 자유 찾아와

청소년 치유그룹 '쇠이유'
범죄 청소년들 걷기로 교화…3개월간 2000㎞ 걸으며
성취감 느끼고 칭찬받으면 아이들 눈에 자신감이 생겨…

아프간 전쟁 중에도 걸었다
군인에 쫓기고 이질 걸리고, 위험천만한 순간 많았지만
내 안전을 걱정한 이들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그 우정… 너무도 큰 행복

나는 또 걷는다
이번엔 혼자 아닌 동료와 파리~이스탄불 걸어볼 것
누구냐고?
아내 잃은지 20년 만에 새로운 사랑을 찾았거든

살기 위해 걸었다. 나이 60. 침몰하는 배처럼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자괴감, 사랑하던 아내의 죽음, 극도의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 걷기가 그를 구원했다. 전쟁과 질병, 맹수가 도사리는 실크로드 1만2000㎞를 단지 두 발로 걷고 또 걸으며 그는 소생했다. 길이 그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선물했다.

"두 달 뒤면 75세가 된다"며 웃는 이 남자의 이름은 베르나르 올리비에(Ollivier). 전직 기자였던 그는 은퇴 후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西安)에 이르는 1099일의 여행기록 '나는 걷는다'(효형출판) 3부작을 펴내 모국인 프랑스와 유럽은 물론 한국의 걷기 여행자들에게 '구루(guru, 스승)'가 된 사람이다. 2000년에 설립한 협회 '쇠이유(Seuil·문턱)'는 실크로드가 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길을 통해 자신이 치유받은 것처럼, 범죄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청소년 수감자들을 '걷기'를 통해 12년째 교화하고 있다. "한 아이가 말했다. 길을 떠나기 전 나는 건달이었으나 돌아온 뒤 나는 영웅이 되었다고." 올리비에가 책의 인세를 모두 쇠이유 협회에 쏟아붓는 이유다.

'2012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 초청돼 제주에 온 그를 지난달 30일 서귀포에서 만났다. 이튿날 제주올레 10코스를 함께 걸었다. '혼자 걷기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물었다. 올리비에가 답했다. "나는 혼자였던 적이 별로 없다. 길 위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다. 4년간 걸으며 사귄 사람들이 1만명? 아니 1만5000명은 될 것이다."

지난달 31일 도보여행자들과 함께 제주올레 10코스를 걷던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아름다운 해안 풍경에 감탄했다.“ 파도에 깎인 검은 바위들이 마치 조각품 같다. 경매에 부쳐도 좋을 만큼(웃음).”그는 내년에 자신의 첫 소설을 발표한다고 했다. / 이종현 기자
행복을 파는 상점

―9개 국어로 번역된 '나는 걷는다'는 프랑스에서만 40만부가 팔렸다. 인세 수익이 꽤 많았겠다.

"인세의 절반은 쇠이유에 주었고, 절반은 세금으로 냈다. 나는 돈에는 관심이 없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모를까. 행복을 파는 상점은 어디에도 없다."

―'문턱'이라는 뜻의 '쇠이유'를 협회 이름으로 정한 이유는 뭘까.

"문턱은 어디에나 있다. 집에 들어갈 때, 사원에 들어갈 때에도 문턱을 넘는다. 범죄의 늪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이 문턱을 넘어서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되기를 소망했다."

―걷는 행위가 어떻게 아이들을 변화시키나.

"아이들은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3개월 동안 2000㎞를 걷는다. 하루에 보통 25㎞ 정도 걷는다. 두 달 정도는 몹시 추운 날씨이거나 눈 속에서 걷는다. 첫 달 몇 주는 등이 아프거나 발이 아프다며 저항한다. 이 고비를 넘기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걷기에 즐거움을 느낀다. 끝까지 걷고 나면 아이들은 늘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똑바로 들기 시작한다. 스스로 해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기 존엄성을 회복한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도 그들이 문턱을 넘는 데 힘을 실어준다."

―프랑스 정부와 함께 이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뒀나.

"수감 청소년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행 청소년의 85%가 재범한다고 한다. 그러나 '쇠이유'의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재범률은 15%에 불과하다. 어떤 방법으로도 변화하지 않는 아이들을 정부는 쇠이유로 보낸다."

―은퇴 후 무엇이 그렇게도 당신을 힘들게 했던 걸까. 자살을 생각할 만큼.

"직장에 다닐 때는 내 자리와 이름과 존재할 이유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연금생활자가 되면서 방향 잡을 키도, 목적지도 없는 구제민이 되어버렸다. 무기력감,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괴로웠다. 내가 사랑한 아내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자식들은 독립해 떠나갔다. 내겐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 걸은 길이 파리에서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었다.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친 뒤 일단 파리를 떠나자고 생각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제자인 야곱이 순례한 길로 유명하지만 나는 종교적 이유로 걷지 않았다. 유럽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인 이곳을 걸으면서 역사의 일부가 되어보고 싶었다. 석 달 동안 2300㎞를 걸으면서 걷기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매일 20㎞씩 걸으니 내 몸이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주 전만 해도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3주 후 걷기의 즐거움에 빠져버린 거다. 인간이란 걷기 위해서 태어난 동물이란 생각을 그때 했다. 신체의 균형이 잡히면 정신의 균형도 잡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걷기'는 육체의 운동이 아니라 정신의 운동이라고 말했다.

"걸으면서 사람들은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러운 바람, 울퉁불퉁한 길, 미모사의 향기처럼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작은 풍경을 관찰하게 된다. 절대 고독 속에서 자신을 탐구하게 되고,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세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우정을 나누고 위안을 받는다.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물속 깊은 곳에서 숨이 차 수면으로 올라오려 발버둥치는 수영 선수와도 같았다. 공기가 간절히 필요했다. 걸으면서 투지가 생겨났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 세상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울퉁불퉁한 길을 수천킬로미터씩 걷는다는 건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걱정하지 마라. 당신의 몸이 훈련된 육상 선수처럼 적응할 테니까. 실크로드를 걷기 시작한 지 13일째 되던 날 내 몸의 근육들은 걷기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분당 맥박 수도 쉴 때는 60까지 내려갔고 걸을 때에도 85까지만 올라갔다. 예순한 살이었지만, 피로는 즉시 해소됐고, 짐도 덜 무겁게 느껴졌다. 세포 하나하나마다 취기 같은 게 느껴졌다. 당신도 나처럼 보행자의 열반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웃음)."

실크로드의 기적

―산티아고에서 그치지 않고 실크로드로 간 이유는 뭔가.

"산티아고 도착점을 50㎞ 앞에 두고 그곳에 닿으면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래서 그보다 더 역사가 깊고 거대한 길 실크로드를 떠올렸다. 미친 모험이란 걸 나도 안다. 내 나이에는 장미나 키우며 살아야 하는 데 말이다. 더구나 내가 실크로드로 떠났을 땐 터키와 쿠르드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9·11테러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졌고 그로 인해 테러리스트로 숱하게 오인받았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시기에 실크로드를 걷지 않는다. 유서 깊고 아름답고 안전한 길은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내가 실크로드를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역사적인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진정한 세계화는 실크로드에서 시작됐다. 실크로드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진 길이 있을까. 실크와 값비싼 보물, 향신료 같은 물품이 교역되었을 뿐 아니라 인류의 찬란한 아이디어들이 교환되는 장소가 실크로드였다. 세계 정복에 도움을 준 나침반, 화약, 종이, 그리고 과학과 사상이 모두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됐다. 유럽인 4명 중 1명을 사망하게 한 페스트 역시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됐다. 참으로 역사적이고 진기하고 놀라운 장소다. 이 길을 완주한 사람은 마르코 폴로와 일부 대사들이겠지만 말이나 자동차가 아닌, 걸어서 완주한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을 읽어보니 고생만 엄청 했지, 행복한 순간이라고 느껴지는 대목은 별로 없더라.

"그렇지 않다. 걸을 때보다 걷기를 멈추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을 만큼, 길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우정과 사랑을 베풀었다. 나무꾼 철학자 셀림과 아직도 내게 펜으로 쓴 편지를 보내는 정겨운 할아버지 베흐체트, 내가 굶어 죽을까 봐 내 식량 주머니를 꽉꽉 채워주던 여인들, 일주일만 더 머물다 가라고 붙잡으며 포옹해주던 남자들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나야 할 때 정말 힘들었다."

―가장 큰 고비는 터키와 이란의 국경에서 이질로 쓰러져 파리로 이송됐을 때일까.

"위험은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 있었다. 한밤중에 자고 있는 나를 잡으러 온 40여명의 군인, 도끼를 들고 나를 죽이겠다고 뛰어다니던 광인, 살기를 띠고 달려들던 맹견 캉갈, 하다못해 발가락의 화농성 염증까지.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유서를 써놓고 온 것이 다행스러웠을 정도다. 그렇다고 내게 닥칠 위험에 무방비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실크로드에 관해 전문가 이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했다. 수십장의 지도를 모으고, 터키어와 이란어도 배웠다. 관공서에 미리 도움도 청해놨고. 생명의 안전을 기적에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몸이 아파 불가피하게 자동차를 타게 되면 회복된 뒤 자동차를 탔던 바로 그 자리로 되돌아와 걷더라. 일종의 결벽증 아닐까.

"보는 관점에 따라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고 미친 사람, 편집증 환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 좀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세운 계획에 흠을 내거나 첫 단계부터 얼렁뚱땅 넘기고 싶지 않았다. 걷기는 다른 누구와도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실크로드 최초의 도보 여행자다. 당신은 '나는 영웅이 아니다, 자랑할 일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책을 펴냈다는 건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나처럼 특별한 재능도 없고 소심한 사람도 실크로드를 걸었으니 누구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고 싶었을 뿐이다."

고비사막을 걷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베르나르 올리비에.‘ 윌리스’라는 애칭의 짐수레는 그가 자전거를 사서 개조한 것으로 여행을 마친 뒤 프랑스의 한 박물관에 기증했다. / 효형출판
가난이 준 선물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태어났다. 농사꾼의 아들이었던 그는 가난으로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웨이터 일을 하면서 생업을 이어갔다.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대학입시 자격시험)에 합격해 대학에 들어간 게 그의 나이 서른 살 때. 졸업 후 기자가 된 그는 '파리 마치''르마탱''르피가로' 등 프랑스의 유수 신문과 잡지사에서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그는 기자라는 직업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새로운 걸 배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새로운 걸 습득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지. 특종? 물론 많이 써봤다. 특종이 아니라도 기자는 자기가 쓰는 모든 기사를 특종처럼 여기고 써야 한다."

―실크로드를 걸을 때 엉터리 지도 때문에 애를 먹었다는 푸념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갈림길'이 나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당신 인생의 갈림길도 그렇게 많았을까.

"물론이다. 내 인생의 첫 갈림길은 학교였다. 집이 너무 가난하니 7남매를 도저히 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데, 선생님이 부모님을 찾아와 베르나르만은 꼭 고등학교에 보내라고 부탁하셨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내가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갈림길은 퇴직 후 계속 살아야 할 것인가, 그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때였다."

―부모님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1929년 대공황이 왔을 때 쫄딱 망한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두 분 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셨다. 그러나 부모님의 가장 큰 미덕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너그러움이었다. 돈은 없었지만 우리 집엔 늘 사랑이 넘쳤다. 내가 이런 가정에서 자란 덕분에 모험가 기질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돌아올 안식처가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모험을 떠날 수 없다."

―가난이 당신에게 준 선물이 있다면.

"작은 것에 만족하는 능력."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밑바닥 생업을 전전했다.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나는 굶어 죽지 않겠다는 확신을 그 시기에 얻었다. 뛰어난 적응력은 내가 기자로 일할 때 상당히 유용하게 활용했다."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돌체비타'라는 이탈리아 영화를 보고 기자가 돼야겠다, 결심한 뒤 대입 자격시험을 봤다. 영화와 현실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기자란 직업이 그냥 멋져 보였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공부했다. 접시를 닦을 때에도 공사판에서 일할 때에도 나는 책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역사책은 나를 매료시켰다."

―기자로 일하면서도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텐데, 굳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뭔가.

"정치부 기자였던 내가 주로 만난 사람들은 정치인, 장관들이었다. 내가 쓴 기사 때문에 친구보다는 적(敵)이 된 경우가 훨씬 많았다(웃음). 비즈니스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과 우정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실크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나에게 마음을 열어 환대하면서도 그들은 (사랑을 베풀 기회를 준) 나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2002년 중국 시안에서 걷기를 끝낸 뒤 다시 그 나라들에 가본 적이 있는지.

"2005년 다시 실크로드에 갔다. '나는 걷는다'를 읽은 독자들이 왜 책에 이미지가 없느냐고 해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려고 9주 동안 자동차로 실크로드를 완주했다. 키르기스스탄에 갔을 때 핫산이란 이름의 목동과 재회했다. 키가 크고 덩치도 산만한 이 사람은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껴안았다. 핫산이 나를 얼마나 세게 껴안았는지 목에 걸었던 내 안경이 박살 나고 말았다. 단지 하룻밤을 잤을 뿐인데, 그는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걷기의 기적이다. 불꽃이 튀는 강렬한 만남이 걷는 동안 이루어진다."

―사진은 왜 싣지 않았나.

"감동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글이다. 내가 독자들에게서 받은 가장 큰 칭찬은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저자의 옆에서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여행지의 사진을 실었다면 이런 감동은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는 왜 가져갔나.

"기록하기 위해서. 사막을 건널 때 빼고 하루 10여명의 사람을 만났다. 매일 저녁 하루를 정리할 때 나의 기억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사나운 날씨에 발이 곪아 터지고 이질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하루하루의 여정을 치밀하게 기록한 올리비에의 능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지난달 3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리비에의 강연에 몰려든 도보여행자들 또한 올리비에의 기록 노하우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길에서 만난 꼬마의 이름까지 책에 적을 수 있는 당신의 비결은 무엇인가.

"기자생활을 할 때부터 주머니가 많이 달린 바지를 즐겨 입었다. 주머니 하나에는 여권을 넣고, 다른 하나에는 수첩과 펜, 또 다른 주머니에는 카메라를 넣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름부터 묻고 메모했다. 엄청난 양의 메모를 하고, 엄청난 양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내 책은 3권이지만, 메모한 것의 5%도 반영하지 못했다."

―그래도 매 순간 메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닌가.

"실크로드로 떠날 때 자식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아버지가 실종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찾아야 하느냐고 묻더라. 고심 끝에 약속했다. 저녁마다 편지를 한 장씩 쓰겠다고. 그날 하루 있었던 일, 내가 있었던 장소와 날짜를 적은 편지를 써서 부치겠다고. 만일 내가 실종되면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에 등장하는 장소부터 나를 찾아 나서라고 했다. 여행이 끝난 지 수개월이 지난 뒤에도 메모를 읽고 사진을 보면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혼자 걸어야 하는 이유

31일 아침, 올리비에는 제주올레 10코스를 걷기 위해 모인 수백 명의 사람을 보고 입을 벌렸다. '혼자 걸어야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진 그에게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1년에 한 번쯤 이런 걷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웃던 그는 "걷기 열풍은 한국 사회가 성찰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제주올레길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걷기 열풍에 대한 회의가 일고 있다고 말하자 올리비에가 반문했다. "1년 동안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자동차를 타는 것이 걷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왜 혼자 걸어야 하는가.

"혼자 걸어야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생각도 자유로워진다. 상상력이 부족해졌다고 느낄 때 나는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걷는다."

―실크로드 이후 걸은 길이 또 있을까.

"15일 동안 피레네산맥을 걸었고, 노르망디의 성지 순례길 3000㎞를 걸었다."

―다시 걸을 계획은?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6개월간 걸어볼 생각이다. 처음 실크로드를 완주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땐 집이 있던 노르망디에서 중국까지 걸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건상 이스탄불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이번에 그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싶다."

―역시 혼자서 걷겠지?

"아니다. 이번엔 고독이 아니라 다른 감정으로 걷게 될 것 같다. 걷기를 시작한 지 처음으로 동료와 함께 걷는다."

―혼자 걸어야 걷기의 완벽한 행복을 느낀다고 하지 않았나.

"동료가 실은 내 여자친구다. 아내와 사별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사람이다(웃음). 그런데 우리는 걸을 땐 각각 혼자 걷는다. 걸을 때는 침묵하고 멈추었을 때 대화한다. 서로 침묵을 존중한다."

―당신은 은퇴자들에게 도보여행을 권유하지만, 은퇴자들은 인생 2막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에도 바쁘다.

"2000년 이란 국경을 넘어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이르는 4개월간 내가 쓴 돈은 겨우 300달러였다. 집에 있었다면 더 많은 돈을 썼겠지(웃음). 걷다 보면 인생 후반부, 무한하게 주어진 시간과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영감과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

―74세에 이처럼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역시 걷기일까?

"매일 아침 30분 이상 걸은 뒤 찬물로 샤워하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 당신도 하루 6~7㎞씩 걸으려고 노력해보라. 실크로드도 거뜬히 걷게 될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도보여행자가 될 것인가.

"나는 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삶, 환생을 믿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생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깨닫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계속 걷는다."

-디지털 스토리 텔링 -

1.설명하기에서 경험하기로

http://www.scout.co.kr/myscout/myvision/s-cap/

인적성검사에대한 소개 뿐 아니라 직접 해볼수 있는 사이트.

http://asana.co.kr/

사진 올려서 직접 많은 헤어스타일을 적용해 볼 수 있다.

http://makingstyle.com/

온라인상에서 마네킹에 직접 코디 해볼수 있는 사이트.

2.정보전달에서 의견수렴으로

참여마당 신문고 (http://www.sinmoongo.go.kr/)

국민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는 전자민주주의의 창구 청와대 인터넷 신문고. 부정부패고발 민원신청 사이트.

산업자원부 (http://www.mocie.go.kr/)

산업자원부의 주요 정책및 동향을 신속하게 제공하고 기업등의 의견수렴을 위한 사이트.

http://www.kbs.co.kr/drama/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의견수렴.

3.일회성 보도에서 깊이 있는 보도로

서울지방경찰청 종합교통정보센터 (http://www.spatic.go.kr/)

수도권 교통상황, CCTV동영상, 인터넷교통방송 등 실시간교통정보.

미래증권정보 (http://www.fistock.com/)

투자전략, 집중 공략주, 증권정보 업체, 흑진주 골든베스트, 파워종목, 특징주 심층분석 제공.

한겨례21논술클럽 (http://www.han21.co.kr/)

논술 교육 사이트, 온라인 논술모의고사, 기출문제, 구술 심층면접, 심화자료, 대입 정보제공.

네이버 부동산 (http://land.naver.com/)

매매 및 임대 물건정보, 아파트 시세, 분양정보, 부동산 뉴스 제공.

4.뉴스읽기에서 뉴스듣기로

씨에이치오미디어 (http://www.odionews.com/)

오디오 뉴스 사이트, 듣는신문, 스포츠, 연예, 오디오북, 가쉽, 인터뷰 등 정보 제공.

YTN (http://www.ytn.co.kr/)

동영상을 통해 뉴스를 보고 들을수 있다.

http://news.tbs.co.jp/

일본뉴스를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다.

5.인쇄신문 레이아웃에서 창조적 네비게이션으로

http://www.elmundo.es/especiales/2001/09/sociedad/drogas/
스페인 엘문도 마약특집 기사.

http://www.csmonitor.com/atcsmonitor/specials/smallplane/index.html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christian science mon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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